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연필화 쉽게 하기 - 일반 색연필 기법
김충원 지음 / 진선아트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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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스케치 쉽게 하기』와의 네번째 만남이다. 처음에 『스케치 쉽게 하기』 시리즈를 접했을 때는 자신감이 넘쳐났었다. 오랫동안 미술 교재를 집필해 온 김충원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을 열심히 따라한다면 금새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리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생각만큼, 보는만큼 내 손은 따라가지 못했다. 그리다가 삐뚤삐뚤한 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지우개로 지워버린 그림이 더 많았고, 순서대로 따라하며 연습을 한 것이 아니라 멋진 그림을 그리고픈 마음에 중간 단계를 건너 뛰고 완성품을 그리려고도 했었다.

 

어릴적 노트 한켠에 낙서처럼 작게 그려넣은 그림들, 예쁜 공주들이 그려진 색칠공부 속 그림들, 모두 색연필로 그려 넣은 그림들이었다. 그래서 연필보다는 색연필이 덜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삐뚤삐뚤하게 그려도 귀엽고 깜찍한 그림이 될 것 같고, 실물과 다르게 그려도 나름대로의 멋이 있는 그림이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연필로 그린 그림보다는 더 따스함이 베어나는 그림이 될 것 같았다.

 

무엇이건 '쉽게' 한다는 것에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잘 해야 한다는 집착을 버리는 것이고, 둘째는 상당한 연습을 통해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p. 23)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첫 술에 배가 부르면 안되는게 당연한데, 그걸 바라고 부담없이 색연필을 들었던 나의 기대가 너무 컸었나 보다. 밑그림이 그려져 있는 곳에 채색만 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생각하는 것처럼 색을 혼합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색연필로 그라데이션을 연출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릴적에는 색연필을 가지고 그림을 참 잘 그렸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못 그리는 것 같다. 왜일까. 아무래도 그림을 잘 그리는 누군가의 그림을 보면서 똑같이 그릴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온 사람의 그림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니 내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밖에. 내가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잘 그려야 한다는 집착이 버려지지가 않았다.

 

『색연필화 쉽게 하기』를 덮으면서 나는 『스케치 쉽게 하기 : 기초 드로잉』을 다시 꺼냈다. 이번에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그려보리라. 잘 그려야 한다는 욕심도 잠시 접어두고 말이다.

 

2007/08/2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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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가면 키스를 훔쳐라 - 에로틱 파리 스케치
존 백스터 지음, 이강룡 옮김 / 푸른숲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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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유 궁전, 센강. '파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다. 덕분에 나에게 파리라는 도시는 낭만의 도시이자 문화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물론 나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존 백스터, 그는 호주에서 태어나 일하다가 어느 날 영국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BBC방송국 통신원으로 일하면서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과거에 사랑했던 마리-도를 만나 파리로 건너간다. 비록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에게 파리는 낯선 도시였고, 의사소통도 서툰 곳이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리-도가 있고, 예쁜 아기까지 가지게 되어 백스터는 행복했다. 1939년에 태어난 그가 파리로 건너간 것이 1992년이었으니까, 그의 나이 쉰이 넘었을 때의 일이다. 그는 낭만적인 사람이고, 그가 사랑을 쫓아 온 파리는 낭만의 도시이기에 충분했다.

 

그는 이런 파리를 스케치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가 스케치한 파리는 낭만적이고 문화적인 도시 파리가 아니다. 그는 파리의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도시를 보여준다. 그가 스케치한 것은 바로 '에로틱 파리'이다.

그는 문학 작품이나 영화 속에서 에로틱하게 그려진 파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저명한 인사들이 파리라는 도시에서 유흥을 즐기고 사랑을 나눴던 장소를 소개하고 있다. 포르노 영화의 여주인공이나 아직도 에로틱하게 파리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가 스케치한 것은 파리의 아주 내밀한 모습이며, 그동안 프랑스 출신의 작가들에게조차 들을 수 없던 이야기들이다. 

 

파리 사람들은 일부 사람들의 취향일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일부 사람들이 엽기적이고 변태스러운 성적 취향을 가졌으며, 또 일부 미식가들만 원숭이 스튜나 잘게 썬 앵무새, 꼬챙이에 꿴 비비원숭이 요리를 먹는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도 할말이 있지 않은가. 우리가 먹는 개고기도 일부 사람들의 기호식품일 뿐이라고.

 

낭만적인 사랑을 한 작가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에로틱한 파리를 스케치한 부분은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유명한 작가나 배우들이 머문 장소라 흥미롭기는 했지만, 대체 그곳이 어떤 곳인지 사진 같은 것들이 실려있지 않아서 제대로 상상이 되지 않았다. 문학 작품이나 영화 같은 것들도 접해보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 작가가 설명하는 일부분만을 보고서는 공감이 안되는 부분이 더러 있었다.  

