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2 불편한 편의점 2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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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후문 쪽은 주택가다. 늦은 시간이면 어두컴컴해 후문으로 다니지 않는다. 후문에 있었던 슈퍼마켓이 문을 닫고 편의점이 들어섰다. 아이들은 편의점이 들어선 걸 꽤 반겼다. 밤늦은 시간에도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장점을 들었다. 얼마 뒤 주택가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편의점이 생겨 좋다는 말을 들었다. 딸들이 밤늦게 들어와도 골목길에 불이 밝혀져 있으니 무섭지 않다는 거였다. 밤을 밝히는 편의점이 있어 집에 돌아오는 길이 무섭지 않다면 이보다 더할 수 없다.


 

서울역 노숙자 독고 씨가 나오는 불편한 편의점의 감동은 2편까지 나오게 했다. 기억을 잃었던 독고 씨가 자신을 찾게 되며 길을 떠나고 새로운 알바생이 들어오며 ALWAYS 편의점은 변화를 맞이한다. 염영숙 여사 또한 잠시 편의점을 떠나있다. 독고 씨의 자리를 채우던 곽 선생도 지방으로 떠나고 그의 후임으로 새로운 인물이 밤의 편의점을 지킨다. 곰처럼 커다란 덩치에 독고 씨를 연상하게 했다. 말이 없던 독고 씨와는 다르게 재잘재잘 말이 좋은 마흔 즈음의 남자였다.

 




처음 그를 불편하게 여겼던 사람들도 그를 좋아하게 된다. , 말 많은 거만 빼면 더할 나위 없다. 밤의 편의점을 지키는 그는 어떤 인물일까. 염영숙 사장의 아들과 호형호제하며 그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모습이 범상치 않다. ALWAYS 편의점과는 어떤 인연이 있길래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질까.

 


편의점과 알바생의 현실을 그대로 담은 거 같다. 물론 편의점에 찾아오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관심은 덜 할 거라고 예상하지만 말이다. 이와 다르게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소설처럼 사연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관심을 갖고 건네는 한 마디에 위로받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귀찮아하며 말이 끝나기도 전에 피해버리겠지만 말이다.




 


학연, 지연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타지에서 외롭게 사는 사람들은 누군가 건네는 따듯한 말 한마디에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민식과 황근배 씨가 같은 지방 캠퍼스를 나왔다고 호형호제하는 장면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근배 씨, 아니 홍금보 씨가 풍기는 긍정적인 에너지에 많은 사람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부분 때문이었다. 독고 씨가 밤과 새벽을 지키며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켰던 것처럼, 한 사람이 내뿜는 에너지의 파급력이 큰 거 같다.

 


변화. 누가 시켜서 되는 게 아닌 스스로의 변화 말이다. 사람은 변화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변화를 요구받는 게 싫은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바뀔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기다려주며 넌지시 도와야 했다. (281페이지)




 


근배 씨의 정체와 편의점을 거쳐 간 사람과의 인연이 드러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연극이 진행될 때 독고 씨의 등장도 반가웠다. 왠지 다음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근배 씨의 뒤를 이어 밤의 편의점을 지킬 인물의 변화가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든다. 사람이란 무릇 이처럼 변화되어야 한다. 현재의 모습이 다가 아니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주변에 나를 지키는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닫는다. 스치듯 지나치면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을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처럼 중요한 것도 없다.

 


다양한 사람들이 편의점을 거친다. 필요한 물건을 시간의 구애 없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 다만 찾는 물건이 없을 수도 있다.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주변의 편의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우리는 또 웃고 감동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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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유나이티드 - 음악도 인생도 뿌리에 물을 주어야 꽃이 핍니다 클래식 유나이티드 1
정경 지음 / 똑똑한형제들(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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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주는 위로가 크다. 퇴근길 습관적으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다. 적막한 밤 혹은 한적한 주말 오전, 책을 읽을 때 라디오를 듣거나 플레이리스트에서 원하는 음악을 찾아 듣는다. 그 음악이 팝일 때도 있고 때로는 클래식일 때도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있기 전에는 자주는 아니지만, 공연을 챙겨보곤 했다. 많은 것이 변화한 요즘, 음악이 주는 즐거움에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한다. 첼로나 비올라, 바이올린 등 현악기를 좋아하는 나는 자주 음악에 매료된다.

