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색 큐큐클래식 6
미시마 유키오 지음, 정수윤 옮김 / 큐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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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하면 할복자살한 작가로 알고 있었다. 이번에 그의 작품을 처음 읽었다. 1950년대 전후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금지된 색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건 예순이 넘은 노작가 히노키 슌스케와 아폴론처럼 놀랄 만큼 아름다운 청년 미나미 유이치다. 유이치가 자기를 좋아하는 야스코와 결혼을 할 수 없다고 말하자 슌스케는 거액의 돈을 건네며 야스코와 결혼하되 여자를 인간이 아닌 물질로 여기라고 말한다.

 


여성을 물질로 여기라는 부분에서 슌스케의 의도가 궁금했다. 여성을 기만하는 행동과 동시에 다른 유부녀와의 염문을 뿌려 바람둥이로 그려 자신의 작품 혹은 여성에 관한 복수를 하고자 했다. 슌스케를 작가의 다른 모습으로 보았는데 작가가 이 작품을 쓴 게 고작 스물여섯 살의 나이라니 놀라울 뿐이었다. 스물여섯 살의 작가는 예순이 넘은 슌스케를 마치 작가 자신인 듯 자세히 나타냈다. 노인이 가질법한 생각과 행동, 여자와 미소년을 바라보는 질투의 감정까지 섬세하고도 치밀했다.



 


소설에서 보는 일본의 동성애는 음지에서 일어난 일이면서도 꽤 자유로워 보였다. 물론 가족에게 자기가 일반인들과 다른 부류라는 걸 숨기고 싶은 건 있었다. 여성과 염문을 뿌리되 여자가 자기에게 향하는 감정을 즐기는 한편 가소롭게 여겼다. 1950년대에 ‘gay’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며 남성들의 성을 문란하게 그린 거로 보였다. 카페에서 자유롭게 파트너를 만나고 즐겼다. 소설에서 보면 상당한 수의 인물들이 남색을 가진 거 같았다.

 


아내 야스코가 출산하는 장면이 꽤 자세하게 표현했다. 유이치가 딸을 출산하는 장소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야스코를 물질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사랑하게 되는 장면은 압권이다. 출산이 숭고한 작업이라는 걸 나타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아마 오래도록 금지된 서적으로 묶였을 법하다. 남색을 다루는데, 내용이 치명적이라 출간을 반기지는 않았을 거 같다. 작가든 작품이든 시대를 잘 만나야 하는 거 같다.

 


노작가 슌스케는 매우 못생긴 남자로 비친다. 아폴론처럼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를 가진 젊은 남자를 보고 반하게 되는데 처음엔 젊음과 잘생김을 질투하고 부러워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 여성의 마음을 뒤흔들어 비틀어진 욕망을 대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완전한 청년, 완전한 외면의 미가 구현되었다는 것. 이것은 추한 외모를 가진 작가가 청년시절 품었던 그 시절의 꿈이었다. 이 꿈은 사람들 앞에서 철저히 감춰졌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으로부터도 저주받았다. 정신의 청년, 정신성으로 무장한 청년시절, 그것은 청년으로부터 청년다움을 갈취하는 독소와도 같은 관념이다. (35페이지)

 


관념으로서의 사랑, 육체가 아닌 정신적인 것을 내세우지만 결국엔 예술가로서의 작가, 아름다운 청년을 하나의 작품으로 보았다. 동시에 아름다운 청년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싶었다. 미시마 유키오는 유이치를 나르키소스 적인 인물로 그린 거 같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호수에 빠져 죽은 인물이 나르키소스다. 미나미 유이치 또한 등불 아래 거울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에 정신이 팔린다. 나르키소스에게 죽음이 찾아왔듯 슌스케와 유이치를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유이치는 자신의 위치를 갈망했다. 거울이라는 감옥을 깨고 나와 자신의 얼굴을 잊고, 그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여기며 비로소 보는 이의 위치를 탐색했던 것이다. 그는 거울이 증명하는 육체가 확고했던 위치를 대신할 무언가를 찾아, 사회가 어떠한 위치를 부여해주리라는 어린아이 같은 야심에서 해방됐다. (553페이지)

 


욕망과 질투,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 인간을 작품으로만 보는 건 어불성설이다. 예술적인 작품으로 만들고자 했으나 현실적인 존재가 되고 싶은 게 인간의 욕망이며 또한 존재의 이유다. 아름다움이 작품으로만 남는다면 그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인간은 변화하는 존재이며 작품이 아닌 하나의 존재로 남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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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들 -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손석희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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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의 간판 프로그램 <100분 토론>의 앵커로 유명했던 손석희가 JTBC로 옮겼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왜 하필 종편이지. 하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하지만 얼마 뒤 손석희는 종편이 아닌 JTBC 방송국 앵커로 다가왔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1년 가까이 한 사건을 취재해 방송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해냈고, 가장 큰 진가는 국정농단의 단초를 마련했던 태블릿 PC 관련 보도다.

