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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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회색 판에 흰색 분필로 그려진 그림이 있다. 분필을 사용하는 주 층을 이루듯 어린아이의 그림으로 보인다. 머리가 크고 팔다리가 막대모양으로 된 사람의 모습이다. 여기에서 공포를 느낄수는 없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며 어떤 공포감이 우리를 사로잡을까, 그 공포를 기다리는 입장이 된다. 조마조마한, 심장을 겨누는 소설이었다. 누군가가 밤에 읽지 말라고 해 밤을 피하려고 했지만 한여름밤의 열대야를 견디지 못해 밤에만 읽었던 소설이었다. 몇 장 남겨두고 잠깐 밖을 나가야 했을때, 나가기 싫은 마음을 알까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서야 책의 홍보하는 그림을 보게되었다. 책 내용보다도 오히려 그 홍보 그림이 더 공포에 떨게 했다. 책을 다 읽고 공포를 느끼다니. 밤에 꿈에 나올까 두려운 그림이랄까. 때로는 글보다는 그림이나 영상이 우리를 공포에 떨게한다는 걸 다시한번 느꼈다.

 

한 소녀가 낙엽 더미에 누워 있었다. 머리와 팔다리가 한군데 있지 않은 상태였다. 한 사람이 다가와 이미 체온이 식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낙엽을 털어 머리를 배낭에 넣고 떠진 눈을 손으로 감아 주었다. 그리고 유유히 떠났다. 이러한 소설의 첫 시작을 보았을 때 당연히 시체의 한 부분을 가져 간 사람이 살인범일 거라는 가설이 세워진다. 소설을 읽어갈수록 소녀의 머리를 가져간 사람이 누구일까. 내가 예상한 사람이 맞는걸까. 아니면 전혀 다른 사람인걸까. 수많은 질문과 가설을 세우고 있었다.

 

분필이 공포를 자극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무언가의 표식으로 자리잡은 분필은 살인을 예고했다. 열두 살 즈음의 아이들. 선물로 받은 분필을 저마다 자기만의 색깔로 구분했고, 서로에게 메시지가 될 표식을 만들었다. 아마 초크맨의 공포가 살아난 건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소설은 2016년의 현재와 30년전인 1986년을 오간다. 열두 살의 에디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소녀들. 현재 마흔두 살의 영문학 교사 에디와 여전한 친구들, 그리고 떠난 친구들의 모습이 비춰진다. 사건이 일어난지 30년이 흘렀어도 그때의 기억은 선명하다. 꿈에서 자주 보았던 장면들. 때로는 죽은 사람이 꿈에 나타나 그를 괴롭힌다. 그리고 그의 집에 세들어 사는 클로이와 오랜만에 연락해 온 친구와의 관계가 그를 과거로 불러들인다.

 

예단하지 말 것.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할 것.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375페이지)

 

오래전에 했던 아버지의 말을 기억했던 에디는 30년 전의 사건을 새롭게 뒤집는다.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을 찾기 시작하고, 놓쳤던 것들을 생각한다.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함부로 예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에 열쇠가 있었다.

 

분필을 가지고 노는 아이에게서 이 소설을 착안했다는 작가는 성공적인 데뷔를 한 것 같다. 마지막 부분이 금방 해결되는 듯 했지만 그래도 읽을만 했다. 신예 추리소설 작가의 풋풋함이 느껴졌달까. 하지만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는 게 주인공의 모습을 모호하게 그렸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수집했던 물건들도 이해하지 못하겠고, 마지막까지 보관하고 있었던 것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뭔가 다른 트릭을 숨기고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런 감정은 내가 의심하고 있었던 인물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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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8-06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결말이 좀 화급하게 처리된 게 아닌가
싶더군요.

예상했던 범인들은 리스트에서 하나씩 지워
져 나가는데, 아무래도 신예 작가라 마음이
조급했던 게 아닐까요.

