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겪은 세대들은 삶과 죽음이 소중함을 깨달아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법이다. 일반적인 전쟁도 그럴진대 나치에게 학살당한 유태인이었다면, 그 삶은 어땠을까. 더군다나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왔다면. 밤마다 악몽을 꿔 소리 지르며 자식의 잠을 깨웠다는 것. 다른 부모도 똑같이 그런 줄 알았다는 것을 집을 떠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는 저자의 말에서 그가 가진 트라우마를 엿보게 된다. 직접 나치를 겪지 않은 저자도 그 부모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왜 쥐인가. 유태인을 고양이 앞의 쥐로, 독일의 나치는 고양이로 그렸다. 폴란드인은 돼지로 그려 인간의 세상이 동물의 세계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관한 역사를 알아왔지만, 이 만화는 더 직접적인 것들을 나타낸다. 저자의 아버지가 겪은 홀로코스트의 증언을 육성으로 듣는 거 같았다.

 


아버지와 가깝게 지내지 않은 아트 슈피겔만은 유태인 학살에 관한 것을 그리기로 하고 아버지가 겪은 이야기를 듣는다. 어머니와 처음 만났던 시절로부터 행복했던 시간과 유태인 학살을 시작한 시기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듣고자 한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 새어머니 말라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 나치의 학살 이후로 뭐든 고물을 주워 집안을 채우며 한 푼의 돈도 아끼는 것. 아우슈비츠를 겪은 아버지의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전쟁에서 친구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유태인을 숨겨주어야 할 때는 자기의 목숨까지도 위험한 법. 약간의 돈을 받고 유태인을 숨겨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엔 그들이 꼭 돈을 받아야 하나 의문도 들었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길가에 내몰려 나치에게 발각될지도 모른다. 전쟁 상황에 안전한 곳은 없다. 그나마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 블라덱에게 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쟁 중에도 금이나 다이아몬드를 돈으로 바꿔 그걸로 먹을 것을 사고 숨을 만한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아우슈비츠의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돈이나 자기가 가진 기술로 책임자의 환심을 사 가족과 연락할 수 있었고, 힘든 일에서 빠질 수 있었으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블라덱은 사업 수완이 좋은 만큼 살아가는 수완도 좋았다.

 


만화라는 매체가 가진 특성을 그동안 잊었던 거 같다. 만화가 가진 장점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거다. 흑백의 그림, 뭉툭한 글씨체, 동물들의 모습으로 나타난 홀로코스트는 어쩐지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듯했다. 우리가 겪지 않았으나 가슴 아픈 그 시절로 우리를 데려갔다. 쥐와 고양이, 돼지 등 동물들이 나오는 그림은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인 듯도 했다. 그랬기에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히틀러가 저지른 만행은 유럽을 초토화시켰고,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는 이념이나 자국의 이익 때문에 전쟁 중이다.

 


전쟁이 가진 참혹함을 나타내는 것 중 하나가 홀로코스트가 아닐까 한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동물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종종 있었다. 인종이 다르다고 같은 인간을 학살하는 경우는 역사 속에서 존재해왔다. 인간이야말로 가장 잔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간의 존엄성 부재는 늘 존재해왔다.

 


홀로코스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이 책으로 읽어도 역사 공부가 될 듯하다. 역사를 바로 알아야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는 법이다. 어떤 매체로든 역사는 늘 공부해야 하고 또 읽어야 한다. 만화는 접근성이 좋다. 그런 만큼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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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
E. M. 리피 지음, 송예슬 옮김 / 달로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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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매체에 드러내는 사람들은 모두 마른 체격을 가졌다. 마치 그게 정석인 것처럼 잣대가 되어 여성들을 괴롭힌다. 배우들처럼 45킬로 정도 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내 주변에 체구가 작고 대체로 날씬한 사람들의 몸무게는 거의 50킬로 안팎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체중 혹은 몸매는 영원한 숙제다. 나 또한 평생 다이어트를 생활화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갑상샘저하증 특성상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숙제처럼 덜 먹고 더 움직이려고 한다.

