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의 초기작이 사회파 미스테리를 다루었다면 최근의 소설은 휴머니즘을 말한다. 그래서 자꾸 그의 소설을 찾아 읽는다. 그가 말하는 휴먼 미스테리를 보며 우리가 살아갈 방향을 생각한다.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의 정의를 말하는 소설을 읽으며 수많은 질문을 자신에게 건네고 있었다.

 

만약 여러분의 가족이 뇌사 상태에 빠져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살아 있다고 믿을 것인가, 죽었다고 여길 것인가. 무엇하나 딱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게 가족에게 닥친 비극 때문이다. 담당 의사는 심장은 뛰지만 뇌사 상태로 보이며 장기 기증에 대해 묻는다면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이혼을 합의한 부부에게 위기가 닥쳤다. 곧 초등학교에 입할할 미즈호가 수영장의 물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다. 너무도 가슴이 아픈 부부는 여러가지 생각을 거듭하게 되고 딸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장기 기증을 하기로 했다. 마지막 인사를 할때 마치 대답을 하듯 움직이는 딸의 움직임을 느낀 부부는 아이는 살아있다며 연명치료를 하기로 결정했다.

 

금전적인 이유때문에 이혼은 하지 않기로 하고 가즈마사와 가오루코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뇌나 경추가 손상된 환자의 뇌를 연결해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있던 회사의 직원 호시노의 도움을 받아 수술을 했다. 미즈호는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지 않고 호흡을 할 수 있으며 움직이는 장치를 연결해 미즈호의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한다. 누워서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이는 미즈호는 살아있는 것처럼 그렇게 가오루코의 보살핌을 받았다.

 

엄마인 가오루코에게는 그토록 소중한 딸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몇 년동안 누워 잠을 자고 있는 미즈호는 살아있는 상태인지, 죽었다고 봐야할지 주변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기도 한다. 가오루코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미즈호의 담당 의사는 상태가 좋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뇌사 상태로 봐야한다고 말한다. 모두가 지쳐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연명치료에 대한 선택을 앞두고 고민한다. 자가호흡을 하지 못할때 인공호흡기를 끼어야 하는지, 심장이 멎었을때 심폐소생술을 해야할지 질문앞에서 여러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미즈호의 엄마인 가오루코의 선택에 공감을 하면서도 과연 미즈호가 살아있다고 봐야하는가, 다른 사람의 의견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의 의견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장기기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수많은 아이들이 장기 기증을 기다리고 있지만, 아이들의 장기 기증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아이를 두 번 죽이는 것처럼 여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역시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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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 헌터
카린 지에벨 지음, 이승재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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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른 인간이 이 숲에서 살아나간 적은 없습니다. 단 한 번도.' 이 홍보 문장때문에 이 소설이 몹시 궁금했다. 인간의 삶이란 예측할 수 없는 법이다. 어느 정도의 예측은 가능하나 항상 변수가 있기 마련. 도시와 떨어진 저택의 숲속에 잡혀 온 한 남자는 분명 살아서 나갈 것이라는 가정하에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다른 추리소설들에 비해 비교적 짧았지만, 소설이 가진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살고자 하는 희망에 감정을 이입하다보니 짧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인간의 잔혹함은 어디까지일까. 동물을 죽이는 사냥 본능에 대해서도 놀랍지만, 더한 짜릿함, 더한 쾌락을 얻기 위해 인간을 사냥한다는 것은 어떠한 느낌일까. 인간의 쾌락을 향한 감정은 어디까지인지 다시한번 생각에 잠기게 하는 소설이었다.

 

동물 사냥이 아닌 인간 사냥에 나섰다. 거금의 돈을 주고 살인 게임에 나선 것이다. 그들이 고른 인간들은 가족이 없거나 누구 하나 찾지 않을 거리의 노숙자나 먼 나라에서 자유의 삶을 찾아 떠나온 이주민을 골랐다. 소설 속 주인공 레미 또한 한때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으나 거리의 노숙자가 된 인물이다. 폭행장면을 보고 구해진 신사에게서 그에 대한 보답으로 저택의 정원사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의 저택에 따라오게 되었다. 헛간에 갇힌 레미는 자기를 포함해 네 명의 남자가 갇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체첸에서 떠나온 형제와 젊은 흑인이었다.