 


이후 많은 사람이 뉴스를 챙겨볼 때 JTBC 뉴스룸을 챙겨보았을 것이다. TV와 가깝게 지내지 않았던 나도 몇 번 챙겨봤을 정도니 다른 사람들이야 알만하지 않은가. 손석희 앵커의 뉴스룸에서는 다른 방송국에서 보지 못한 다양한 방식을 채택했다. 그중의 하나가 문화초대석이다. 좋아하는 인물이 출연했을 때 본방송을 보지 못하고 일부러 영상을 찾아보며 재미있어했던 기억이 있다.


 


 

 

변화의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라고 해도 좋겠다. 구태의연한 방식이 아닌 대중이 원하는 것,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끊임없이 파고드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방식이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중의 한 명이었던 손석희가 전하는 8년의 기록들은 우리가 함께 응원했고 추구했던 사회 정치적 결말을 마주하기도 했다.

 


생각해보자. 저널리즘이 무엇인가. 오늘의 일들을 기록해내고, 그것을 각자의 관점으로 담아낸 다음 공감을 얻어내는 것. 노래든 영화든 그림이든 문화현상을 담아내는 것도 명백한 저널리즘의 영역이다. (344페이지)

 


그가 전하는 굵직한 사회적 사건들은 우리를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한다. 가슴 뛰게 혹은 아파하며 견뎠던 시간의 기억들이다. 삼성 관련 뉴스에서부터 세월호 사건, 국정농단 스모킹건이 된 태블릿 PC, 대통령 선거, 미투의 시발점이 되었던 한 검사의 인터뷰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한다.

 


당시에 나왔던 뉴스의 내용 그대로 전하기보다는 시발점이 된 사항과 과정을 크게 나타냈다. 외압이 들어와도 과감하게 쳐내고 저널리즘의 혁신을 꿈꾸었고 그것을 실행했다. 아마 오래도록 좋은 언론인으로 회자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서 크게 내세웠던 논리는 아마도 저널리즘일 것이다. 저널리즘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는 2부의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언론이 왜 존재하는가. 사실을 보도할 책임이 있다. 누군가의 압력에 의해 작성된 글보다 직접 발로 뛰어 취재한 내용을 전해야 하는 직업이다. 손석희가 말하길, 계속 의문을 가지고 보라고 했다. 그러한 작업이 지금의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저널리즘의 명쾌한 논리를 엿볼 수 있었다. 보도의 원칙으로 삼았던 네가지 키워드, ‘사실, 공정, 균형, 품위를 기억하면 되겠다. 누구보다 앞서 실천했던 진정한 저널리스트이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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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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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새 아파트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에 집을 알아보다가 지금 집과 비교해 실속 없는 내부평면에 주저앉기를 몇 번. 아이들도 각자 독립을 하고 집을 좀 줄여야 신규 아파트에 입주할 거 같다. 다시 드는 이사 생각에 고민하던 중 우리 아파트가 내가 사는 지역에서 풍수가 좋기로 다섯 번째 안에 든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을 접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아주 간사한 것이어서 위치상 좋다고 하는데 굳이 이사할 필요가 있나 싶은 거다. 우스갯소리로 죽을 때까지 살자고 말하는 중이다.


 

24평형 아파트 기숙사에 살고 있던 딸에게 사정이 생겨 집을 구하게 되었다. 청년 전세대출을 받아 이사할 집을 구해놓고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차라리 대출받아서 살 걸 그랬나 싶었다. 아파트 가격의 90% 전세금을 주어야 해서 임대인이 대출받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할 거 같아서였다. 교양 있는 서울 시민 희진처럼 우리도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매해서 평형을 늘려 지금에 이르렀다. 물론 지방이라 시세차익이 크지 않지만 말이다. 딸에게도 이걸 가르쳐야 하나 속물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람 사는 곳엔 여러 가지의 모습이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 안보미에서 아버지가 사준 집에 살고있는 보미는 사적인 다큐멘터리를 위해 아버지를 찍으며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아버지와 다른 모습을 본다. 가족을 바라보는 것과 타인이 그의 유별난 행적을 블랙컨슈머로 보는 것의 차이다.

