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눌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1
헤르만 헤세 지음, 이노은 옮김 / 민음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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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만 헤세가 '아끼고 사랑하는 인물'이라고 소개한 크눌프는 안정적인 삶 대신 평생 여행하며 돌아다니는 고독한 방랑자입니다.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역 어느 도시든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줄 곳은 쉽게 찾을  있을 터였다 점에 대해 그가 느끼는 자부심은 특별해서만일 누구든 그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면 그것을 일종의 영예로 여겨야  정도였다. 7

   크눌프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지는 그를 대하는 친구들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발길이 닿는 곳마다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은 그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기꺼이 내어주면서도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눌프는 예의 바르고밝고사랑스럽고재주가 많은 사람이라 그가 별 도움을 주지 않더라도 친구들은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합니다. 그 또한 그런 친구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기 때문에, 무두장이 친구의 부인이 그에게 호감을 표현하자 서둘러 친구의 집을 떠나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의 천성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따라하기는 어려웠다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을 자신의 친구로 삼았으며모든 소녀들과 여인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매일매일을 일요일처럼 살았다. 사람들은 그가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계속해서 살아가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그러다가 그가 좋지 않은 상황에 빠져 피난처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생길 그를 맞이해 들이는 것은 기쁨이자 영광이 되는 것이었다그는 집을 즐겁고 밝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히려 그에게 감사해야할 정도였다. 31~32

   평생 이렇게 여행하며 즐겁게 살 줄로만 알았던 크눌프도 나이가 들고 폐결핵에 걸리자  빛을 조금씩 잃어갑니다. 이런 그에게 의사 친구 마홀트가 말합니다.

   "이 친구야, 자네가 고향에서 계속 살면서 열심히 일하고 아내와 자식도 얻고, 또 매일 밤 편안한 잠자리를 가졌더라면, 아마도 자네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야." 125~126쪽

   과연 그랬을까요? 크눌프는 죽기 전 마지막 여행지로 선택한 고향 땅에서 목적도 없이 계속 돌아다니면서, 생각 속에서 거의 언제나 하느님 앞에 서서 끊임없이 그 분과 대화(129쪽)를 나눕니다.

   하느님과 크눌프는 그의 삶이 무의미했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 달라질 있었는지, 이런저런 일들이 그런 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함께 이야기했다. 130

   크눌프가 평생 떠돌아 다니기만한 자기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하느님은 자체가 의미있는 것이라고 합니. 적어도 그를 만난 사람들은 그를 만난 순간만큼은 즐겁고 행복했으며,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고마워하고 있으니까 그걸로도 의미있는 삶이 아니었냐고 말이죠.

   "이 철부지야, 모든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아직도 모르겠느냐? 네가 근심 걱정 모르는 방랑자가 되어 이곳저곳에서 어린아이 같은 행동과 어린아이의 웃음을 전달해 주어야만 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겠니? 그래서 세상 곳곳의 사람들이 너를 사랑하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너에게 고마워하기도 했다는 것을 모르겠니?" 133

   "그래, 넌 지금 신사가 되거나 기술자가 되어 아내와 아이를 갖고 저녁에는 주간지를 읽고 싶은 거냐? 넌 금세 다시 도망쳐 나와 숲속의 여우들 곁에서 자고 새 덫을 놓거나 도마뱀을 길들이고 있지 않을까?" 133~134쪽

   "난 오직 모습 그대로의 필요로 했었다. 나를 대신하여 방랑하였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하였고 조롱받았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을 받았고 안에서 내가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형제요, 나의 일부이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했었다." 134


   저마다 추구하는 삶과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는 다르기 때문에 따뜻하고 안정적인 삶 대신 평생 자유롭게, 또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산 크눌프의 삶도 그 나름대로 의미있는 삶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혼자 쓸쓸하게 아파하며 죽어야 했던 그의 삶이, 게다가 그 스스로도 의미있는 삶이었는지 의문을 가질 정도였다면, 혹여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을 줬다고 하더라도 그 자신에게는 진정으로 의미있는 행보였을까요?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크게 전쟁과 개인적인 아픔을 겪기 이전의 작품과 그 이후의 작품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 이전에 쓴 작품으로, 이후에 쓴 작품들보다 훨씬 쉽게 읽힙니다. 주제 또한 개인의 삶을 다루고 있어서 접근하기 쉽습니다.
   오늘밤은 당신 차례예요. 사랑스러운 '크눌프'의 친구가 되어보세요!