 


EBS에서 클래식 방송 진행자로, 워너뮤직의 아티스트, 경희대학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정 경 교수가 만난 예술가들의 음악 이야기는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한 도서이다. 예술가가 가지고 있는 음악성과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활약하는 데 큰 의미를 둔 거 같다.




 


지휘자 윤의중,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 첼리스트 양성원, 피아니스트 박종화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수상 경력과 학생들을 지도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음악에 대한 깊은 철학을 만날 수 있었다. 음악이 주는 매력이 듣는 사람만이 아닌 연주를 하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게도 커다란 울림을 주는 것이란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예술가 집안에서 자란 그들은 자연스럽게 음악과 함께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부적인 재능이 그들을 이끈 것도 있겠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음악은 저에게 숨 쉬는 공기와 같습니다. 음악이 없는 삶이 저에게 주어진다면 그 삶과 인생은 무의미할 것 같습니다. 한 번밖에 없는 제 인생을 지금 음악과 함께 한다는 것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26페이지, 지휘자 윤의중 편)


 

음악을 대하는 생각과 자세가 아름다운 부분이었다. 지휘자 윤의중은 중, 고등학교에서 음악이 줄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교육이라 일컬었다. 각 분야를 대표하는 예술가의 프로필과 학력, 수상 등을 서술했고, 음악가에게 차지하는 각자의 분야와 연주, 연주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은 없는지 묻는다. 특별히 기억되고 싶은 것이나 예술가의 꿈을 묻는데 그들만의 음악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피아니스트 박종화는 달리는 피아니스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피아노를 실을 수 있는 트레일러를 제작, 피아노를 싣고 다니면서 공연했다. 클래식을 접하지 못하거나 잘 듣지 못하는 분들을 찾았다. 제주도의 해녀를 만나서 물의 주제가 되는 피아노 음악을 들려 드렸다. 피아니스트 박종화의 말을 들어보자.

 


저는 온갖 소리에 자극을 받습니다. 세상의 모든 리듬은 제 심장을 뛰게 합니다. 복잡한 대위법과 하모니가 저를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키기도 하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제 영혼을 움직이죠. 그리고 매일의 일상적인 소음에서 전 음악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곳은 정말 아름다운 장소이기 때문에 귀를 기울이는 모든 곳에서 음악을 찾을 수 있습니다. (75페이지, 피아니스트 박종화 편)


 

대중은 가까이에서 접하는 음악에 감동한다. 이것 자체가 클래식의 대중화에 대한 노력일 것이다. 사람과 멀어지는 음악은 대중에게 사랑받지 못한다. 피아니스트 박종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BTS의 예를 들며 현실성 있는 비전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포부가 인상적이었다.





 

음악의 영감같은 것을 별로 믿지 않아요. 다만 사는 것 자체가 영감의 원천인 것이죠. 거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길거리를 다니면서 늘 보고 듣고 찍고 기록하고 녹음해요. 제가 어릴 적부터 기록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어요. 일기도 오래전부터 써 왔고, 책을 많이 봅니다. (115페이지, 작곡가 최우정 편)

 


나는 작곡가 최우정의 음악론이 좋았다. 정통 클래식보다 극음악을 만들고 있는데, 전통음악이나 서양가곡, 대중음악, 뮤지컬 등을 섞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노력이 미래지향적인 것 같았다.