Breeze 2018-08-07 08:06   좋아요 0 | URL
그럴수도 있었겠습니다. 묘한 장치를 썼더라고요.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는 많은 경우의 수를 두어야 독자들에게 어떤 소리들을 듣지 않겠더라고요. ^^
 

어느 순간 눈에 확 들어오는 책이 있다.

내게 생소한 작가이긴 하지만 읽고 싶은 책.

그래서 구매하게 되는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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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자 1
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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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어떤 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시각이 달라진다. 모든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듯, 자기가 바라보고 싶은 대로 보았던 역사에 관해 나는 하나의 의문을 발견했다. 일례로 우리가 여태 알아왔던 베트남 전쟁에 대해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알았다.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던 한국이어서 일까. 베트남인이 바라보는 미국과 한국에 대한 생각을 깊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베트남인이 바라보는 미국은 자기의 나라에서 전쟁을 일으킨 나라로밖에 기억되지 않을까. 베트남의 통일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던 호치민이 사회주의자라는 것 때문에 미국이 전쟁에 참여했었고, 한국은 미국을 도와 베트남 전쟁에 군인들을 파병했었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보면 미국의 CIA 공작원이자 북베트남(베트콩)이 남베트남에 심어놓은 고정간첩인 한 남자의 자백이다. 남베트남 특수부 소석 육군 대위로 유일하게 장군의 집에서 머물며 그를 보좌하고 있다. 베트콩으로부터 장군과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괌으로 탈출하라는 친구 만의 지령이 떨어졌다. 그의 친구 본과 본의 가족들을 데리고 탈출하게 되는데 수도 사이공에 북베트남의 폭탄이 투하되었고, 본의 아내와 아이가 죽고 그는 살아남아 괌에서 난민으로 지내다가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그곳에서 베트남 출신들을 감시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소설은 수용소에 갇혀 소장에게 자술서를 쓰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베트남을 탈출하는 시점에서 그의 과거, 프랑스인 신부인 아버지와 그녀 하녀였던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잡종새끼라는 말을 듣고 자랐던 일들이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역시나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그를 구해준 친구가 만과 본이었다. 소설속에서 만과 본이 자주 언급되는데, 그에게 있어 만과 본은 평생을 함께하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친구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관계였다고 봐야했다.

 

미국에 가서 그는 다른 사람을 통해 만에게 베트남인들의 정보를 전달하는데, 베트남인으로서 그가 바라보았던 전쟁과 미국인들이 바라보는 베트남 전쟁의 시각이 달랐다. 미국인들에게 있어 아시아인들은 그저 '백인이 아닌' 것이었다. 미국인들과 같은 피부가 아니라는 이유로 전쟁 또한 베트남인들과 다른 낯선 시선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베트남 전쟁을 바라보았던 것 역시 미국인으로 본 시각이었다. 응우옌의 글로 보는 베트남 전쟁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전쟁을 일으켰던 미국의 본모습에 관한 것이었다. 주인공이 느꼈을 정체성의 혼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소설은 그의 자백으로 진행되다가 갑자기 3인칭 시점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의 평생지기와 맞닥뜨린다. 그의 목소리로만 들렸던 베트남 전쟁과 그 이후에 겪는 이데올로기의 혼란 앞에서 그제서야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예나 다름없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것은 오로지 존재를 인정받고 기억되는 것입니다. 둘 중 어느 것도 다른 하나 없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2권, 51페이지 중에서)

 

전쟁이 가진 폐해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전쟁이 끝난후 수많은 난민들은 살 곳을 찾아 떠나야 했고, 그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적응을 할 수 없었다. 전쟁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변해가는 가. 난민들은 새로운 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하는가. 미국인의 시각이 아닌 베트남 출신 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소설이었다. 