   "이보게, 재단사 친구, 자넨 성경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어. 무엇이 진리인지, 인생이 본래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는 각자가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자 결코 어떤 책에서 배울 있는 아니란 말일세." 36

   누군가가 자신의 행복이나 미덕에 대해 자랑하고 뻐길 경우, 대부분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51

   모든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영혼을 다른 사람의 것과 섞을 수는 없어.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갈 수도 있고 함께 이야기할 수도 있고 가까이 함께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각자 자기 자리에 뿌리 내리고 있는 꽃과도 같아서 다른 영혼에게로 수가 없어. 만일 가고자 한다면 자신의 뿌리를 떠나야 하는데 그것 역시 불가능하지. 꽃들은 다른 꽃들에게 가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향기와 씨앗을 보내지. 하지만 씨앗이 적당한 자리에 떨어지도록 꽃이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그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야. 바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이곳 저곳으로 불어댈 뿐이지. 79

   아버지는 그의 자식에게 코와 눈과 심지어는 이성까지도 물려줄 있지만 영혼은 아니야. 영혼은 모든 사람들 속에 새롭게 존재하는 것이지. 80

   길고도 힘겹고 의미 없는 여행 내내 그는 어긋나고 뒤엉켜버린 자신의 속에 깊이깊이 빠져들어갔다. 그것은 마치 질긴 가시덤불 속으로 빠져드는 것과 같았는데, 그는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나 위로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12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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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2
헤르만 헤세 지음, 한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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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이 주는 여운 때문에 책장을 덮고나서도 한동안 머릿속을 맴도는 책들이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수레바퀴 아래서』가 그랬습니다다. 한스의 마지막이 어찌나 씁쓸하던지, 그렇게 쉽게 떨쳐버리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캐릭터이기도 한 '한스 기벤라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재능 있는 아이(8쪽)였습니다. 얼마나 기품 있고 남다른지, 심지어 사람들이 "지난 8, 9백 년 동안 유능한 시민들은 많이 배출했지만 천재나 재능 있는 인물은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오래된 작은 마을에 정말이지 저 위에서 신비로운 불꽃 하나가 뚝 떨어진 셈"(9쪽)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한스가 태어난 "슈바벤 지방에서 재능 있는 소년들에게는 부모가 부유하지 않으면 단 하나의 좁을 길"(10쪽)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주(州) 시험에 합격해서 신학교에 입학하고, 그후 튀빙겐 대학에 들어간 다음 교사나 목사가 되는 것"(10쪽)이었습니다.
   한스는 경쟁이 치열한 주 시험을 통과해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래서 라틴어 학교에서는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기분전환을 위한 취미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슬퍼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모두가 바라는 '영예'를 누릴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니까요.

   잃어버린 소년 시절의 모든 즐거움보다 훨씬 귀중한 시간을 맛보기도 했다. 자부심과 도취감, 승리감이 넘치는 꿈같은 묘한 시간이었다. 그럴 때면 그는 학교와 시험과 모든 것을 다 뛰어넘어 더 높은 존재의 영역을 꿈꾸고 그리워했다. 20쪽

   다행히 한스는 주 시험에도 2등으로 붙어 원하던 신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는데도 더 잘하고 싶은 마음과 불안함 때문에 신학교 입학 전 방학 동안에도 쉬지 않고 선행학습을 합니다. 덕분에 한스는 신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1등을 놓치지 않았고, 노력형 모범생이라는 좋은 평판도 얻게 됩니다.

   신학교에서는 동급생 9명이 같은 방을 사용하며 생활했는데, 그 중 시인을 꿈꾸는 헤르만 하일너와 친하게 지냅니다. 그는 한스와는 반대로 천재형이었고, 생각과 행동이 모두 자유분방하고 활달했습니다. 특히, 그는 신학교의 획일적이고 이론만 반복하는 교육방식을 못 견뎌 합니다.

   "수업시간에 겨우 두 줄을 읽고 한 자 한 자 되새기고 구역질이 날 때까지 자세히 살펴보지. 하지만 마지막에는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니까. '이 시인이 얼마나 섬세하게 표현했는지 보았지요. 여러분은 시작(詩作)의 비밀을 들여다본 것입니다!' 흥, 그건 불변화사와 동사과거형에 숨이 막혀 죽지 않도록 소스를 쪽뿌려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그런 식이라면 난 호메로스에 아무 흥미도 느낄 수 없어. 대체 고대 그리스의 잡동사니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지? 우리 중에 누가 그리스식으로 살려고 시도만 해도 당장 쫓겨날걸." 87쪽

   한스가 갖고 있는 걱정과 소원이 그에게는 아예 없었다. 하일너는 그만의 생각과 말을 가지고 있었고, 남들보다 더 뜨겁고 더 자유롭게 살았다. 이상한 고민을 하며 괴로워하고, 주위 사람들을 다 경멸하는 듯했다. 또 오래된 기둥과 담장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자신의 영혼을 시로 표현하고, 상상으로 고유한 허구의 삶을 만들어내는 기묘하고 신비한 재주가 있었다. 명민하고 구속을 싫어하며, 한스가 1년 동안 할 농담을 매일같이 했다. 그는 우울했지만 자신의 슬픔조차 이국의 진기하고 귀중한 보물처럼 즐기는 것 같았다. 88쪽

