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한 구가 더 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2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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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의 제목에는 '유골'이란 단어가 들어가더니, 2권에는 '시체' 란 단어가 들어간다. 제목만 봐도 추리 소설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캐드펠 수사의 주변에는 계속 사건이 끊이지 않을 예정이라는 것도.




1138년, 왕위를 둘러싼 사촌 간의 혈전이 한창인 잉글랜드가 배경이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영국 역사를 알면 더 재미있는 소설이다. 신성 로마 제국 잘리어 왕조의 마지막 황제 하인리히 5세의 황후였으며 모드 황후라 불리는 마틸다와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으로, 노르만 왕조의 마지막 국왕인 스티븐 왕 사이의 무정부 시대 내전을 배경으로 한다. 책 속에서는 소설의 끝에 각주 페이지를 두어 두 인물을 포함하여, 소설 속의 건물, 허브 등에 대하여 자세히 서술해놓기도 해서 이해하기가 편하다.


전장의 역한 피비린내와 매캐한 연기는 슈루즈베리 바로 코 앞에까지 육박해왔다. 전쟁의 위협이 죽음의 그림자처럼 성과 마을에 드리웠다. 스티븐 왕은 자신에게 반기를 들고 저항하는 슈류즈베리 수비군을 무찌른다. 그리고 헤스딘의 아눌프를 포함하여 포로 아흔네명을 모두 처형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수도원장은 그들이 어떤 범죄나 잘못을 저질렀든 간에 그들은 저마다 영혼을 가진 존재들이요, 적절하게 매장될 권리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왕에게 청원하고, 시신들을 수습을 캐드펠 수사에게 맡긴다. 대학살의 현장에 도착해 시신을 수습하던 캐드펠 수사는 시체가 아흔다섯 구임을 발견한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두 손을 결박당하지도 않고, 교수형을 당하지 않은 시신 한구를 찾아낸다. 더 이상의 추문을 피하려는 이들은 서둘러 시신을 매장해 진실마저 묻어버리려고 하지만 캐드펠 수사는 살해당한 불쌍한 젊은이를 위해서 반드시 범인을 밝히려고 한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탐문과 추리 과정에서 캐드펠 수사가 불쑥 뱉는 말들은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는 듯 했다. 수도원에 들어오기 전에 십자군 전쟁에 참전한 영국의 전직 군인이면서 약제학 전문가로 나오는 그는 전쟁을 겪은 후 신에게로 귀의했기에 그런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욱 관조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추악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알게 되면 신이 인간에게 행하실 정의와 자비에 대한 확신에 그늘이 드리울 수 있으니까. 시간이라는 잔혹한 불의가 시야에서 사라져 늘 영원 속에 거하는 경지에 이르려면 인생의 절반은 지나보내야 해.(p71)"


등장인물들간의 로맨스는 소설의 또 다른 재미가 된다. 두 커플이나 탄생한다는! 현란한 트릭은 없는 추리 소설이지만, 범인을 밝히려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휴 베링어라는 인물과의 끝 없는 신경전 또한 매우 흥미롭다. 캐드펠 수사는 그를 호적수로 인정한다.


망나니야 말로 호적수고, 녀석을 다른 상대와 바꾸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중략> 우리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책을 통해 배우며 살아가기 마련이지! 


- p291



캐드펠 수사는 스티븐 왕 편도 모드 황후편도 아니었다. 양 진영으로 나뉜 사람들을 보며 '그들 모두 현재의 무정부 상태와 내전의 상처를 벗은 미래의 잉글랜드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BBC 드라마 <캐드펠>의 원작인 이 시리즈는 중세 역사 미스터리의 팬이라면 꼭 봐야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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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긴 방 마르틴 베크 시리즈 8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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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긴 방』 은 두 가지 사건이 별개의 사건인 것처럼 수사가 진행된다. 첫 번째 사건은 연쇄 은행 강도 사건으로, ‘불도저 올손’ 검사의 지휘 아래 조직된 특수수사대가 조사하는 사건이다. 국가경찰청장의 지시에 따라 은행 강도 건을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경찰은 이전 사건에서 다친 상처를 회복하고 막 복귀한 마르틴 베크를 제외하고 전부 은행 강도를 잡는 데 투입되지만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이 사건에 투입된 콜베리와 군발드 라르손이 드디어 동료애를 보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각 캐릭터의 변화는 이 시리즈의 숨겨진, 깨알같은 재미이기도 하다.


콜베리와 군발드 라르손은 원래 서로 볼일이 없는 사이였다. 하지만 최근 동안 이런저런 일을 함께 겪으면서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친구라고 부르거나 경찰서 밖에서도 만나자는 생각이 정도는 결코 아니었지만,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점점 잦아졌다.