 


언젠가 여수에 갔을 때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오르간 소리에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거대하고도 울림이 있는 파이프오르간은 종교를 믿지 않아도 우리를 경건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음악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클래식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클래식의 다양화를 위해 노력하는 예술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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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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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히 외로운 상황에 있다면 불안한 존재를 집안으로 들일 수 있을까. 그렇다 혹은 아니다로 갈릴 법한데 나의 답은 들일 수 있다는 거다. 혼자라는 외로움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생의 마지막 순간, 혼자 외롭게 죽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죽었을 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못하는 걸 고독사라 부른다. 그거야말로 가장 두려운 것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오던 옥주는 쓰레기를 뒤지는 아이를 발견했다. 석류처럼 붉은 눈을 하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그는 소금 그릇을 챙겨 밖을 내다보았다. 썩은 쓰레기를 먹던 아이의 모습을 한 존재는 쓰레기통 옆에서 졸고 있었다. 안쓰러워 집안에 들여 석류를 권했으나 아이는 옥주의 팔을 물었다. 인간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아이를 집안으로 들인 것이다. 혼자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그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자신이 죽었으면 했다.




 

조예은의 소설은 스노볼 드라이브를 읽고 이번 작품이 두 번째인데 꽤 매력적인 작가다. 우리의 미래는 현실의 확장으로 디스토피아적이고 상상하지 못하는 존재들과 함께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며 인육을 먹어야만 하는 존재나 꿈을 꾸는 사람이 상상하는 무서운 거로 보이는 악몽의 존재나 서로 다른 세계를 잇는 틈이 벌어져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것은 영화나 소설에서 자주 보았던 내용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세계가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느낌이다. 현실에 안주하는 우리는 밖의 세상을 향한 목마름이 있다. 그 목마름을 채워주는 역할이 하는 게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상상하지 못하는 세계에 도달해 마음껏 즐기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는 것 같다.

 


파란 수염을 변주한 푸른 머리칼의 살인마, 고양이가 사라진 도시에 새롭게 발견한 고양이의 존재를 알게 한 유니버셜 캣숍의 비밀등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를 상상하게 한다. 상상의 세계만 다루는 게 아니다.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는 마치 우리의 거울 속을 보는 듯 불편하다.


 

새해엔 쿠스쿠스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에 틀어박힌 한 여성의 이야기다. 사촌 언니와 비교당했던 유리, 학교에서 전공과는 무관한 과목을 가르쳤던 유리는 학생부장의 괴롭힘으로 직장을 그만두었다. 집 앞으로 엄마가 찾아오는 날이 이어지고, 유리는 알 수 없는 번호로 온 문자를 받는다. 모로코, 사막과 쿠스쿠스라는 단어를 보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부모들이 종종 저지르는 실수 중의 하나가 타인과 비교하는 거다. 친구는 당연하고 형제나 친척들까지 끼는 경우가 있다. 비교당하는 자의 기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복수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부모에게 복수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유리나 연우의 입장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스치듯 말한 부분에서 힌트를 얻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훌쩍 떠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누군가의 강력한 권유는 이처럼 변화가 필요할 때 더할 나위 없는 방법이 된다.

 




인간의 호흡기에 침투하는 바이러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극성을 부릴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 불가결한 요소 중 하나가 공기다. 우리의 미래는 먼지와의 전쟁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들이 그리는 미래의 모습에서 눈에 띄는 한 가지가 바로 미세먼지로 가득한 지구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옇게 가라앉은 지구. 마음껏 숨을 쉴 수 없어 보호구를 착용하고 다녀야 하는 지구를 그려보니 우울하다. 가장 작은 신의 수안은 취업 면접에서 떨어진 날, 급성 먼지바람이 불자 벤치 밑으로 들어가 방독 마스크를 사수하고 일주일 만에 깨어났다. 요양을 위해 자발적으로 집에 틀어박혔다. 생수 배달이 오는 날,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미주가 찾아오며 기묘한 만남이 시작된다. 다단계의 영구회원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미주와 그런 미주의 사정을 알면서도 집에 찾아오는 게 싫지 않아 미주의 회사에서 파는 저품질의 제품을 사주고 있었다. 수안에게 영구회원 동의서를 내밀지 못했던 미주는 실적이 좋지 않은 직원들이 가는 야유회에 가야 한다. 미심쩍은 수안은 미주를 구하기 위해서는 집 밖으로 나가야 했다. 용기를 내어 집 밖으로 나섰던 수안의 모습은 투사와도 같다.