   이런 생각을 가진 하일너와 가까워지면서 한스도 거기에 대해 생각해 보지만, 그는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주목받는 것을 더 꿈꿨기 때문에 하일너와 함께한 시간만큼 더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러나 룸메이트 중 한 명인 힌딩거가 연못에 빠져 죽는 사건이 발생하자, 한스에게 하일너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됩니다. 예전보다 더 하일너와 가까워지면서 한스의 성적은 점점 더 떨어지고, 모범생에서 문제아로 낙인 찍히고 맙니다. 그러다가 하일너가 퇴학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또한 신경쇠약에 걸려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고 가장 위태로운 소년 시절에 왜 한스는 날마다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했을까? 왜 그의 토끼를 빼앗고, 왜 라틴어 학교에서 동급생들을 일부러 멀리하게 만들고, 왜 낚시를 금지하고, 왜 어슬렁거리며 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고, 왜 하찮고 소모적인 명예욕을 추구하겠다는 공허하고 세속적인 이상을 그에게 심어주었을까? 왜 시험이 끝나고 힘들게 얻은 방학 때조차 푹 쉬게 하지 않았을까? 141쪽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산책 등을 하면서 쉽니다. 때마침 "곤경과 고독 속에서 다른 유령이 병든 소년에게 다가와 점점 친숙해졌고 꼭 필요한 존재"(147~148쪽)가 됩니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자살이라는 확실한 목표가 생기자 한스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래서 그동안 피했던 마을 사람들과도 어울리게 되는데, 이때 만난 '엠마'라는 소녀가 그를 다시 살고 싶게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엠마는 소년의 마음을 기만하고 떠나버립니다.

   한스는 어쩌면 너무 일찍 사랑의 비밀을 맛보았다. 그것은 살짝 달콤하고, 많이 썼다. 190쪽

   한스가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것 같기도 하고, 더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한스의 아버지는 한스에게 기계공과 서기 중에 선택하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했지만 라틴어 학교 시절 유일한 친구였던 아구스트가 기계공으로 일하고 있어서 그에게 물어봅니다. 아우구스트는 체력적으로 만만한 일은 아니지만 머리도 좋아야 하니 같이 해보자고 말합니다. 그래서 한스는 생각지도 않았던 수습공이 됩니다.

   …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고생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땀흘렸는데, 작은 즐거움을 그렇게 많이 포기하고, 그렇게 자부심과 명예욕을 느끼고 희망에 부풀어 꿈을 꾸었는데 모두 허사가 된 것이다. 지금 다른 동료들보다 늦게, 모든 사람의 비웃음을 사며 가장 낮은 수습공으로 작업장에 들어가려고 그 모든 일을 했단 말인가! 191쪽

   한스는 생전 처음으로 노동의 찬가를 듣고 또 이해했다. 그 찬가는 최소한 초보자에게는 감동을 주었고, 기분 좋게 취하게 만들었다. 한스는 자신의 작은 존재와 인생이 커다란 리듬 속에 들어가 어우러지는 것을 느꼈다. 196쪽

   몇 달 만에 다시 일요일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평일에 손이 시커멓게 되고 팔다리가 노곤하도록 일을 해야 일요일에 거리가 더 축제 분위기로 들뜨고, 태양이 더 환하게 빛나고, 모든 것이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다. 199쪽

   인생을 알고 즐길 줄 아는 사람들과 같이 술집에 앉아 그래도 되고 그럴 자격도 있는 사람처럼 일요일을 즐겁게 보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206쪽

   기계공 일을 시작한 처음에는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자괴감이 들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동의 기쁨과 즐기는 인생의 즐거움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일요일 밤에 아우구스트를 비롯한 기계공 동료들과 함께 술을 마신 후 혼자 집으로 돌아오다가 물에 빠져 쓸쓸하게 죽습니다.

   아버지가 그토록 혼을 내려고 별렀던 한스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시커먼 강물을 따라 조용히 골짜기 아래로 천천히 떠내려가고 있었다. 구역질도 수치심도 괴로움도 모두 그를 떠났다. 푸르스름하고 차가운 가을밤이 어슴푸레 떠내려가는 그의 여윈 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커먼 강물이 그의 손과 머리카락과 창백한 입술을 어루만지며 장난쳤다. 날이 밝기 전에 사냥을 하러 나온 겁 많은 수달이 그를 흘낏 쳐다보고는 미끄러지듯 그 결을 스쳐지나갔을 뿐, 아무도 그를 보지 못했다. 그가 어떻게 물에 빠졌는지 아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어쩌면 길을 잃고 헤매다 가파른 곳에서 미끄러졌을지 모른다. 어쩌면 물을 마시려다가 삐끗 균형을 잃었을 수도 있다. 혹은 아름다운 강물에 홀려 몸을 숙였다가 평화와 깉은 안식이 가득 깃든 밤과 창백한 달을 보고, 피로와 두려움의 조용한 강요에 떠밀려 죽음의 그늘에 빠졌을 수도 있다. 213~214쪽

   소년은 한창 꽃필 시기에 갑자기 뚝 꺾여 즐거운 인생길을 벗어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버지도 피로와 외로운 슬픔에 젖어 아들이 살포시 미소 짓고 있다는 행복한 착각에 빠졌다. 214쪽

   그렇게 한스는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하고 싶어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말입니다. 그의 죽음이 실족사였는지, 자살이었는지도 알 수 없고, 심지어 그가 눈을 감을 때는 그의 곁에 아무도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생 누구를 위해 살았던 것일까요? 어쩌면 자신을 위해 스스로 눈을 감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들이 살포시 미소 짓고 있었다는 말이 내심 마음에 걸립니다.