 

소설 속에서 '나'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모든 일은 당한 사람이었다!' (2권, 261페이지) 라고 울부짖는 장면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그는 살아남았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살아남는 게' 아닌가. 다른 그 무엇도 필요없다. 살아남는 자가 역사를 말할 수 있다. 감춰진 진실을 나타내는 자도 살아남는 자가 있기에 가능하다. 

 

책은 더디 읽혔다. 베트남 전쟁의 실상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내게 새로운 역사를 알려주는 것이었고, 그가 겪었을 정체성의 혼란과 고민에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아울러 열강세력의 침략을 받아온 후손으로서 또는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느끼는 동질감이었다고 봐도 좋다. 저자의 이민 2세로서의 경험과 부모에게 들었을 역사적 진실에 펜을 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전쟁의 참상과 인종적 편견에 맞서 싸운 한 남자의 고백서였다.

 

* 전2권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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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8-01 1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책에서 베트남 전쟁의 실체를 이제야 본 듯한 글을 읽었습니다.
미국을 비판하는 미국인 저자의 책이 제 시각에 도움을 많이 주는 것 같습니다.

Breeze 2018-08-02 09:19   좋아요 1 | URL
미국인의 시각에서 바라 본 책이 아닌 좀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쓴 책이었나 봅니다. 이러니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 본 책들을 많이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페크님^^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그레이스 페일리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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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우연히 전남편을 만났을 때 하는 인사 중 가장 좋은 인사는 뭘까. 모른척 하기도 할 것이며, 만약 눈이 마주쳤을때 고개를 돌리며 지나칠 수도 있다. 하지만 '잘 지냈어? 내 인생.' 이처럼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이 문장을 읽고는 이 소설의 주제를 파악하고 말았다. 그렇다. 아무리 한때는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지금은 헤어져 다른 사람과 살고 있거나 혹은 혼자 살고 있더라도 전남편의 내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이다. 내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기억들인 것이다. 남편과의 짧은 결혼 생활도, 그가 다른 여자와 살고 있더라도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인생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작가 그레이스 페일리의 단편집이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첫 출간이라고도 하는데, 왜 이제야 소개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인생이란 이런 것'을 표현한 글이었다. 소개된 단편집은 꽤 짧은 단편들이다. 1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마치 연작소설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한 편의 장편소설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아마도 작가의 분신처럼 여겨지는 페르소나 '페이스'라는 인물을 통해 바라 본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나타냈다.

 

일본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번역으로 그의 전 작품 세 편이 소개되었고, 하루키는 그레이스 페일리의 소설을 가리켜 '중독적인 씹는 맛'을 나타낸다고도 했다.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핑계같지만, 외국여행의 피로가 채 풀리기도 전 가족 행사가 있어 불볕더위 주말을 보낸 후 일요일 일찍 집에 도착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서 누워 뒹굴거리며 이 책을 읽었다. 왜 이렇게 책 내용이 겉돌까. 다시 앞장으로 가기를 여러번이었다. 책의 중간 부분을 넘어서며 그레이스 페일리 단편의 진가가 느껴졌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는 다시 맨 첫장을 펴 다시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다는 사람들이 왜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가 궁금했다면 한번 경험해 보시라. 첫 편부터 다시 읽는데 처음에 읽었던 것과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왜 이 소설을 겉돌며 읽었을까. 피곤함 탓이라고 핑계를 대 보지만, 역시 두 번 읽기를 잘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인생의 단면들이 다양한 소설속에서 나타났다.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 이게 우리의 삶이기도 한 것을! 내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 주변에서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사람들. 상처받았거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도 페일리의 문장은 심각하지 않다. 그저 연륜이 느껴지는 삶의 모습들이었다.

