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사람을 죽여라
페데리코 아사트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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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매케이가 자신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으려는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끈질기게. 소설의 첫 문장이다. 서재에서 자살하려는 순간 누군가 찾아왔다면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할까, 아니면 계획했던대로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을까. 자살을 계획했다면 집안에 아무도 없는 척하고 있을 것이며 지쳐서 돌아가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라고 소리친다면, 누구길래 자신의 이름을 알고 소리를 지르는 걸까 궁금해진다. 이제 그만 돌아갔겠지 하는 순간 테드 매케이는 쪽지 한 장을 발견했다. 자신이 쓴 기억은 없지만 자신의 글씨였다.

 

문을 열어.

그게 네 유일한 탈출구야.

 

그저 자신의 죽음을 말리려는 사람이겠지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지만, 그는 처음 본 사람이다. 마치 자신을 자세히 안듯 그가 자살을 하려는 순간 나타났고, 사랑하는 딸과 홀리의 이름까지 꿰고 있는 자였다. 젊어 보이는 그는 저스틴 린치라는 남자로 자살하는 대신 누군가를 죽이라는 말을 한다. 자살로 인해 가족이 고통을 받기 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 그 고통이 덜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들어보니 맞는 소리 같기도 했다. 자신 또한 서재의 열쇠를 숨기고 홀리 혼자서 서재에 들어오기를 바랐던 것이다.  

 

린치는 살인청부를 제시하며 폭행 전과가 있으며 한 여자의 살해용의자였던 에드워드 블레인과 역시 자살클럽에 가입된 기업인 웬델을 죽이라는 소리였다. 그 다음에 자살하려는 테드를 다른 사람이 죽이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는 너무도 쉽게 블레인의 집에 숨어 들어 블레인의 이마에 총을 쏘았고, 웬델의 집에 숨어들어서도 그의 가족들이 들어오기 직전에 죽였다. 그가 블레인과 웬델을 분명히 죽였다. 하지만 테드는 웬델과 마주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웬델과 살인청부를 했던 저스틴 린치가 대학교에서 만났다는 사실이다.

 

테드는 꿈 속에서 주머니쥐가 홀리의 다리를 갉아먹는 꿈을 꾸게 되면 혼란스럽다. 정신과 의사인 로라 힐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로라 힐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테드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는다. 궁금했던 몇 마디의 질문을 하며 테드가 꾸었던 꿈 이야기와 그의 환상 속 장면들을 말해주기를 원했다. 테드는 있는 그대로 말하려고 했고, 중요한 인물의 이야기는 슬쩍 빼는 식으로 감춰두기도 했다.

 

 

 

소설에서 테드가 자살을 하려고 했던 시간으로 자꾸 되돌아가는 부분이 있었다. 이것은 마치 영화 「인셉트」의 한 부분을 엿보게 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주인공과 비슷하고 꿈을 꾸며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고 과거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하는 모습이 비슷했다. 꿈 속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주머니 쥐가 나타나 위해를 가하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에서 주머니쥐가 테드에게 어떤 의미인가가 궁금했다. 주머니쥐는 테드에게 위해를 가하는 존재인가 그를 도우려는 존재인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변환점인가.

 

왜 테드는 끊임없이 죽으려고 하는가. 그의 주변 인물들은 그에게 어떤 존재이길래 그들을 죽이려 했는가. 그가 어떠한 일을 겪었길래 그는 기억을 잃고 기억을 변형시키는가. 그의 기억들은 반복되고 변형되어 나타났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기억들이 뒤섞여 그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대부분의 과거의 기억들을 자신이 유리한 방향대로 기억되는 반면, 그는 무언가를 잊기 위해 마치 단죄하듯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고 했다.

 

그의 기억들을 헤집어 이야기의 구성을 맞춰가며 그를 이끄는 인물이 로라 힐이라는 정신과 의사였다. 변형된 과거의 기억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걸 바로잡을 수 있는 인물 또한 과거의 기억들을 끄집어 내야 할 테드 매케이였다. 꿈과 환상의 형식으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기억들을 재구성해야 했다.

 

소설에서는 테드가 변형된 과거의 기억들에게 중요한 매개체가 되는 게 체스보드였다. 체스 신동이었던 테드. 체스 시합이 있을 때마다 그를 차에 태우고 다녔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이 봉합되었던 매듭도 체스보드에서 풀어져야 했던 것이다. 잠시도 안심할 수 없는 사건의 전개와 변화 때문에 책장을 덮을 수 없었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는 짜릿함을 선사하는 소설, 뜨거운 올여름을 잠시나가 쉬어가게 해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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