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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요 네스뵈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1년 10월
평점 :
'해리 홀레 시리즈' 가 아닌 요 네스뵈의 소설을 오랫만에 읽는다. 요 네스뵈의 이야기 전개를 좋아해서 그가 썼던 아이를 위한 동화까지 찾아 읽었던 터라 이번 소설에 대한 기대감 또한 충만했다. 750여페이지에 이르는 벽돌책이지만 몰입, 순식간에 다 읽었다. 그의 플롯 구성과 전개는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킹덤
Kingdom
요 네스뵈 ( Jo Nesbø )
비채
우린 가족이다. 우리가 믿을 건 가족뿐이야. 친구, 애인, 이웃, 이 지방 사람들, 국가 그건 모두 환상이야. 정말로 중요한 때가 오면 양초 한 자루 값어치도 안 된다. 그때는 그들을 상대로 우리가 뭉쳐야 해. 로위. 다른 모든 사람 앞에서 가족이 뭉쳐야 한다고. 알았지?
- p13, 프롤로그
프롤로그에서 주인공 아버지가 강조하는 '가족'. 책을 덮고나면 떠오르는 단어 또한 '가족' 이란 단어다. 형인 로위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과거와 현재의 사건들은 그가 느끼는 가족에 대한 애증, 책임감, 죄책감 등의 다양한 감정들들 담고 있다. 특히 그가 동생인 칼에 대해 느끼는 과도해 보이는 책임감의 이유가 책을 읽어가는 내내 궁금한 포인트이기도 하다. 덕분에 화자가 사건의 중심이 되는 사건의 범인이 아닌가 내내 의심하면서 이야기 속의 복선을 찾아보기도 하고,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확대 해석해보게 되기도 한다.
<뉴욕저널오브북스> 의 한줄평인 '요 네스뵈가 그리는 세상은 황폐하거나 곧 황폐해진다. 그는 자비라곤 없는 최고의 이야기꾼이다.' 라는 문장에 절절히 공감한다. 재미있으면서도 정신이 너덜너덜해지는 기분이라고 할까.
긴장하다가 읽어내려가다 안심하려고 들면, 갑자기 또 다른 사건이 휘몰아친다. 그 사건을 수습하면 또 다른 일이 벌어진다. 피투성이의 파국이다. 그 가운데 생각지 못했던 작은 반전들이 엮이고 어두운 비밀들이 하나둘씩 밝혀지며 '아니, 그런거였어?' 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예상이 몇 번이나 뒤집히던지.. 이렇게 독자를 휘몰아치다니 작가의 구성력과 필력에 다시 감탄할 수 밖에 없다. 모임에서 함께 읽고 독서토론을 해보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결은 다르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나오미와 가나코」를 읽을 때의 느낌이 떠오르기도 했다.
오프가르 농장, 작은 집, 헛간 하나, 외곽의 벌판 몇 군데, 저게 도대체 뭐람? 네 글자로 된 이름, 식구 중 두명이 살아남은 집안의 성(姓). 다른 걸 모두 떼어냈을 때, 가족이란 무엇인가? (...)
단순히 실용적인 이유 외에 또 다른 것이 있는가? 부모, 형제, 자매를 하나로 묶어주는 뭔가가 핏속에 있는 건가?
- p734
어쩌면 요 네스뵈는 가족을 위해, 사랑을 위해 "당신은 무엇까지 할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읽는 이의 도덕적 가치관을 시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표지의 손과 손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온다. 가족이란 울타리, 그들만의 '킹덤' 은 겉으로 보는 것과는 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