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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특별판, 양장)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는 디스토피아적이다. 한때는 유토피아의 세계를 그린 것도 같은데 여러 작품에서 나타나는 미래는 음울할 뿐이다. 조지 오웰의 『1984』는 감시자의 눈 빅브라더를 그려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황폐해진 지구에서 살아남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떻게든 견딜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모든 게 사라진 시대라면. 더군다나 여성의 지위가 그저 아이를 낳기 위한 도구로 여겨진다면. 그래도 살아갈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 이야기』는 전쟁과 환경오염 때문에 더 이상 아이가 태어나기 힘든 21세기의 미국을 그렸다. 소설 속 여성의 지위는 각 계급에 따라 다른 취급을 받는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그의 아내들과 부엌일을 돕는 하녀들, 가임기의 여성은 시녀들로 나뉜다. 이 계급에 들지 못하는 여성들은 어딘가로 사라져야 할 판이다. 이 세계는 나이든 여성 즉 할머니들이 보이지 않는다. 시녀들은 임지로 향하는데 마치 부대 전출을 가는 듯 계약기간동안 머물 뿐이다. 그것도 아이를 낳으면 대접을 받지만 그렇지 못하면 다른 임지로 가야 한다.
시녀들은 가구가 거의 없는 공간에 갇혀 산다.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은 아예 주어지지 않고 뛰어내릴 거에 대비해 창문도 조금밖에 열리지 않는다. 물건을 사러 외출할 때는 소위 ‘눈’들에 의해 감시를 받으며 혼자서는 절대 다닐 수 없다. 둘씩 짝지어 걸으며 다른 이야기를 나눠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하얀색 두건으로 얼굴을 가려야 하고 온 몸을 감출 빨강색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 빨강은 곧 피의 색이다. 시녀들에게 기대할 것은 오로지 한 가지, 아이를 낳는 것뿐이다. 아이를 낳는 기계 그 이상도 아니다.
시녀가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사령관과 관계를 가져야 하는데 마치 3인 1조로 움직이듯 한다. 즉 시녀와 사령관, 사령관의 아내와 함께 아이를 낳기 위한 행위를 해야 한다. 사령관의 아내와 사령관이 만들어야 하는 아이를 대신 낳는 시녀는 아내들의 대용품일 뿐이다. 지금으로 보면 대리모의 한 형태다. 머리가 잿빛으론 센 사령관은 아이 낳는 능력이 되지 않는지 4주에 한 번씩 그 일을 치러도 아이는 생기지 않는다. 이럴 때 아내들은 시녀들에게 제안을 한다. 시녀들을 진찰하는 의사들 아니면 수호자와 몰래 동침하게 하여 아이를 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에 따른 보상은 주어진다. 남자에게는 돈을, 여자에게는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는 식이다. 오브프레드가 원한 것은 딸의 생사와 한 장의 사진이었다. 담배 한 개비와 함께.
밤에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아침이면 우리 집에서 눈을 뜰 테고 전부 옛날로 돌아가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런 일은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341페이지)
오브프레드는 생각에 잠길 때마다 남편 루크를 떠올린다. 사랑했으나 사랑한다고 많이 표현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안타깝다. 지금도 살아 있을까. 어딘가에서 죽지 않았을까. 살아있기를 바랐다. 또한 어린 딸이 그립다.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까봐 두렵다. 루크와 딸과 함께 일상을 보냈던 때를 회상한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그 시간들. 아스라이 떠올릴 뿐이다.
시간은 가만히 멈춰서 있지 않았다. 그것은 나를 휩쓸고 지나가, 나를 깨끗이 지워 버리고 말았다. 나라는 존재는 경솔한 아이가 너무 밭은 물가에 남기고 가버린, 모래로 만든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 애에게 있어 이제는 하얗게 지워져 버린 존재다. 이 사진의 반짝이는 표면 너머 까마득한 저 뒤에 존재하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죽은 엄마들이 다 그렇듯 그림자의 그림자가 되어 버렸다. 그 애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속에 나는 찾아볼 수 없다. (394페이지)
사령관은 오브프레드를 따로 불렀다. 원래는 금지된 사항이다. 아내 없이 따로 만나면 안 된다. 사령관의 사무실로 향했을 때 오브프레드는 그가 변태적인 무언가를 원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스크래블 게임 상대로서 그녀를 원했다. 책상에 마주앉아 스크래브 게임을 한다. 보상으로 잡지를 보게 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문제는 아내 몰래 해야 하고, 들키는 날엔 그녀는 수호자들에게 잡혀 어딘가로 가거나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사령관의 말을 거절하지 못한다.
여성의 지위가 하찮은 세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다. 시녀들이 아들을 낳는다면 그 아들의 지위는 달라지겠지만 딸을 낳았을 때는 그 딸도 누군가의 아내가 되거나 시녀들이 되어야 한다. 그저 아이 낳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 그래서 슬펐다. 아마 내가 여성이어서 더 슬펐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에서 나이절이 아이를 낳으면 자신의 아이 또한 노예가 되므로 낳기 싫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소설이 1985년에 쓰였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85년이 미국에서 어떤 시대였는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지만 21세기의 모습을 이토록 우울하게 그렸다는 게 슬프다.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는 게. 그때서야 우리는 평범하게 생활했던 과거의 일상을 그리워하겠지. 오브프레드가 바랐던 것처럼. 눈을 뜨면 옛날로 돌아가 있을 내일을 그렸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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