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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클레어 지퍼트.조디 리 그림, 김경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밤톨군은 어릴 적 저에 비하면 참 다양하고 많은 책들을 만나볼 수 있으니 부럽습니다.
저는( 아마도 제 세대는 ) 어린 시절 그림책들은 단행본으로는 많이 만나보지 못했고, 동화의 경우도 마르고 닳도록 함께 읽었던 책은 계몽사에서 나왔던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이었습니다.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었던 50여권의 빨간 표지들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남동생과 저는 서로 좋아하는 책들이 달랐지요. 남동생이 '톰소여의 모험', '로빈슨크루소', '십오소년표류기' 등을 뽑을 때 저는 '작은 아씨들', '소공녀' 등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명작' 동화라고 불리는 것들을 일본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으로 많이 만나보았던 듯 합니다. '세계명작동화' 라는 TV 속 애니메이션. 검색해보니 세계명작극장(世界名作劇場) 시리즈로 플랜더스의 개 (フランダースの犬)/1975, 엄마 찾아 삼만리 (母をたずねて三千里) /1976, 빨강머리 앤 (赤毛のアン)/1979, 톰소여의 모험 (トム・ソーヤーの冒険)/1980 등이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되었던 작품입니다. ( 출처 : 위키디피아 / https://ko.wikipedia.org/wiki/%EC%84%B8%EA%B3%84%EB%AA%85%EC%9E%91%EA%B7%B9%EC%9E%A5 )
이 중 저는 「빨간머리 앤」을 잊을 수 없습니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머리 앤' 이라는 오프닝 노래는 아직도 끝까지 부를 수 있지요. 어떤 노래냐구요?
이 작고 귀여운 소녀의 이야기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 (Lucy Maud Montgomery) 의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관련된 동화를 찾아 읽었지만, 애니메이션 속의 에피소드가 다가 아니라는 사실은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완역본을 찾아보았지요.「빨간머리 앤」은 작가의 자전적 성향이 반영된 소설로 캐나다의 아름다운 프린스 에드워드 섬을 배경으로 빨간 머리의 주근깨투성이 고아 소녀 앤이 실수로 커스버트 남매에게 입양되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성장소설 입니다. 이 어린 고아 소녀의 성장기는 많은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아서 .「에이번리의 앤」(Anne of Avonlea)을 시작으로 이후 여러 권의 후속편들로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9권 .「블라이스 가의 단편들」(The Blythes Are Quoted)은 그녀 사후 67년인 2009년에 출판되었다고 하네요.
( 출처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996832&cid=41773&categoryId=44395 )
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출처 : 위키디피아 / https://ko.wikipedia.org/wiki/%EB%B9%A8%EA%B0%84_%EB%A8%B8%EB%A6%AC_%EC%95%A4 )
여러 출판사의 완역본들 중 예쁜 상자에 담겨있던 이 세 권이 눈에 띄었습니다. 망설임없이 구입하여 제 책장에 꽂힌 소중한 보물이 되었지요.
그리고 얼마 전 아이들을 위한( 실은 어른들에게도 권하는. ) 네버랜드 클래식 시리즈로 다시 출간된 앤을 만나 보았습니다. 표지가 살짝 바뀌고 이전 책보다 살짝 두꺼워졌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면지에 작품의 배경이 되는 프린스에드워드 섬의 지도가 수록된 점이 눈에 띄네요.
빨간 머리 앤( Anne of green gables )
루시 모드 몽고메리 글 / 조디 리 그림
464쪽 | 800g | 155*225*32mm
네버랜드 클래식 - 045
시공주니어
미야자키 하야오가 참여한 애니메이션도 참 훌륭합니다. 그러나 책에서 만날 수 있는 풍부한 감정의 흐름, 장면 묘사는 느낄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제 물건이 몽땅'(p45) 들어 있는 작은 가방을 들고 나타난 앤의 모습과 그 묘사를 잠깐 볼까요.