 


그러므로, 인간은 타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이 잠들 때 가장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 악몽이 곰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벌어진 틈 사이로 빠져나와 기억을 잃은 릴리가 마지막까지 쥐었던 손에서 들려오는 다정한 목소리. 서로 싫어했던 사촌 자매가 같은 것을 바라보고 그에 대한 꿈을 꾸는 것까지. 마음 한쪽이 차올랐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직 살 만하다고. 우리 곁에 누군가가 있어 외롭지 않다고 말하는 소설이었다. 비록 다른 존재에게 먹힐지라도,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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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는 파스칼의 철학적 사유를 다룬 책인 줄 알았다. 책을 받아들고 보았더니 기독교 고전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좋은, 신자를 위한 책이 아니라 불신자를 위한 책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아울러 신에 대한 믿음과는 상관없는 삶의 방향, 불신자들에 대한 깊은 염려를 다룬 철학적 사유에 가까운 책이었다.

 


팡세 전문가인 김화영 교수의 정확한 번역으로 천여 편의 단상들로 구성되어 신을 믿는 자들이 바라보는 불신자들에 대한 시선을 바라볼 수 있었다. 불신자들이 불행하다 여긴 적이 없건만 파스칼의 눈으로 보는 불신자들은 충분히 불행하다는 것은 의외였다. 믿지 않은 내가 불행했던가.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신자들이 바라보기에 불신자들은 믿음의 변화를 꾀할 수 있지만 불신자들보다 무신론자들을 더 가엾게 여긴다는 점이 독특했다. 무신론을 자랑하는 자들에게 가차 없는 공격을 가하라고까지 말했다. 파스칼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집필했던 책이라 더 의미 있을 것이다.


 

자신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진리를 발견하는 데에 직결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자기 인생 문제를 푸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이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다. (71페이지, 72-106/66-120)

 


인간 존재의 무력함을 표현하는 묶음15. 이행편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아는 방향으로 인식을 전환하게끔 이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문장을 살펴보자. 아마 팡세나 파스칼은 알지 못해도 이 문장만은 귀가 닳도록 들었을 것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갈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이 갈대를 꺾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다. 한 움큼의 물안개, 한 방울의 물로도 충분히 그것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우주가 갈대를 꺾는다고 해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우주보다 더 고귀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과 우주가 자신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는 거기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196~197페이지, 200-231,232/347-391)

 


그러고 보면,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주 안의 우리는 한낱 미물일 뿐이다. 지구에 터를 잡고 사는 우리가 지구의 주인이라 여기지만 자연 앞에 무너지고 만다. 며칠째 내리는 집중호우로 일가족이 사망하여 슬픔에 잠기게 한다. 인재에 가까워 보여도 어쩌면 자연재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그저 지구에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영원한 허무 속으로 떨어지든지 아니면 진노한 하나님 손에 빠져들게 된다는 것뿐이지만, 둘 중의 어느 것이 영원한 내 몫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나약함과 불확실로 가득 찬 것이 내 상태이다. 이 모든 사실로부터 내가 내리는 결론은 내게 무슨 일이 닥칠지 생각할 필요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면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진지한 회의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수고를 하기도 싫고 답을 찾기 위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도 않다. (370~371페이지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한다. 그렇지만 무슨 일이 생겼을 때는 신을 찾게 된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는 신을 찾게 되는데 나 또한 그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을 못하겠다. 간절하게 구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신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팡세-분류된 단장 편에서 긴 편에 속하는 <신을 찾도록 권고하는 편지>에서는 우리의 마음 깊은 데서 우러나올 감정들을 다룬다. 증거가 눈앞에 있는데도 보려고 하지 않는 거로 무지를 고집하며 불행으로 뛰어드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파스칼은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다. ‘기하학의 정신과 섬세한 정신의 차이의 명쾌한 논리는 우리의 믿음의 세계로 이끄는 것만 같다. 기하학이 신과 연결되리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기하학자가 좋은 눈을 지니게 된다면 섬세하게 될 거라는 것조차 의문스럽지만, 기하학자로서 보는 섬세함의 논리는 이처럼 판단과 지성으로 맞닿아 있다.


