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김홍도와 신윤복.
비록 그림에 깊은 조예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 두 사람의 그림쯤은 한눈에 가려낼 수 있으리라. 김홍도는 강하고 거친 선과 단조로운 색을 이용해 서민들의 삶을 투박하게 그려냈다. 반면에 신윤복은 세밀한 선과 화려한 색, 원근감을 이용해 양반과 여인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하나씩 따로보면 그저 투박한 그림이고 그저 섬세하고 화려한 그림일 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그림을 함께 놓고 보면 그림 자체로도 백성 혹은 양반과 여인네들을 느낄 수 있다.

어릴적에 그들의 그림을 보면서 신윤복은 분명이 여자일거라고 생각했었다. 여느 그림들과는 달리 여인들이 주인공이었던 그의 그림, 너무나도 예쁜 색감과 섬세한 선들, 분명 그림을 보면 그가 여자일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 본 백과사전에서 "신윤복 부자(父子)는 모두 도화서 화원"이라는 글을 발견하고는 놀랐던 적이 있다.
도화서는 예조 산하의 국가기관으로 조선시대 회화를 관장했던 곳이다. 도화서의 화원들은 각종 행사에 필요한 그림이나 그 행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그림, 왕의 초상화인 어진화사 등을 그렸다. 물론 어진화사는 화원 중에서도 최고의 화원만이 그릴 수 있었다.
단원 김홍도는 영조 때 왕세손의 어진사화를 그렸고, 정조 때는 왕의 어진사화를 그리며 도화서에서 천재 화원으로 꼽혔다. 그러나 꼿꼿한 성격 덕분에 천재 화원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대접을 받기는 커녕 어린 화원들을 가르치는 교수 일을 했다.
혜원 신윤복은 3대가 도화서 화원이었던 집안의 둘째로 태어나 형 신영복과 함께 도화서 화원이 된다. 당시 도화서 화원이라면 그림을 그리는데도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했고, 그 규칙 때문에 틀에 박힌 그림들만 그릴 수 밖에 없었다. 어릴적부터 재능이 출중했던 신윤복은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그림을 그리다가 도화서에서 쫓겨날 뻔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천재를 알아보고 키워주려 했던 스승 김홍도가 있었고, 아우의 천재성을 시기하기보다는 지켜주려 했던 형 신영복이 있었다.

"지금껏 어떤 조색공도 만들지 못한 새로운 색을 만들고, 그 색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 그것이 내 꿈이야."
"그래. 형이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세상 누구도 보지 못한 색들이 뒤척이는 그림을 그릴 거야. 어던 화원도 그리지 못한 그림을 말이야." (p. 142)

언제나 천재는 외로운 법이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지금까지 이어온 화풍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대립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는 또 한명의 든든한 천재가 버티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선의 이노베이터인 정조 대왕이다. 백성을 아꼈던 정조는 글 나부랭이가 아닌 그들의 그림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보길 원했고 그들이 거리의 화원이 되길 원했다. 그들의 그림은 보이는 것을 머리 속에서 관념화해 그린 것이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 그려냈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진실했다.

"예술은 머릿속에도, 서안 위에도, 도화서의 낡은 양식에도 있지 않다. 거리의 물 긷는 아낙의 미소에, 봇짐을 진 장사치의 어깨 위에 있다. 그러니 너희는 거리의 화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p. 156)

그러나 신윤복은 웃고 있는 왕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린 어진사화 때문에 결국 도화서에서 쫓겨난다. 사실 그는 틀에 박힌 그림 밖에 그릴 수 없는 도화서에서 쫓겨나고 싶었다. 도화서에서 쫓겨난 그는 그리고픈 그림들을 마음껏 그린다.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그림이라면, 어찌 먹으로 그린 검은 소나무를 푸른 소나무라 할 것인가. 검은 것을 푸르다 하고, 흰 것을 붉다 하니 그림을 그리는 자도, 그림을 즐긴다는 양반 호사가도 뻔한 거짓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p. 113)

난 먼저 작가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작가가 기막힌 반전으로 설정한 것, 그것은 바로 어릴적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보지 못한 혼자만의 생각이었는데, 나랑 같은 생각을 한 작가를 만나서 너무나도 반갑고 놀라웠다. 게다가 이야기의 전개도 아주 빠르다. 잠시 숨 돌릴 겨를이 없이 읽혀졌다고나 할까.