 

이제 파리를 떠올리면, 에펠탑이나 루브르 박물관이 아니라 영화에서 본 '프렌치 키스'가 가장 먼저 생각날 것 같다. 파리, 그곳이 낭만의 도시인지 문화의 도시인지 아니면 에로의 도시인지 직접 내 눈으로 스케치 해보고 싶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옭아맨 것을 뛰어 넘어설 수 있는데도 소심함 때문에 자신에게 한계를 지운다. - 만 레이 -

 

2007/08/17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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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 - 내가 뉴스를, 뉴스가 나를 말하다
김주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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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한 잡지에서 그녀의 새로운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항상 단정한 옷차림에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녀가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다. 평소와는 다른 낯선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그녀가 고등학생 때부터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 왔는가에 대한 글이 기억에 남았다.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에는 그녀가 진행하고 취재했던 뉴스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그 뉴스들을 통해 그녀가 아나운서 겸 기자라는 신분을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흔히 여자 아나운서를 '방송의 꽃'이라고 부른다. 꽃의 역할은 무엇인가. 단순히 그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모셔질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모셔져 있는 '꽃'이길 거부했다. 여느 아나운서들처럼 예능 프로그램을 전전하지 않았다. 그녀는 보도국만 고집했으며, <뉴스데스크>의 여성 앵커에 만족하지 않고 기자의 길을 선택했다.

 

기자가 '3D' 업종 종사자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편한 직업이 아니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반면에 <뉴스데스크>의 앵커는 편한 직업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앵커 또한 편한 직업이 아니었다. 남들은 곤히 자는 시간에 일어나서 뉴스를 준비해야 하기도 하고 벌레, 추위와 싸워야 할 때도 있다. 때론 커다란 가방을 들고 출장을 가야할 때도 있고, 생리적인 욕구를 참아야 할 때도 있었다. 평일에는 앵커로, 주말에는 기자로 뛰어야 했던 그녀는 여느 앵커나 기자보다도 더 힘들었을테지만 기쁘게 활동했다. 

그런 그녀의 열정과 노력이 있었기에, 그녀는 출산 후 <뉴스데스크> 사상 첫 주말 <뉴스데스크> 여성 단독 앵커로 화려하게 복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같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하지만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이들에게 말한다. 진정 원하는 것이 있다면 끝까지 노력하라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만큼 노력해 보라고. (p. 162)

 

사람에게는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며, 잘하는 일이 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일치하는 사람을 우리는 복 받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단 두 가지만 일치하더라도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내가 어떤 일을 가장 좋아하는지조차 잘 모르고 살 때가 많기 때문이다. (p. 177)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나에게는 무엇이 부족했던 것인가.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한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향한 열정과 노력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하고 싶은 일도 없었고, 당연히 그에 따른 열정과 노력도 없었다. 마냥 멋있게만 보이던 그녀의 삶을 부러워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겠다. 앞으로 내 남은 생을 열정적으로 보낼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감사한다.      

 

2007/08/1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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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이화 지음 / 열림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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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창 시절에 우리 역사에 대해 깊게 배우지 못했다. 정치, 사회, 경제, 윤리를 배우는 시간도 극히 적었지만 어차피 나도 싫어하는 과목이고 시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배우는 국사 시간만큼은 달랐다. 적게 편성된 수업 시간도 아쉬웠고, 국사를 가장 싫어한다는 친구도 안타까웠다. 나는 혼자서 역사 책들을 찾아보며 우리 역사를 알고자 노력했다. 내 나름대로 우리 역사에 대해 좀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고, 가끔 우리 역사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울분을 토하기도 했었다.

 

역사는 늘 새롭게 씌어져야 하며 따라서 모든 지난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

- 칼 베커 -

 

딱딱하고 지루한 역사책의 이미지와는 달리 참 예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만만치 않은 책의 두께를 보는 순간 덜컹 겁이 나기도 했다. 한반도의 형성에서부터 6월항쟁까지 나열되어 있는 차례를 보면서 두꺼운 두께에 수긍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두꺼운 두께에 도전하면서 점점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좀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불쑥 불쑥 몰랐던 역사들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특히 근대사를 읽으면서는 곳곳이 지레밭 같았다.

오랫동안 대구에서 살아왔으면서도, 1946년 10월 1일 미군정의 폭정에 시달리다 못한 민중들이 들고 일어났던 '대구 10ㆍ1 사건'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3년 동안 벌어진 한국 전쟁에서의 인적 손실이 2차세계대전과 맞먹는 수준이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1980년 5월 18일 오전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 집결한 학생들을 공수부대원들이 가혹하게 진압한 1차 작전명이 '화려한 휴가'였다는 것도 미처 몰랐었다. 

