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 이야기 - 진귀한 그림, 사진과 함께 보는 상징의 재발견
잭 트레시더 지음, 김병화 옮김 / 도솔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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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내게 단군 신화는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를 듯는 것처럼 그저 평범한 동화로 느껴졌다. 학년이 오르고 국사 과목을 배우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신화 속에 숨어있는 수많은 상징들을 알게 되었다. 『다빈치 코드』에서 주인공 로버트 랭던은 대학에서 상징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의문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그 의문을 푸는 열쇠는 수많은 상징들을 읽어내는 것이었다.
이렇듯 상징은 우리 도처에 널려 있으며, 그 상징들만을 공부하는 학문이 따로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다.

얼마전, '적신월사'라는 낯선 단어가 검색어 순위에 오른 적이 있었다. 초승달은 이슬람 제국이 등장하기 오래전부터 사용된 상징으로, 십자군 원정 때부터 기독교도의 십자가에 상응하는 상징이 되었으며 오늘날은 적십자에 맞먹는 존재가 되었다. '초승달'이 지니고 있었던 상징을 미리 알았더라면, '적신월사'라는 단어가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최근들어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타로 카드점은 지극히 상징적인 이미지가 그려져 있는 78장의 카드를 해석하는 것이다.

대학시절 광고를 배우면서 나는 상징과 관련된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광고 심의 기준 때문에 겉으로는 드러낼 수 없지만, 우리가 보는 광고들 속에도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수많은 상징들이 숨어있다. 비록 인간의 뇌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억해 내지는 못하지만 본능적으로 인지는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숨겨놓는 것이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무수한 상징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전에는 몰랐기 때문에 아무런 감흥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지만, 알고 나면 '아, 그래서 그랬구나'하며 무릎을 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색색의 시각적인 자료들이 많다. 그러나 생각보다 쉽고 가볍게 읽혀지지는 않는다. 상징에 대해 보다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수많은 상징들로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그 상징들을 모르고도 살 수 있다. 그러나 그 상징들을 읽어낸다면 우리 주변은 풍부한 이야기들로 가득할 것이며, 남들은 알지 못하는 비밀 이야기들을 갖게 될 것이다.

2007/08/29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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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 김처선
이수광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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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라고 하면 으레 여자처럼 가늘고 떨리는 목소리에 수염 없는 밋밋한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항상 누군가에게 굽신거리며 꼿꼿하게 허리 펼날이 없는 그들. 모르는 사람들은 남자 구실도 못하는 사람이라며 비웃곤 한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왕의 최측근으로, 마음만 먹으면 한 나라의 왕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최고 권력자이다. 조정 대신들이 권력 때문에 다툼을 벌이듯, 그들에게도 권력 때문에 피바람이 불곤 한다.

내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중국의 환관 사마 천 때문이다. 황제를 노엽게 한 그는 남자로서는 가장 치욕스러운 형벌인 궁형을 받게 된다. 유학자였던 그는 궁형을 받았을 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야 했지만,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치욕을 감당해 낸다. 결국 그는 『사기』를 완성했고, 환관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비록 그는 남들처럼 태어나면서부터, 혹은 어릴적부터 고자는 아니었다. 게다가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시가 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사마 천으로 인해 그동안 줏대없고 나약하게만 보였던 내시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연산군을 보필했던 내시 김처선은 지금까지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보아왔던 내시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굵직하고 무게감 있는 배우 장항선이 내시 역을 맡았다. 극중에서 그는 감히 왕인 연산군에게 직언을 하기도 한다.
얼마전부터 방영되기 시작한 동명의 드라마 <왕과 나>는 그동안 역사의 뒤켠에서 단역 밖에 할 수 없었던 그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책과 같은 제목의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상황 설정은 다른듯 하다.

