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녀 이야기 (특별판, 양장)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는 디스토피아적이다한때는 유토피아의 세계를 그린 것도 같은데 여러 작품에서 나타나는 미래는 음울할 뿐이다조지 오웰의 1984는 감시자의 눈 빅브라더를 그려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황폐해진 지구에서 살아남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 되었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떻게든 견딜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모든 게 사라진 시대라면더군다나 여성의 지위가 그저 아이를 낳기 위한 도구로 여겨진다면그래도 살아갈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 이야기는 전쟁과 환경오염 때문에 더 이상 아이가 태어나기 힘든 21세기의 미국을 그렸다소설 속 여성의 지위는 각 계급에 따라 다른 취급을 받는다아이를 낳을 수 없는 그의 아내들과 부엌일을 돕는 하녀들가임기의 여성은 시녀들로 나뉜다이 계급에 들지 못하는 여성들은 어딘가로 사라져야 할 판이다이 세계는 나이든 여성 즉 할머니들이 보이지 않는다시녀들은 임지로 향하는데 마치 부대 전출을 가는 듯 계약기간동안 머물 뿐이다그것도 아이를 낳으면 대접을 받지만 그렇지 못하면 다른 임지로 가야 한다.


 

시녀들은 가구가 거의 없는 공간에 갇혀 산다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은 아예 주어지지 않고 뛰어내릴 거에 대비해 창문도 조금밖에 열리지 않는다물건을 사러 외출할 때는 소위 들에 의해 감시를 받으며 혼자서는 절대 다닐 수 없다둘씩 짝지어 걸으며 다른 이야기를 나눠서는 안 된다뿐만 아니라 하얀색 두건으로 얼굴을 가려야 하고 온 몸을 감출 빨강색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빨강은 곧 피의 색이다시녀들에게 기대할 것은 오로지 한 가지아이를 낳는 것뿐이다아이를 낳는 기계 그 이상도 아니다.

 


시녀가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사령관과 관계를 가져야 하는데 마치 3인 1조로 움직이듯 한다즉 시녀와 사령관사령관의 아내와 함께 아이를 낳기 위한 행위를 해야 한다사령관의 아내와 사령관이 만들어야 하는 아이를 대신 낳는 시녀는 아내들의 대용품일 뿐이다지금으로 보면 대리모의 한 형태다머리가 잿빛으론 센 사령관은 아이 낳는 능력이 되지 않는지 4주에 한 번씩 그 일을 치러도 아이는 생기지 않는다이럴 때 아내들은 시녀들에게 제안을 한다시녀들을 진찰하는 의사들 아니면 수호자와 몰래 동침하게 하여 아이를 밸 수 있게 하는 것이다물론 그에 따른 보상은 주어진다남자에게는 돈을여자에게는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는 식이다오브프레드가 원한 것은 딸의 생사와 한 장의 사진이었다담배 한 개비와 함께.



 

밤에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아침이면 우리 집에서 눈을 뜰 테고 전부 옛날로 돌아가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런 일은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341페이지)


 

오브프레드는 생각에 잠길 때마다 남편 루크를 떠올린다사랑했으나 사랑한다고 많이 표현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안타깝다지금도 살아 있을까어딘가에서 죽지 않았을까살아있기를 바랐다또한 어린 딸이 그립다얼굴을 알아보지 못할까봐 두렵다루크와 딸과 함께 일상을 보냈던 때를 회상한다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그 시간들아스라이 떠올릴 뿐이다.


 

시간은 가만히 멈춰서 있지 않았다그것은 나를 휩쓸고 지나가나를 깨끗이 지워 버리고 말았다나라는 존재는 경솔한 아이가 너무 밭은 물가에 남기고 가버린모래로 만든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나는 그 애에게 있어 이제는 하얗게 지워져 버린 존재다이 사진의 반짝이는 표면 너머 까마득한 저 뒤에 존재하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죽은 엄마들이 다 그렇듯 그림자의 그림자가 되어 버렸다그 애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그 속에 나는 찾아볼 수 없다(394페이지)



 

사령관은 오브프레드를 따로 불렀다원래는 금지된 사항이다아내 없이 따로 만나면 안 된다사령관의 사무실로 향했을 때 오브프레드는 그가 변태적인 무언가를 원할 거라 생각한다하지만 그는 스크래블 게임 상대로서 그녀를 원했다책상에 마주앉아 스크래브 게임을 한다보상으로 잡지를 보게 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문제는 아내 몰래 해야 하고들키는 날엔 그녀는 수호자들에게 잡혀 어딘가로 가거나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그럼에도 사령관의 말을 거절하지 못한다.