- p93


두 번째 사건은 창문은 안에서 잠기고 문에는 이중 삼중의 잠금장치가 걸린 ‘잠긴 방’에서 한 남자가 총에 맞아 살해된 채로 발견된 사건으로 몇 달의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된 시신은 심각하게 변형되었다. 이 소재는 추리 소설의 '밀실 살인 사건' 유형을 떠올리게 한다.

15개월만에 복귀한 마르틴 베크는 "그는 경찰관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국가범죄수사국 살인수사과의 과장을 맡은 경감이었다(p37)" 라고 생각하며 경찰의 감을 되찾고자 애쓴다. "경찰관으로 스물여덟해를 산 덕에 익힌 기술 중 하나는 보고서를 읽으면서 반복과 사소한 세부사항을 재빨리 걸러내는 능력이었다. 그 속에 어떤 패턴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알아차리는 능력도. (p48)" 그는 차근차근 단서를 수집하고 곱씹으며, 얼마없는 단서 속에서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기 위해 분투한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서사에 익숙한 독자는 두 사건이 어떻게 연결될 지 눈에 불을 켜고 읽게 된다. 역시나 결말에서 탁월한 아이러니로 얽힌다는 것!

두 번째 사건의 초동수사를 맡은 수사관은 잘못된 판단으로 수사를 초반부터 망쳐놓았다. "요즘은 수사를 시작할 때 먼저 경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부터 수사해야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것이 실제 사건 해결보다 더 어려운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p69)" 라고 한탄하는 마르틴 베크.

복지사회의 이면을 고발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았기에 시리즈 특유의 사회 비판이 장면들과 등장인물들의 독백에 담긴다. "명색이 복지국가에 아프고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이 많다는 것, 그들이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하고 겨우 개 먹이로 연명하다가 서서히 쇠약해져서 쥐구멍 같은 거처에서 죽어간다는 것 (p53) " 라는 식이다.


마이클 코널리는 책의 서문에서 “(‘마르틴 베크시리즈는) 범죄가 해결되는 과정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구성과 짜임새와 연출을 가진 책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범죄가 발생하는가, 그리고 종종 어떻게 도시와 국가와 사회가 공모자가 되는가를 보여준다 부연하며, 독자들이 소설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있도록 저자들의 의도를 설명했다.


- 소개 중에서


사건의 해결과 별개로 아내와 이혼했던 마르틴 베크가 새롭게 만난 인연은 다음 권을 더욱 궁금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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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유튜버
하마구치 린타로 지음, 김현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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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마루' 라는 이름의 게스트하우스. 우미카의 아빠가 운영하는 곳으로 숙박객으로 있던 겐키와 잇큐가 오래 머물면서 스태프로 같이 일한다. 에메랄드그린색 바다가 펼쳐지는 미야코섬에 위치한 이곳의 야자나무와 카약 여러 대, 해먹이 걸려있는 테라스의 풍경 속에 사는 우미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도쿄에 미술대학에 갈 꿈을 꾸는 초등 5학년의 소녀다.

우미카의 아빠는 고양이 카페 이야기를 듣고는 차별화 전략으로 개미핥기를 키워 '개미핥기 하우스'를 만들겠다며 신이 나있다. 그러다가 우미카가 유튜버에 대해 이야기하자 급 전략을 바꿔 유튜버를 하겠다고 한다. "아빠가 또 재미있는 일을 시작할 것 같네"(p40) 라는 주변 사람의 이야기에 우미카는 "잘 흘러갈 리가 없어요" 라고 한숨을 쉰다. 과연 어떻게 될까.




우미카의 아빠, 유고는 유튜버로 유명해지려고 갈수록 수위가 높은 영상을 올린다. 다들 지나치다고 하는데도 그는 꿋꿋하게 더 자극적인 영상을 만든다. 돈이 목적이 아닌 듯 한데, 유고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일까. 이야기는 비뚤어진 간판의 허름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유고가 예전에 도쿄로 상경해 무명 코미디언으로 지낸 과거, 그리고 지금 유튜버로 성공하기 위해 벌이는 위험천만한 현재의 에피소드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 겐키의 말대로 아빠는 리액션이 특기다. <중략>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아빠는 대활약했다. 혹독한 일을 당하면 당할수록 재미가 배로 늘었다. 어떤 일이든 아빠는 진심으로 저항하고, 진심으로 화를 내고, 진심으로 몸부림치고, 진심으로 아파했다. 그 모든 순간이 재미있었다. - p154

역자는 '이 작품은 앞에서는 큰 웃음을 주고 뒤에서는 큰 감동을 준다' 라고 전하고 있다. 우미카가 아빠에 대해 '허술하고 흥이 넘치는 사람' 이라고 말한 것처럼 아빠와 관련된 일들은 온통 웃게 만든다. 그러나 유고의 과거와 그가 유튜브를 하고자 했던 이유, 유이마루에 관련된 사람들의 사연, 그리고 우미카의 이야기가 서로 엮이며 코끝을 시큰하게 만들고야 만다.