김처선, 그는 세종 때 궁으로 들어가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까지 모두 7대의 왕을 모셨다. 사실 어릴 적 그의 기록은 남아있는 것이 없다. 언제 태어나서, 어떻게 내시가 되었는지는 남아있지 않고 왕을 모시면서부터의 기록만이 남아있다.
김처선은 강직한 성품 때문에 왕들에게 곧잘 직언을 퍼부었다. 덕분에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면서도 형벌을 받고 궁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어린 연산군을 지키겠다던 폐비 윤씨와의 약속 때문에 죽음을 무릎쓰며 어린 연산군을 업어 키웠음에도 연산군에게 종종 매질을 당했다. 결국 그는 주지육림을 일삼는 연산군에게 직언을 퍼붓다가 혀와 사지가 찢기는 끔찍한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이 책을 통해 작가 이수광은 또 한명의 조연을 전면에 세웠다. 비록 그녀는 한 나라의 국모였고, 왕의 어머니였지만 너무나도 패악하여 폐비가 되었고, 사사를 당했다. 항상 패악스럽고 시기심 강한 왕비로만 그려졌던 폐비 윤씨, 이 책은 그녀의 편에 서서 그녀가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역사소설만 연이어 세 편을 읽었다. 항상 역사소설을 읽고나면 궁금증 때문에 책에서 쉽게 헤어나올 수가 없다. 이 책 또한 픽션과 팩션의 경계를 찾아내려는 나를 여전히 붙들고 있다. 그 경계가 어디가 되었든 항상 새로운 지식과 재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역사소설의 깊은 늪으로 나를 빠져들게 만드는게 아닐까.

2007/08/29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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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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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홍도와 신윤복.
비록 그림에 깊은 조예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 두 사람의 그림쯤은 한눈에 가려낼 수 있으리라. 김홍도는 강하고 거친 선과 단조로운 색을 이용해 서민들의 삶을 투박하게 그려냈다. 반면에 신윤복은 세밀한 선과 화려한 색, 원근감을 이용해 양반과 여인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하나씩 따로보면 그저 투박한 그림이고 그저 섬세하고 화려한 그림일 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그림을 함께 놓고 보면 그림 자체로도 백성 혹은 양반과 여인네들을 느낄 수 있다.

어릴적에 그들의 그림을 보면서 신윤복은 분명이 여자일거라고 생각했었다. 여느 그림들과는 달리 여인들이 주인공이었던 그의 그림, 너무나도 예쁜 색감과 섬세한 선들, 분명 그림을 보면 그가 여자일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 본 백과사전에서 "신윤복 부자(父子)는 모두 도화서 화원"이라는 글을 발견하고는 놀랐던 적이 있다.
도화서는 예조 산하의 국가기관으로 조선시대 회화를 관장했던 곳이다. 도화서의 화원들은 각종 행사에 필요한 그림이나 그 행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그림, 왕의 초상화인 어진화사 등을 그렸다. 물론 어진화사는 화원 중에서도 최고의 화원만이 그릴 수 있었다.
단원 김홍도는 영조 때 왕세손의 어진사화를 그렸고, 정조 때는 왕의 어진사화를 그리며 도화서에서 천재 화원으로 꼽혔다. 그러나 꼿꼿한 성격 덕분에 천재 화원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대접을 받기는 커녕 어린 화원들을 가르치는 교수 일을 했다.
혜원 신윤복은 3대가 도화서 화원이었던 집안의 둘째로 태어나 형 신영복과 함께 도화서 화원이 된다. 당시 도화서 화원이라면 그림을 그리는데도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했고, 그 규칙 때문에 틀에 박힌 그림들만 그릴 수 밖에 없었다. 어릴적부터 재능이 출중했던 신윤복은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그림을 그리다가 도화서에서 쫓겨날 뻔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천재를 알아보고 키워주려 했던 스승 김홍도가 있었고, 아우의 천재성을 시기하기보다는 지켜주려 했던 형 신영복이 있었다.

"지금껏 어떤 조색공도 만들지 못한 새로운 색을 만들고, 그 색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 그것이 내 꿈이야."
"그래. 형이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세상 누구도 보지 못한 색들이 뒤척이는 그림을 그릴 거야. 어던 화원도 그리지 못한 그림을 말이야." (p. 142)

언제나 천재는 외로운 법이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지금까지 이어온 화풍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대립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는 또 한명의 든든한 천재가 버티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선의 이노베이터인 정조 대왕이다. 백성을 아꼈던 정조는 글 나부랭이가 아닌 그들의 그림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보길 원했고 그들이 거리의 화원이 되길 원했다. 그들의 그림은 보이는 것을 머리 속에서 관념화해 그린 것이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 그려냈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진실했다.