 

파스칼 연구자인 김화영 교수의 명확하고 매끄러운 번역으로 만나게 된 팡세를 드디어 읽었다는 뿌듯함이 든다. 불신자를 위한 기독교 명작 고전 임에도 파스칼의 생각과 철학을 알 수 있어 기쁨이 크다. ‘철학을 경멸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철학하는 것이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려준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깊이 사고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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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도우 지음 / 수박설탕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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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설을 여러 번 읽다 보면 꽂히는 문장들이 있다. 매번 읽어도 같은 문장이 눈에 들어오는데 아마도 그건 개인의 취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이다.

 


지나가는 바람일지도 몰라요. (244페이지)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 (427페이지)






 

이런 감정은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보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문장을 꼽아보면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이렇듯 20년째 사랑받고 있는 소설이다.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읽었던 사람들은 새로 발간된 책을 구매하고 오래전에 느꼈던 감정을 복기한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새롭게 느끼기도 하고, 매번 같은 부분에서 울컥하고 또 감동하게 된다.

 


사랑이란 무릇 이런 거, 라는 감정을 갖게 하는 소설이다. 공진솔과 이건의 사랑이 오래도록 계속되는 느낌. 우리는 변해도 진솔과 건은 그대로이기를 바라는 마음일까.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사랑을 지켜냈으면 하는 바람 같은 거.






 

이 소설을 처음 읽었던 게 아스라이 떠오른다. 지금은 휴대폰 어플로 라디오를 듣지만, 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사서함이란 게 있었다. 사서함 몇 호, 라는 말만 들어도 이 소설을 떠올렸었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신청곡을 들려주는 음악과 멘트에 귀 기울였던 느낌들. 지금이야 신청곡을 보내기보다 그저 누군가가 신청한 노래들을 조용히 혹은 함께 음악을 듣는 사람과 가까이에 있는 듯한 감정을 공유한다. 라디오의 특성이 혼자 듣지만 혼자 있지 않은 느낌이랄까.

 


라디오 피디와 구성 작가와의 사랑은 이렇듯 설렘을 주었다. 매일 함께 부대끼며 음악 선곡 작업과 프로그램을 구성하다 보면 저절로 가까워질 것 같다. 물론 각자의 업무만큼의 고충은 따르기 마련이지만 꽤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는 공진솔과 이건 피디의 관계에 더 집중했다면 이번에 읽을 때는 애리와 선우의 관계도 보였다. 관계의 확장, 시선의 확장이었다. 힘든 사랑을 하는 애리에게 건 피디의 존재는 이건과 진솔, 애리와 선우의 관계 변화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사랑의 실체를 깨닫기 위해서는 때로 과격한 상황이 있어야 했다.


 




짝사랑에 대하여 진솔처럼 빠른 결정을 해야 하는데 나의 과거는 미련을 버리기 힘들었다. 혹시나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 기다리는 기간이 길었다. 다른 사람의 뒷모습을 봐야 하는 쓸쓸한 사랑에 마음이 아팠다. 건과 진솔, 애리는 다른 사람의 등을 바라봐야 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쓸쓸하고 울고 싶은지 경험한 사람만 알 일이다.

 


이도우 작가의 글은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가만가만히, 속삭이듯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의 감정을 건드린다. 우리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마음을 홀리게 된다. 타인의 이야기임에도 내 이야기인 것처럼 공감한다. 내 쓸쓸했던 연애를 떠올리고는 진솔과 이건의 사랑에 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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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8-15 2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 아기자기한 화초에 마음을 빼앗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