이 책에는 한가지의 재미가 더 있다. 책 요소요소에서 김홍도와 신윤복의 생생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는 방법과 그림에 담긴 이야기까지 친절하게 들려주고 있다. 자칫하면 지루하게 전개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작가는 오히려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시켜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바람처럼 소리없이, 바람처럼 서늘하게 사라진 신윤복, 그를 그리워하는 노스승 김홍도. 그들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그들의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나에게로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천재 화원이었던 그들의 인간적인 삶을 소설이라는 장치를 빌려야만 볼 수 있다는 아쉬움도 떠오를 것이다.

2007/08/2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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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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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와 신윤복.
비록 그림에 깊은 조예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 두 사람의 그림쯤은 한눈에 가려낼 수 있으리라. 김홍도는 강하고 거친 선과 단조로운 색을 이용해 서민들의 삶을 투박하게 그려냈다. 반면에 신윤복은 세밀한 선과 화려한 색, 원근감을 이용해 양반과 여인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하나씩 따로보면 그저 투박한 그림이고 그저 섬세하고 화려한 그림일 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그림을 함께 놓고 보면 그림 자체로도 백성 혹은 양반과 여인네들을 느낄 수 있다.

어릴적에 그들의 그림을 보면서 신윤복은 분명이 여자일거라고 생각했었다. 여느 그림들과는 달리 여인들이 주인공이었던 그의 그림, 너무나도 예쁜 색감과 섬세한 선들, 분명 그림을 보면 그가 여자일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 본 백과사전에서 "신윤복 부자(父子)는 모두 도화서 화원"이라는 글을 발견하고는 놀랐던 적이 있다.
도화서는 예조 산하의 국가기관으로 조선시대 회화를 관장했던 곳이다. 도화서의 화원들은 각종 행사에 필요한 그림이나 그 행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그림, 왕의 초상화인 어진화사 등을 그렸다. 물론 어진화사는 화원 중에서도 최고의 화원만이 그릴 수 있었다.
단원 김홍도는 영조 때 왕세손의 어진사화를 그렸고, 정조 때는 왕의 어진사화를 그리며 도화서에서 천재 화원으로 꼽혔다. 그러나 꼿꼿한 성격 덕분에 천재 화원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대접을 받기는 커녕 어린 화원들을 가르치는 교수 일을 했다.
혜원 신윤복은 3대가 도화서 화원이었던 집안의 둘째로 태어나 형 신영복과 함께 도화서 화원이 된다. 당시 도화서 화원이라면 그림을 그리는데도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했고, 그 규칙 때문에 틀에 박힌 그림들만 그릴 수 밖에 없었다. 어릴적부터 재능이 출중했던 신윤복은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그림을 그리다가 도화서에서 쫓겨날 뻔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천재를 알아보고 키워주려 했던 스승 김홍도가 있었고, 아우의 천재성을 시기하기보다는 지켜주려 했던 형 신영복이 있었다.

"지금껏 어떤 조색공도 만들지 못한 새로운 색을 만들고, 그 색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 그것이 내 꿈이야."
"그래. 형이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세상 누구도 보지 못한 색들이 뒤척이는 그림을 그릴 거야. 어던 화원도 그리지 못한 그림을 말이야." (p. 142)

언제나 천재는 외로운 법이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지금까지 이어온 화풍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대립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는 또 한명의 든든한 천재가 버티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선의 이노베이터인 정조 대왕이다. 백성을 아꼈던 정조는 글 나부랭이가 아닌 그들의 그림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보길 원했고 그들이 거리의 화원이 되길 원했다. 그들의 그림은 보이는 것을 머리 속에서 관념화해 그린 것이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 그려냈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진실했다.

"예술은 머릿속에도, 서안 위에도, 도화서의 낡은 양식에도 있지 않다. 거리의 물 긷는 아낙의 미소에, 봇짐을 진 장사치의 어깨 위에 있다. 그러니 너희는 거리의 화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p. 156)

그러나 신윤복은 웃고 있는 왕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린 어진사화 때문에 결국 도화서에서 쫓겨난다. 사실 그는 틀에 박힌 그림 밖에 그릴 수 없는 도화서에서 쫓겨나고 싶었다. 도화서에서 쫓겨난 그는 그리고픈 그림들을 마음껏 그린다.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그림이라면, 어찌 먹으로 그린 검은 소나무를 푸른 소나무라 할 것인가. 검은 것을 푸르다 하고, 흰 것을 붉다 하니 그림을 그리는 자도, 그림을 즐긴다는 양반 호사가도 뻔한 거짓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p. 113)

난 먼저 작가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작가가 기막힌 반전으로 설정한 것, 그것은 바로 어릴적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보지 못한 혼자만의 생각이었는데, 나랑 같은 생각을 한 작가를 만나서 너무나도 반갑고 놀라웠다. 게다가 이야기의 전개도 아주 빠르다. 잠시 숨 돌릴 겨를이 없이 읽혀졌다고나 할까.

