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드 레스토 백작부인 댁 방문(뒤 엘레르 가)
*'문간에 마차 소리도 들리지 않은 채 걸어서 마당을 건너오는 그를 본 하인들의 경멸어린 눈초리'
- 하인들의 반응에 열등감을 느낌
*'낭비적인 생활의 사치를 과시하며, 파리의 모든 환락과 습관을 암시하는 맵시있는 이륜 마차에 호화롭게 매인 아름다운 말 한 필'
- 기분이 나빠지고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낌
*하인의 태도 - 단호하게 거절하지 않으면서 완전히 무시하는 놀라운 능력
*집주인들과 알고 지낸다는 것을 하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단호하게 열어젖힌 문이, 살롱이 아닌 도구실이었을 때 라스티냑은 하인들의 숨죽여 웃는 소리에 당황함
*드레스토 부인과 고리오 영감의 목소리
*막심 드 트라유 등장
*고리오는 작은 계단의 출구로 퇴장
*라스티냑을 알아 본 드레스토 부인
*막심과 자신을 비교하는 라스티냑 - 막심을 경쟁자로 인식
 "저자는 내 경장자로구나, 나는 저자에게 승리를 거두겠다."(p.71)
*드 레스토 백작 등장
- 부인은 백작이 라스티냑을 쫓아 줄 것을 암묵적으로 부탁하면서 막심과 규방으로 사라짐.
- 백작에게 라스티냑의 집안을 소개하며 드레스토의 관심을 끌게 함.
- 막심 퇴장
*라스티냑 - 고리오 '영감'에 대한 발설. 백작 부부는 하인에게 라스티냑을 들이지 말 것을 당부.
- p.78 : 자신의 실수를 인식,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외적 조건이 갖추어져야 함을 인식.

② 드 보세앙 부인댁
* 라스티냑을 사교계에 입문시키고 사교계의 비밀을 알려줌. 드 레스토 부인과 드 뉴싱겐 부인의 자매이지만 질투의 관계를 이용하여 아직 사교계에 입문하지 못한 드 뉴싱겐 부인을 이용하라고 알려줌(p.97-99)
*라스티냑은 스스로 후견인을 찾고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이 무엇인지 인식한 후 자존심을 버리고 한 수 가르쳐 달라고, 후견인이 되어달라고 부탁.
*클라라 드 보세앙 부인, 앙투아네트 랑제 공작부인 - 겉으로는 친자매인 척 하면서 결국 서로의 약점을 교묘히 공략함.

③ 델핀느 드 뉴싱겐

④ 고리오를 부인한 두 딸과 사위
     고리오의 처지를 불쌍하게 여길 줄 아는 라스티냑, 눈물을 흘림.
     아직은 파리 문명의 전쟁터에서 휴머니티를 잃지 않은 '성스러운 가족적 감정'을 가진 청년(p.93)

⑤ 고리오 영감 - 공포정치(1793-94) 시기에 시세를 잘 이용하여 벼락부자가 됨. 두 딸을 귀족 가문에 시집 보냈으나, 자신은 왕정복고(1815)로 실패. 부성애, 자기희생의 화신.
→ 랑제 공작부인의 입을 통해 밝혀지는 고리오와 두 딸 관계의 비밀. 랑제 공작부인과 보세앙 후작부인은 고리오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면서 세상을 한탄하지만 자신들이 그 진흙탕에 빠져있지 않음을 안도하는 속물적 인물들. 그러나 라스티냑은 고리오의 '숭고함'을 알아봄.(p.96)



⑥ 드 보세앙 부인의 집을 나와 하숙집으로 향하면서 라스티냑은 파리 사교계의 생리에 조금씩 눈뜨게 된다. 거기엔 법률도 도덕도 없고 오로지 출세만이 '이 세상 최후의 논거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라스티냑은 스스로 후원자를 찾고, 망신을 당하기는 하지만 스스로 그것을 극복해 나가려는 활기차고 강인한 의지가 있다.  - 보트렝, '출세가 미덕이다'(p.101)

# 두 작품의 인물비교 논문 살펴볼 것.
- 라스티냑의 어머니에 대한 태도(p.104 편지)
- 어머니의 라스티냑에 대한 태도(p.113 편지) - 아들에 대한 신뢰.
- 집에다 사교계 진출을 위한 돈을 부탁하면서도 라스티냑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미루지 않는다.(p.115)

⑦ 라스티냑의 성격
-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 곧장 난관으로 돌진하는 남불적인 활력(p.121)
- 스승을 자처하는 보트렝에 대해서도 '판단'(라스티냑은 '의식'이 있다. 상황에 대해 판 하고 잘못이 무엇인지를 헤아리며 그것을 토대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를 결정한다)
- 사자같이 뜨거운 피와 하루에도 수십 번 바보짓을 저지를 만한 욕망을 갖고 있는 사람.
- 뉴싱겐 부인에게서 100프랑을 받아 7200프랑을 따는 라스티냑. 도박에도 행운이 따름.