 

그럼에도 그 젊은 나날을 잃어버리고 나니, 오랜 시간 희망 없이 향수병을 앓는 기분입니다. 그 시절은 내게 영영 떠나온 고향과 같으며, 그 후로 커다란 기쁨 속에 살긴 해도 낯선 도시에 있는 느낌이었지요. 그래요, 알겠어요. 안녕, 젊은 날들. (25~26페이지, 「뭐가 달라질까」 중에서)

 

우리는 누구나 젊은 시절을 치열하게 산다. 하지만 그 시절이 정작 소중했다는 것을 지나고서야 깨닫는다. 젊은 나날을 그리워해보지만 그리워할 뿐이다.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가 존재하지 않는 한 돌아갈 수 없으므로 안타까운 것이다.

 

작가는 그의 페르소나 페이스라는 인물을 내세워 인간의 삶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거리에서 전남편을 만나 그동안 미뤄두었던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고 전남편과 살았던 때의 소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픈 아버지를 병간호하는 딸,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파상이나 체호프가 썼던 것과 같은 작품을 써보라는 부탁. 어머니가 바라본 아들과 며느리의 모습, 택시 기사에게 유혹받은 늙은 어떤 여자. 이 모든 모습들이 그들이 가진 상처와 함께 보여지고 있었다.

 

 

두 개의 점 사이에 확실한 선이 이어지는 그런 이야기라면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내가 그런 확실한 선을 경멸했던 것은 문학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런 선이 모든 희망을 앗아가기 때문이었다. 현실의 인물이든 가공의 인물이든 모든 이는 삶에서 열린 운명을 누릴 자격이 있다. (227페이지,  「아버지와 나눈 대화」 중에서)

 

삶의 희로애락을 17편의 소설들에서 보여주었다. 전편에서 이어진 이름들 때문에 단편속에서 드러난 다음 이야기를 보는 듯 했다. 짧은 글들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지나간 남편도 나의 인생이듯, 살아온 삶의 모든 궤적들이 나의 인생이다. 그레이스 페일리가 보여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대변한다. 삶을 관조하는 작가의 깊이 있는 시선이었다. 잘 지내고 있지?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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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26 2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넘 좋네요 ㅎ

Breeze 2018-07-26 21:4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도우 지음 / 시공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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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오지 시골 마을에 굿나잇책방이 있었다. 밤새 잠못드는 사람들을 위해 있는 작은 책방, 혹은 읽던 책을 킵해 두고 읽고 싶을 때마다 책방에 와서 읽을 수 있는 책방이 시골 마을 한 기와집에 자리하고 있었다. 자주 잠겨져 있지만 누구라도 와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책방이다. 이 곳에 한 여자가 다가왔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이모가 하는 호두하우스 펜션에서 겨울을 났었다. 이번 겨울도 마찬가지. 힘든 서울생활을 뒤로 하고 겨울을 나기 위해 이곳 혜천읍, 호두하우스로 해원은 조용히 스며들었다.

 

그녀가 마치 <리틀 포레스트>의 여자 주인공처럼 엄마의 품과도 같은 혜천읍으로 돌아올 적에 노부부가 살던 기와집에 작은 책방이 자리한 것을 보았다. 맹꽁이 자물쇠로 채워진 책방 안을 해원은 들여다 보았다. 이런 시골에 작은 책방이 생기다니. 제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싶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은섭이 있었다. 논두렁 스케이트장에서 일하다가 책방을 들여다보는 목해원을 발견했다.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어깨엔 에코백을 메고 걸어가고 있었다. 은섭은 그때부터 두근거렸는지도 몰랐다. 올해도 오지 않으려나 했는데 해원이 왔다. 

 

아마도 은섭은 알았으리라. 해원이 이곳 북현리로 올 때마다 쉬어가고 싶은 일이 생겼음을. 적막한 시골마을에서 조용히 보내려함을 알았다. 이모에게 왔다고 말하고 늘 묵던 곳에 짐을 풀었다. 건너 언덕에 새로 생긴 게스트 하우스가 있어서일까. 호두 하우스는 시간의 흐름이 그대로 배어있는 곳이 되었다.