 


뚱뚱한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타인의 잣대와 나의 잣대의 차이는 뭘까.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내는 방법들을 나타내는 소설이다. 그 방법의 하나는 자기 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닐까. 뚱뚱한 자기 몸이 싫어 마구 먹고 후회의 반복이다. 누군가 괜찮다고 말해주면 또 위안을 얻게 된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나탈리는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서 여행 중이다. 혼자 하는 여행은 훌쩍 크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혼자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고, 혼자 있는 시간만큼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심연에 들어가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자유롭게 지내려고 떠난 여행에서도 나탈리는 강박에 지쳐있다. 옆 방의 마리아가 발리의 남성들과 연애를 즐기고 어울리려고도 했다. 잘생긴 남자와 몇 번의 만남을 가지고 싶어도 쉽지 않다.


 

내가 두둥실 떠올라 몸 위로 올라간다. 그렇게, 천장에서 내려다보는 내 몸은 퉁퉁하다. 죄책감에 어쩔 줄 모르는 몸뚱어리. 무력한 나를 내가 지켜본다. 자기혐오와 설탕 덩어리로 가득 찬 공이 되어, 내가 저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다.

그냥 존재가 몽땅 사라졌으면. (59페이지)

 


발리와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페루를 혼자 또는 친구와 여행하면서 나탈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나탈리를 대하고, 나탈리는 조금씩 성숙해간다. 자신감이 생기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된 것이다. 여행에서 얻은 결과다.

 


나탈리가 여행하던 중 피트니스 센터에서 스핀 클래스를 맡아 하는 장면은 의외였다. 교사가 직업이었기에 여행이 끝난 후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선택할 것 같았는데 그녀는 주제를 가지고 어딘가를 여행하는 프로그램을 짜 강도 높은 운동을 하는 강사 생활을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그 일이 재미있었다. 나중에는 자격증을 취득하기까지 한다.


 


 

 

암스테르담을 향하는 비행기에서 매력적인 남성 줄리언을 만나 전개되는 이야기 또한 놀랍다. 붕대로 칭칭 싸인 줄리언의 몸이 자유로워졌다는 건 알겠는데 그 이후의 이야기가 왜 없느냐 말이다. 누구보다 줄리언을 이해할 것으로 보인 나탈리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터득했던 나탈리와 줄리언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 못내 궁금했다. 상상만 해도 아찔했는데 말이다.

 


삶은 알 수 없다는 거다.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다양한 사람들 속에 깃든 마음을 들여다보고, 서로 얘기가 통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겪어 보지 않았던 일들을 해보는 삶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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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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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비슷한 소재라도 시대만 바꿔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시대를 건너온 역사와 함께 살아온 문화가 큰 영향을 주듯 작가가 보는 시각에 따라 재미있고도 짜릿한 이야기의 세계가 달라진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작을 하는 작가다. 그런 까닭에 아이디어가 고갈되었을 거라 여길 법도 한데 끊임없이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만든다.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다.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몽환화8년 전에 읽었음에도 다시 푹 빠져 읽었다. 두 편의 프롤로그에서 나타나는 이야기의 시작에 놀라고, 이런 일들이 실제로 있을까 궁금해하며 그가 선사하는 미스테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한 살가량의 아이가 있는 젊은 아내와 남편. 유이치의 출근길을 배웅하던 골목길.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피 묻은 셔츠를 입고 일본도를 들고 달려오는 남자와 마주쳤다. 남자는 그대로 달려와 유이치를 찌르고 아이를 품에 안고 도망가는 가즈코를 찔렀다.


 

또 하나의 프롤로그는 매년 칠석 무렵, 나팔꽃 시장을 순회하는 한 가족의 풍경이다. 나팔꽃들을 구경하고 장어를 먹는 게 이 가족의 연례행사였다. 열네 살의 가모 소타는 장어를 먹는 건 좋지만 나팔꽃을 구경하는 건 재미없다. 나팔꽃을 구경하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아 왜 나팔꽃을 구경하는지 알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실망한 할아버지는 퇴직 후 꽃을 키우는 기쁨으로 산다. 다양한 꽃들을 키우는 즐거움을 누렸던 그가 살해당했다. 대문을 잘 잠그지 않았다는 점, 특별한 물적 증거가 보이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미제 사건이 될 가능성이 다분했다.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하야세, 할아버지의 죽음이 의문스러운 국가대표 수영선수 출신 리노, 원자력을 연구하던 대학원생 소타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나팔꽃은 보라색 계통만 본 것 같다. 노란색의 나팔꽃을 아무리 상상해내려 해도 잘 그려지지 않는다. 새로운 꽃을 피운 식물이 금단의 꽃이라는 걸 밝히는 과정이 소설의 주요 골자다. 누가 금단의 꽃인 노란색 나팔꽃을 키워달라고 했는지, 과연 존재하는 꽃인가를 찾는다. 에도 시대에는 실제로 존재했었다고 하는데 왜 사라졌는지 그 이유를 찾는 과정도 흥미로운 전개다.

