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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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983년 가을, KAL기 격추 사건이 벌어졌다. 내가 기억하기로 KAL기 격추 사건은 김현희가 관련된 사건이었다. 오래전 사건을 검색해보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는 달랐다. 일단 사건이 일어난 연도가 달랐고, 북한이 관련된 것이 아닌 냉전체제의 미국과 소련이 연관되어 있었다. 1983년 269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대한항공 007기가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을 맞고 격추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소련은 붕괴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뉴욕을 출발, 알래스카를 경유해 서울로 오는 비행기였다. 대한항공 007기는 왜 알래스카를 거쳐 소련의 하늘을 날았을까. 소련의 하늘을 날고 있는데도 미국은 왜 가만히 내버려두었을까.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알리는 게 이 소설이 쓰여진 이유라고 저자는 밝혔다.

 

항공기에는 자동항법장치가 있어서 궤도를 이탈하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소련 영공을 날고 있던 민항기라는 사실에 유도 착륙 메시지를 보냈음에도 미국은 그것을 삭제하고 발표 했다. 지지도가 떨어져가고 있는 레이건을 위해 공산 국가인 소련의 행태를 유도해 레이건의 기사회생을 바랐던 것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한 세 나라 미국과 소련 그리고 일본의 이기심이 나타난 사건이었다. 소의 희생으로 대의명분을 살린다는 취지였을까. 약소국인 한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김진명의 소설은 이처럼 묻어두었던 지나간 역사를 헤집는다. 대한항공 007기 격추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일어났다는 사실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자 하는 가. 경각심이라기 보다는 오래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읽혔다.  

 

KAL 007기에 탑승했던 여동생을 잃은 지민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된다. 믿을 수 없었던 여동생의 죽음과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나야만 했는지 의구심을 버릴 수 없었다. 미국으로 건너가 사건을 조사하던 중에 문을 만나 사건의 개요를 듣는다. 자기가 직접 소련으로 건너가 당시 KAL 007기를 격추시켰던 인물인 전투기 조종사 오시포비치를 죽이고자 했다. 소설은 이러한 과정들을 나타낸다.

 

 

 

여기에서 지민에게 도움을 주었던 인물이 문선명 통일교 교주다. 소설에서는 그의 이름은 정확하게 나오지 않고 그저 '문'으로 불린다. 대신 문의 아내의 이름은 실명 그대로 나온다. 솔직히 통일교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 누군가에게 전해들었을 뿐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 또한 결혼으로 하나의 관계를 맺었다는 것 정도다. 그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하고 모스크바에 까지 가게 되어 오시포비치를 만난다는 설정은 과히 소설적이었다. 물론 실제로 북한을 방문해 남북 통일에 대한 생각을 비추기도 했다.

 

작가의 생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게 작품이다. 작품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염원을 말한다. 그가 역사적 사건을 소설화하여 우리에게 역사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꾸준히 보내고 있다. 우리가 생각지 못하고 있었던 역사를 소설 속에서 접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 받는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질문을 건네게 된다.

 

이렇듯 작품속에서 작가의 염원을 담은 게 그의 통일에 대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문 총재의 발언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던 것이다. 2025년에 통일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문 총재가 7년 후 소련의 공산주의가 멸망한다고 예언했듯, 작가가 염원하는 2025년의 통일도 과연 이루어질까. 북한은 여전히 핵을 만들고, 미사일 발사 준비를 한다. 오늘 아침 신문에 나타난 카메라를 향해 총을 겨눈 북한 병사의 사진을 보았다. 그 사진을 보며 과연 통일은 될까. 바짝 마른 얼굴로 반소매 군복을 입은 북한 군인도 통일을 원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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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독서 - 완벽히 홀로 서는 시간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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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작가의 성별에 대해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저 어떤 작품이느냐에 따라 작가의 작품을 파고드는데, 어떠한 작품을 읽는 경우 여성 작가이기에 더욱 와닿게 되는 내용이 있다. 여성 작가만이 갖는 고유한 감정에 동감을 표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을 보면.