# 라스티냑 - 빅토린느 타이유페르
   드 레스토 부인 - 막심 드 트라유
   드 뉴싱겐 부인 - 드 마르세(- 갈라티온느 공작부인)
   드 보세앙 자작부인 - 다주다 핀토(- 로쉬피드 양)

# 오스카의 어머니에 대한 태도는, 고리오의 두 딸들이 고리오에게 하는 태도와 유사?

# 보트렝과 조르쥬 마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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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죽음
이아무개 (이현주) 지음 / 샨티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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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易地思之). 심지어는 직접 그 사람이 되어보아서 그 처지를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옛 성현들의 지혜가 담긴 말씀이다. 보통 이런 상황에는 잘 쓰지 않는 말이긴 하지만, '이 아무개의 예수 되기'는 주관성의 취약점을 뛰어넘어 '역지사지'의 의미를 한껏 만끽하게 해 준다.

예수도 죽었고 그를 만났던 사람들도 너무 오래 전에 다 죽어버렸으니 성서가 있다해도 성서 외적인 세부상황들은, 어떤 특수한 사람들의 상상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 풍부한 담론이 형성될 수 있다고는 해도, 사실 거기엔 '진위(眞僞)'라는 것 자체가 존재치 않고 다만 선택자 제 나름의 판단만이 있을 뿐이다.

판단컨데 이 책 속의, 죽음에 직면한 예수와 관련 인물들의 내면이, 사료에 바탕한 상상 속에서 아무런 논리적 비약 없이 이토록 가슴 깊이 와닿는 이유는, 바로 예수와 하나된 저자의 깊은 성찰 또한 함께 전해져오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저자의 직업(?)이 그러하니 당연한 것 아니겠소, 라고 반박할 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글은 반드시 그러한 맥락과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날 밤, 나도 무척 약해 있었다. 나는 될 수 있으면, 십자가의 죽음을 면하고 싶었다.』p.25


죽음을 앞둔 예수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아니었다. '제왕처럼 하늘에서 군림하는 메시아(p.175)'가 아닌, 또 하나의 신을 갈구하는 한없이 약한 존재였다. 그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잔 하고 나타나는 그런 천하무적 로보트 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왔다면, 그것은 우리 위에 군림하는 또 하나의 '권력'에 다름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약함을 사랑했고, 그 약함이 신을 바라는 마음을 귀하게 여겼다.
이러한 약함이 우리의 믿음을 시시하게 만드는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오히려 약한 모습의 나를 책망하던 마음을 위로받고, 내 위가 아니라 내 곁에, 내 안에 있는 예수를 느끼게 해 준다.

『(게파), 사랑하는 나의 약함이여!』p.28

30년 전에 벌써 영화 'Passion of Christ'를 예고했던 이 책.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서 놀라운 발견으로 자리매김하리라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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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죽음
이아무개 (이현주) 지음 / 샨티 / 2003년 4월
절판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실망과 허무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린 자신에 대한 반항이요 거절이다. 신의 간섭을 조금도 용납할 수 없는, 목이 곧은 인간 최후의 선언이다.-18쪽

왜냐하면 누구든지 유다를 정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시 유다를 정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결코 유다를 정죄하지 아니할 것이다.-19쪽

그는 약한 만큼 누군가를 믿을 수 있었다. 그는 모자라는 만큼 신을 용납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눈물의 샘이 있었고, 그 샘은 절망의 순간에 솟아날 수 있었다.-23쪽

인간의 약함은 수치가 아니다....

그날 밤, 나도 무척 약해 있었다. 나는 될 수 있으면, 십자가의 죽음을 면하고 싶었다.-25쪽

게파, 사랑하는 나의 약함이여,
[...]