"예술은 머릿속에도, 서안 위에도, 도화서의 낡은 양식에도 있지 않다. 거리의 물 긷는 아낙의 미소에, 봇짐을 진 장사치의 어깨 위에 있다. 그러니 너희는 거리의 화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p. 156)

그러나 신윤복은 웃고 있는 왕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린 어진사화 때문에 결국 도화서에서 쫓겨난다. 사실 그는 틀에 박힌 그림 밖에 그릴 수 없는 도화서에서 쫓겨나고 싶었다. 도화서에서 쫓겨난 그는 그리고픈 그림들을 마음껏 그린다.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그림이라면, 어찌 먹으로 그린 검은 소나무를 푸른 소나무라 할 것인가. 검은 것을 푸르다 하고, 흰 것을 붉다 하니 그림을 그리는 자도, 그림을 즐긴다는 양반 호사가도 뻔한 거짓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p. 113)

난 먼저 작가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작가가 기막힌 반전으로 설정한 것, 그것은 바로 어릴적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보지 못한 혼자만의 생각이었는데, 나랑 같은 생각을 한 작가를 만나서 너무나도 반갑고 놀라웠다. 게다가 이야기의 전개도 아주 빠르다. 잠시 숨 돌릴 겨를이 없이 읽혀졌다고나 할까.

이 책에는 한가지의 재미가 더 있다. 책 요소요소에서 김홍도와 신윤복의 생생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는 방법과 그림에 담긴 이야기까지 친절하게 들려주고 있다. 자칫하면 지루하게 전개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작가는 오히려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시켜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바람처럼 소리없이, 바람처럼 서늘하게 사라진 신윤복, 그를 그리워하는 노스승 김홍도. 그들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그들의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나에게로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천재 화원이었던 그들의 인간적인 삶을 소설이라는 장치를 빌려야만 볼 수 있다는 아쉬움도 떠오를 것이다.

2007/08/2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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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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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와 신윤복.
비록 그림에 깊은 조예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 두 사람의 그림쯤은 한눈에 가려낼 수 있으리라. 김홍도는 강하고 거친 선과 단조로운 색을 이용해 서민들의 삶을 투박하게 그려냈다. 반면에 신윤복은 세밀한 선과 화려한 색, 원근감을 이용해 양반과 여인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하나씩 따로보면 그저 투박한 그림이고 그저 섬세하고 화려한 그림일 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그림을 함께 놓고 보면 그림 자체로도 백성 혹은 양반과 여인네들을 느낄 수 있다.

어릴적에 그들의 그림을 보면서 신윤복은 분명이 여자일거라고 생각했었다. 여느 그림들과는 달리 여인들이 주인공이었던 그의 그림, 너무나도 예쁜 색감과 섬세한 선들, 분명 그림을 보면 그가 여자일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 본 백과사전에서 "신윤복 부자(父子)는 모두 도화서 화원"이라는 글을 발견하고는 놀랐던 적이 있다.
도화서는 예조 산하의 국가기관으로 조선시대 회화를 관장했던 곳이다. 도화서의 화원들은 각종 행사에 필요한 그림이나 그 행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그림, 왕의 초상화인 어진화사 등을 그렸다. 물론 어진화사는 화원 중에서도 최고의 화원만이 그릴 수 있었다.
단원 김홍도는 영조 때 왕세손의 어진사화를 그렸고, 정조 때는 왕의 어진사화를 그리며 도화서에서 천재 화원으로 꼽혔다. 그러나 꼿꼿한 성격 덕분에 천재 화원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대접을 받기는 커녕 어린 화원들을 가르치는 교수 일을 했다.
혜원 신윤복은 3대가 도화서 화원이었던 집안의 둘째로 태어나 형 신영복과 함께 도화서 화원이 된다. 당시 도화서 화원이라면 그림을 그리는데도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했고, 그 규칙 때문에 틀에 박힌 그림들만 그릴 수 밖에 없었다. 어릴적부터 재능이 출중했던 신윤복은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그림을 그리다가 도화서에서 쫓겨날 뻔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천재를 알아보고 키워주려 했던 스승 김홍도가 있었고, 아우의 천재성을 시기하기보다는 지켜주려 했던 형 신영복이 있었다.

