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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도우 지음 / 시공사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강원도 오지 시골 마을에 굿나잇책방이 있었다. 밤새 잠못드는 사람들을 위해 있는 작은 책방, 혹은 읽던 책을 킵해 두고 읽고 싶을 때마다 책방에 와서 읽을 수 있는 책방이 시골 마을 한 기와집에 자리하고 있었다. 자주 잠겨져 있지만 누구라도 와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책방이다. 이 곳에 한 여자가 다가왔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이모가 하는 호두하우스 펜션에서 겨울을 났었다. 이번 겨울도 마찬가지. 힘든 서울생활을 뒤로 하고 겨울을 나기 위해 이곳 혜천읍, 호두하우스로 해원은 조용히 스며들었다.
그녀가 마치 <리틀 포레스트>의 여자 주인공처럼 엄마의 품과도 같은 혜천읍으로 돌아올 적에 노부부가 살던 기와집에 작은 책방이 자리한 것을 보았다. 맹꽁이 자물쇠로 채워진 책방 안을 해원은 들여다 보았다. 이런 시골에 작은 책방이 생기다니. 제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싶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은섭이 있었다. 논두렁 스케이트장에서 일하다가 책방을 들여다보는 목해원을 발견했다.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어깨엔 에코백을 메고 걸어가고 있었다. 은섭은 그때부터 두근거렸는지도 몰랐다. 올해도 오지 않으려나 했는데 해원이 왔다.
아마도 은섭은 알았으리라. 해원이 이곳 북현리로 올 때마다 쉬어가고 싶은 일이 생겼음을. 적막한 시골마을에서 조용히 보내려함을 알았다. 이모에게 왔다고 말하고 늘 묵던 곳에 짐을 풀었다. 건너 언덕에 새로 생긴 게스트 하우스가 있어서일까. 호두 하우스는 시간의 흐름이 그대로 배어있는 곳이 되었다.
이도우의 소설은 조용하다. 그 조용함이 서서히 설레임으로 묻어난다. 그저 북현리 마을에서 조용히 없는 듯 지내고 있는 은섭과 해원은 모두 한두 가지씩 가슴에 응어리를 품고 있었다. 오로지 한 친구에게만 진실을 말했던게 부풀려져 다시는 친구를 만들지 못했고, 다른 곳으로 떠돌았다. 한두 명쯤 다른 친구들을 사귈만도 하지만 그녀는 침잠한채 지금까지 지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두하우스 펜션을 하는 이모와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는 해원이 복잡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반해 은섭은 상당히 조용한 남자다. 그가 해원에게 가지고 있었던 마음도, 현재에 다시 보는 해원에 대한 설렘도 늘 침묵한 채로 있다. 오래전부터 이웃집 소녀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혜천시청에 다니는 또다른 동창 장우로부터 듣는다. 은섭이 자신을 좋아했었다니, 그 말이 싫지 않았다.
태양 아래서 역사가 되고 달빛 아래서 전설이 된다는 말이 있어. 나는 램프 아래서는 모든 것이 스토리가 될 거라고 언제나 생각해왔어. 알고 보면 이야기는 먼 곳에 있지 않고,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던 거니까. (157페이지)
굿나잇책방의 책방지기는 시간이 날때마다 책방 일지를 비밀글로 블로그에 남긴다. 새로 들여온 독립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며 H에 대한 이야기를 몰래몰래 적는다. 그 자신도 독립 출판물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에 대한 관심이 많다. 시골에서 책방이 잘 될까. 겨우 몇 권의 책을 판매하다가 문을 닫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해진다. 참고서를 팔지 않은 한 잘될리 없는 책방에서 은섭은 굿즈를 만들어 진열해 놓는다.
예상하기에 미대를 나온 해원이 도움을 줄 것 같다. 겨울동안 논두렁에 물을 대어 만든 스케이트장에서 일해야 하는 은섭에게 해원은 여러모로 좋은 존재다. 책방의 일을 돕고 굿즈 또한 함께 만들 수 있으니. 또한 호두하우스 보일러 배관이 터져 호러하우스가 되어 버리자 이웃집인 은섭의 집에 묵을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생긴다. 명여 이모는 수정 아줌마에게 가고 해원은 은섭의 집 작은 방에 기거하게 되는 것이다. 하룻밤은 큰아버지집에 묵었지만 보일러가 방 하나밖에 없는 큰아버지 집에 은섭이 며칠을 묵을 수는 없다. 다시 자기 집으로 올 수 밖에 없는 사유가 생겼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한 지붕아래 지내면 생기는 많은 일들이 저절로 상상되어진다. 눈오는 밤 은섭을 따라 산에 올랐다가 키스까지 한 사이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은섭과 해원이 유달리 튀는 사랑을 하지는 않는다. 눈오는 밤 불빛이 방안에 스며드는 것처럼 조용하고도 심상하게 사랑을 한다. 내일을 꼭 생각하지도 않는다. 현재에 충실하고자 한다. 지금 있는 곳에서 지금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해 집중한다.
마치 한 편의 동화처럼 은섭과 해원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서로에게 묻어두었던 일들에 대한 화해가 이루어진다. 작가의 첫 작품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처럼 잔잔하게 진행되어진다. 첫 작품이 조금 쓸쓸했다면 이번 작품에서 느껴지는 건 둘 사이가 잘 되지 않을리 없다는 편안함이었다. 첫사랑이 갑자기 나타난다거나 이룰 수 없는 사랑때문에 아파했던 일들은 거론되지 않는다. 조용한 시골 작은 책방처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 둘사이가 분명하게 보일 터였다. 심상하고도 심상한 나날에 보이는 안녕과 작은 설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