 


식물에는 양면성이 있다. 보통의 식물은 그렇지 않지만 특정한 식물은 과용하거나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된다. 소설 속 노란 나팔꽃도 예쁘긴 하지만 그 씨앗을 먹으면 예상치 못한 효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일본의 에도 시대에는 존재했던 꽃이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어떤 꽃을 피워도 좋지만 노란 나팔꽃만은 쫓지 마라. 이유를 물었더니 그것은 몽환화이기 때문이라고 했어. (210페이지)

 


에도 시대의 역사와 나팔꽃을 몽환화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나타내는 소설이었다. 프롤로그에서처럼 일이 벌어진다면 누군가는 책임감을 가지고 그 꽃을 좇아 꽃 피우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노력했던 이들이 있기에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에도 시대의 역사와 더불어 금단의 꽃으로 여겨 몽환화로 불렀던 노란색 나팔꽃의 이야기를 탐색하는 것과 동시에 현재 대두되는 원자력에 관련된 문제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의 문제로 일본은 탈원전의 세계로 가고 우리나라는 원자력 강국이 된다고 한다. 어떤 게 더 나은지는 오랜 시간이 흘러야 드러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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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 현대 일러스트 미술의 선구자 무하의 삶과 예술
장우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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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라는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그림 한두 개 정도는 보았을 것이다. 순정만화 같은 그림 때문에 그림을 찾아보다가 알폰스 무하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어디선가 보았음 직한 그림인 만큼 꽤 친숙하다.

 


현대 일러스트 미술의 선구자라는 수식어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림에 남다른 소질이 있는 알폰스 무하의 삶과 예술을 들여다보며 드는 생각이다. 자신의 경험과 태어난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역사를 새로운 미술의 세계로 이끌었다.

 


세계적인 배우였던 사라 베르나르가 출연한 영화 포스터의 시작은 무하만의 새로운 방식이었다.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무하의 스타일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다른 화가들이 그려준 포스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던 사라 베르나르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포스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비잔틴식 모자이크로 이루어진 배경과 화려한 중세풍의 의상으로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그림이었다. 그림이 마음에 든 사라 베르나르가 서둘러 알폰스 무하와 계약을 맺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알폰스 무하는 체코 태생이다. 체코가 가진 역사를 마음 깊이 새겼고, 훗날 슬라브의 역사를 <슬라브 서사시>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그림에 프리메이슨 표식을 남기는 등 프리메이슨 활동으로 나치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무하 양식을 만든 그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영감을 불어넣은 작가다.

 


일반 시민들과 동떨어진 작가라기보다 알폰스 무하는 대중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예술가였다. 영화 포스터를 비롯해 담배, 비스킷, 와인 등의 광고 포스터를 그렸고, 자전거 광고에 쓰인 그림은 금방이라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처럼 박진감이 넘친다. 개인적으로 바퀴나 공을 무서워해 자전거도 잘 타지 못하는데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니 멀리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사실적이고 역동적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로 처음 만났던 스무 살 연하의 마리 히틸로바와 결혼하며 그리스도가 산상 수훈에서 가르친 여덟 가지 참 행복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참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나타낸 아름다운 그림은 그가 추구한 결혼의 행복일 것이다.