 

이도우의 소설은 조용하다. 그 조용함이 서서히 설레임으로 묻어난다. 그저 북현리 마을에서 조용히 없는 듯 지내고 있는 은섭과 해원은 모두 한두 가지씩 가슴에 응어리를 품고 있었다. 오로지 한 친구에게만 진실을 말했던게 부풀려져 다시는 친구를 만들지 못했고, 다른 곳으로 떠돌았다. 한두 명쯤 다른 친구들을 사귈만도 하지만 그녀는 침잠한채 지금까지 지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두하우스 펜션을 하는 이모와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는 해원이 복잡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반해 은섭은 상당히 조용한 남자다. 그가 해원에게 가지고 있었던 마음도, 현재에 다시 보는 해원에 대한 설렘도 늘 침묵한 채로 있다. 오래전부터 이웃집 소녀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혜천시청에 다니는 또다른 동창 장우로부터 듣는다. 은섭이 자신을 좋아했었다니, 그 말이 싫지 않았다.

 

 

 

태양 아래서 역사가 되고 달빛 아래서 전설이 된다는 말이 있어. 나는 램프 아래서는 모든 것이 스토리가 될 거라고 언제나 생각해왔어. 알고 보면 이야기는 먼 곳에 있지 않고,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던 거니까. (157페이지)

 

 

굿나잇책방의 책방지기는 시간이 날때마다 책방 일지를 비밀글로 블로그에 남긴다. 새로 들여온 독립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며 H에 대한 이야기를 몰래몰래 적는다. 그 자신도 독립 출판물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에 대한 관심이 많다. 시골에서 책방이 잘 될까. 겨우 몇 권의 책을 판매하다가 문을 닫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해진다. 참고서를 팔지 않은 한 잘될리 없는 책방에서 은섭은 굿즈를 만들어 진열해 놓는다. 

 

 

 

예상하기에 미대를 나온 해원이 도움을 줄 것 같다. 겨울동안 논두렁에 물을 대어 만든 스케이트장에서 일해야 하는 은섭에게 해원은 여러모로 좋은 존재다. 책방의 일을 돕고 굿즈 또한 함께 만들 수 있으니. 또한 호두하우스 보일러 배관이 터져 호러하우스가 되어 버리자 이웃집인 은섭의 집에 묵을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생긴다. 명여 이모는 수정 아줌마에게 가고 해원은 은섭의 집 작은 방에 기거하게 되는 것이다. 하룻밤은 큰아버지집에 묵었지만 보일러가 방 하나밖에 없는 큰아버지 집에 은섭이 며칠을 묵을 수는 없다. 다시 자기 집으로 올 수 밖에 없는 사유가 생겼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한 지붕아래 지내면 생기는 많은 일들이 저절로 상상되어진다. 눈오는 밤 은섭을 따라 산에 올랐다가 키스까지 한 사이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은섭과 해원이 유달리 튀는 사랑을 하지는 않는다. 눈오는 밤 불빛이 방안에 스며드는 것처럼 조용하고도 심상하게 사랑을 한다. 내일을 꼭 생각하지도 않는다. 현재에 충실하고자 한다. 지금 있는 곳에서 지금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해 집중한다.

 

마치 한 편의 동화처럼 은섭과 해원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서로에게 묻어두었던 일들에 대한 화해가 이루어진다. 작가의 첫 작품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처럼 잔잔하게 진행되어진다. 첫 작품이 조금 쓸쓸했다면 이번 작품에서 느껴지는 건 둘 사이가 잘 되지 않을리 없다는 편안함이었다. 첫사랑이 갑자기 나타난다거나 이룰 수 없는 사랑때문에 아파했던 일들은 거론되지 않는다. 조용한 시골 작은 책방처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 둘사이가 분명하게 보일 터였다. 심상하고도 심상한 나날에 보이는 안녕과 작은 설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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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25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죠? ㅎ따스한 소설 읽어보고싶네요

Breeze 2018-07-25 13:04   좋아요 0 | URL
옙. 따스한 소설, 읽어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