 

여성의 지위가 하찮은 세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다시녀들이 아들을 낳는다면 그 아들의 지위는 달라지겠지만 딸을 낳았을 때는 그 딸도 누군가의 아내가 되거나 시녀들이 되어야 한다그저 아이 낳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그래서 슬펐다아마 내가 여성이어서 더 슬펐는지도 모르겠다문득 옥타비아 버틀러의 에서 나이절이 아이를 낳으면 자신의 아이 또한 노예가 되므로 낳기 싫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소설이 1985년에 쓰였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85년이 미국에서 어떤 시대였는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지만 21세기의 모습을 이토록 우울하게 그렸다는 게 슬프다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는 게그때서야 우리는 평범하게 생활했던 과거의 일상을 그리워하겠지오브프레드가 바랐던 것처럼눈을 뜨면 옛날로 돌아가 있을 내일을 그렸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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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 (리커버 에디션) 옥타비아 버틀러 리커버 컬렉션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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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역사를 뒤바꿀 수 있다는 건 소설에서만 가능하다. 여느 SF소설에서 타임 슬립을 논할 때 과거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과거를 바꾸기 위해서는 죽음을 무릅써야 할 수도 있다. 수많은 책이나 드라마 등에서 보던 내용이다. 어느 영화처럼 낭만적인 과거로 향하여 그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바꿀 수 없는 역사 속에 갇힌 흑인 여성처럼 절박한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나중에서야 내 집의 안온함 그리고 편안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다나와 그녀의 연인 케빈은 서로의 책들이 너무 많아 좀 더 큰 집으로 이사했다. 책들을 정리하다가 다나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강가에서 물이 빠진 사내아이를 발견하고 물속으로 들어가 아이를 구해 살렸다. 발목까지 오는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아이에게 달려왔다. 그때 장총을 든 남자가 다가오자 다나는 겁을 먹었다. 눈을 뜨니 자기 집이었다. 케빈이 보는 상태에서 다나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다나가 그 장소에 있었던 시간은 몇십 분, 사라졌던 시간은 겨우 몇 초에 불과했다. 물속에서 아이를 구하느라 옷은 젖어있었고 진흙이 묻어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잊으려 다나와 케빈은 저녁을 먹기로 했다. 다나의 생일이었지만 이사로 피곤해 새우 요리를 시켜 먹기로 했다. 식사를 하고 마음이 한결 진정되자 다시 속이 울렁거리는 현기증이 느껴졌다. 눈을 뜬 곳은 커텐에 불이 붙은 한 소년의 방이었다. 커텐을 뜯어 창밖으로 던지고 나서야 다나는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자기가 구해주었던 소년이었다. 다섯 살 정도였던 아이는 서너 해가 지나 소년으로 자라있었다. 그곳이 1815년의 메릴랜드 주라는 것을 알았다. 아이의 이름은 루퍼스 와일린. 이상하게 친숙하게 느껴져 앨리스라는 흑인 여자아이가 주변에 있는지 물었다. 루퍼스의 친구라는 앨리스는 자유민으로 엄마와 함께 살았다. 그러니까 루퍼스와 앨리스는 다나의 조상일 것이었다.



 

앨리스의 집으로 가려던 다나는 루퍼스의 저택을 빠져나와 걷다가 말을 타고 다니는 백인 남자들을 보았다. 그들이 찾던 앨리스 그린우드의 아빠가 루퍼스 와일린의 도망노예였다. 그들을 잡으러 다니는 순찰대원에게 잡혀 겁탈을 당하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피투성이인 채로. 그곳에서는 몇 시간이었지만 다나가 사라진 시간은 겨우 이삼 분이었다. 놀란 다나는 캔버스 가방에 바지, 속옷, 스웨터, 신발, 스위치나이프를 담아 허리에 줄로 묶었다. 언제 사라지더라도 가지고 갈 수 있게 준비해두었다. 또다시 현기증이 느껴졌다. 다나의 손을 잡은 케빈과 함께 과거로 흘러들었다. 이제 루퍼스는 열두 살 쯤의 사내아이가 되어 있었고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한쪽 다리가 부러진 상태였다.