 

무하의 그림은 사진을 그림으로 옮겨놓은 듯하다. 무하는 사진을 이용해 모델의 포즈를 포착해 그만의 스타일로 나타냈으며 구도를 잡는 데도 이용했다. 그림 옆의 다양한 화려한 문양은 무하만의 특색이다. 다시 들여다봐도 특별하다. 무하는 <장식 자료집><장식 인물집>을 발간했다. 장식 예술 미학을 모든 일상품에 응용해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장식 자료집>을 위한 드로잉 플레이트를 보면 머리 꽂이 하나, 목걸이에도 정성을 다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이야 사진이 광고 포스터를 대신하지만 사진 못지않은 아름다움이 무하의 그림에 있다. 새로운 스타일의 창조. 알폰스 무하의 예술 세계에 깊이 빠져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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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의 신호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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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분다. 창문을 열면 들어오는 바람. 한기로 몸이 움츠러들지만, 흙냄새를 풍기는 첫 봄바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불어오는 봄바람에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루실의 모습을 그려본다. 컨버터블을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루실의 마음을 상상해본다.

 


서른 살의 루실은 스무 살 차이가 나는 샤를 덕분에 무위의 삶을 산다. 한때 일을 했으나 샤를이 주는 부 때문에 루실은 제법 편한 삶을 산다. 어느 파티에서 루실은 디안의 나이 어린 연인 앙투안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그렇다고 루실이 샤를을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다. 샤를은 편안함으로, 앙투안은 격정적인 마음으로 사랑한다.

 


앙투안에 대한 사랑이 점점 격정적이 되면서 샤를에게 알려야 할 때가 온다. 앙투안은 자신과 열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집에 들어간 후 샤를과 함께 밤을 보낼 루실을 생각하면 질투의 감정에 휩싸인다. 샤를에게 말하고 자기와 함께 살기를 바라지만 샤를은 루실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에 그저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앙투안은 루실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그래서 그와 함께 있으면 그가 그녀와 함께 있을 때 그렇듯 지루해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이런 끝도 없는 무위를 루실에 대한 열정으로 견디는 것과 달리, 루실에게는 이런 삶의 방식이 그녀의 뿌리 깊은 천성에 보다 근접해있으리라고 느꼈다. 마치 불가해한 짐승, 처음 보는 식물, 만드라고라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192페이지)

 


루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즉 무위의 삶이 행복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우울하지 않을 수 있었다. 반면 앙투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루실의 삶을 걱정했다. 일을 하며 살기를 바랐다. 우리들 대부분처럼. 일을 해야 우울해하지 않고 삶과 사랑에 집중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인간은 자기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자기 방식대로 살기를 바라고 따라와 주기를 바란다. 그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무위에 대한 무지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주 순간적인 것에도 금이 가는 법이다. 충분히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삶의 방식이 다르다고 하여 배척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종종 저지르는 실수다. 그 사람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자꾸 바꾸려 든다. 바꾸려 들면 다른 방법을 택하는 게 인간이다.

 


삶에요. 남들이 삶이라 부르는 것에요. 샤를, 그러니까 인간은 정말로 사랑해야 하는 걸까요, 불행한 열정을 가져야 하는 걸까요? 존재하기 위해 일하고, 돈을 벌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 걸까요? (103페이지)

 


나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인가 보다. 루실이 낮에 앙투안을 만나는 일은 그렇다 치고 루실과 앙투안이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루실의 행동이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무위의 삶을 행복하다고 여기는 건 아주 잠깐이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그 시간을 갖기 위해 가지고 있던 걸 몰래 팔고, 거짓말을 시작하는 부분에서 루실이 가진 감정의 실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앙투안은 나처럼 보통의 인간이었던 거다. 루실의 삶은 루실만 이해할 수 있는 거고, 그런 루실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샤를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 듣지 않고 암시만으로 이해한 것을 잊지만, 완전한 침묵은 어처구니없고 황당하고 부조리한 걸 의미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잊는다. 루실은 감은 눈꺼풀 속에서 유년 시절의 편린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224페이지)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인간의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사랑과 결혼, 혹은 연인 관계에서 일어날 법한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이별에 관한 장면은 예견하지 못했다. 이별이 이렇게 심플할 수 있는가. 마치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처럼. 이별이 이처럼 아름다워도 되는가 싶었다. 마치 이별이 아닌 것처럼.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인 것처럼 여겨지는 건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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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4-09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