   헤르만 헤세 또한 고향에서 촉망받던 소년이었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도망쳤고, 열다섯 살에는 자살까지 시도했습니다. 한스 기벤라트는 작가 자신이었고, 헤르만 하일너는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과 행동을 했던 캐릭터가 아니었을까요. 『수레바퀴 아래서』는 분명 1906년에 발표된 소설인데, 지금의 우리 교육 현실과 너무나도 닮아 있어서 놀라울 정도입니다.

   자, 이제 당신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는 것들을 떠올리고 대면해 보세요. 수레바퀴 아래 깔리지 않도록, 즐거운 인생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말이죠.

   "친구, 아무튼 지치면 안 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고 말 테니까." 119쪽

   누구에게나 빛나는 멋진 나날이었다.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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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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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11쪽

   이것은 톨스토이가 1877년에 쓴 『안나 카레니나』의, 그 유명한 첫 문장입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 첫 문장은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그의 저작  『총, 균, 쇠』에서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글을 보면 이 첫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략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가축화할 수 없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어디선가 그런 말을 읽은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 문장에서 몇 마디만 바꾸면 바로 톨스토이의 위대한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유명한 첫 문장이 되기 때문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이 문장에서 톨스토이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결혼 생활이 행복해지려면 수많은 요소들이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서로 성적 매력을 느껴야 하고 돈, 자녀 교육, 종교, 인척 등등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에 필요한 이 중요한 요소들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어긋난다면 그 나머지 요소들이 모두 성립하더라도 그 결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법칙을 확대하면 결혼 생활뿐 아니라 인생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우리는 흔히 성공에 대해 한 가지 요소만으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설명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중요한 일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수많은 실패 원인들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234~235쪽

   안나 카레니나오빠 스테판 아르카디이치 오블론스키가 가정교사와 불륜을 저지르는 바람에 올케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와 불화가 생기자 그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페테르부르크(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옵니다. 그녀는 기차 안에서 브론스카야 백작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모스크바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백작부인을 마중 나온 아들 브론스키와도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그렇게 처음 만난 안나와 브론스키는 첫 눈에 서로에게 반해버립니다.
   그러나 안나는 이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카레닌과 결혼해 세료쥐아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었고, 브론스키 또한 다리야의 막내 여동생인 키티를 만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심지어 브론스키에게 반한 키티는 그가 청혼하기를 기다리며 콘스탄틴 드미트리치 레빈의 청혼을 거절해 버립니다. 브론스키에게 흔들리는 마음을 눈치챈 안나는 스테판 부부를 화해시키자마자 서둘러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는데, 브론스키 또한 모든 것을 제쳐두고 그녀를 따라 나섭니다.

   그가 그림자 속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의 얼굴과 눈의 표정을 읽었다. 아니, 읽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어제 그토록 강하게 그녀에게 작용했던 그 은근하고 황홀한 표정이었다. 요 며칠간 몇 번이나 아니 방금전만 해도 그녀는 브론스키 따위는 도처에서 숱하게 만날 수 있는 여러 젊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를 생각하는 것조차 점잖지 못한 일이라고 혼자서 되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지금 이렇게 그와 만나게 되자, 해후의 첫 순간에 느닷없이 그녀를 붙든 것은 기쁨과 자부심이었다. 그녀는 어째서 이런 곳에 그가 와 있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마치 그가 그녀에게 그저 당신이 있는 곳에 있기 위해서 왔다고 이야기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정확히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1권 205~206쪽

   페테르부르크 사교계에 나타난 브론스키를 사람들은 '안나의 그림자'라고 부릅니다. 안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나타나서 그녀의 마음을 세차게 흔들어 버립니다. 안나 또한 그런 브론스키에게 점점 빠져들어 그녀의 남편까지 둘 사이를 눈치챌 정도에 이릅니다. 남편 알렉세이는 그녀에게 조용히 경고합니다.

   '결국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혼잣말을 계속했다. '그녀의 감정이나 그밖의 일은 나와는 상관없는 그녀 양심의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내 의무는 분명히 결정되어 있다. 가정의 장(長)으로서 나는 그녀를 지도해야 할 의무가 있고, 따라서 얼마쯤은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발견한 위험을 지적하여 경계시키고 경우에 따라서는 내 권한을 행사하여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 나는 그녀에게 주의를 주지 않으면 안 된다.' 1권 286~287쪽

   "내가 당신에게 경고하고 싶은 건 말이오."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부주의와 경솔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씨를 뿌릴지도 모른다는 거요. 오늘 당신과 브론스키가(그는 이 이름을 천천히 사이를 두고 정확하게 발음했다) 지나치게 활발하게 얘기하는 모습이 꽤 여러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던 모양이니까." 1권 290쪽

