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우리 시대의 고전 15
르네 지라르 지음, 김진식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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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신화는 폭력적이고, 성서는 폭력의 싸이클을 종결짓는다는 얘기다. 외국소설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아야 할 르네 지라르의 또 다른 책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에서도 드러나듯이 '인간의 욕망은 타인을 매개로 하여 욕망하는' 모방의 욕망이다. 거기서부터 남의 것을 '탐하는' 경쟁이 발생하며, 이 경쟁이 심화되면 하나의 집단 폭력이 된다. 그 해소에는 반드시 '희생양'이 필요하며, 집단은 그 희생양을 죽임으로써 집단 내 극에 달한 경쟁을 일단락짓고 경쟁의 휴지기에 들어간다.
그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유대인들에 의해 희생양이 된 '예수'이다. 허나 이러한 희생양의 예는 성서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신화들 속에서 두루 살펴지는 전형이다. 단, 이 책이 밝히고자 하는 주요점인 그 둘의 차이는 바로 '희생양이 유죄인가 무죄인가'하는 것에 있다. 오이디푸스는 친부살해와 근친상간이라는 '유죄의 희생양'이 됨으로써 신화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반면 예수는 유대인들의 집단적 광기에 의해 본보기로 희생된 '무고한 희생양'이 됨으로써 '희생양'을 만드는 집단의 경쟁관계와 광기의 실체를 밝히고 모방의 싸이클을 멈추게 한다.
사탄은 바로 집단을 경쟁관계에 빠져들게 하고, 희생양을 만들도록 부추기는 존재이다. 바로 그 희생양을 죽이는 행위를 통해 사탄은 살아남는다. 즉 하나의 싸이클을 어느 수위에서 멈추게 함으로써 자신의 파멸을 막고 또다른 싸이클을 준비하는 것이다. 허나 예수는 그 싸이클을 초월하여 '부활'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싸이클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

아래 리뷰쓰신 분의 의견처럼 이 책은 '호교론' 성격이 강하다. 그렇지만, 성서와 신화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론서인 반면 굉장히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본격적으로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4복음서는 물론, 신화 관련 서적을 읽는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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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위한 스테이크
에프라임 키숀 지음, 프리드리히 콜사트 그림, 최경은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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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읽기 좀 난감한 책이다. 실없는 사람으로 보이기 십상이니 말이다.
이 책의 에피소드들은 우리 모두 겪는 일이지만, 그런 경우 십중팔구 화를 내버리고 말지 이렇게 넉넉하게 웃어넘길 줄은 모른다. 특히 그 우스꽝스러운 행위에 '동참'하는 것은 박장대소의 끝에 잔잔한 여운마저 느끼게 해 준다.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지낸 시간들을 악몽으로 생각하는 이 유태인 작가는 고통의 극한을 경험하였기에 모든 것을 웃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을 터득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마음이 꽁해지는 내 일상을 돌아보니, '발상의 전환'이라는 것이 꼭 거창한 일에만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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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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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dreams begin the responsibilities.(상권, p.256)
꿈 속에서 책임은 시작된다.
거꾸로 말하면 상상력이 없는 곳에서 책임은 발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무라 카프카-나카타 사토루를 축으로 한 두 개지만 하나인 이야기. 주인공이 둘인 이야기는 수없이 많지만, 다른 점은 이들이 공시적으로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잠'을 통해 같은 꿈을 공유하며, 그 안에서는 하나가 된다, 아니 그렇게 짐작해 볼 수 있다.
15세의 '오이디푸스' 다무라 카프카는 신탁이 아닌 아버지의 저주를 피해 모험을 떠나지만, 이 21세기의 카프카 역시 정해진 운명을 피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딱히 그렇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은, 저주의 현실화가 구체적 증명은 불가한, 주인공들의 심증만으로 확신하게 되는 모호한 실현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오이디푸스는 눈알을 파내고 죽음으로써 자신의 비극적 현실을 극복하지 못했지만 우리의 다무라 카프카군은 세계의 끝에 도달하기 위해, 진짜 세계에서 가장 터푸한 15세 소년이 되어 또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한편 전시에 집단 혼수상태에 빠진 후로 기억의 일부를 잃고, 다무라 카프카군과 정신의 일부를 공유하게 된 것으로 짐작되는 나카타 사토루는 인간의 언어에 서투른 대신 고양이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기이한 노인이다. 문명화 이전의 순수한 심성과, 초능력을 지닌 나카타는 꿈의 세계에서 하드코어적으로 고양이를 살해하는 조니 워커-다무라 고이치를 죽이고, 떠나본 적이 없는 도쿄시 나카노 구를 벗어나 정신적 자아인 다무라 카프카를 찾아 고무라 도서관을 향해 여행을 시작한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관계의 고리' 속에서 다무라 고이치(조니 워커)-사에키 상- 다무라 카프카-나카노 사토루의 관계성이 드러나고, 사쿠라-오시마-호시노는 이들이 현실로부터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끈의 역할을 한다. 폴 오스터의 『리바이어던』에서 느꼈던 '알고보니 이 사람은 저 사람을 알고, 저 사람은 이 사람을 알고, 결국 세상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잘 짜여진 게임판의 말들과 같은' 필연적 관계에 놓여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 소설속에는 다양한 공간들이 설정되어 있다. 먼저 현실의 다무라 카프카와 그의 아버지 다무라 고이치의 집. 이 곳은 어머니와 누이가 사라져버리고, 아버지와 소통이 부재한 폐쇄적 공간이다. 다무라 카프카는 저주를 피해 공간 이동을 하지만, 고무라 도서관 또한 응축된 감정들이 고여 표출되지 못하는 소용돌이 같은 곳이다. 오시마 상이 안내해주는 숲 속의 집과 그 숲에서 연결되는 비현실계의 공간 또한 폐쇄적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됴쿄시 나카노 구도 나카타에겐 보이지 않는 경계로 둘러쳐진 한정된 공간이었다. 이들은 모두 폐쇄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을 하지만, 옮겨간 곳 또한 열려진 곳은 아니다. 마치 하나의 큐브에서 또다른 큐브로 이동한 듯한 답답한 느낌이다. 그래서 하루키가 말하는 '세계의 끝'이란 그 단어가 내포한 무한의 이미지 보다는 그 끝에 실제로 낭떠러지가 있을 것만 같은 막막함이 있다.