 

『여자의 독서』라는 제목을 보고는 그저그런 책소개 책이려니 했던 게 사실이다. 시중에 많은 책 소개 관련 책이 나와 있다. 어떤 책을 소개하나 싶은 마음에 궁금해 그런 책을 읽어보고 싶어하는 게 사실이다. 그저그런 책이라 여겼으면서도 자꾸 궁금함에 펼쳐보게 된다. 책을 읽고는 늘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적기도 하는 나. 이번엔 저자가 읽고 소개한 많은 책에 대해서 공감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 메모하면서도 즐겁게 했던 것 같다. 일단 작가는 여성이 쓴 작품들을 소개했다. 여성이 쓴 책이 이토록 많았다니. 그리고 저자가 소개한 아주 많은 책들 중에서 함께 읽은 책이 많았다는 게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일단 작가는 이십 대에 읽은 책의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인간의 조건』의 한나 아렌트, 『자기만의 방』의 버지니아 울프,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의 제인 제이콥스다. 저자는 이 작품들을 소개하며, '불멸의 존재이자 지속가능한 멘토, 시시때때로 영감을 주는 존재' 라고 표현했다. 박경리 작가의 책만 읽었을 뿐, 다른 작가의 책은 읽어보지 않아 이 작가들의 책을 읽어봐야되지 않나 하는 의무감이 들 정도였다. 우리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 저자가 소개하는 작가의 작품들을 읽고, 작품들 속에 더 파고들다 보면 미래의 삶에 멘토가 되어 줄 수 있다고 했다.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책은 총 8장에 걸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소개하는데, 아무래도 나는 '어떤 캐릭터로 살아갈까?'라는 주제를 가진 챕터가 가장 재미있었다. 성장 스토리를 다룬 책인데, 어렸을 때부터 읽어왔던 책들의 캐릭터였기 때문이었다.  『작은 아씨들』의 조, 『빨강머리 앤』의 앤, 『제인 에어』의 제인,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생의 한가운데』의 니나, 『토지』에서의 윤씨 부인, 마지막으로 『캔디 캔디』의 캔디 캐릭터다. 다양한 성격들을 가진 주인공들의 성장을 만날 수 있다. 내가 다 좋아하는 책이며, 캐릭터였을 것이다. 몇 번을 읽어도 늘 감동을 받는 책이다.

 

 

 

아마 성장 스토리를 다룬 부분때문에 김진애 작가의 글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적으로 연대하고 있는 자매들의 모임을 '디어 걸즈' 혹은 '십자매' 라고 했다. 삶의 한 부분에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 함께 하는 시간은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다.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하는데, 다 여자들로만 이루어져있다고 한다. '디어 걸즈' 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책, 더불어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의 면면은 무척 다양하다.

 

책을 제대로 읽는 사람은 책을 안 읽은 사람보다 여러 점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 말도 잘하게 되고 글도 잘 쓰게 된다. 훨씬 더 세련되고 수준이 깊어지고 또 높아진다. 논리적이 되고 전체를 조감하는 통찰력이 커진다. 사실을 포착하는 구조적 능력도 높아지고 윤리적 수준도 높아질 수 있다. 전후좌우를 살피고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비교 안목이 높아지니 균형 감각이 높아질 수 있다. 상상력이 높아짐은 물론 창조 역량도 높아진다. (325페이지) 

 

여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 여성 작가들이 쓴 책들을 읽으며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어렸을 때는 차별 받고 컸지만, 차별 받지 않고 살길 바라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책들의 홍수 속에서 자기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나면 무척 기분좋은 일이다. 우리는 각 분야별 책 속에서 우리가 닮고 싶어하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여름 날,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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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람을 죽여라
페데리코 아사트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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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매케이가 자신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으려는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끈질기게. 소설의 첫 문장이다. 서재에서 자살하려는 순간 누군가 찾아왔다면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할까, 아니면 계획했던대로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을까. 자살을 계획했다면 집안에 아무도 없는 척하고 있을 것이며 지쳐서 돌아가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라고 소리친다면, 누구길래 자신의 이름을 알고 소리를 지르는 걸까 궁금해진다. 이제 그만 돌아갔겠지 하는 순간 테드 매케이는 쪽지 한 장을 발견했다. 자신이 쓴 기억은 없지만 자신의 글씨였다.

 

문을 열어.

그게 네 유일한 탈출구야.

 

그저 자신의 죽음을 말리려는 사람이겠지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지만, 그는 처음 본 사람이다. 마치 자신을 자세히 안듯 그가 자살을 하려는 순간 나타났고, 사랑하는 딸과 홀리의 이름까지 꿰고 있는 자였다. 젊어 보이는 그는 저스틴 린치라는 남자로 자살하는 대신 누군가를 죽이라는 말을 한다. 자살로 인해 가족이 고통을 받기 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 그 고통이 덜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들어보니 맞는 소리 같기도 했다. 자신 또한 서재의 열쇠를 숨기고 홀리 혼자서 서재에 들어오기를 바랐던 것이다.  

