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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의 대각선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6월
평점 :
책을 펼치면 에드몽 웰스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의 내용이 발췌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네메시스>라고 부를 만한 분신이 영혼의 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페이지를 넘기면 제 1막의 제목 <영악한 두 아이>가 독자들을 맞이한다. 이 둘은 서로 네메시스인 것일까.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에 사는 소녀 두 명이 번갈아 등장하며 학교에서 사건을 벌인다. 사건을 벌이게 된 원인과 사건을 일으킨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에서 독자들은 등장인물의 성격을 명확하게 인지하게 된다.
📚 "오토포비아는 혼자 있기를 꺼리는 거야. 그리스에서 유래한 단어로, <자기 자신>을 뜻하는 auto 와 <공포>를 뜻하는 phobia가 합쳐진 거지"
"오토포비아? 표현이 마음에 들어요. 좋아요. 난 오토포비아예요." - p22, 니콜
📚 "너 같은 경우는 <안프로포비아anthrophobia>가 더 적합해. 다른 사람에게 병적인 공포를 느끼는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이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인간을 뜻하는 anthoropos 와 공포를 뜻하는 phobia 가 합쳐진 거야"
"알려줘서 고마워요, 엄마. 엄마 말이 맞아요. 난 안트로포비아예요. " - p28, 모니카

함께 뭉친 집단의 힘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니콜과 개인의 뛰어난 역량이 인류 진보의 원동력이라고 여기는 모니카는 양 극단에 있다.
니콜은 아빠에게 자신의 이름의 의미를 듣는다. 이름을 따온 그리스어 니콜라오스는 <승리>를 뜻하는 nike와 <민중>을 뜻하는 laos가 합쳐진 말이다. <승리하는 민중>이라는 의미로, 인간 무리를 운용하는 전략에 관심을 가지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 니콜의 아빠는 말들을 움직이고 부리는 재미를 가르치기 위해 체스를 가르쳐준다. '네 성격을 아는 아빠가 예상하기에, 너는 폰들을 전진 배치해 벽을 쌓아서 상대를 압박하는 전략을 주특기로 삼을 것 같구나(p55)' 모니카는 감정조절을 위해 엄마에게 체스를 배운다. 엄마는 프랑스어로 왕비라는 뜻의 이름의 외할머니에게 체스를 배웠다고 하면서, 이름 때문인지 몰라도 말 중에서 유난히 퀸을 아꼈다는 이야기도 전해준다.
둘은 열두 살이었던 1972년,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체스대회에서 처음 만나며 서로를 인식한다. 당시 경기에서 진 모니카는 니콜한테 달려들어 목을 조른다. 이후 1978년 런던에서 개최된 세계 여성 체스대회에서 다시 만나는데, 이 때는 모니카가 이긴다. 그러나 시상식장에 아일랜드 무장단체인 IRA의 테러 협박 전화가 걸려오고, 공포에 휩싸인 시상식장에서는 빠져나가려는 군중들이 몰리면서 모니카의 엄마가 압사 사고에 휘말려 사망한다.
두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양 부모의 정치적 성향도 매우 다르다. 타고난 성향도 달랐지만 부모의 영향 또한 커보인다. 스물다섯 살이 된 1985년, 니콜 오코너는 군중학을 전공하고 사회학자로서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로의 교수가 되었다. 모니카는 엄마가 사망한 후 양극성 정동 장애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과 치료와 심리 상담을 받던 중에 심리상담사의 권유로 글쓰기에 도전하여 에세이집을 출판했는데, 입소문을 타고 책이 날개 돋친 듯이 팔리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그리고 니콜은 IRA에 참여하고 체스판이 아닌 현실에서 체스 게임을 펼치려고 한다.
테러범을 관리하는 영국 정보부 MI5는 IRA에 니콜이 입단한 것을 확인하고, 니콜의 독창적인 테러 전술에 대항하기 위해 모니카에게 니콜을 무력화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제안한다. 1978년의 대회에서 모니카가 니콜을 이긴 점에 주목한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건 바로 이 점이에요. 당신이 그녀를 능가하는 지능을 지녔다는 사실.(p273)'. 그리고 설득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의 죽음의 배후를 밝힌다.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내용에 몰입해서 순식간에 1권을 읽어버렸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두 인물을 선과 악으로 나눠보려고 했으나 이내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니콜과 모니카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2권이 더욱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