 

 

소설은 사냥감이 된 레미와 돈을 받고 사진을 찍으러 온 사진기자 디안이 함께 이끌어간다.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곳에 도착한 디안은 산장에서 식사를 하다 술을 마시는 마을 사람들을 마주쳐 인사를 나누었다. 다음날 사진을 찍던 디안은 숲속에서 젊은 남자를 마주쳤고, 총을 가진 사냥꾼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나타나 그 남자에게 쥘리를 죽였다며 때리다가 죽인 장면을 보았다. 더군다나 그 젊은 남자의 시신을 사용하지 우물속에 던져 넣고 뚜껑을 닫아 흔적을 감추었다. 도망가다가 사냥꾼들을 보았는데 그들이 전날 밤에 보았던 마을 남자들이었다.

 

살인 흔적을 지우려는 네 명의 동물 사냥꾼들에 의해 쫓기는 디안과 네 명의 인간 사냥꾼들에게 쫓기는 레미 일행의 쫓고 쫓기는 살인 게임이 시작되었다. 작가는 사냥감들을 가차없이 죽이며 인간의 잔혹함이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주었다. 돈이 많으나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 소심한 성격, 특별한 쾌락을 원한 사람들을 모집해 사람을 죽이는 게임을 계획한 경의 잔인함때문에 몹시 불편했다.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잔혹함이라는 본능을 깨우는 내용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살고자 하는 희망 때문에 우리는 죽음에 맞서 싸운다. 사방이 막힌 공간임에도 생존 본능 때문에  희망을 버리지 않고 도망치고 길을 따라 달리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빠져 나가야 하고, 쉼없이 달려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 끝이 어디이든.

 

빠져 나갔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사방이 자신을 쫓는 적일 수 있으니.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나에게 친절을 베풀었다고 안심해서는 안된다. 그 또한 새로운 적일 수 있으므로. 새로운 사냥감을 찾았다고 기뻐할 수 있으므로. 또한 도망쳤다고 기뻐해서도 안된다. 그가 가진 재력으로 어디서든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 이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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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이런 정신과 의사는 처음이지? - 웨이보 인싸 @하오선생의 마음치유 트윗 32
안정병원 하오선생 지음, 김소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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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가 쓴 글이라면 일단 진지해진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사례를 말하며 해결 방법들을 말하기 때문이다. 진중하게 책을 읽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해답을 얻는 기분을 느낀다. 여태까지 읽었던 정신과 의사가 쓴 대부분의 책의 느낌은 그랬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하오 선생의 에세이는 유쾌하다. 위트있게 진행되는 내용때문에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고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경쾌하다. 어쩐지 로맨틱 코미디를 읽는 느낌이랄까.

 

안정병원의 하오원차이 선생은 중국의 웨이보의 인기 블로거이자 정신과 의사다. 그는 10년동안 안정병원으로 일한 경험을 쓴 책으로 매우 유쾌하다. 각자의 사연들을 가진 환자들을 대하는 방법등 우리 주변의 우울증이나 각종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다.

 

언젠가 허진호 감독과 정우성 주연의 <호우시절> 이란 영화를 본적이 있다. 그 영화로 정우성의 잘생김을 알게 되었었는데 '호우시절(好雨時節)'이란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라는 뜻으로 두보의 시에서 따왔다. 책 속에서 나오는 두보의 시 구절이 반가워 그 영화가 떠올랐다. 자기 여자 친구가 성도착증인 것 같다며 자신에게 정신병 진단서를 떼달라고 찾아온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문학 동아리에서 만난 연인이 밤을 보내게 되었을때 두보의 옛시로 대답하는 게 문학동아리라 달랐다는 거였다.

