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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7년 8월
평점 :
「상실의 시대」 로 읽었던 이 소설을 오랫만에 다시 펼치는 감회가 새롭다. 일본 출장 중에 일본어 공부를 해보겠다며 문고판으로 샀던 원서는 상권의 중간까지 읽다가 포기했었으니 거의 20년만인듯 하다. (겉모양만) 나름 하루키스트라며 하루키의 책을 모아뒀던 터라, 99년의 2판 75쇄본이 책장에 내내 꽂혀있었음에도 다시 읽어볼 생각은 왜 못했던 걸까.

책의 표지는 일본 초판본의 색을 가져왔다. 민음사의 번역본은 상, 하권의 합본이므로 두 색이 한 권에 함께 있다. 유광인 원래의 표지와 달리 종이의 질감이 느껴지는 무광의 좀 더 세련된 표지를 입고서, 초판본의 느낌을 살린 디자인 컨셉트로 제작되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비틀즈의 곡인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에서 따온 제목이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일본 소설 1위를 차지하는 등, 하루키 붐을 일으킨 소설이기도 하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팬이었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책에서 개츠비를 언급했던 터라, 「위대한 개츠비」도 덩달아 찾아 읽었던 추억도 떠오른다. 또한 역시 책 속에서 언급되었던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도.
1970~80년대의 일본이 배경이 소설로, 2차 세계 대전 이후 급속한 발전을 이룬 일본이 버블의 붕괴로 인해 경제가 불안해지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무기력에 빠졌던 시절이 무대다. 화자인 주인공 와타나베는 유일한 친구 기즈키의 자살로 죽음을 마주한다. 아픈 기억을 지워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어떤 식으로 생각하든 죽음이란 하나의 사실이었다. 그런 숨 막히는 배반 속에서 나는 끝도 없이 제자리를 맴돌았다. (...) 삶의 한가운데에서 모든 것이 죽음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p56)

이 책을 읽었던 나의 젊은 날은 아래의 문장에 밑줄을 그었었다. 문장 속에서 비슷한 시간을 발견하며 공감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와타나베처럼 죽음에 마주하지는 않았으나 청춘의 방황은 동일했다. '어디로든 가지 않을 수 없으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수 밖에 없던' 시간들.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신발이 쑥 빠져 버릴 것만 같은 깊고 무겁고 끈적이는 수렁. 그 진흙탕 속을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걸어갔다. 앞에도 뒤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끝도 없이 시커먼 진흙탕 길이 이어질 뿐이었다.
시간조차 나의 발걸음에 맞춰 느릿느릿 흘러갔다. 주위 사람들은 재빨리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와 내 시간만이 수렁에 빠져 질퍽질퍽 제자리를 맴돌듯이 걸어갔다. (...)
나는 거의 얼굴도 들지 않고 하루하루를 흘려보낼 따름이었다. 내 눈에 비친 것은 무한히 이어지는 수렁뿐이었다. 오른발을 내딛고 왼발을 들어 올리고 다시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확신도 없었다. 다만 어디로든 가지 않을 수 없으니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따름이었다.
- p461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는 '사랑' 보다는 '방황' 에 방점을 찍으며 읽었던 듯 싶다. 오랫만에 다시 읽는 지금은 '사랑'에 관한 것들을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미도리와 방황하고 헤매며 아파하는 나오코 사이에서의 와타나베를 바라보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젊은 날의 상실이 가져왔던 고독과 의미없는 육체적 관계들이 다시 불러오는 허기의 반복 또한 생각거리를 남긴다.
와타나베가 마주했던 여러 죽음들에서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겨 있다.'(p529) 라고 했던 것을, '어떤 진리도, 어떤 성실함도, 어떤 강인함도, 어떤 상냥함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뿐이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또다시 다가올 예기치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p530) 는 것을 이제는 마음으로 공감하게 되는 삶의 경험도 쌓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10년 뒤에 다시 읽어봐야지. 그 때는 어떻게 다가오려나 벌써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