📘 유고 씨의 그 한마디를 듣고 저는 참을 수 없이 기뻤어요. 피가 이어져 있기만 하고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 가족이 아니다. 서로를 진심을 다해 믿고 이해하는, 진정한 가족이 나한테도 생겼구나 하고 말이죠. 그리고 가족에게는 '다녀왔습니다' '잘 다녀왔어?'라는 말을 나눌 수 있는 집이 필요해요.- p340

서투르지만 진심을 다한 유고의 애정, 그런 유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역시 따뜻한 심성으로 자란 우미카의 모습에 감동하고, 유고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바다 해에 향기 향자를 쓰는 '우미카'라는 이름의 유래와 오키나와 사투리로 '돕는다'라는 의미를 가진 '유이마루'라는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이 서로 맞물릴 때 그 감동은 더욱 커진다.

제목이 스포인 책도 있지만, 제목이 트릭인 책도 있다. 이 책은 내게 있어 후자의 경우였다. '유투버' 라는 단어에 꽂혀 한 유튜버의 엉뚱한 일상만을 상상하며 방심했다가 후반부에 눈물샘을 자극받았다. 책을 덮고나니 눈 앞에 미야코 섬의 바다가 펼쳐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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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의 대각선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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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에드몽 웰스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의 내용이 발췌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네메시스>라고 부를 만한 분신이 영혼의 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페이지를 넘기면 제 1막의 제목 <영악한 두 아이>가 독자들을 맞이한다. 이 둘은 서로 네메시스인 것일까.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에 사는 소녀 두 명이 번갈아 등장하며 학교에서 사건을 벌인다. 사건을 벌이게 된 원인과 사건을 일으킨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에서 독자들은 등장인물의 성격을 명확하게 인지하게 된다.

📚 "오토포비아는 혼자 있기를 꺼리는 거야. 그리스에서 유래한 단어로, <자기 자신>을 뜻하는 auto 와 <공포>를 뜻하는 phobia가 합쳐진 거지"
"오토포비아? 표현이 마음에 들어요. 좋아요. 난 오토포비아예요." - p22, 니콜

📚 "너 같은 경우는 <안프로포비아anthrophobia>가 더 적합해. 다른 사람에게 병적인 공포를 느끼는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이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인간을 뜻하는 anthoropos 와 공포를 뜻하는 phobia 가 합쳐진 거야"
"알려줘서 고마워요, 엄마. 엄마 말이 맞아요. 난 안트로포비아예요. " - p28, 모니카




함께 뭉친 집단의 힘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니콜과 개인의 뛰어난 역량이 인류 진보의 원동력이라고 여기는 모니카는 양 극단에 있다.

니콜은 아빠에게 자신의 이름의 의미를 듣는다. 이름을 따온 그리스어 니콜라오스는 <승리>를 뜻하는 nike와 <민중>을 뜻하는 laos가 합쳐진 말이다. <승리하는 민중>이라는 의미로, 인간 무리를 운용하는 전략에 관심을 가지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 니콜의 아빠는 말들을 움직이고 부리는 재미를 가르치기 위해 체스를 가르쳐준다. '네 성격을 아는 아빠가 예상하기에, 너는 폰들을 전진 배치해 벽을 쌓아서 상대를 압박하는 전략을 주특기로 삼을 것 같구나(p55)' 모니카는 감정조절을 위해 엄마에게 체스를 배운다. 엄마는 프랑스어로 왕비라는 뜻의 이름의 외할머니에게 체스를 배웠다고 하면서, 이름 때문인지 몰라도 말 중에서 유난히 퀸을 아꼈다는 이야기도 전해준다.

​둘은 열두 살이었던 1972년,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체스대회에서 처음 만나며 서로를 인식한다. 당시 경기에서 진 모니카는 니콜한테 달려들어 목을 조른다. 이후 1978년 런던에서 개최된 세계 여성 체스대회에서 다시 만나는데, 이 때는 모니카가 이긴다. 그러나 시상식장에 아일랜드 무장단체인 IRA의 테러 협박 전화가 걸려오고, 공포에 휩싸인 시상식장에서는 빠져나가려는 군중들이 몰리면서 모니카의 엄마가 압사 사고에 휘말려 사망한다.