 

205호의 환자는 병원에서 시인이라 불렸다. 점심시간마다 만나는 환자는 하오 선생에게 자신이 쓴 시를 읊어주고 싶어했다. 시를 들어주고 밥을 먹으러 가겠다고 하면 기필고 시에 대한 의견을 들려달라고 했고 고칠 부분이 없는지 물었다. 몇 달을 그렇게 보내고 환자가 퇴원하는 날 연락처를 가르켜 달라고 했을 때 전화가 정지되었다는 등, 멀리 출장을 간다는 등의 핑계를 대는 모습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되었다. 

 

 

 

 

나는 잃는 게 두렵다. 본래 가진 것 또한 많지 않으니까. 어차피 잃게 될 거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갖지 않는 편이 낫다. 잃는 것의 고통은 얻을 때의 기쁨보다 날카롭게 찾아오니까. (68페이지)

 

기나긴 인생길, 살다 보면 우리는 기억 속 가장 깊고도 아름다운 자리에 누군가를 두게 된다. 비록 끝이 났어도 불완전하지 않으며, 떠나갔어도 다시 만날 수 있는 존재. 꿈에서든, 다른 세상에서든, 아니면 서로의 마음에서든. (113페이지)

 

하오 선생이 키웠던 빵더라는 개의 이야기를 꽤 여러 장에 걸쳐 말했다. 다시는 그 아픔을 느끼고 싶지 않아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다는 그는 누군가 빵더라는 친구가 있었음을 기억해 달라는 말이었다.     

 

쓰촨 요리의 대가 이 주방장과 이 간호사의 꽁냥거림과 별자리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만나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하는 인식을 '바넘 효과'라 부르는 것과 마른 몸매가 좋아 심한 다이어트를 하다 거식증에 걸린 바오 간호사의 이야기 또한 우리가 유념해야 할 부분이라 여겼다. 또한 버스에서 자폐증에 걸린 아이를 보고 대하는 방법들 또한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또한 책이나 여러 매체에서 자폐증 환자가 천재일 거라 생각하는 건 맞지 않다고 했다. 자폐증 환자의 70퍼센트는 보통 사람들보다 지능이 낮으며 천재는 10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는 거다. 소아 자폐증 환자에 대한 마음과 치료법등에 대한 것도 말했다. 

 

 

수면의 날인 토요일에 한 대학에 강의를 갔다가 홍보가 되지 않아 강의실에 몇 명의 학생이 없는 걸 보고 식당에서 한 수면에 대한 강의는 대학생들에게 상당히 유익한 강의가 되었다. 약을 먹지 않는 상황에서 불면증에 대처하는 방법 을 몇가지 제시했다.

 

첫째, 선종 요법. 흘러가는 대로 두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라는 이론이다.

둘째, 안마 요법. 두피 마사지, 배 마사지, 혈자리 마사지(발바닥 뒤꿈치의 가운데 부분)

셋째, 음악 요법. 고전 음악

넷째, 기타 방법. 피로할 때 눈 깜박임, 따뜻한 물로 샤워하기, 식초를 물에 타서 마시기 등.

 

눈이 나쁘니 소리나 냄새에 민감한 편이다. 또한 고민이 있으면 쉽게 잠들지 못하게 되는데 그럴 때 눈이라도 감고 있으려고 침대에서 뒤척였었다. 어떨 때는 침대에서 뒤척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가끔씩 책을 들어 읽곤 한다. 어차피 잠이 안오면 잠자려 애쓰기 보다는 다른 일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때문이다. 하오 선생 또한 잠이 안 올때 그냥 일어나서 자질구레한 일을 하라는 말을 했다.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거나 예전 사진들을 들춰보거나 주변 사람들 혹은 어떤 일들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도 해보고, 여행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좋죠. 통 잠을 잘 수 없다면 고요한 밤을 감상하기로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에 나 한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테니까요. (266페이지)

 