그동안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는 여러 책들을 통해 찾아보았지만, 한번도 근현대사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980년대에 태어난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1980년대를 경험했었다. 어릴 적 우리집은 시장 근처에 있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정부에서는 노점상들을 대대적으로 단속했고 생계가 곤란해진 노점상인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시위를 했던 것이다. 어린 나는 최루탄의 매운 맛에 눈물 콧물을 다 뺐었다. 1990년대 초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맞은편에는 전문대학이 있었고 학생들이 시위에 나섰다. 그럴 때마다 시위대와 진압대들이 학교 앞에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수업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시위대가 해산 될 때까지 그대로 학교에 발이 묶여 있어야만 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간접적으로나마 나도 8,90년대를 경험했었다. 그렇다면 먼 과거의 일보다는 더 관심을 보여야 했을텐데 그동안 왜 그리도 무관심했는지 모르겠다.

 

오늘날에는 나열식의 평범한 개설서보다 자기 목소리를 담은 개성 있는 내용으로 엮은 역사책이 요구되기도 한다. (p. 11)

 

이 책은 우리가 학창시절 배웠던 국사 교과서를 보다 깊고 넓게 읽는 듯한 느낌이다. 또 교과서처럼 건조한 목소리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전하는 글에서도 밝혔듯이 작가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그에게는 진정한 대통령이 한명도 없었는가보다. 그 어느 대통령에게도 '전(前)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은 국가 간의 전쟁이었으므로 조일전쟁, 조청전쟁으로 불러야 바른 역사 용어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처럼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전체적인 흐름과 개괄적인 사건을 파악하기에 적당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7/08/1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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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정조대왕 - 조선의 이노베이터
이상각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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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화폐에 등장하는 인물이 가장 훌륭한 인물인 줄 알았고, 당연히 왕 중의 왕은 세종대왕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발표한 새로운 지폐에 들어갈 10명의 후보들을 보면서, 새 지폐에서 정조대왕과 정약용 선생을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역사 속 인물들의 경영론이나 리더십을 다룬 책들을 서점가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조선의 이노베이터'라는 부제를 보면서 이 책도 그런 책들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류의 책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주인공이 정조대왕이라는 사실에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

한 장 두 장 책을 읽어 나가면서 만약 이 책을 외면했더라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정조대왕의 경영론이나 개혁론 등에 초점을 맞춘 책이 아니다. 오롯이 한 아버지의 자식이었던 인간 이산, 그리고 한 나라의 아버지였던 정조대왕을 다루고 있다.

 

『조선왕 독살사건』에서 이덕일은 정조대왕의 의문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은 선대왕의 비밀이 담긴 금등지사를 둘러싸고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으며, 정조대왕은 이야기의 중심에서 한발 물러나 있다.

그러나 『이산 정조대왕』에서는 그의 탄생 전부터 죽음 후까지 전반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동안 이 책 저 책을 통해 짜집기를 하다시피 알고 있었던 그의 삶이 통째로 담겨져 있다. 역사란 어느 한 부분만을 떼어내서는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제대로 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전 추수밭에서 나온 '엽기 시리즈'의 역사책들을 읽은 적이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엽기적이었다기보다는 역사를 이야기하는 말투가 엽기적이어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용을 보건대 『이산 정조대왕』은 정통 역사서임이 분명했다. 그런 생각으로 책을 읽다가,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현대적인 말투와 맞닥뜨리는 순간의 놀라움이란. 다행히 '엽기 시리즈'처럼 불편할 정도로 엽기적인 말투는 아니었고, 이 정도면 깜찍하게 봐 줄 수 있겠다 싶었다. 아무튼 역사를 이야기하는 엽기적인 말투는 추수밭의 트레이드 마크인가보다. 

 

지금은 이렇게 위대한 대왕이라고 추앙 받으며 후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정조대왕은 외로운 왕이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죽는 모습을 목격하고 아버지의 신원을 스스로 회복하고 평화롭게 살고자 했던 그, 누구보다 백성을 사랑해서 백성의 말에 귀 기울이고 백성을 위해 살고자 했던 그였지만 신하들은 물론 할아버지(영조), 할머니(정순왕후), 어머니(혜경궁 홍씨)까지 권력이 두려워 그를 외면했다. 그리고 그 권력 때문에 그가 평생 염원했던 일까지 죽음으로 사그라지고 말았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법은 없다고 모두들 말한다. 그래도 '만약에' 사도세자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고 수순대로 왕이 되었더라면, 마흔 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정조대왕이 행했던 '개혁'은 사도세자의 손에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지금처럼 그가 '개혁 군주'라고 주목받는 일도 없을테지. 정조대왕의 꿈이 실현 직전에 원상 복구된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감히 만약이라는 가정법으로 입에 올려본다. 엯

 

 ...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점으로 인해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정조 독살설에서 시선을 떼놓으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한 시대의 희망을 온전하게 그려냈던, 그리고 극적인 순간에 허망하게 가버린 개혁군주 정조에 대한 애달픈 송사가 아닐까. (p. 101)

 

2007/08/09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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