열한 살 쯤 된 그 어린아이는 짤막하고 딱 달라붙는 면모 교직물로 만든 보기 흉한 황갈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빛바랜 갈색 세일러 모자(챙이 납작한 밀짚모자:옮긴이) 아래에는 두 갈래로 땋은 숱 많은 새빯간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조그맣고 하얀 아이의 얼굴은 야윈 데다 주근깨도 많았다. 입도 크고 눈도 컸는데, 그 눈빛은 햇빛이나 주위 환경에 따라 초록빛도 나고 잿빛도 났다. p25-26
과묵한 매슈를 만나자마자 재잘거리기 시작하는 수다쟁이 앤의 목소리는 옆에서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앤의 이야기는 무려 두 페이지동안 큰 따옴표가 끝나지 않기도 하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제 물건이 몽땅 이 가방 안에 있지만 무겁지는 않아요. 그리고 정해진 대로 들지 않으면 손잡이가 빠져 버려요. 그러니 손잡이 잡는 요령을 아는 제가 드는 게 낫죠. 아주 낡은 가방이거든요. 아, 아저씨가 와주셔서 정말 기뻐요. p27
비록 매슈의 더딘 이해력으로는 이 여자아이의 기발한 정신 세계를 따라가기가 상당히 벅차기는 했지만, 매슈는 '이 아이의 수다가 조금은 좋아' 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앤을 돌려보내려는 동생 마릴라를 설득하게 되지요. 그리고 초록 지붕 집에 온 앤은 '진짜 가족'이 생긴다는 설렘이나 외로운 과거까지도 솔직하게 표현합니다. 앤의 표현은 얼마나 아름답고 기발한지 결국 마릴라까지도 사로 잡는답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독자도 앤의 매력에 빠져들지요.
저런 애는 평생 듣도 보도 못 했어. 오라버니 말처럼 재미있는 아이야. 나도 벌써 얘ㅏ 이제 무슨 얘기를 할까 기다려지잖아. 저 애는 나에게도 마법을 걸 거야. p64
삶에 있어 긍정적인 태도로 충실하고, 늘 반짝이는 앤의 모습은 닮고 싶은 모습입니다. 부모없는 슬픔조차 특유의 상상력으로 극복해내는 앤의 모습은 제 유년기에 큰 인상을 남겼지요.
앞 일을 생각하는 건 즐거운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루어질 수 없을지는 몰라도, 미리 생각해 보는 건 자유거든요. 린드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실망도 하지 않으니 다행이지' 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p148
때묻지 않은 정열, 솔직히 드러나는 감정, 사람의 마음을 끄는 태도, 그리고 다정한 눈빛과 입술(p357)의 앤은 인생의 즐거움이라고는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던 중년의 독신인 매슈와 마릴라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주고, 다른 이들에게도 큰 인상을 남깁니다.
다이애나와의 우정, 길버트와의 경쟁, 화해, 그리고 매슈의 죽음. 첫번째 권은 쉴 틈 없이 많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특히 앤 특유의 호기심과 활기로 벌어지는 실수들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 다시 읽어보니 저절로 엄마미소가 지어지게 되었다죠.
"넌 내일도 분명히 여러 가지 실수를 할 거다. 네가 실수를 안하는 날을 못 봤으니까, 앤"
"그래요,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한 가지 제게 다행인 점이 있다는 걸 모르셨어요. 마릴라 아주머니? 전 같은 실수는 두 번씩 저지르지는 않아요. "
"네가 항상 새로운 실수를 저지르는 게 바람직한 일인지 잘 모르겠구나."
"모르세요. 마릴라 아주머니?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실수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어요. 제가 그 끝까지 간다면 전 더 이상 실수를 하지 않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정말 편해요." p270~271
마지막 장의 이 문장은 참으로 와닿았어요.
앤은 자기 발 앞에 높인 길이 좁다고 해도 그 길을 따라 잔잔한 행복의 꽃이 필 것이란 걸 알았다. 성실한 노력과 값진 포부와 마음이 맞는 친구가 있다는 기쁨은 앤의 것이 될 테고, 그 어떤 것도 앤의 천부적인 상상력과 꿈 속의 이상 세계를 앗아갈 수 없덨다. 그리고 길에는 언제나 모퉁이가 있다! p460
책을 덮기가 아쉬웠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유년기에 제가 앤의 긍정적인 성격을 닮아보려고 노력하며 그만큼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밤톨군도 앤처럼 자신의 타고난 상상력과 엉뚱함, 호기심을 오래 지켜가기를 바라게 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