하루에 7~8시간은 꼭 자야하는 사람으로서 생각을 달리하게 된 부분이다. 무엇보다 잠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렇지 못할 경우 굉장한 피로를 호소하게 되는데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이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을 배워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오 선생은 참 유머러스한 정신과 의사인 것 같았다. 툴툴거리는 듯 하지만 정이 많고 환자에 대해서도 자기만의 방법으로 치료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책도 재미있었다. 마치 로맨틱 코미디 소설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유머러스함으로 가득한 정신과 의사의 유쾌한 처방법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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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건축가 2019-10-28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소설 ‘공중그네‘ 생각이 나네요. 톤이 다르기는 하지만요. 로멘틱 코미디를 중심으로 한다면요. ^^

Breeze 2019-10-29 11:27   좋아요 1 | URL
사실 로맨틱코미디는 아닙니다. 유쾌하게 읽히고, 황부인을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게 로맨틱코미디처럼 읽혀요. ^^
 
하와이하다
선현경 지음, 이우일 그림 / 비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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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를 가깝게 느낀 건 하정우의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였다. 걷기를 좋아하는 그가 자주 가는 곳이 하와이이고, 그곳에서 위안을 얻었다는 내용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며 한번쯤 가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던 차에 읽게 된 책이 선현경이 쓰고 이우일이 그린 이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 이우일이 포틀랜드에서 머물렀던 2년의 이야기들을 읽었던 터라 내심 반가웠다. 이제는 선현경이 좀더 사적인 이야기를 말한다. 하와이에서 정착하기까지의 일들과 그곳에서 만난 소위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들까지. 무엇보다 바다에서 보디보드를 타는 부분이 많아 앞으로는 하와이 하면 보디보드를 타는 곳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물이 좋지만, 물이 무섭다. 얕은 곳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을 주지만 발이 닫지 않는 곳은 그저 두려움과 공포의 세계인 것이다. 올 여름 휴가때 파도가 없는 곳에서 카약을 타보았다. 그리고 물 속에서 노는데 구명 조끼를 입었음에도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공포감에 아찔했다. 물을 좋아해야만 높은 파도를 따라 보디보디를 탈 것 같은데, 하와이에서 부부는 마치 보디보드를 타러온 것처럼 매일매일 즐겼다. 피부가 새까매지도록, 태풍이 몰려와도 온통 보디보드 탈 생각에 휴대폰의 파고를 들여다 보았단 거다.

 

바다는 그때 그 놀이터 같다. 바다에서 만나면 보드를 타는 사람끼리 눈인사를 하게 된다. 하비처럼 가르치고 싶은 사람은 가르치고 배우고 싶은 사람은 배우기도 한다. 처음 만난 사이여도 같이 파도를 타고 나면 한껏 신이 나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한다. (88페이지)

 

일본인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바다에서 보드를 타면서도 말을 걸지 않았었지만, 한국드라마에 대한 무한사랑을 내비치는 이라는 걸 알게 된 후로 바다에서의 친구가 되었던 이야기를 하며 편협한 생각을 했었다는 걸 깨닫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아무래도 일본인이라는 생각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직접 대화를 나누다보면 일본과 일본인은 다르다는 걸 생각하게 되는 풍경들이다.

 

 

저자가 하와이에서 만났던 사람은 국적을 불문하고 친구가 되었다. 아무래도 같은 나이 또래의 사람과 친하게 되기 마련이다. 함께 우쿨렐레나 훌라 수업을 하며 친해진 친구도 프랑스와 필리핀 국적의 사람이라는 거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개최할 때 들고 올 선물 꾸러미에 대한 생각들도 우리와 조금씩 다른 것들이다.

 

 

 

다르면서도 같은 것들을 경험하며 우리는 오늘을 살아간다. 전혀 모르는 타인들과 친구가 될 수도 있으며, 가족과 같았던 사람과 별것 아닌 이유로 이별을 하기도 한다. 사람 관계라는 것이 한 사람만 잘해서는 힘들며 서로 배려하며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우리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기회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어쩌면 기회는 파도처럼 매일매일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기회를 놓쳤다면 다시 맘을 가다듬고 기다리는 거다. 기다리면 다시 온다. 파도처럼. (100페이지)

 

 

 

노빈손 시리즈와 카페 '엔제리너스'의 로고를 탄생시킨 이우일과 그림과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는 선현경의 이야기는 많은 부분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공부하는 딸 은서가 하와이에 찾아와 함께 머물던 때의 엄마로서의 애틋함, 남편과 둘이 살면서 티격태격 다투는 풍경들이 우리와 닮았다고 여겨져서다.