두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양 부모의 정치적 성향도 매우 다르다. 타고난 성향도 달랐지만 부모의 영향 또한 커보인다. 스물다섯 살이 된 1985년, 니콜 오코너는 군중학을 전공하고 사회학자로서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로의 교수가 되었다. 모니카는 엄마가 사망한 후 양극성 정동 장애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과 치료와 심리 상담을 받던 중에 심리상담사의 권유로 글쓰기에 도전하여 에세이집을 출판했는데, 입소문을 타고 책이 날개 돋친 듯이 팔리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그리고 니콜은 IRA에 참여하고 체스판이 아닌 현실에서 체스 게임을 펼치려고 한다.

테러범을 관리하는 영국 정보부 MI5는 IRA에 니콜이 입단한 것을 확인하고, 니콜의 독창적인 테러 전술에 대항하기 위해 모니카에게 니콜을 무력화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제안한다. 1978년의 대회에서 모니카가 니콜을 이긴 점에 주목한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건 바로 이 점이에요. 당신이 그녀를 능가하는 지능을 지녔다는 사실.(p273)'. 그리고 설득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의 죽음의 배후를 밝힌다.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내용에 몰입해서 순식간에 1권을 읽어버렸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두 인물을 선과 악으로 나눠보려고 했으나 이내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니콜과 모니카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2권이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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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의 대각선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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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의 대각선』 을 읽으며 구석에 있던 체스판을 오랫만에 꺼냈다. 아이와 함께 하려고 사놓았으나 체스에 능숙하지 못해서 기본 룰만 간단히 배우고 활용하지 못했다. 소설을 읽고 나니 체스를 다시 배우고 싶어진다. 


나한테는 체스가 세상과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이해하는 한 가지 방식이기도 해. 우리 아빠는 세상만사가 전략의 문제라고 했어. 체스를 하다 보면 아빠의 그 명언이 실감 나지. 실제로 그렇거든.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 예순네 칸짜리 사각형 판 위에 그대로 재현할 수 있을 것 같아 - p28, 니콜



2권에서는 현실을 체스판으로 삼아 벌이는 니콜과 모니카의 대결이 펼쳐진다. '지구라는 거대 체스보드 위에서 인간들을 폰으로 움직이며 둘만의 체스 게임(p153)'을 벌인다. 치열한 수 싸움이 벌어지고 승패를 주고 받는 장면들이 흥미진진하다. 함께 뭉친 집단의 힘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니콜과 개인의 뛰어난 역량이 인류 진보의 원동력이라고 여기는 모니카의 전략이 명확히 드러난다. 니콜은 폰을, 모니카는 퀸을 활용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그들이 활용할 폰과 퀸은 누구일지 미리 짐작해보는 것도 더욱 재미있다. 군중 심리를 교묘하게 활용하는 니콜에게 맞서, 모니카는 니콜이 약한 지점인 개인 간의 관계와 심리를 이용한다. 


그녀가 잘 모르는 분야를 공략해야 했어요. 군중의 사회학은 그녀의 전공이지만, 개인의 심리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니콜 오코너는 폰들의 작은 움직임은 제어할 수 있을지 몰라도 퀸의 거시적 움직임을 꿰뚫는 눈은 없어요.- p42, 모니카


모니카에 말려들어 IRA 중에 MI5에 검거되었다 탈출한 니콜은 소련의 KGB 요원까지 되어 능력을 발휘한다. 니콜과 모니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다시 대결을 벌인다. 미국과 소련의 대립, 소련의 붕괴 등 20세기 후반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이들의 대결 무대의 배경이 된다. 베르베르가 늘 페이지 중간에 등장시키는 에드몽 웰스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코너에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작가는 빈 라덴을 도와 911 테러를 일으키는 배후에 니콜을 등장시키기까지 한다. 


집단이냐, 개인이냐 이건 철학과 세계관의 문제야. 우리는 상반된 인식을 가졌지만 어떤 면에선 상호 보완적이라 할 수 있어.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옳거나 틀린 게 아니니까. 너와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살면서 깨달은 결론도 결국 그거 아닐까.- p270


그리고 벌어지는 마지막 체스 대결과 의미심장한 한 마디. "Vulnerant omnes ultima necat. 매 순간 상처를 입히고 종국에는 죽인다." 숙적인 니콜과 모니카가 인생의 황혼에서 만나는 마지막 대결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다. 오픈 결말이기에 더욱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두 권이지만 몰입하다보면 금방 읽게 되는 소설이라, 올해의 여름 휴가지에서 읽을 소설로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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