이 책에는 한가지의 재미가 더 있다. 책 요소요소에서 김홍도와 신윤복의 생생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는 방법과 그림에 담긴 이야기까지 친절하게 들려주고 있다. 자칫하면 지루하게 전개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작가는 오히려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시켜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바람처럼 소리없이, 바람처럼 서늘하게 사라진 신윤복, 그를 그리워하는 노스승 김홍도. 그들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그들의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나에게로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천재 화원이었던 그들의 인간적인 삶을 소설이라는 장치를 빌려야만 볼 수 있다는 아쉬움도 떠오를 것이다.

2007/08/2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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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1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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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와 세한도(歲寒圖)

 



 



 

세한도, 조선 후기 뛰어난 명필가였던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생활을 할 때 그린 그림이다.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다. 명필가였다는 것과 그가 그린 그림 이름이 세한도라는 것.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이 그림을 접했을 때는, 한겨울의 세찬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서있는 나무의 절개보다는 명필가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이미 이름난 명필가였기 때문에 굳이 그림에는 집착할 필요가 없었을까. 아님 그로 인해 생긴 명필가의 여유였을까.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쓴 글과는 달리 오히려 그림에서는 성긂이 느껴진다. 그가 그린 초가삼간은 어릴적 크레파스로 그린 집보다도 더 단순해 보인다.

 

천재 VS 인간

증조부가 영조의 사위였던 추사는 7살 때 대문 앞에 써놓은 입춘문을 보고 채제공이 '글씨로 장차 큰 이름을 드날릴 것'이라고 예언할 정도로 어릴 적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요즘 입시생들처럼 당시에도 과거시험을 위해 과거에 필요한 부분만 공부를 하는 서생들과는 달리, 추사는 조급해 하지도 않고 서책들을 통째로 읽고 외우며 배웠다. 그는 급제에 필요한 유학 뿐만이 아니라 실학과 불교에도 밝았으며, 당시까지 '무학 대사의 비'로 알려진 것을 '진흥왕 순수비'라고 증명해 냈다.

평생 책만 읽고 글을 쓰면서 살 것만 같았던 그에게도 권력의 힘이 작용한다. 경주 김씨였던 그는 당시 왕까지도 쥐락펴락했던 안동 김씨의 세도에 밀려 쉰넷의 나이에 제주도 유배길에 오른다. 그곳에서 그가 버틸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은 바로 글을 쓰는 것이었다. 마음이 괴로울 때도, 몸이 힘들 때도 글을 쓰며 다잡았다. 

 

그가 제주도 유배지에 있을 때 추사의 집을 드나들었던 조희룡이 수십장의 난초를 쳐 그를 찾아온다. 그는 난초 친 것들을 그에게 보이며 추사의 조언을 구한다. 추사가 보기에 조희룡의 난은 실물과 똑같았지만, 그것은 선비의 그림이 아니었다. 추사는 실물을 보고 똑같이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것을 그려내야 한다고 했다. 똑같이 그려낸 것은 그저 환쟁이의 그림일 뿐, 정신이 깃든 선비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책을 덮고 다시 본 세한도는 달리 보였다. 여유로움을 넘어 성긂마저 느껴졌던 세한도는 추사가 온 정신을 다해 그린 것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나는 마음을 잃어버린 추사 김정희이다. 그대는 나를 그리되 나를 그리지 말고 그대의 태허 같은 텅 빈 마음을 그리시게." (본문 中)

 

『추사』, 이 책은 명필가였던 그의 행동과 마음가짐을 그려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 가정의 가장이고, 또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절친한 지기였던 추사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을 것만 같았던 그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그가 어떤 고뇌를 겪으며 천재 명필가로의 완성에 이르렀는지를 엿볼 수 있다.

 

작가에 대해 한가지 더 보태자면, 추사의 이야기가 궁금해 이 책을 선택한 이유도 있었지만 한승원이라는 작가가 주는 믿음 때문도 있었다. 역시 작가는 그 믿음을 뿌리치지 않았다. 여느 책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곱고 예쁜 우리말들을 찾아내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추사처럼 차를 좋아하는 작가의 내공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2007/08/26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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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연필화 쉽게 하기 - 일반 색연필 기법
김충원 지음 / 진선아트북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벌써 『스케치 쉽게 하기』와의 네번째 만남이다. 처음에 『스케치 쉽게 하기』 시리즈를 접했을 때는 자신감이 넘쳐났었다. 오랫동안 미술 교재를 집필해 온 김충원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을 열심히 따라한다면 금새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리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생각만큼, 보는만큼 내 손은 따라가지 못했다. 그리다가 삐뚤삐뚤한 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지우개로 지워버린 그림이 더 많았고, 순서대로 따라하며 연습을 한 것이 아니라 멋진 그림을 그리고픈 마음에 중간 단계를 건너 뛰고 완성품을 그리려고도 했었다.