 

 

지금보다 더 좋아지기를 바란다는 건 욕심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앞으로 내게는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가 없더라고. 시간이 가면 몸은 더 늙고 힘들어질 거야. 지구 환경도 더 나빠져 바다에 못 들어갈지도 몰라. 그래서 오늘에 더 충실하려고. (191페이지)

 

한국을 떠난지 4년이 넘은 여행자로서의 삶이었다. 포틀랜드에서 2년, 하와이에서 2년. 집이 그리울 때는 다시 집으로. 이런 삶을 꿈꾸었지만 과연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는 미지수다. 매서운 추위때문에 한국보다는 따뜻한 하와이에서 겨울을 보내고 한국행을 결심했던 이들의 결정이 부럽다. 이 책을 읽고 났더니 언젠가 하와이에서 보드를 타는 모습을 그려본다. 훌라 댄스를 배우고 많은 사람들과 섞여 몇개월 혹은 1년의 삶을 사는 나를 그려본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하지 않는가.

 

우리, 하와이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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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설의 시대 1 백탑파 시리즈 5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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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소설을 읽어오며 느낀 점은 그가 조선왕조실록을 소설로 나타낸 특별한 작가라는 점이다.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해서 왕의 이야기가 아니다. 의금부도사 이명방을 주축으로 한 백탑파를 말한다는 점이다. 이 소설에서는 백동수, 박제가, 박지원, 정약용 그리고 김진이 등장한다. 추리 형식의 소설로 정조 시대의 인물들과 그 사회상에 관심을 갖게 되어 책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의금부도사이자 밤낮으로 쥐 수염의 세책방에 다니며 책 읽기를 멈추지 않고 자신만의 소설을 쓰는데 여념이 없는 이명방의 시점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세책방에 나온 소설만으로도 총 121편이 나온 대소설가 임두에 대한 명성은 자자하다. 23년간 하나의 작품 <산해인연록>이라는 대소설을 집필해 온 작가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가득한 이명방은 김진의 부탁으로 그가 그린 그림을 들고 작가의 집으로 향했다. 집을 나서는 어여쁜 젊은 여인과 문을 열어준 여인, 그리고 늙은 여인을 맞이했다. 그가 소설을 쓴 작가라니, 외국의 문물을 접하고 온 선비일거라 짐작했지만 그러한 대소설을 쓴 작가가 한낱 여인이란 게 이명방에게는 놀라웠다. 

 

자기가 쓴 소설을 가지고 갔으나 서슬 퍼런 임두 작가에게 놀라 조용히 놔두고 그 자리를 나왔을 뿐이었다. 꽃에 미쳤다 하여 화광이라 불리는 규장각 서리 김진으로부터 받은 물건을 가지고 갔었다. 그가 그린 그림이 임두 작가의 <산해인연록>과 맞느냐 맞지 않느냐는 임두 작가에게 달렸다. 작가는 그림에 맞지 않다며 화광의 그림을 내쳤고 그길로 나온 참이었다. 이명방은 김진의 권유로 궐에 들었고 금상의 후궁 의빈과 만나 임두 작가의 작품을 계속 쓸수 있는 방안을 들었다. 이후 임두 작가가 사라지고 <산해인연록> 199편을 이을 200편의 작품을 완료하지 못하게 되었다.