 

린치는 살인청부를 제시하며 폭행 전과가 있으며 한 여자의 살해용의자였던 에드워드 블레인과 역시 자살클럽에 가입된 기업인 웬델을 죽이라는 소리였다. 그 다음에 자살하려는 테드를 다른 사람이 죽이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는 너무도 쉽게 블레인의 집에 숨어 들어 블레인의 이마에 총을 쏘았고, 웬델의 집에 숨어들어서도 그의 가족들이 들어오기 직전에 죽였다. 그가 블레인과 웬델을 분명히 죽였다. 하지만 테드는 웬델과 마주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웬델과 살인청부를 했던 저스틴 린치가 대학교에서 만났다는 사실이다.

 

테드는 꿈 속에서 주머니쥐가 홀리의 다리를 갉아먹는 꿈을 꾸게 되면 혼란스럽다. 정신과 의사인 로라 힐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로라 힐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테드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는다. 궁금했던 몇 마디의 질문을 하며 테드가 꾸었던 꿈 이야기와 그의 환상 속 장면들을 말해주기를 원했다. 테드는 있는 그대로 말하려고 했고, 중요한 인물의 이야기는 슬쩍 빼는 식으로 감춰두기도 했다.

 

 

 

소설에서 테드가 자살을 하려고 했던 시간으로 자꾸 되돌아가는 부분이 있었다. 이것은 마치 영화 「인셉트」의 한 부분을 엿보게 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주인공과 비슷하고 꿈을 꾸며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고 과거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하는 모습이 비슷했다. 꿈 속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주머니 쥐가 나타나 위해를 가하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에서 주머니쥐가 테드에게 어떤 의미인가가 궁금했다. 주머니쥐는 테드에게 위해를 가하는 존재인가 그를 도우려는 존재인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변환점인가.

 

왜 테드는 끊임없이 죽으려고 하는가. 그의 주변 인물들은 그에게 어떤 존재이길래 그들을 죽이려 했는가. 그가 어떠한 일을 겪었길래 그는 기억을 잃고 기억을 변형시키는가. 그의 기억들은 반복되고 변형되어 나타났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기억들이 뒤섞여 그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대부분의 과거의 기억들을 자신이 유리한 방향대로 기억되는 반면, 그는 무언가를 잊기 위해 마치 단죄하듯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고 했다.

 

그의 기억들을 헤집어 이야기의 구성을 맞춰가며 그를 이끄는 인물이 로라 힐이라는 정신과 의사였다. 변형된 과거의 기억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걸 바로잡을 수 있는 인물 또한 과거의 기억들을 끄집어 내야 할 테드 매케이였다. 꿈과 환상의 형식으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기억들을 재구성해야 했다.

 

소설에서는 테드가 변형된 과거의 기억들에게 중요한 매개체가 되는 게 체스보드였다. 체스 신동이었던 테드. 체스 시합이 있을 때마다 그를 차에 태우고 다녔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이 봉합되었던 매듭도 체스보드에서 풀어져야 했던 것이다. 잠시도 안심할 수 없는 사건의 전개와 변화 때문에 책장을 덮을 수 없었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는 짜릿함을 선사하는 소설, 뜨거운 올여름을 잠시나가 쉬어가게 해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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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델라이언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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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소녀'라는 이야기를 읽고 자란 소녀들(히나타 에미와 유메)은 '하늘을 날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 내용에 깊이 파고들었다. 대학생이 되자 '하늘을 나는 소녀' 같은 민담을 공부하고 싶어했다. 학교에 갔다가 이공계 학생을 만나 민들레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읽었던 민담 속에서 나왔던 민들레 마을을 떠올리고 반가움이 앞섰다. 이 소녀의 이름은 히나타 에미. 16년 전의 1998년이었다. 

