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 (리커버 에디션) 옥타비아 버틀러 리커버 컬렉션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평점 :
품절


역사를 뒤바꿀 수 있다는 건 소설에서만 가능하다. 여느 SF소설에서 타임 슬립을 논할 때 과거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과거를 바꾸기 위해서는 죽음을 무릅써야 할 수도 있다. 수많은 책이나 드라마 등에서 보던 내용이다. 어느 영화처럼 낭만적인 과거로 향하여 그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바꿀 수 없는 역사 속에 갇힌 흑인 여성처럼 절박한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나중에서야 내 집의 안온함 그리고 편안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다나와 그녀의 연인 케빈은 서로의 책들이 너무 많아 좀 더 큰 집으로 이사했다. 책들을 정리하다가 다나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강가에서 물이 빠진 사내아이를 발견하고 물속으로 들어가 아이를 구해 살렸다. 발목까지 오는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아이에게 달려왔다. 그때 장총을 든 남자가 다가오자 다나는 겁을 먹었다. 눈을 뜨니 자기 집이었다. 케빈이 보는 상태에서 다나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다나가 그 장소에 있었던 시간은 몇십 분, 사라졌던 시간은 겨우 몇 초에 불과했다. 물속에서 아이를 구하느라 옷은 젖어있었고 진흙이 묻어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잊으려 다나와 케빈은 저녁을 먹기로 했다. 다나의 생일이었지만 이사로 피곤해 새우 요리를 시켜 먹기로 했다. 식사를 하고 마음이 한결 진정되자 다시 속이 울렁거리는 현기증이 느껴졌다. 눈을 뜬 곳은 커텐에 불이 붙은 한 소년의 방이었다. 커텐을 뜯어 창밖으로 던지고 나서야 다나는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자기가 구해주었던 소년이었다. 다섯 살 정도였던 아이는 서너 해가 지나 소년으로 자라있었다. 그곳이 1815년의 메릴랜드 주라는 것을 알았다. 아이의 이름은 루퍼스 와일린. 이상하게 친숙하게 느껴져 앨리스라는 흑인 여자아이가 주변에 있는지 물었다. 루퍼스의 친구라는 앨리스는 자유민으로 엄마와 함께 살았다. 그러니까 루퍼스와 앨리스는 다나의 조상일 것이었다.



 

앨리스의 집으로 가려던 다나는 루퍼스의 저택을 빠져나와 걷다가 말을 타고 다니는 백인 남자들을 보았다. 그들이 찾던 앨리스 그린우드의 아빠가 루퍼스 와일린의 도망노예였다. 그들을 잡으러 다니는 순찰대원에게 잡혀 겁탈을 당하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피투성이인 채로. 그곳에서는 몇 시간이었지만 다나가 사라진 시간은 겨우 이삼 분이었다. 놀란 다나는 캔버스 가방에 바지, 속옷, 스웨터, 신발, 스위치나이프를 담아 허리에 줄로 묶었다. 언제 사라지더라도 가지고 갈 수 있게 준비해두었다. 또다시 현기증이 느껴졌다. 다나의 손을 잡은 케빈과 함께 과거로 흘러들었다. 이제 루퍼스는 열두 살 쯤의 사내아이가 되어 있었고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한쪽 다리가 부러진 상태였다.

 

다나는 케빈과 함께 19세기로 다시 왔다. 백인인 케빈의 노예로 여기도록 했다. 19세기 미국 남부의 흑인 노예는 백인 농장주의 재산이었다. 돈이 필요하면 노예상에게 흑인을 팔았고 노예에게 벌주기 위해서도 팔았다. 흑인 노예가 잘못했을 때 자식들 중 하나만 놔두고 팔아버렸다. 도망치지 못하게 가족의 끈을 묶어둔 것이었다. 농장주는 여자 흑인 노예를 성적으로 착취하였을 뿐 아니라 여자 노예가 낳은 아이도 재산으로 여겼다. 흑인인 다나가 자유민이라고 우겨도 종이로 된 증명서를 찢어버리고 노예로 팔아버릴 수도 있는 시대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래서 와일린의 농장에서 할 일을 찾아야 했다. 캔버스 가방에 들어있던 아스피린으로 루퍼스의 열을 다스리고 나을 수 있게 최선을 다했다.



 

다나는 서재에서 철자 책을 몰래 가져와 부엌에서 나이절에게 공부를 가르쳤다. 백인 농장주들은 흑인들이 글을 읽게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양반들이 양인들과 하인들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던 것과 같다. 글을 알면 생각이 깊어지고 자유로운 사상을 갖게 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다나가 루퍼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 또한 마땅치 않아 했다. 흑인이 글을 읽는다는 사실을 두려워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톰 와일린 또한 글을 아주 잘 읽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백인처럼 말하고 남자처럼 바지를 입는 다나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도 또 다른 이유였다. 와일린은 다나를 일종의 치료자로 보았던 듯하다. 그 시대의 의료기술을 믿지 못했던 다나가 가져 온 아스피린을 먹여 열을 내리는 모습을 보아서였다. 그리고 다나가 루퍼스를 몇 번이나 살려주었잖은가. 루퍼스가 위험에 처했을 때마다 다나가 나타나 그를 구해주었다. 아마도 루퍼스와 다나가 무언가로 강하게 연결된 느낌이었다. 루퍼스가 부를 때 집에 있었던 다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흑인 여성 작가인 옥타비아 버틀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인종 차별 문제는 여전하다. 지금과 다른 19세기에는 어떻겠는가. 그때의 흑인들은 자유 주 몇 군데 빼고는 거의 노예 신분이었다. 더군다나 흑인으로서 지내야하는 여성이라면 더더욱 고통스러운 시대다. 과거의 역사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장소에 있다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단어가 있었는데 그것은 역사였다. 몇 번에 걸쳐 옥타비아 버틀러는 그들이 역사 속에 있다는 것을 다나를 통해 밝혔다. 바꿀 수 없는 역사 속에 갇힌 느낌이라고 해도 되겠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 속에 들어온 다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비록 역사를 바라보는 관찰자의 입장이라고 해도. 죽음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에야 현재로 돌아올 수 있었고 이 모든 것이 끝날 때는 루퍼스의 죽음이어야 가능할 것이었다.

 

가장 약자인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었다. 노예제도가 있던 시대에서 흑인이며 더군다나 여성인 주인공을 빗대어 역사와 현재를 아우르는 부조리한 세상을 말하는 작품이었다.

SF소설은 내 취향이 아니라고 종종 밝혔었는데 이제부터는 그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다. 그저 재미가 조금 없었던 소설이었던 거다. 소름끼치도록 긴장감을 주는 작품 때문에 잠시도 책을 덮을 수 없었다. 두 번째 읽는데도 정신없이 빠져 읽었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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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12-31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내년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요 ~~~

Breeze 2021-01-11 11:4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도 행복한 새해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