"지금껏 어떤 조색공도 만들지 못한 새로운 색을 만들고, 그 색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 그것이 내 꿈이야."
"그래. 형이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세상 누구도 보지 못한 색들이 뒤척이는 그림을 그릴 거야. 어던 화원도 그리지 못한 그림을 말이야." (p. 142)

언제나 천재는 외로운 법이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지금까지 이어온 화풍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대립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는 또 한명의 든든한 천재가 버티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선의 이노베이터인 정조 대왕이다. 백성을 아꼈던 정조는 글 나부랭이가 아닌 그들의 그림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보길 원했고 그들이 거리의 화원이 되길 원했다. 그들의 그림은 보이는 것을 머리 속에서 관념화해 그린 것이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 그려냈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진실했다.

"예술은 머릿속에도, 서안 위에도, 도화서의 낡은 양식에도 있지 않다. 거리의 물 긷는 아낙의 미소에, 봇짐을 진 장사치의 어깨 위에 있다. 그러니 너희는 거리의 화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p. 156)

그러나 신윤복은 웃고 있는 왕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린 어진사화 때문에 결국 도화서에서 쫓겨난다. 사실 그는 틀에 박힌 그림 밖에 그릴 수 없는 도화서에서 쫓겨나고 싶었다. 도화서에서 쫓겨난 그는 그리고픈 그림들을 마음껏 그린다.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그림이라면, 어찌 먹으로 그린 검은 소나무를 푸른 소나무라 할 것인가. 검은 것을 푸르다 하고, 흰 것을 붉다 하니 그림을 그리는 자도, 그림을 즐긴다는 양반 호사가도 뻔한 거짓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p. 113)

난 먼저 작가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작가가 기막힌 반전으로 설정한 것, 그것은 바로 어릴적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보지 못한 혼자만의 생각이었는데, 나랑 같은 생각을 한 작가를 만나서 너무나도 반갑고 놀라웠다. 게다가 이야기의 전개도 아주 빠르다. 잠시 숨 돌릴 겨를이 없이 읽혀졌다고나 할까.

이 책에는 한가지의 재미가 더 있다. 책 요소요소에서 김홍도와 신윤복의 생생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는 방법과 그림에 담긴 이야기까지 친절하게 들려주고 있다. 자칫하면 지루하게 전개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작가는 오히려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시켜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바람처럼 소리없이, 바람처럼 서늘하게 사라진 신윤복, 그를 그리워하는 노스승 김홍도. 그들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그들의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나에게로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천재 화원이었던 그들의 인간적인 삶을 소설이라는 장치를 빌려야만 볼 수 있다는 아쉬움도 떠오를 것이다.

2007/08/2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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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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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와 신윤복.
비록 그림에 깊은 조예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 두 사람의 그림쯤은 한눈에 가려낼 수 있으리라. 김홍도는 강하고 거친 선과 단조로운 색을 이용해 서민들의 삶을 투박하게 그려냈다. 반면에 신윤복은 세밀한 선과 화려한 색, 원근감을 이용해 양반과 여인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하나씩 따로보면 그저 투박한 그림이고 그저 섬세하고 화려한 그림일 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그림을 함께 놓고 보면 그림 자체로도 백성 혹은 양반과 여인네들을 느낄 수 있다.