 

2014년의 현재. 고모와 함께 사는 히메노 히로미가 등장한다. 경시청에서 온 전화를 받고 나간 곳에서 하나의 사건을 접한다. 폐목장의 사일로 안에서 하늘을 나는 듯한 여자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바닥에 떨어져있는 신분증으로 보아 그녀는 16년전에 실종된 히나타 에미의 시신이었다. 에미는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자세로 쇠파이프에 의해 찔려 있었다. 사일로 안쪽으로 빗장이 지어져 있고, 밖으로는 잠금 장치가 되어 있었다. 높다란 곳에 위치한 창문 뿐인 밀실인 사일로에서 히나타 에미는 어떻게 죽었나가 의문이다.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진다. 호텔의 옥상에서 한 남자가 불에 태워져 죽는다. 의원의 비서로 일하고 있는 가와호리 데쓰지라는 남자다. 데쓰지는 히나타 에미와 함께 민들레 모임을 했던 남자다. 에미와 데쓰지는 어떤 이유로 죽었는가. 누가 죽였는가. 여기에서 경시청에 근무하는 히메노 히로미는 히나타 에미를 알고 있었다. 16년 전 자신의 옆집으로 이사 온 대학생이었으며,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머니를 대신해 히메노에게 음식을 해주었을 뿐 아니라 빨간색 차를 타고 에미의 시체가 발견된 목장을 데리고 가기도 했었다. 그래서 사건을 제대로 파헤치고 싶었던건지도 모른다.

 

 

 

히메노 히로미가 주인공인줄 알았다. 하지만 히메노는 가부라기의 부하 직원이었을 뿐, 가부라기가 주요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라는 걸 알았다. 봄이면 노랗게 피는 민들레가 화단에 가득이다. 노랗게 꽃을 피우다가 꽃이 시들면 하얗게 솜털처럼 남게 되는데 이 홀씨가 날아가 다른 꽃에 뿌리를 내린다고 알고 있었다. 민들레가 영어로 단델라이언(dandelion)이라는 것을 이 소설로 알게 되었다. 사자의 이빨 혹은 사자의 송곳니라는 뜻을 가진 민들레. 아마도 민들레 홀씨의 모습이 뾰족뽀족한게 사자의 이빨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민들레는 이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다. 소설의 첫 부분에 '하늘의 나는 소녀' 속 내용에서도 민들레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마을이었고, 히나타 에미가 든 대학 동아리의 모임도 민들레 라는 이름을 가졌다. 페트병 뚜껑 등을 재활용하자는 환경운동에 앞장서겠다는 모임의 이름을 민들레 모임이라고 한 이유는 민들레의 가지가 기형적으로 휘어져 있었던 것을 발견하고 원자력발전소 때문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민들레가 피어 있는 나라는 민들레 모임 회원들에게 그들만의 유토피아였다. 하지만 유토피아를 꿈꿨던 그들에게 그들을 조종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의 유토피아는 꿈이었을 뿐이었다.

 

노부세는 역시 피터 팬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그저 높은 하늘을 동경하기만 할 뿐, 하늘을 날지 못하는 피터 팬.

그리고 나는, 날지 못하는 피터 팬을 사랑하여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손을 잡아끄는 대로 뒤를 따라가는 어리석은 웬디였다. (342페이지)

 

가부라기 시리즈라고 하는데 그가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팀원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 인물로 보였다. 물론 다른 사람이 생각지 못하는 것을 파악하는 건 그의 역량인건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보이는 대로 사건을 바라보지 않고, 불안한 감정을 바꾸어 생각하므로써 사건 해결의 키포인트를 적중해내는 능력이 탁월했던 것 같다. 의문에 차 있었던 히나타 에미의 존재, 히메노 히로미 아버지의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은 이 소설의 또다른 매력 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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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팡의 소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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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히데오는 『64』라는 작품으로 만났다. 『64』라는 작품 또한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이야기를 담았는데, 유괴살인사건을 다룬 내용이었다. 시기상으로 『루팡의 소식』보다 나중에 출간한 작품으로 가출한 딸이 있는 경찰관이지만 유괴살인사건의 홍보담당관으로서의 일을 해야하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꽤 매력적인 작품이었기에 그의 초기작 또한 기대를 갖게 했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공소시효만료를 앞둔 이야기를 한다. 십오 년전 자살로 처리된 여교사의 사건이 사실은 타살이었으며 그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가 오늘 하루, 24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자살한 여교사의 제자 세 명이 살인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제보였다. 일명 루팡 작전이라고 불렸던 관계자 세 명이 차례대로 경찰에 의해 입건되고, 경찰은 각자 세 사람을 심문하며 십오 년 전의 일을 듣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나라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살인사건의 공소시효 만료가 15년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몇 년 전에 공소시효 만료가 폐지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TV에서도 방영한 드라마에서도 그러한 말을 하긴 했었는데,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피해자들에게 시효 만료라는 것으로 더이상의 고통을 줘서는 안된다는 메시지였다.   