 

다나는 케빈과 함께 19세기로 다시 왔다. 백인인 케빈의 노예로 여기도록 했다. 19세기 미국 남부의 흑인 노예는 백인 농장주의 재산이었다. 돈이 필요하면 노예상에게 흑인을 팔았고 노예에게 벌주기 위해서도 팔았다. 흑인 노예가 잘못했을 때 자식들 중 하나만 놔두고 팔아버렸다. 도망치지 못하게 가족의 끈을 묶어둔 것이었다. 농장주는 여자 흑인 노예를 성적으로 착취하였을 뿐 아니라 여자 노예가 낳은 아이도 재산으로 여겼다. 흑인인 다나가 자유민이라고 우겨도 종이로 된 증명서를 찢어버리고 노예로 팔아버릴 수도 있는 시대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래서 와일린의 농장에서 할 일을 찾아야 했다. 캔버스 가방에 들어있던 아스피린으로 루퍼스의 열을 다스리고 나을 수 있게 최선을 다했다.



 

다나는 서재에서 철자 책을 몰래 가져와 부엌에서 나이절에게 공부를 가르쳤다. 백인 농장주들은 흑인들이 글을 읽게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양반들이 양인들과 하인들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던 것과 같다. 글을 알면 생각이 깊어지고 자유로운 사상을 갖게 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다나가 루퍼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 또한 마땅치 않아 했다. 흑인이 글을 읽는다는 사실을 두려워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톰 와일린 또한 글을 아주 잘 읽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백인처럼 말하고 남자처럼 바지를 입는 다나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도 또 다른 이유였다. 와일린은 다나를 일종의 치료자로 보았던 듯하다. 그 시대의 의료기술을 믿지 못했던 다나가 가져 온 아스피린을 먹여 열을 내리는 모습을 보아서였다. 그리고 다나가 루퍼스를 몇 번이나 살려주었잖은가. 루퍼스가 위험에 처했을 때마다 다나가 나타나 그를 구해주었다. 아마도 루퍼스와 다나가 무언가로 강하게 연결된 느낌이었다. 루퍼스가 부를 때 집에 있었던 다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흑인 여성 작가인 옥타비아 버틀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인종 차별 문제는 여전하다. 지금과 다른 19세기에는 어떻겠는가. 그때의 흑인들은 자유 주 몇 군데 빼고는 거의 노예 신분이었다. 더군다나 흑인으로서 지내야하는 여성이라면 더더욱 고통스러운 시대다. 과거의 역사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장소에 있다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단어가 있었는데 그것은 역사였다. 몇 번에 걸쳐 옥타비아 버틀러는 그들이 역사 속에 있다는 것을 다나를 통해 밝혔다. 바꿀 수 없는 역사 속에 갇힌 느낌이라고 해도 되겠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 속에 들어온 다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비록 역사를 바라보는 관찰자의 입장이라고 해도. 죽음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에야 현재로 돌아올 수 있었고 이 모든 것이 끝날 때는 루퍼스의 죽음이어야 가능할 것이었다.

 

가장 약자인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었다. 노예제도가 있던 시대에서 흑인이며 더군다나 여성인 주인공을 빗대어 역사와 현재를 아우르는 부조리한 세상을 말하는 작품이었다.

SF소설은 내 취향이 아니라고 종종 밝혔었는데 이제부터는 그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다. 그저 재미가 조금 없었던 소설이었던 거다. 소름끼치도록 긴장감을 주는 작품 때문에 잠시도 책을 덮을 수 없었다. 두 번째 읽는데도 정신없이 빠져 읽었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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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12-31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내년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요 ~~~

Breeze 2021-01-11 11:4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도 행복한 새해 되시기 바랍니다. ^^
 









죽음은 침묵 그 자체다. 비밀을 안고 가기 위해 죽음을 택하기도 하고 더이상의 상황 변화를 막기 위해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침묵은 곧 죽음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 같다. 침묵이라고 했을때 어떤 평범한 것들에 대하여만 생각했었는데 그 원초적인 건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그저 죽은 자의 유품을 수집하여 박물관을 차리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이 소설은 꽤 그로테스크하다. 죽은 자의 유품을 갖기 위해 열쇠를 몰래 따고 들어간다는 설정 자체가 그렇다. 연쇄살인이 있던 장소에 간다는 건 살인자로 비춰질 수 있는데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의 죽음이 가리키는 무언가를 찾기 바랄 뿐이었다. 새로운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면접을 보러왔던 박물관 기사 '나'는 그렇게 이 마을과 자신의 업무인 죽은 사람의 유품 찾는 일에 동화되어 간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노파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주름살이 깊게 패어 있었다. 꽤 거칠게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면접에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는 짐을 풀지 않고 하룻밤을 보냈다. 어머니의 유품이었던 『안네의 일기』 만은 잠자리에서 읽던 습관을 그대로 이행했다. 다음날 노파의 손녀뻘로 보이는 소녀가 자신을 찾아와 마을을 돌아보자고 했다. 죽은 자의 유품을 건지기 위해서는 마을을 알아야 했다. 

