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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재나 ㅣ 마르틴 베크 시리즈 1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2월
평점 :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스웨덴의 부부 작가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가 1960~70년대에 발표한 북유럽 추리소설이다. 나는 이 시리즈를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통해 알게 되었었다. 박찬욱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영화의 주인공 해준이라는 인물을 마르틴 베크 형사로부터 떠올렸다고 밝히면서 "영화 속에서 아주 잠깐이지만 박해일 씨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집이나 책상이 나오는데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일부러 찍었어요. 애독자인 것으로 설정해서." 라고도 했다. ( 연휴동안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찾아보며 잠깐 스쳐지나가는 해당 장면을 찾았다. 약 43분 45~50초 정도 사이에 정말 잠깐 나온다. )

마이 셰발은 자신이 창조한 인물 마르틴 베크를 이렇게 표현한다. "그는 영웅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미국 배우 제임스 스튜어트가 영화에서 맡은 배역처럼,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좋은 사람이지요." . 소설 『로재나』 는 마르틴 베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르틴 베크는 살인수사과의 책임자는 아니었다. 그런 야심도 없었다. 그는 가끔 과연 경감이 될 수 있을까 의심했지만, 사실 요절을 하거나 직무 중에 몹시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한 승진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없었다. 그는 국가범죄수사국의 수사관이었고 살인수사과에서 일한 지는 팔 년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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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 준설 작업 중 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에는 타살의 흔적이 있었다. 스웨덴 국가범죄수사국 소속 살인수사과의 주인공은 사건 장소로 향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피해자의 신원을 알아내는 것 부터 시작해서, 범인 또한 찾아내기 어렵기만 하다.
기자 출신의 두 작가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통해 1960년대, 복지국가의 모범으로 알려진 스웨덴 사회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사회가 노동계급을 어떻게 버렸는지 보여주고자 기획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범죄 이야기' 라는 부제를 단 열 권까지의 테마를 모두 정해두고 공동으로 집필했는데, 마지막 10권을 쓰던 중 페르 발뢰가 세상을 떠나, 마지막은 마이 셰발이 마무리했다.두 작가는 기사처럼 인물과 사건을 세밀하게 표현하며, 스웨덴의 빈곤과 범죄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비판한다. 그 가운데 이 시리즈의 매력 포인트의 하나인 유머가 곳곳에 깔려있다.
한 사람의 경찰인 동시에 직장인이자 가장으로서,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고 택시비를 걱정하는 평범한 마르틴 베크. 그가 이끄는 경찰 수사는 개인의 천재적 추리력 보다는 충분한 물적증거를 토대로 한 공동의 판단으로 진행된다. 느리고 짜증스러운 현실의 수사 과정이 그대로 반영된 서사는 벽에 막히는 과정에서의 무력감, 절망감이 그대로 독자에게까지 전달된다. 덕분에 주인공의 수사가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함께 초조해지는 기분이다. 이 또한 범죄소설의 재미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범행이 저질러졌는가에 대한 우리의 가설은 주로 확률과 논리적 가정과 약간의 심리학을 응용한 결과이지. 실제 증거를 따지면 허약하기 짝이 없어. 물론 우리가 기댈 데가 그것밖에 없으니 고수해야겠지만, 한번쯤 통계에 의거한 추론도 따져봐야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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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의 첫 권인 『로재나』 에 등장하는 마르틴 베크의 동료들의 개성 또한 눈여겨볼만 하다. 앞으로의 시리즈에 함께 등장할 인물들인지라 주인공과의 케미 또한 관심있게 지켜보게 된다.
'마르틴 베크는 육 개월하고도 십구 일 동안 추적해온 상대를 처음 마주했다.(p398)'.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수사가 왜 답보 상태에서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는지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과 독자들은 복지국가의 모범이었던 스웨덴의 음지에 도사린 어두운 그림자와 대면하게 된다. 1965년에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첫 편인 『로재나』 가 발표되자, 이렇게 현실적이고 사회 고발적인 범죄소설이 존재하지 않았던 터라 기득권 중장년층은 당황스러워했고 청년 세대는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고.
북유럽 장편소설 중 개인적으로 요 네스뵈의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도 좋아하는데, 요 뇌스베는 두 작가에게 '북유럽 범죄소설의 대부모' 라는 말로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후대의 작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있는 예다. 다음 권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