   남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자, 남편 알렉세이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며 이혼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동안 아내를 의심해 온 알렉세이는 '오랫동안 앓던 이를 빼버린 것과 같은 느낌'(2권 86쪽)이라고 하면서도 '그녀가 타락하면서 그한테 튀기어 더럽혀놓은 진창을 털어내고, 활동적이고 명예롭고 유익한 자기 삶의 길을 계속 걸어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가장 좋고 가장 점잖고 가장 이로우며, 따라서 가장 정당할 것인가 하는 문제'(2권 87쪽)로 고민합니다. 그는 '이혼의 시도는 다만 그의 높은 사회적 지위를 비방하고 공격하려는 적들에게 뜻밖의 기회'(2권 91쪽)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혼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사실 안나와 브론스키도 확신이 없습니다. 알렉세이의 지붕 아래서 모든 것을 누리며 편안하게 살고있는 안나가 그 편안함을 버리고 불륜녀라는 딱지를 평생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심지어 사랑하는 아들 세료쥐아를 평생 보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브론스키는 돈도 없고 심지어 군대에 몸담고 있는데, 그녀를 데리고 떠날 수 있는 준비가 갖추어져 있을까요?
   이런 이유들 때문에 안나가 브론스키의 딸을 낳고, 법적으로 알렉세이의 딸이 되어버려도 그들은 결정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괴로움만 남긴채 이혼문제를 오랫동안 질질 끌어갑니다.

   가정생활에서 무엇인가를 꾀하기 위해서는 부부 사이에 완전한 분열이나 혹은 사랑의 일치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부부관계가 애매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에는 어떠한 계획도 실행될 수 없는 것이다. 3권 369쪽

   한편, 키티에게 거절 당한 레빈은 시골로 내려가 농장 일에 집중하지만 안나와 브론스키의 이야기를 전해 듣자마자 키티에게 달려가 다시 청혼을 합니다. 키티의 마음을 얻어 결혼하게 된 레빈은 늘 고민이 많습니다. 평생 일하지 않아도 즐기며 살 수 있는 계급과 평생 농사를 짓고 일을 해도 그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계급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평등이라던지, 비합리적이지만 지금까지 늘 해오던 방식만 고수하며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 등에 대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어떤 방식이나 사교계에 권태를 느끼면서도 그것을 바꾸려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일은 모두 쓸데없는 짓'(3권 216쪽)이라고 말합니다.
   레빈의 이런 고민들은 톨스토이의 사상과도 일맥상통 합니다. 톨스토이는 농노제와 같은 불합리한 계급제도에 반대했고 자본주의가 몰고 온 부의 불평등을 혐오했지만 혁명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168쪽) 그는 각자가 욕망을 줄인다면 골고루 행복해 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레빈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도 레빈은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는 러시아에서 고민하는 지식인이었던 '톨스토이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 아니었을까요?

   "아니, 자넨 행복한 사내야. 자네가 좋아하는 것은 뭐든 가지고 있거든. 말을 좋아한다면 말이 있고, 개가 있으니 사냥도 할 수 있고, 농장도 있으니 말일세."
   "그건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만 만족하고 없는 것에 대해서 슬퍼하지 않는 덕분이겠지." 1권 320쪽

   안나는 너무나도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심지어 안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레빈 조차 그녀를 보자마자 마음이 흔들일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그녀는 마지막 또한 치명적으로 끝내버립니다.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브론스키를 선택한 안나는 브론스키의 사랑이 변할까봐 의심하고 괴로워하다가, 끝내 그 괴로움 때문에 달려오는 열차 속으로 뛰어들어 갑니다. 비록 그 방법은 잔인했지만 그녀는 열차 속으로 뛰어들 때 조차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합니다.

   '저기로, 저 한가운데로. 그리고 나는 그이를 벌하고 모든 사람들과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자.' 3권 427쪽

   그녀는 성호를 그었다. 성호를 긋는 이 익숙한 동작이 그녀의 마음에 처녀 시절과 어렸을 때의 일련의 추억을 온전하게 불어일으켰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를 위해서 삼라만상을 뒤덮고 있던 어둠이 걷히고 한순간, 생이 그 모든 빛나는 과거의 환희화 더불어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녀는 다가오는 두번째 차량의 바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바퀴와 바퀴 사이의 한가운데가 그녀 앞까지 온 바로 그 순간에 그녀는 빨간 손주머니를 내던지고 두 어깨 사이에 머리를 틀어박고 두 손을 짚고 차대 밑으로 넘어지면서, 그리고 곧 일어나려고 하는 듯한 가벼운 동작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그 순간 그녀는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공포를 느꼈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그녀는 몸을 일으켜 뛰어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무언가 거대하고 무자비한 것이 그녀의 머리를 꽝 하고 떠받고 그 등을 할퀴어 질질 끌어갔다. '하느님, 저의 모든 것을 용서해주소서!' 그녀는 이미 저항하기엔 늦었음을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한 농부가 뭐라고 웅얼거리면서 쇠붙이 위로 몸을 구부리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불안과 기만과 비애와 사악으로 가득 찬 책을 그녀에게 읽게 해주던 촛불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확 타올라 지금까지 어둠에 싸여 있던 일체의 것을 그녀에게 비추어 보이고는 파지직, 소리를 내고 어두워지다가 이윽고 영원히 꺼져버렸다. 3권 427~428쪽