 

죽음이 이렇게 평범하고 일상적이었나 싶게 마을에서 죽은 자가 발생한다. 세금을 내지 않도록 귀를 자르는 일을 했던 한 의사의 죽음에 그가 사용했던 메스를 훔쳐오는 일부터 시작했다. 오전에 노파에게 유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적는 작업을 하던 그는 유품만 보고서도 막힘없이 이야기하는 노파가 신기했다. 그 나이쯤이면 많은 것을 잊을 법한데도 노파는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소녀와 함께 유품의 색인 작업과 함께 정원사의 도움을 받아 전시관을 만드는 작업은 순조롭다. 드디어 '침묵 박물관'이라는 명패를 만들어 그럴듯한 박물관의 형태를 갖추었다. 

 

죽은 자들을 기리는 유품을 전시할 박물관을 만드는 작업을 함과 동시에 기사는 누군가가 죽으면 그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나타내는 유품을 챙겨오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여자들만을 노린 연쇄살인이 50년 만에 다시 시작되자 마을은 공포에 떤다. 박물관 기사는 죽은 여자의 집에 몰래 들어가 그 여자를 가리키는 유품을 찾으러 갔다가 누군가에게 들켜 달아난다. 그때부터 경찰관 둘이 그를 찾아오기도 하고 감시하는데 되도록이면 그들 눈에 띄고 싶지 않다. 

 

박물관 기사는 과학교사인 형이 사용했던 현미경 바라보기를 즐긴다. 또한 엄마의 유일한 유품인 『안네의 일기』는 늘 여행가방의 맨 위에 차지한다. 그는 형에게 편지를 쓴다. 형수가 아이를 낳았는지, 아이에게 줄 알공예품을 사서 부치지만 이상하게 형에게서는 답장이 없다. 기사는 정원사와 밤에 술을 함께 마시곤 했다. 정원사가 만들어 준 잭나이프로 죽은 자의 유품을 찾는데 사용하기도 하는데 정원사는 잭나이프를 여러개 똑같이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재주를 가졌다. 


 

 


마을의 분수대 앞에는 수행을 하는 침묵의 전도사가 있었다. 흰바위들소의 털가죽만 걸친 침묵의 전도사는 침묵하는 수행자였다. 사람들은 그에게 다가가서 발설하기 어려운 비밀을 말하기도 하는데 그 비밀은 절대 새어나가지 않았다. 박물관 기사가 처음 침묵의 전도사를 보았을때 어떤 여자가 다가가 무슨 말인가를 하는 거를 보았고, 박물관 기사 또한 배를 젓던 수습 전도사 소년(침묵의 전도사가 된 후)에게 다가가 자기가 알게된 비밀을 말하였다. 

 

죽은 자들의 유품을 전시하는 박물관도 침묵 박물관이고 수행자들도 침묵의 전도사들이다. 침묵 수행은 자기 안의 것을 밖으로 표현할 수 없을 뿐이지 밖에서 들어오는 건 거부하지 않는다. 즉 육체를 버리고 마음 속으로 망명하는 게 침묵 수행이다. 반면 유품 전시는 육체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박물관 기사 또한 침묵 박물관의 유품들을 전시하며 드디어 자신에 가둬두었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죽음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언젠가를 그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즉 이 소설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삶과 죽음은 소중하고 중요한 거라고 깨우치게 한다. 때로는 잊히고 때로는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죽음이 남긴 유품들은 그렇게 우리들의 곁에 살아 움직이듯 할 거 같다. 이 소설이 가진 이야기도 이런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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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인생공부 - 대작가의 문장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 수채화 59점 필사의 발견
헤르만 헤세 지음, 김정민 엮음, 배정애 캘리그래피 / 북로그컴퍼니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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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는 하나의 세계를 깨고 나와 자신만의 삶을 살기를 바랐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라는 이름의 주인공을 통해서였다. 싱클레어는 곧 헤세 자신을 나타낸 거라고 볼 수 있다. 구도자의 길을 가려다가 뛰쳐나와 작가가 되었다. 헤세는 주로 자아성찰을 다룬 글을 썼다. 그러한 그의 글을 모은 글이 이 책이다. 좋은 문장을 골라 필사를 할 수도 있다. 