그것은 신 앞에서 자기의 '아무것'도 아님[無]을 발견하고 쩔쩔매며 울고 있는, 그것도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울고 있는 베드로의 나약한 어깨 위에 기초한다. 왜냐하면 거기, 인간의 약함에 신은 비로소 임재하기 때문이다.-28쪽

체 게바라여,
[...]
당신이 증오를 품고 쿠바의 밀림으로 들어갈 때, 나는 사랑을 품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95쪽

체 게바라여.
당신은 '인간'을 사랑했고, 그 때문에 적들을 증오하고 그들을 죽였다. 나도 '인간'을 사랑했다. 그러나 나는 적들을 죽이는 대신 내 죽음을 택했다.-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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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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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이라는 사실을 또 잊고 있다가 책을 펼쳐본 후 '아! 맞다' 하곤 약간의 후회어린 탄성을 질렀다. 두 권 넘어가는 장편은 힘들어하고 한 권 속에 단편을 모아놓은 건 시시해하니 좀 해괴한 기호랄 수 있겠다.

어찌됐든. 여기저기 주워들어 내가 상상한 그런 유쾌함은 아니었다. 지독한 편견일지는 모르지만, 한 얼을 공유한 우리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나면 웃겨도 종국엔 눈물을 보고야 마는 그런 아이러니가 있다. 그걸 우리들만의 '정서'라고 말해도 될지... 소위 시대를 통틀어 세계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남의 나라 작가들의 '고전'이라는 것을 읽었을 때와는 분명 다른 느낌이다.

우선 황만근과 계철, 남가이는 바보든 미남이든 뭐라고 불리든 세상과 동떨어진 사람들의 순수함과, 그것이 잔잔한 듯 하면서도 오래 그리고 멀리까지 전달되는 호수의 파동을 보여주고 있다. 소위 돈과 권력으로는 죽었다 깨나도 부릴 수 없는 도인의 괴력이랄까. 더불어 우리의 옛 이야기에 등장하는 해학미 짙은 인물들이 성석제의 펜끝으로 되살아난 듯, 무의식의 원형을 슬그머니 깨워낸 듯 몽롱한 시차를 느끼게 된다.

그 와중에 '동환'과 '당숙'의 에피소드는 사실 무엇을 말해주는 사람들인지 잘 모르겠다. 그게 단편의 약점인지 헛점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간과 결말의 사이에 놓여져야 할 해결의 과정이 생략되어있다고 해야할까. 연방 '문학'을 통해 전화를 해도될지를 물어오는,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시종일관 폐허같은 변두리 술집 속에 처박아두는 동환에게 성질을 부리는 그와 함께, 나도 '동환'에게 성질이 났던 것만은 사실이다. 또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벌써 그 시작부터 약간 자폐적인 당숙의 책 이야기는, 그 당숙이 초점인지 아니면 책을 이사하는 과정의 소소한 번거로움이 초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떻든 그 '소소한 번거로움'의 황당함이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모랄까 이 단편집의 재미는 몇 개는 인물과 스토리의, 또 몇 개는 성석제식 입담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종합선물세트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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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수은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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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마음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 보다는 남들의 이목에 신경쓰는 두려움 많은 한 여자와, 치유의 능력과 맑은 영성을 소유한 한 남자가 사랑을 이루어간다는 내용으로만 본다면 이 소설은 정신적으로 보다 고차원적인 연애소설일 것이다. 거기에 코엘료 식의, 이번에는 종교를 통한 자아의 발견과 사랑의 신비를 배경에 깔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보편 종교가 아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사랑의 방식을 따르는 이 사랑은, 먼저 자신을 되찾는 작업을 전제한다.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연습'이란 반대로 '자기 자신을 찾는 연습'이랄 수 있다. 완전하게 나 자신의 생각대로, 의지대로 행동한 적이 얼마나 될까?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순간에 조차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닥 중요치 않은 이유 때문에 그 말을 다음 기회로 미룬다. 자신을 찾는 연습이란 곧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며, 그것이야말로 '집착'과 혼동되지 않는 진정한 사랑이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생애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본보기였으며, 자기 증오는 지나친 이기심과 똑같아서 종국에는 끔찍한 고립과 절망을 낳을 뿐이라는 사실을 예시해 주는 것이었다."
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 p.21

필라가 자신을 발견하길, 성모님의 사랑을 통해 그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길 그는 인내롭게 기다린다. 비로소 사랑이란 타인에게 '주는 행위'가 아니라 자기애를 통해 자연스럽게 퍼져나가는 것임을 증거하면서.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신기한 점은, 여자가 아닌 그가 여성의 심리를 너무도 잘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작가로서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그가 성모신심을 지녔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더불어 확신에 찬 다음의 말들이 성모 마리아에 대한 몰이해를 종식시켜주길 바라면서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하느님은 사랑이셔. 하지만 이걸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성모님이지."
"성모님은 모든 것을 다 내주는 신비를 정확히 이해했어. 당신 자신이 사랑하고 고통받았기에 우리를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했지. 같은 방식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셨고."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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