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서점에 갈때마다 만지작만지작 거리다가 다른 책만 사고 그냥 오거나, 인터넷에서 책을 주문할 때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마지막 순간 삭제 버튼을 누르게 되는 책들이 있다. 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내겐 그런 책이다. 최근 이상한 바람이 불어 야구가 좋아지면서 급기야 '비밀리에'라는 여자야구단에 가입을 하고는,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듯 당장에 이 책을 샀다.

단도직입적으로 혹은 사이비 비교문학적(?)으로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설명하자면, 초반부는 이만교의 『머꼬네 집에 놀러올래』처럼 유쾌하다못해 배꼽이 빠질 정도이지만, 중반에 주인공 '나'가 삼미 슈퍼스타즈를 잊고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는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는 듯했고 전반적으로는 역시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은희경의 『마이너리그』가 오버랩되었다.
이런 비교문학적 행위를 오해하지는 마시길. 이런 비유는 단지 좁디 좁은 내 경험의 폭의 소산일 뿐이며 느낌이 비슷하달 뿐이지, '모방'을 의미하는 것은 결단코 절대 아니니 말이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몰랐지만, 적어도 이런 아련한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내가 70년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게다가 이런 (함부로 이렇게 거칠게 요약해버려도 되는가 모르겠지만) '꼴찌예찬론'은 저마다 마음 속 한구석 깊이 숨겨두고 있던 꼴찌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잠시나마 접고, 오히려 '나도! 나도!' 하면서 자신있게 드러내보일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소설이 베스트셀러라는 건,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일테고 그것은 곧 나는(flying) 프로페셔널 밑에 열심히 뛰는 아마추어들이 있다는 증거라 생각한다.

아마추어란 목적을 두고 좋아하는 것이 아닌, 정말 좋아서 좋은 것이고, 거창하게 말하자면 좋아하는 대상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일테다. 하지만 프로가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아마추어적 삶은 오히려 작위적으로 보이고, 우리는 그것이 '무위도식'하는 삶으로 보이지나 않을까 내심 고민하는 것이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근 반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보니, 점점 불안감이 쌓여오고, 300만 화소 카메라폰 시대에 아직도 단음 휴대폰을 갖고 있는 낙오자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은게' 아닌데,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내 생애 그 어느때보다 더 풍요로웠는데, 단지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돈을 벌지 못한다'는 의미와 동일시되면서 내 삶은 어느새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한 청년실업이 40만에 육박하는' 그 40만에 속하게 된 것이다. 프로들의 프로파간다에 어릴적부터 세뇌당한 나로서는 정말 기회가 왔을 때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 여유를 부릴 수 있을 지 의문이다. 하지만 네오가 매트릭스라는 가짜 세계로부터 '진실을 인식시켜준 빨간 알약'을 선택한 것처럼, 삼미 슈퍼스타즈를 선택한 우리는 이미 세상을 아마추어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희망을 가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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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4 10: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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