 

의빈과 혜경궁은 임두 작가가 소설을 쓸 당시 원한 건 한 가지였다. 황족이 등장할 경우 남녀 불문하고 요절시켜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마흔 살을 넘기게 하겠다는 것 또한. 그런데 소설 속 주인공의 정실인 창화 공주가 십몇 년 동안 병석에 누워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임두 작가는 매병(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고 궁궐에서 원하는 내용대로 소설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

 

소설이 자유롭기 위해선 소설가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 국가에 의해서든 사회에 의해서든 경계를 짓고 틀에 가두는 모든 규정에 반대한다는 것. 그 반대 목록엔 스스로 정한 틀도 포함된다는 것. 거대한 화두가 내 몸 전체를 짓누르는 듯 했다. (1권, 122페이지)

 

 

 

'소설은 머리로 쓰는 것도 아니고, 손으로 쓰는 것도 아니다. 온몸과 온 마음을 매일매일 아낌없이 내던지는 고된 작업! 그렇게 내던지기 위해선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어야 한다. 특히 잘 먹어야 한다. 소설 쓸 시간 아낀다고 굶는 것보다 한심한 짓은 없다. (1권, 262페이지)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는 한자로 된 글은 주로 양반들이 읽었으나 언문으로 된 소설의 주 고객은 여성들이었다. 세책방에서는 사람을 시켜 소설을 필사하였고 필사본을 기다리는 고객 또한 여성이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소설을 필사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책들을 읽어야 가능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아닐까.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수많은 책을 읽었듯, 소설 속 작가 임두 또한 수많은 작품들을 읽고 필사했다. 그러했기에 23년에 걸쳐 199편의 소설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작가의 집필실에 걸린 수많은 작품속 인물들의 연결고리, 서재에 정리된 책의 목록들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작가는 소설을 읽고 쓰는 여성들의 입장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저력을 표현했다. 물론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의 마음이 이 소설에 많은 부분 표현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을 읽는 우리, 소설을 쓰는 작가 또한 하나의 독자임을 강하게 피력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명방 또한 대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사모해마지 않은 임두 작가를 방문할 때 자기가 쓴 소설을 가지고 갔으며 작가의 평가를 받아보고 싶었다.

 

 

 

작가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나무와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 물론 작가가 쓰는 작품이 독자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서로의 접점이 없기에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 취향이란 게 존재하니까. 여성이 사랑하는 소설을 쓰기에 여성 만큼 그 사정을 아는 경우도 드물다. 여성들이 읽는 많은 작품들이 여성에게서 태어났다는 가정하에 이 소설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의 챕터는 『대소설의 시대』라는 제목에 걸맞게 유명한 대소설의 제목을 차용했다. 전혀 알지못한 제목으로 된 소설의 제목들은 작가가 지은 제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100여편의 시리즈로 된 소설들이다. 그 많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소설을 쓰고 퇴고하는 작업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하지 않았을까 싶은.

 

사라진 임두 작가의 소설을 그의 제자들인 수문과 경문이 쓰기로 했지만 스승의 작품을 흉내내기만도 어려운 상황인 건 뻔한 사실이다. 수없이 작가의 작품을 읽고 베껴 썼으나 작가처럼 생각하는 드물 터였다.

 

마치 지상의 운명을 따라 소설을 써 나가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천상의 운명에 맞춰 이야기를 전개시킨 겁니다....., 사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 두 가지 운명을 넘나들며 소설을 써 나갈 수 있는 소설가는 오직 한 사람뿐입니다. (2권, 147페이지)

 

끝이라 체념한 순간, 이어지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인생 하나는 소설. 소설이 끝나도, 그 소설을 쓴 작가와 그 소설을 읽은 독자의 이냉은 이어진다. 그리고 가끔은 소설이 끝난 뒤 새로운 소설이 이어지기도 한다. (2권 157페이지)

 

예상한 대로 소설이 흘러갈지라도 소설을 대하는 즐거움은 변함없다. 기대하는 바가 있고 작가를 믿기 때문이 아닐까. 비록 매병에 걸려 처음 계획한 소설들이 제대로 흘러가지 못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결국 결말은 독자에게 달렸는지도 모른다. 결말이 없는 소설에 자신만의 결말을 부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애타게 완결을 기다리는 독자에게 작가의 결말은 소중한 선물과도 같은 것.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 그래서 오늘도 소설을 읽는다. 소설처럼 재미있는 게 또 없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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