 


소설은 꽤 사실적이다. 우리가 느껴왔고 경험했던 것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 것만 같다. 어쩌면 이렇게 사실적으로 그렸는지 조남주가 작가가 가진 능력일 것이다.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것과 보편적인 면에서 생각이 다른 법이다.

 


서영동을 지키는 다양한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우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백은학원연합회 회장 경화의 행동을 봐도 그렇다. 학원이 밀집해있는 백은빌딩옆에 노인 요양원 건물이 들어선다고 하자 반대하고 나선다. 하지만 학원장인 경화를 대신해 아들 찬이를 케어해주는 엄마에게 치매 증상이 생기자 마음이 달라진다. 이게 사람인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의 차이가 극명하다.

 


우리보다 더 나은 직업,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면 부러워한다. 부러움을 넘어 시기 질투에 이르기도 하는데 샐리 엄마 은주는 숨기고 싶은 우리의 민낯이다. 모임을 주최해 앞에서 이끌어가는 케이 엄마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자꾸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불편함 한편에 시기 질투가 숨어있다. 고등학교 때 소문이 좋지 않았던 동창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마음 한구석에 부정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경고맨을 읽으며 불편하면서도 속이 후련해졌다. 경비원을 함부로 대하고 갑질하는 모습을 보고는 뉴스에서 나오던 게 생각났다. 딸 유정의 입장에서, 하필 자기 집 근처의 아파트 경비원으로 왔는지, 라고 말한 부분 또한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시시때때로 전화하는 엄마 때문에 힘든 것과 아버지를 챙기는 모습, 서영동 커뮤니티에서 경비원의 이야기가 아버지라는 것의 곤란함. 불편함 등에 공감했다. 각종 경고문을 써 붙이는 아버지. 그대들이 함부로 대하는 경비원이 누군가의 아버지라는 거.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서영동 이야기는 우리의 민낯을 보게 한다. 집값을 올리기 위해 시청이며 의원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시위하는 사람, 집값을 낮게 책정하는 부동산 중개업소의 가격 후려치기에 부녀회에서 저가로 매도하지 말자고 한 경우도 실제로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이면서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속물적인 생각을 하고 있던 나를 보는 것만 같다. 말로는 절대 그러지 말자고 하면서 우리의 이익을 위해 안승복 대표처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심히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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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법 1~2 세트 - 전2권
야마다 무네키 지음, 최고은 옮김 / 애플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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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젊음을 얻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우리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


 

생존제한법(LIFE LIMIT LAW)

불로화 시술을 받은 국민은 시술 후 100년이 지난 시점부터 생존권을 비롯한 기본 인권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 (1, 2, 13페이지)

 


스무 살 즈음 불로화 시술을 받는다. 대신 100년이 지나면 스스로 안락사를 해야 한다. 백년법이 만들어졌다고 치자. 100년은 아주 먼 미래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불로화 기술인 ‘HAVI’시술을 받고 젊음을 유지한다. 대신 패밀리 리셋 상태가 되어 부모와 자식 간의 교류가 없다. 이십 대의 모습으로 각자의 삶을 살면 된다. 아주 먼 시기였지만 순식간에 백 년의 세월이 흐른다. 미래 시대를 위해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인간은 죽음 앞에 무력하다. 이러한 소설이 나오는 이유도 그와 같을 것이다. 죽음을 앞에 둔 인간은 어떻게든 그 삶을 유지하려 든다. 과거 중국의 진시황제가 불로초를 찾아 헤매게 했던 이유와 같다. 젊음은 어떤가. 젊게 보이기 위해 얼굴에 보톡스 등 시술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전에는 대중매체에 얼굴을 비치는 연예계에서 시술을 주로 받았던 반면 일반인들도 성형 수술이나 시술을 아무렇지 않게 받는다. 예뻐질 수 있다면, 젊게 보일 수 있다면 자기의 뼈를 깎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소설이 아닐까 한다. 생존제한법에 따라 불로화 시술을 받은 후 100년째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죽음을 거부하는 사람들로 나뉜다. 거부자는 그들만의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누군가가 도와야 하고 거액의 돈을 치르고 고스트 카드를 구매해야 한다.

