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죽음
이아무개 (이현주) 지음 / 샨티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역지사지(易地思之). 심지어는 직접 그 사람이 되어보아서 그 처지를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옛 성현들의 지혜가 담긴 말씀이다. 보통 이런 상황에는 잘 쓰지 않는 말이긴 하지만, '이 아무개의 예수 되기'는 주관성의 취약점을 뛰어넘어 '역지사지'의 의미를 한껏 만끽하게 해 준다.

예수도 죽었고 그를 만났던 사람들도 너무 오래 전에 다 죽어버렸으니 성서가 있다해도 성서 외적인 세부상황들은, 어떤 특수한 사람들의 상상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 풍부한 담론이 형성될 수 있다고는 해도, 사실 거기엔 '진위(眞僞)'라는 것 자체가 존재치 않고 다만 선택자 제 나름의 판단만이 있을 뿐이다.

판단컨데 이 책 속의, 죽음에 직면한 예수와 관련 인물들의 내면이, 사료에 바탕한 상상 속에서 아무런 논리적 비약 없이 이토록 가슴 깊이 와닿는 이유는, 바로 예수와 하나된 저자의 깊은 성찰 또한 함께 전해져오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저자의 직업(?)이 그러하니 당연한 것 아니겠소, 라고 반박할 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글은 반드시 그러한 맥락과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날 밤, 나도 무척 약해 있었다. 나는 될 수 있으면, 십자가의 죽음을 면하고 싶었다.』p.25


죽음을 앞둔 예수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아니었다. '제왕처럼 하늘에서 군림하는 메시아(p.175)'가 아닌, 또 하나의 신을 갈구하는 한없이 약한 존재였다. 그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잔 하고 나타나는 그런 천하무적 로보트 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왔다면, 그것은 우리 위에 군림하는 또 하나의 '권력'에 다름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약함을 사랑했고, 그 약함이 신을 바라는 마음을 귀하게 여겼다.
이러한 약함이 우리의 믿음을 시시하게 만드는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오히려 약한 모습의 나를 책망하던 마음을 위로받고, 내 위가 아니라 내 곁에, 내 안에 있는 예수를 느끼게 해 준다.

『(게파), 사랑하는 나의 약함이여!』p.28

30년 전에 벌써 영화 'Passion of Christ'를 예고했던 이 책.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서 놀라운 발견으로 자리매김하리라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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