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그레이스 페일리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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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우연히 전남편을 만났을 때 하는 인사 중 가장 좋은 인사는 뭘까. 모른척 하기도 할 것이며, 만약 눈이 마주쳤을때 고개를 돌리며 지나칠 수도 있다. 하지만 '잘 지냈어? 내 인생.' 이처럼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이 문장을 읽고는 이 소설의 주제를 파악하고 말았다. 그렇다. 아무리 한때는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지금은 헤어져 다른 사람과 살고 있거나 혹은 혼자 살고 있더라도 전남편의 내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이다. 내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기억들인 것이다. 남편과의 짧은 결혼 생활도, 그가 다른 여자와 살고 있더라도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인생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작가 그레이스 페일리의 단편집이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첫 출간이라고도 하는데, 왜 이제야 소개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인생이란 이런 것'을 표현한 글이었다. 소개된 단편집은 꽤 짧은 단편들이다. 1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마치 연작소설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한 편의 장편소설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아마도 작가의 분신처럼 여겨지는 페르소나 '페이스'라는 인물을 통해 바라 본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나타냈다.

 

일본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번역으로 그의 전 작품 세 편이 소개되었고, 하루키는 그레이스 페일리의 소설을 가리켜 '중독적인 씹는 맛'을 나타낸다고도 했다.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핑계같지만, 외국여행의 피로가 채 풀리기도 전 가족 행사가 있어 불볕더위 주말을 보낸 후 일요일 일찍 집에 도착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서 누워 뒹굴거리며 이 책을 읽었다. 왜 이렇게 책 내용이 겉돌까. 다시 앞장으로 가기를 여러번이었다. 책의 중간 부분을 넘어서며 그레이스 페일리 단편의 진가가 느껴졌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는 다시 맨 첫장을 펴 다시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다는 사람들이 왜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가 궁금했다면 한번 경험해 보시라. 첫 편부터 다시 읽는데 처음에 읽었던 것과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왜 이 소설을 겉돌며 읽었을까. 피곤함 탓이라고 핑계를 대 보지만, 역시 두 번 읽기를 잘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인생의 단면들이 다양한 소설속에서 나타났다.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 이게 우리의 삶이기도 한 것을! 내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 주변에서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사람들. 상처받았거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도 페일리의 문장은 심각하지 않다. 그저 연륜이 느껴지는 삶의 모습들이었다.

 

그럼에도 그 젊은 나날을 잃어버리고 나니, 오랜 시간 희망 없이 향수병을 앓는 기분입니다. 그 시절은 내게 영영 떠나온 고향과 같으며, 그 후로 커다란 기쁨 속에 살긴 해도 낯선 도시에 있는 느낌이었지요. 그래요, 알겠어요. 안녕, 젊은 날들. (25~26페이지, 「뭐가 달라질까」 중에서)

 

우리는 누구나 젊은 시절을 치열하게 산다. 하지만 그 시절이 정작 소중했다는 것을 지나고서야 깨닫는다. 젊은 나날을 그리워해보지만 그리워할 뿐이다.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가 존재하지 않는 한 돌아갈 수 없으므로 안타까운 것이다.

 

작가는 그의 페르소나 페이스라는 인물을 내세워 인간의 삶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거리에서 전남편을 만나 그동안 미뤄두었던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고 전남편과 살았던 때의 소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픈 아버지를 병간호하는 딸,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파상이나 체호프가 썼던 것과 같은 작품을 써보라는 부탁. 어머니가 바라본 아들과 며느리의 모습, 택시 기사에게 유혹받은 늙은 어떤 여자. 이 모든 모습들이 그들이 가진 상처와 함께 보여지고 있었다.

 

 

두 개의 점 사이에 확실한 선이 이어지는 그런 이야기라면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내가 그런 확실한 선을 경멸했던 것은 문학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런 선이 모든 희망을 앗아가기 때문이었다. 현실의 인물이든 가공의 인물이든 모든 이는 삶에서 열린 운명을 누릴 자격이 있다. (227페이지,  「아버지와 나눈 대화」 중에서)

 

삶의 희로애락을 17편의 소설들에서 보여주었다. 전편에서 이어진 이름들 때문에 단편속에서 드러난 다음 이야기를 보는 듯 했다. 짧은 글들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지나간 남편도 나의 인생이듯, 살아온 삶의 모든 궤적들이 나의 인생이다. 그레이스 페일리가 보여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대변한다. 삶을 관조하는 작가의 깊이 있는 시선이었다. 잘 지내고 있지?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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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26 2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넘 좋네요 ㅎ

Breeze 2018-07-26 21:4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