 

헤세의 소설 몇 권과 수채화가 수록된 에세이집을 한 권 읽은 적이 있어 이 책에 수록된 그의 그림들은 낯설지 않다. 저 먼 숲 혹은 바닷가의 풍경이 그려져있는 그림이다. 초록빛으로 물든 숲. 푸른 바다 저 멀리 보이는 파란 하늘. 그리고 다양한 건물들. 구불거리는 길. 마치 그 길에 서 있는 헤세를 가르키는 것만 같다. 

 

 

이 책을 읽기 전 이석원 작가의 에세이를 읽었는데 헤세가 추구했던 것과 닮아 있어서 놀랐다. 자신에게 깊이 다가가다보면 깨닫는 게 결국 삶은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었다. 이석원 작가가 그랬고 헤세가 추구했던 것이었다. 

 

 

내가 이룬 것을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마라.

세상의 잣대로 평가하지도 마라.

 

내가 이룬 것이 있다면,

그것을 평가하는 기준과 잣대는 나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래야 나다운 삶, 내가 주인공인 삶을 살 수 있다. 

 

타인의 인정과 평가에 영향을 받는 것은

곧 타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22페이지, 타인의 인정에 목매지 마라)

 

우리는 종종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보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신경 쓴다. 하지만 헤세는 타인의 인정과 평가에 영향을 받는 것은 타인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처럼 중요한 문장도 없는 것 같다. 이 문장 외에도 많은 문장들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들을 말했다. 『데미안』에서도, 『수레바퀴 아래서』도. 다른 무엇도 아닌 '나를 사랑하기'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뜻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걸 원해야 한다.

가슴 깊은 곳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몸과 마음을 다해 실현하려 힘써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나를 알게 된다.

그게 나 자신에게 이르는 길이다. (24페이지)

 

중요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다해 실현하려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생각에만 머물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면, 주저하지 말고 행동하라.

행동은 결과를 가져온다.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한 걸음 성장한다.

그러므로 그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당장 실천하라.

생각을 머릿속에만 저장하지 말고

세상으로 꺼내 빛을 발하게 하라. (102페이지)

 

 

또다른 문장도 살펴 보자. 

 

거꾸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고정된 사고 체계에서 벗어나

뒤집기, 분해하고 재구성하기 등의 새로운 생각법으로 접근한다면

좀 더 유연해진 사고체계와 창의적인 뇌 활동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고정관념과 매너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성장을 막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116페이지)

 

대기업은 잘 모르겠지만 관공서의 경우 한 부서에서 오래 근무하지 못하게 한다. 3~4년에 한번씩 다른 부서로 발령을 내는데 그 이유가 매너리즘때문이 아닐까 한다.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다보면 본인은 인지하지 못해도 타인들은 바로 보이는 그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헤세는 그걸 말했다. 

 

흔히들 자신의 전성기 또는 삶의 빛이 가장 찬란할 때

인생의 의미와 확연해지고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생은 모든 의미와 의의와 상실된 순간에

가장 의미 깊은 것이 된다. 

삶이 순조로울 때는 미처 돌이키지 못하는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반추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니 삶이 힘들 때일수록 자신의 인생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150페이지)

 

삶을 살다보면 우리 앞에 수많은 상실을 경험하게 되다. 하지만 그 상실을 계기로 우리는 성큼 성장할 수 있다. 비록 힘든 삶이어도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삶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사랑에 실패해도 마찬가지다. 사랑의 슬픔에 빠져 있다가도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힘을 얻는다. 우리가 살아갈 힘을 얻게 될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배정애 캘리그라퍼의 손글씨를 삽입해 손글씨의 아름다움을 알게 한다. 캘리그라퍼처럼 예쁜 글씨를 쓰고 싶지만 남자 글씨체라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없어 안타깝다. 책사진에 가끔씩 사용하는 꼬마 고무신도 캘리그라퍼인 지인이 그려주신 거다. 이참에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그 깊은 질문에 빠져있다면 헤세의 문장들을 읽고 써보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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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2-28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필사를 많이 하는 게 새해 계획 중 하나입니다.
또 하나의 계획은 단편 소설의 줄거리를 써서 이곳에 하나씩 올리는 겁니다.
제가 읽은 책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정리맨, 아니 정리우먼이 되어야겠다고 다짐! 다짐! ^^
글쓰기에 도움이 될 걸로 믿습니다.

Breeze 2021-01-11 11:47   좋아요 0 | URL
새해엔 필사도 많이 하시고, 정리우먼이 되시기 바라요.
어느 정도 내용을 적어도 자세한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ㅠ.ㅠ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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