 


백년법 효력을 발생시켰을 즈음 죽음에 관한 인간의 본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생명 연장을 위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아부하는 건 기본이며 그 사람의 눈 밖에 나지 않게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하지만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해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누구보다 백년법 시행을 하고자 했던 유사 아키히토 일본공화국 총리마저 죽음 앞에서 지극히 인간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가 말이다. 생명 연장을 위한 면제권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그의 입장이어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생명권 연장이라는 게 특권층에만 해당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쟁 상황이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면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이용해 누리고자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불로화 시술을 받은 자들의 장기에 나타나는 암 발병은 지금의 시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 불로화 바이러스의 변이로 인한 SMOC 발병은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인간이 만든 바이러스의 변이로 인해 세계는 2년 넘게 멈춘 상태다. 영원한 젊음을 얻는 대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병을 안고 있다면 그것처럼 두려운 것도 없다. 일시에 세계 혹은 나라의 붕괴라는 가설을 세우게 된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러면서도 만약 나에게 불로화 시술의 선택권을 준다면 두말없이 시술을 받지 않을까. 스무 살을 갓 넘긴 앳된 모습으로 살 수 있다면 다른 거 몇 개쯤 포기할 수도 있을 거 같다. 비록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고 해도 말이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빛나는 거 아니겠나. 죽음의 상실은 삶의 상실이나 다름없어. 이 나라에 결여된 것, 그건 바로 죽음이야. (1, 302페이지)

 


위 발췌 문장에 이 소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소설 전편에서 드러나는 주제로 인간에게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더 소중한 법이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겠는가, 라는 질문을 하곤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는 말이 주를 이룰 것이다. 내일 죽는다고 해도 오늘을 살아야 하는 우리는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전보다 더 소중한 오늘을 살면 된다. 무기력에 빠진 불로화의 삶보다 치열한 오늘의 우리가 더 낫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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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02-28 1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불로화 수술, 백년 후 안락사. 전제만 읽어도 으, 끔찍합니다.

Breeze 2022-03-10 16:30   좋아요 0 | URL
한번쯤 죽음에 대하여, 혹은 불로화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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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하자키 목련 빌라의 모습을 그려본다. 하드보일드 작가로 유명한 쓰노다 고다이의 저택 앞으로 콘크리트로 지어진 다섯 채씩 총 열 개의 빌라가 있다. 빌라 입구에는 목련 한 그루를 심어 목련빌라라 불린다. 제법 두껍게 콘크리트를 지었던지 옆집의 소음은 들리지 않은 데 비해 창문 아래로 속삭이는 소리까지 들린다. 유일한 빈집 3호에서 사체가 발견되었다. 부동산 사장의 아내가 젊은 부부에게 집을 보여주다가 발견했다. 시체를 발견한 부동산 사장 아내와 젊은 부부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친다.

 


주택에 시체가 발견된 경우, 주변 사람부터 조사하여 용의자를 좁힌다. 그런데 목련 빌라의 모든 사람이 용의자가 된다.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도 주민들도 나름의 방식대로 살인을 유추해보지만 그럴수록 모든 사람이 의심스럽다.


 

피해자는 비교적 작은 키에 검은 피부를 가졌고, 오른쪽 송곳니가 없다. 돈이 없어 치과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였고 입고 있던 옷도 허름하다.


 


 

 

빌라의 사람들이 의심스러운 이유는 시체가 나타내는 인물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과 관련되어 있다는 거다. 쌍둥이 아이를 키우는 시청 공무원 후유, 고서점 기토당을 운영하는 노리코, 빈집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던 고다마 부동산의 사장, 호텔 남해장을 경영하는 세리나, 이웃과 사이가 좋지 않은 아케미 등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있다는 거다. 용의자들은 차고 넘친다.

 


이웃에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두려움에 떨 법한데 목련 빌라의 주민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무언가를 숨기고 스스로 탐정 역할을 한다. 중요한 단서는 후유의 쌍둥이 딸의 떠드는 말에서 나타났고 경찰들은 용의자를 점점 좁혀간다. 그러다가 또 한 건의 살인이 발생하고 두 사건이 연쇄 살인인지, 살인이 일어난 틈을 이용해 다른 살인을 계획한 것인지도 파악해야 한다.

 


소설에서 하드보일드 작가 부부의 정체도 조금은 의심스러웠다. 작가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아내의 말에서 무언가 숨기는 것만 같다. 결말에 가서야 쓰노다 부부의 정체가 드러난다. 살인 사건이라고 해서 모두 심각한 것만 아니다. 약간은 유머러스하고 경쾌하기까지 하다. 후유의 딸들이 켄을 쫓아 달리는 장면은 이 소설의 압권이다. 몇 명이 한 줄로 늘어서 달리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마치 게임을 하는 것 같지 않은가.

 


가공의 바닷가 도시 하자키를 배경으로 하는 삼부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진달래 고서점의 사체고양이섬 민박집의 대소동과 함께 읽으면 좋을 거 같다. 물론 각 권은 다른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어 따로 읽어도 무방하다고 한다.

 


도시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바닷가를 거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 살고 싶은 도시가 아닐까. 이들의 일상에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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