   1870년대에 쓰여진 러시아 소설, 3권을 합치면 1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 등장인물이 150명이 넘고, 그들의 이름 조차 너무나 길어서 압박이 심한 톨스토이의 대작. 그러나 읽기 시작하면 의외로 페이지가 잘 넘어갑니다. 물론 초반에는 이름 때문에 일일이 노트에 정리하며 읽느라 고전했지만, 그 이름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눈에 익기 시작하면 놀랍도록 술술 잘 읽힙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습니다. 시대와 상황, 그리고 나라까지 다르지만 결혼에 임하는 사람들의 고민과 책임감은 지금과도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 시절 사람들도, 특히 남자들도 결혼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갖춰야 했고, 아무리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도 여자들은 집안일과 육아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공감가는 문장이 많은데, 특히 그 중에서도 안나와의 결혼을 고민하는 브론스키에게 동료가 해 준 말이 인상적입니다.

   '무거운 짐'을 나르면서 두 손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무거운 짐'을 등에 짊어졌을 때뿐이야. 그리고 이것이 결혼이야. 난 그 사실을 결혼하고 나서야 비로소 느꼈지. 말하자면 갑자기 손이 자유로워졌으니까. 그러나 결혼을 하지 않고 이 '무거운 짐'을 질질 끌고 있는 날에는 손이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 2권 151쪽

      『안나 카레니나』를 덮으면서 고민에 빠집니다. 어떻게 사는게 옮은 일일까요?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주위 사람들, 특히 가족의 행복까지 아랑곳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반대로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불행쯤은 눈감아도 되는 것일까요?
 
    완독을 하고나니, 문학동네가 세계문학전집을 기획하면서 왜  『안나 카레니나』를 첫번째로 내세웠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 리뷰를 통해 안나의 치명적인 결말을 이미 알아버렸다고 읽기를 포기하지 마세요. 저 또한 그 결말을 알고 읽은 책이었지만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 진가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자유파 사람들은 결혼은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이며 단연코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파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가정생활은 스테판 아르카디이치에게 이렇다 할 만족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의 기질과는 아주 딴판인 허위와 기만을 강요했다. 1권 23쪽

   난 이렇게 생각해요…… 만약 사람의 머리가 각기 다르듯이 생각도 다르다고 한다면, 마음이 각기 다른 만큼 사랑의 종류도 다를 것이라고요. 1권 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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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의 딸 열린책들 세계문학 1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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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단 한 문장으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시인이 되어버린 알렉산드르 푸시킨. 그는 러시아의 대문호로 시 뿐아니라 희곡,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썼습니다.
   『대위의 딸』은 푸시킨이 쓴 유일한 장편소설로, '푸가초프의 반란(1773-1775)'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쓴 것입니다. 석영중이 쓴 「뿌쉬낀의 삶과 작품 세계」에 줄거리가 잘 요약되어 있으니 한번 옮겨보겠습니다.

   『대위의 딸』은 뾰뜨르 그리뇨프라는 귀족의 자제가 체험하는 뿌가쵸프의 반란을 가벼운 필치로 묘사한 소설이다. 그리뇨프는 벨로고르스끄 요새로 가는 도중 눈보라를 만나 길을 잃고 방황하는데 그때 어느 농부가 나타나 길을 안내해 준다. 그리뇨프는 하인 사벨리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길 안내자 농부에게 토끼털 외투를 선사한다. 요새에 도착한 그리뇨프는 사령관인 미로노프 대위의 가족과 친해지고 대위의 딸 마리야와 사랑하게 된다. 선임 장교 쉬바브린은 두 사람의 관계를 질투하여 여러 가지 방해를 한다. 그러던 중 뿌가쵸프의 반란군이 요새에 쳐들어와 사령관 부부는 처형되고 쉬바브린은 뿌가쵸프 편으로 넘어간다. 그리뇨프는 자기에게 길을 안내해 준 농부가 바로 뿌가쵸프였음을 알게 되고, 뿌가쵸프 역시 그리뇨프를 알아보고는 토끼털 외투에 대한 사례로 그의 목숨을 살려 준다. 뿌가쵸프의 도움으로 마리야와 그리뇨프는 위험에서 벗어나지만 반란이 진압된 뒤 쉬바브린의 무고로 그리뇨프에게는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마리야는 뻬쩨르부르그로 가서 예까쩨리나 여제에게 그리뇨프의 사면을 탄원하고 그리뇨프는 여제의 특사로 풀려난다. 두 사람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다. 221쪽

   줄거리 자체는 지극히 평범해 보입니다. 우연히 도움을 베푼 사람 덕분에 목숨도 건지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인데, 『안나 까레니나』나 『죄와 벌』에서 보았던 문학적 분위기와는 사뭇 다릅니다. 푸쉬킨의 소설에는 그만의 유머와 해학이 있습니다. 가난 때문에 곤란에 빠지거나 목숨이 위태로워져도 절대 심각해지지 않고, 유머를 날려버립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의 유머입니다.

