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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역사가 - 주경철의 역사 산책
주경철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월
평점 :
저자는 '겉으로만 달라 보일 뿐이지 역사와 문학은 본래 같은 부류다' 라며 책의 이야기를 연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흔적들을 천착하여 인간과 사회의 큰 흐름을 짚어보는 동시에 그 내밀한 속사정을 읽으려 하는 점에서 서로 상통한다는 것. '히스토리 역시 스토리의 일종이라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여본다. 덕분에 『일요일의 역사가』 는 이론 중심의 역사가 아닌 이야기 중심의 역사 이야기로 독자들을 만난다.

1년여 간 월간 「현대문학」에 절찬 연재했던 글들을 엮어낸 『일요일의 역사가』 는 총 15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세번째 이야기인 <이븐 바투타의 주유천하>편을 보자 낯익은 이름이 반가웠다. 이슬람 문명을 잘 모름에도 나는 어찌 '이븐 바투타'를 알고 있는가. 실제 역사적 인물과 사건들이 마구 섞여있는 게임 <대항해시대> 때문이었다.

그는 모로코 왕국의 이슬람 율법학자 가문에서 1304년에 태어난 학자이자 판관이자 여행자이다. 그는 집안의 전통에 따라 독실한 이슬람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이슬람법을 공부했다. 공부를 마친 그는 모든 무슬림이 일생에 한 번은 의무적으로 꼭 해야 하는 메카 순례 여행을 떠났다. 원래 고향을 떠날 때에는 메카만 방문하고 올 예정이었지만 30년 동안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3대륙에 걸쳐 10만 킬로미터를 돌아다녔다. 그는 그 경험을 모아 『이븐 바투타 여행기』 를 썼다. 찾아보니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오도릭의 『동방기행』과 함께 세계 4대 여행기의 하나로 손꼽힌다고 한다. ( 여태 몰랐다.. )
그의 여행이 가능했던 이유로 저자는 '이슬람의 집'이라 불리는 초문명권을 설명한다. 아라비아,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북아프리카 등 여러 문명이 공존하는 세계다. 이슬람은 개종을 적극 권하되 공존 혹은 종합의 정책을 폄으로써, 여러 종교 및 언어 공동체들을 수용하여 하나의 세계-문명으로 통합하는 성향을 띠었다. (p75) 결과적으로 이슬람권의 확대는 최초의 지구적 문명(Global civilization)으로 발전했다는 것.
"7-17세기의 1,000년 동안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구세계의 모든 문명들(유럽, 이란, 산스크리트, 말레이-자바, 중국)이 서로 접촉하게 되었다. 이슬람권 주변의 상이한 문명 요소들이 들어와서 아랍 문명과 섞였다. 특히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 문명의 특징적인 요소들이 섞여 풍요로운 발전을 이루었다. "
마녀사냥의 근간이 되었던 악의 고전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에 대한 이야기나, '고양이 대학살 사건' 의 부르주아에 대한 반감이란 분석에서 확장되어 서술되는 여성 서사와 '마녀를 몰아낼 게 아니라 스스로 마녀가 되는 것' 에 관한 여성학자의 해석도 흥미롭게 읽었다. 프랑스의 68 혁명에 대한 부분도 새롭게 알아갔다. 노동운동, 환경운동, 여성해방운동, 성해방 등 여러 요소들이 뒤섞인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68운동은 단순한 '학생 시위'라는 식으로만 규정할 수 없다는 것과 진정성 있는 혁명 프로그램이 없는 대신 말의 성찬이 펼쳐졌던 이 운동은 과거와 같은 사회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준 사건이었다고 한다. '당장 대안이 없었기에 무력했지만, 어쩌면 뚜렷한 대안 없이 모호하면서도 강렬한 꿈이었기에 역설적으로 미래에 더 풍성한 결실을 맺었는지 모른다.'(p378)
각 편의 주제들이 일관된 주제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이 인류 역사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기 보다는 '인간과 사회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일부를 보이는 짧은 단면들 같은 느낌' 이라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며 지어내는 경험 세계를 여러 각도에서 본다는 의미로 이야기들을 엮었다고 했다. 저자가 공들어 엮은 이야기들 속에서 나 또한 머나먼 과거로부터 이어진 어떤 존재의 사슬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