어릴적에 그들의 그림을 보면서 신윤복은 분명이 여자일거라고 생각했었다. 여느 그림들과는 달리 여인들이 주인공이었던 그의 그림, 너무나도 예쁜 색감과 섬세한 선들, 분명 그림을 보면 그가 여자일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 본 백과사전에서 "신윤복 부자(父子)는 모두 도화서 화원"이라는 글을 발견하고는 놀랐던 적이 있다.
도화서는 예조 산하의 국가기관으로 조선시대 회화를 관장했던 곳이다. 도화서의 화원들은 각종 행사에 필요한 그림이나 그 행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그림, 왕의 초상화인 어진화사 등을 그렸다. 물론 어진화사는 화원 중에서도 최고의 화원만이 그릴 수 있었다.
단원 김홍도는 영조 때 왕세손의 어진사화를 그렸고, 정조 때는 왕의 어진사화를 그리며 도화서에서 천재 화원으로 꼽혔다. 그러나 꼿꼿한 성격 덕분에 천재 화원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대접을 받기는 커녕 어린 화원들을 가르치는 교수 일을 했다.
혜원 신윤복은 3대가 도화서 화원이었던 집안의 둘째로 태어나 형 신영복과 함께 도화서 화원이 된다. 당시 도화서 화원이라면 그림을 그리는데도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했고, 그 규칙 때문에 틀에 박힌 그림들만 그릴 수 밖에 없었다. 어릴적부터 재능이 출중했던 신윤복은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그림을 그리다가 도화서에서 쫓겨날 뻔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천재를 알아보고 키워주려 했던 스승 김홍도가 있었고, 아우의 천재성을 시기하기보다는 지켜주려 했던 형 신영복이 있었다.

"지금껏 어떤 조색공도 만들지 못한 새로운 색을 만들고, 그 색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 그것이 내 꿈이야."
"그래. 형이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세상 누구도 보지 못한 색들이 뒤척이는 그림을 그릴 거야. 어던 화원도 그리지 못한 그림을 말이야." (p. 142)

언제나 천재는 외로운 법이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지금까지 이어온 화풍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대립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는 또 한명의 든든한 천재가 버티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선의 이노베이터인 정조 대왕이다. 백성을 아꼈던 정조는 글 나부랭이가 아닌 그들의 그림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보길 원했고 그들이 거리의 화원이 되길 원했다. 그들의 그림은 보이는 것을 머리 속에서 관념화해 그린 것이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 그려냈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진실했다.

"예술은 머릿속에도, 서안 위에도, 도화서의 낡은 양식에도 있지 않다. 거리의 물 긷는 아낙의 미소에, 봇짐을 진 장사치의 어깨 위에 있다. 그러니 너희는 거리의 화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p. 156)

그러나 신윤복은 웃고 있는 왕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린 어진사화 때문에 결국 도화서에서 쫓겨난다. 사실 그는 틀에 박힌 그림 밖에 그릴 수 없는 도화서에서 쫓겨나고 싶었다. 도화서에서 쫓겨난 그는 그리고픈 그림들을 마음껏 그린다.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그림이라면, 어찌 먹으로 그린 검은 소나무를 푸른 소나무라 할 것인가. 검은 것을 푸르다 하고, 흰 것을 붉다 하니 그림을 그리는 자도, 그림을 즐긴다는 양반 호사가도 뻔한 거짓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p. 113)

난 먼저 작가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작가가 기막힌 반전으로 설정한 것, 그것은 바로 어릴적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보지 못한 혼자만의 생각이었는데, 나랑 같은 생각을 한 작가를 만나서 너무나도 반갑고 놀라웠다. 게다가 이야기의 전개도 아주 빠르다. 잠시 숨 돌릴 겨를이 없이 읽혀졌다고나 할까.

이 책에는 한가지의 재미가 더 있다. 책 요소요소에서 김홍도와 신윤복의 생생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는 방법과 그림에 담긴 이야기까지 친절하게 들려주고 있다. 자칫하면 지루하게 전개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작가는 오히려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시켜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바람처럼 소리없이, 바람처럼 서늘하게 사라진 신윤복, 그를 그리워하는 노스승 김홍도. 그들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그들의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나에게로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천재 화원이었던 그들의 인간적인 삶을 소설이라는 장치를 빌려야만 볼 수 있다는 아쉬움도 떠오를 것이다.

2007/08/2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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