 

소설은 현재의 경찰서 직원들이 루팡 작전의 인물인 기타 요시오, 다쓰미 조지로, 다치바나 소이치를 심문하는 과정을 담은 것과 동시에 기타 요시오의 자백으로 드러나는 십오 년 전의 이야기가 한 축이다. 십오 년 전의 그들, 학교에서 겉돌아 카페 루팡이라는 이름의 장소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기말 시험을 앞두고 교장실의 금고에 있는 시험지를 훔치기로 모의하고 작전명을 그들의 아지트인 카페의 이름을 따 '루팡 작전'이라 부른다. 카페 루팡의 사장 또한 한때 은행 차를 탈취해 3억 엔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었다.

 

루팡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학교의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는데, 최대의 난관은 숙직실에서 기거하며 두시간 마다 순찰하는 화학교사 가네코 모키치가 문제였다. 주로 하이드 씨라고 불리는 그의 순찰 시간을 피해 교장실의 시험지를 훔쳐야 했다. 교무실의 출입문 자물쇠를 미리 손봐두고 옥상에서 사다리를 내려 문제의 시험지를 훔치기로 했다. 첫 날, 둘째 날, 셋째 날까지는 무리없이 훔쳤고, 넷째 날 시험지를 훔치려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교무실에 여교사로 보이는 구두와 여학생의 다리로 보이는 하얀 구두의 모습이 보인 것이다.

 

 

 

소설을 읽다가 한가지 의문이 든 게 있었다. 시험지를 훔치더라도 과연 답을 맞게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교과서를 보고 답을 맞출 수도 있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지 않나. 미리 시험지를 풀어 답을 표기해놓고 시험 날에 새 시험지와 바꾸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들의 계획이 들통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 것일까. 지금같으면야 어림도 없는 일이다. 마지막 날의 시험지를 훔치기 위해 교장실의 금고를 열었을 때 영어 교사인 미네 마이코의 시신이 들어 있었다. 놀란 그들은 마이코의 시신을 서둘러 금고에 넣어 닫고 급히 그 장소를 떴다. 교장실에서는 정체 불명의 한 사람이 숨어 있었고 그는 창밖으로 뛰어 내렸다.

 

기타와 다쓰미의 자백으로 경찰들은 십오 년 전의 사건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누가 마이코를 죽였던 말인가. 마이코를 죽인 이유는? 살인 동기를 알아야 했다. 기타의 자백이 길어질 수록 사건은 새로운 양상을 띤다. 기타와 다쓰미, 다치바나의 십오 년 전과 현재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그토록 친했던 그들도 서로 뿔뿔이 흩어져 연락도 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아마 그 날의 상황을 덮어두려 했던 마음이 강했던 게 아닐까.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은 이처럼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경찰과 사건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밝힌다. 누군가는 괴로워하고 누군가는 상처를 헤집는 걸 원치 않았다. 이러한 사람의 심리를 비교적 세심하게 표현한 작품이었다. 아울러 기자 출신 작가답게 사건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이 보인다. 물론 두 편의 작품을 읽어서인지는 모르나, 공소시효 만료라는 주제를 선택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누군가는 공소시효 만료때문에 뒤돌아 서서 안도의 미소를 지을 것이고, 어느 누군가는 살인범이 잡히지 않아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는 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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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7-07-1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4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책 역시 공소시효가 주요한 화제군요. 읽고 싶어집니다.

Breeze 2017-07-11 16:54   좋아요 0 | URL
네에.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겁니다. ^^

chika 2017-07-12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험지뿐 아니라 답안지도 같이 훔쳤기 때문에 답을 찾아 쓸 수 있었지요. ^^

Breeze 2017-07-12 18:38   좋아요 0 | URL
교과서 보고 답 찾았다고 하지 않았나요? ㅋㅋㅋ

chika 2017-07-12 18:42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그 생각하면서 책을 읽었거든요. 근데 152쪽 보면 - 마침 책이 바로 옆에 있어서 바로 찾았어요;;;

˝문제와 해답 용지 둘 다 여분이 있잖아˝라고 다쓰미가 말하거든요. 그래서 해답지까지 있었다는 것을... ^^;;;

Breeze 2017-07-12 19:00   좋아요 1 | URL
아. 저는 해답용지를 OMR카드로 봤거든요. 다시 살펴봐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