 

어릴적 노트 한켠에 낙서처럼 작게 그려넣은 그림들, 예쁜 공주들이 그려진 색칠공부 속 그림들, 모두 색연필로 그려 넣은 그림들이었다. 그래서 연필보다는 색연필이 덜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삐뚤삐뚤하게 그려도 귀엽고 깜찍한 그림이 될 것 같고, 실물과 다르게 그려도 나름대로의 멋이 있는 그림이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연필로 그린 그림보다는 더 따스함이 베어나는 그림이 될 것 같았다.

 

무엇이건 '쉽게' 한다는 것에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잘 해야 한다는 집착을 버리는 것이고, 둘째는 상당한 연습을 통해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p. 23)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첫 술에 배가 부르면 안되는게 당연한데, 그걸 바라고 부담없이 색연필을 들었던 나의 기대가 너무 컸었나 보다. 밑그림이 그려져 있는 곳에 채색만 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생각하는 것처럼 색을 혼합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색연필로 그라데이션을 연출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릴적에는 색연필을 가지고 그림을 참 잘 그렸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못 그리는 것 같다. 왜일까. 아무래도 그림을 잘 그리는 누군가의 그림을 보면서 똑같이 그릴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온 사람의 그림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니 내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밖에. 내가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잘 그려야 한다는 집착이 버려지지가 않았다.

 

『색연필화 쉽게 하기』를 덮으면서 나는 『스케치 쉽게 하기 : 기초 드로잉』을 다시 꺼냈다. 이번에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그려보리라. 잘 그려야 한다는 욕심도 잠시 접어두고 말이다.

 

2007/08/2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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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연필화 쉽게 하기 - 일반 색연필 기법
김충원 지음 / 진선아트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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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벌써 『스케치 쉽게 하기』와의 네번째 만남이다. 처음에 『스케치 쉽게 하기』 시리즈를 접했을 때는 자신감이 넘쳐났었다. 오랫동안 미술 교재를 집필해 온 김충원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을 열심히 따라한다면 금새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리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생각만큼, 보는만큼 내 손은 따라가지 못했다. 그리다가 삐뚤삐뚤한 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지우개로 지워버린 그림이 더 많았고, 순서대로 따라하며 연습을 한 것이 아니라 멋진 그림을 그리고픈 마음에 중간 단계를 건너 뛰고 완성품을 그리려고도 했었다.

 

어릴적 노트 한켠에 낙서처럼 작게 그려넣은 그림들, 예쁜 공주들이 그려진 색칠공부 속 그림들, 모두 색연필로 그려 넣은 그림들이었다. 그래서 연필보다는 색연필이 덜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삐뚤삐뚤하게 그려도 귀엽고 깜찍한 그림이 될 것 같고, 실물과 다르게 그려도 나름대로의 멋이 있는 그림이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연필로 그린 그림보다는 더 따스함이 베어나는 그림이 될 것 같았다.

 

무엇이건 '쉽게' 한다는 것에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잘 해야 한다는 집착을 버리는 것이고, 둘째는 상당한 연습을 통해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p. 23)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첫 술에 배가 부르면 안되는게 당연한데, 그걸 바라고 부담없이 색연필을 들었던 나의 기대가 너무 컸었나 보다. 밑그림이 그려져 있는 곳에 채색만 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생각하는 것처럼 색을 혼합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색연필로 그라데이션을 연출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릴적에는 색연필을 가지고 그림을 참 잘 그렸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못 그리는 것 같다. 왜일까. 아무래도 그림을 잘 그리는 누군가의 그림을 보면서 똑같이 그릴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온 사람의 그림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니 내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밖에. 내가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잘 그려야 한다는 집착이 버려지지가 않았다.

 

『색연필화 쉽게 하기』를 덮으면서 나는 『스케치 쉽게 하기 : 기초 드로잉』을 다시 꺼냈다. 이번에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그려보리라. 잘 그려야 한다는 욕심도 잠시 접어두고 말이다.

 

2007/08/2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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