  저런! 세상에 그런 부자도 다 있구먼! 우리는 말이요, 젊은이, (…) 다행히 그럭저럭 입에 풀칠은 하지만 문제는 우리 미샤라우. 혼기는 찼는데 주어 보낼 게 있어야지? 참빗 한 개에, 빗자루 한 개, 목욕탕에 갈 3꼬뻬이까짜리 동전 한 닢뿐이라우. 착한 신랑감이 나타나면 좋으련만, 안 그러면 평생 노처녀로 늙게 생겼수. 42쪽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는 그의 시구를 소설로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요? 비록 현실은 암울하고 복잡하지만 그래도 웃어보자는 푸슈킨 식의 따뜻하고 신랄한 유머 덕분에 러시아 문학은 지루하고 딱딱하다는 편견까지 깨버릴 수 있습니다. 유시민 작가도 『청춘의 독서』에서 "이렇게 '웃기는' 러시아 소설은 처음 보았다. 상황과 등장인물 모두가 희극적"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 푸슈킨의 삶 또한 희극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대위의 딸』을 쓰고 3년 뒤인 1837년에 3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바람둥이 프랑스 남자 단테스와 자신의 아내 나탈리아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그와 결투를 합니다. 그 결투에서 치명상을 입어 숨을 거두게 되는데, 도스토예프스키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그러나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그 '소문'은 민중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 푸슈킨을 견제하던 차르 니콜라이 1세가 일부러 퍼뜨린 음모라는 설도 있습니다.

   푸슈킨은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비롯한 수많은 러시아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1세대 작가이면서도 종종 그들과 비교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현실 문제에 덜 예민했다는 것인데, 만약 그가 38세에 죽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힘든 날들을 참고 견뎌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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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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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소리 내어 읽습니다. 서사시의 운율이 느껴지도록 소리 내어 읽습니다. 비록 우리말로는 그 운율을 잘 느낄 수 없다 하더라도, 아주 오래전 방식을 따라 소리 내어 읽습니다. 애초에 『일리아스』는 독자에게 읽히기 위해 씌어진 것이 아니라 구송(口誦)을 위해 쓰여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자의 사용이 아직 생활화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문학작품이든 역사 이야기든 어디까지나 구송(口誦)을 위해 쓰여진 것이지 독자에게 읽히기 위해 씌어졌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메로스 당시의 텍스트는 시인 또는 음송자(rhapsodos)들이 시를 낭송할 때 참고하기 위해 요지만 기록해두는 식의 간단한 것에 불과했으며, 전승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구전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텍스트가 완전히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일 때는 후기의 음송자들에 의해 새로운 내용이 첨가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으며, 실제로 호메로스의 텍스트에서는 그런 부분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해설」 775~776쪽

   호메로스가 정리해서 쓴 『일리아스』는 인간들의 싸움에 신들이 끼어들어 싸움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서사시로 그려낸 것입니다. 이 싸움을 촉발시킨 것은 헬레네의 미모에 반한 철없는 트로이아 왕자 파리스(일명 알렉산드로스)입니다. 그는 이미 메넬라오스의 아내가 된 헬레네를 몰래 트로이아로 데려와 두 나라 간의 싸움을 일으키게 되지만 파리스가 헬레네에게 반한 것도, 싸움이 더 크게 번지는 것도 모두 신들 때문입니다.

   "가증스러운 파리스여, 외모만 멀쩡하지 계집에게 미친 유혹자여! 너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거나 장가들기 전에 죽었어야 했다. 그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지. 이렇게 만인이 보는 앞에서 창피를 당하고 멸시받느니 그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 머나먼 나라에서 창수들의 며느리인 미인을 데려와 네 아버지와 도시와 모든 백성들에게는 큰 고통을, 적에게는 기쁨을, 그리고 너 자신에게는 굴욕을 안겼단 말이냐?" _헥토르, 102~103쪽

   아내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메넬라오스는 형 아가멤논과 함께 연합군을 모아 함선을 타고 트로이아로 진격합니다. 이 전쟁은 무려 9년 동안이나 이어지고, 이 사이 연합군 사이에서 최고 영웅으로 손꼽히는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이 전리품으로 얻은 여자 때문에 사이가 틀어져 버립니다. 아킬레우스는 더 이상 아가멤논 왕을 위해 싸우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전선에서 물러납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저를 단명하도록 낳으셨으니, 높은 곳에서 천둥 치는 올륌포스의 제우스께서는 명예라도 제게 주셔야지요. 하거늘 지금 그분께서는 작은 명예도 주시지 않아요. 넓은 땅을 다스리는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이 저를 모욕하고, 제 명예의 선물을 몸소 빼앗아 가졌으니 말예요." _아킬레우스, 43쪽

   아킬레우스가 바다의 여신인 어머니 테티스에게 이렇게 읍소하자, 테티스는 제우스에게 달려가 전쟁에서 빠진 아킬레우스를 사람들이 아쉬워할 때까지 아카이오이족이 트로이아인들에게 짓밟히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헤라를 제외한 여신들에게는 언제나 마음이 넉넉한 제우스, 당연히 테티스의 간청을 들어줍니다.