이 소설은 특이한 구성방식, 초현실적 인물들 뿐만 아니라 감각적인 문장들로 우리들의 다양한 지적 욕구들을 채워준다. 책을 읽고나니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환상특급열차를 타고 이상한 세계에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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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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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갈때마다 만지작만지작 거리다가 다른 책만 사고 그냥 오거나, 인터넷에서 책을 주문할 때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마지막 순간 삭제 버튼을 누르게 되는 책들이 있다. 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내겐 그런 책이다. 최근 이상한 바람이 불어 야구가 좋아지면서 급기야 '비밀리에'라는 여자야구단에 가입을 하고는,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듯 당장에 이 책을 샀다.

단도직입적으로 혹은 사이비 비교문학적(?)으로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설명하자면, 초반부는 이만교의 『머꼬네 집에 놀러올래』처럼 유쾌하다못해 배꼽이 빠질 정도이지만, 중반에 주인공 '나'가 삼미 슈퍼스타즈를 잊고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는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는 듯했고 전반적으로는 역시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은희경의 『마이너리그』가 오버랩되었다.
이런 비교문학적 행위를 오해하지는 마시길. 이런 비유는 단지 좁디 좁은 내 경험의 폭의 소산일 뿐이며 느낌이 비슷하달 뿐이지, '모방'을 의미하는 것은 결단코 절대 아니니 말이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몰랐지만, 적어도 이런 아련한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내가 70년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게다가 이런 (함부로 이렇게 거칠게 요약해버려도 되는가 모르겠지만) '꼴찌예찬론'은 저마다 마음 속 한구석 깊이 숨겨두고 있던 꼴찌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잠시나마 접고, 오히려 '나도! 나도!' 하면서 자신있게 드러내보일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소설이 베스트셀러라는 건,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일테고 그것은 곧 나는(flying) 프로페셔널 밑에 열심히 뛰는 아마추어들이 있다는 증거라 생각한다.

아마추어란 목적을 두고 좋아하는 것이 아닌, 정말 좋아서 좋은 것이고, 거창하게 말하자면 좋아하는 대상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일테다. 하지만 프로가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아마추어적 삶은 오히려 작위적으로 보이고, 우리는 그것이 '무위도식'하는 삶으로 보이지나 않을까 내심 고민하는 것이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근 반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보니, 점점 불안감이 쌓여오고, 300만 화소 카메라폰 시대에 아직도 단음 휴대폰을 갖고 있는 낙오자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은게' 아닌데,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내 생애 그 어느때보다 더 풍요로웠는데, 단지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돈을 벌지 못한다'는 의미와 동일시되면서 내 삶은 어느새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한 청년실업이 40만에 육박하는' 그 40만에 속하게 된 것이다. 프로들의 프로파간다에 어릴적부터 세뇌당한 나로서는 정말 기회가 왔을 때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 여유를 부릴 수 있을 지 의문이다. 하지만 네오가 매트릭스라는 가짜 세계로부터 '진실을 인식시켜준 빨간 알약'을 선택한 것처럼, 삼미 슈퍼스타즈를 선택한 우리는 이미 세상을 아마추어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희망을 가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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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4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님의 "[행운이 있는 수다 제안 8] 월요일"

그림책의 의미장을 폭넓게 쓴다면.. 저는 크빈트 부흐홀츠를 얘기하고 싶네요.

그림 전체의 분위기가 보는 이를 빠져들게 만들죠.

사람에 따라서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 무한한 상상력에 혀를 내두를 수도 있지요.

 


 


 

 

 

 

 

그의 그림은 또한 다양한 의미를 창출해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책들은 글이 먼저고 그림은 부수적인 역할을 하는데, 크빈트의 책은 그 반대입니다. 많은 작가들이 그의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만들어내지요. '꿈과 환상'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게 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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