   "아버지 제우스여! 내 일찍이 여러 신들 중에서 말이나 행동으로 그대를 도운 적이 있다면 내 소원을 이뤄주시어 내 아들의 명예를 높여주소서. 그 애는 모든 인간들 중에서도 가장 요절할 운명을 타고났나이다. 그럼에도 지금 인간들의 왕 아가멤논이 그 애를 모욕하여 그 애의 명예의 선물을 몸소 빼앗아 가졌나이다. 그러니 그대가 그 애의 명예를 높여주소서, 조언자이신 올륌포스의 제우스여! 아카이오이족이 그 애를 존중하고 그 애에게 전보다 큰 경의를 표할 때까지 부디 트로이아인들에게 승리를 내리소서." _테티스, 50~51쪽

   한편, 트로이아인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철없는 행동 때문에 싸움이 벌어졌지만 무공이 뛰어나지 못해 앞장설 수 없었던 파리스 대신 그의 형 헥토르가 아카이오이족을 상대하기 위해 앞장섭니다. 헥토르가 수많은 아카이오이족을 죽이며 무훈을 세울 때도, 아카이오이족들이 제발 도와달라며 간청을 해도 아킬레우스는 나서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헥토르의 손에 아킬레우스가 너무나도 아끼는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죽임을 당하게 되자, 이에 격분한 아킬레우스가 다시 싸움터로 뛰어듭니다. 아킬레우스가 싸움에 뛰어들자 전세는 순식간에 뒤바뀌어 버립니다. 아킬레우스가 뛰어난 영웅이기도 하지만 그를 아끼는 제우스의 개입 때문입니다. 아킬레우스에게 목표는 오직 하나, 헥토르를 죽여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하고 자신의 명예를 높이는 것뿐. 그는 헥토르를 죽인 다음 그의 시신을 끌고 가 함선 옆에 매달고 전사한 그를 모욕합니다.

   "헥토르의 시신과 도시의 파괴자 아킬레우스를 둘러싸고 아흐레 동안 불사신들 사이에 시비가 벌어졌소. 그들은 훌륭한 정탐꾼인 아르고스의 살해자에게 시신을 빼내라고 재촉하고 있소. 하나 나는 앞으로도 그대의 존경과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영광을 아킬레우스에게 내리기로 했소. 그대는 당장 진영으로 가서 그대의 아들에게 내 명령을 전하되 그가 광기에 사로잡혀 헥토르를 부리처럼 휜 함선들 옆에 붙들어두고 돌려주지 않는 것을 신들이 못마땅해하고 모든 신들 중에서 특히 내가 가장 노여워한다고 말하시오. 그러면 그는 내가 두려워서라도 헥토르를 내주게 될 것이오."_제우스, 685~686쪽

   아킬레우스의 무자비한 파괴와 만행을 보다 못한 신들이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라고 아킬레우스에게 명합니다. 이에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늙은 아비가 그의 시신을 가져가게 하고, 트로이아인들이 헥토르의 장례를 치룰 수 있게 열하루 동안 싸움을 멈춥니다.

   "그대가 진실로 고귀한 헥토르의 장례를 마치게 해주실 생각이라면, 아킬레우스여! 이렇게 해주시면 고맙겠소. 아시다시피 우리는 도성에 갇혀 있고 산에서 나무를 해오려면 멀리 나가야 하오. 게다가 트로이아인들은 잔뜩 겁을 먹었소. 아흐레 동안 우리는 집에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열흘째 되는 날 그를 땅에 묻고 백성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열하루째 되는 날 그를 위해 무덤을 만들어 줄 것인즉, 열이틀째 되는 날 꼭 필요하다면 우리는 싸울 수 있을 것이오." _프리아모스, 708쪽

   『일리아스』는 "이렇게 그들은 말을 길들이는 헥토르의 장례를 치렀다."(714쪽)로 끝나지만, 트로이아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지루한 전쟁을 끝내 줄 트로이 목마는 『일리아스』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싸움을 지켜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인간과 신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족이면서 영웅인 아킬레우스의 영웅답지 않은 옹졸함입니다. 그는 전리품으로 주어진 여자 한 명 때문에 토라져, 수많은 영웅들과 동족들이 죽어나가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적장인 헥토르를 죽인 다음, 그의 시신을 끌고 다니며 능멸하는 모습 또한 지극히 사사로워 보입니다. 어쩌면 그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는지도 모르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웅의 면모라고는 할 수 없겠죠. 이것은 필멸하는 인간으로 태어나 목숨이 다할 때까지 구걸하지 않고 트로이아인들을 위해 싸운 헥토르가 더 멋져 보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신들 또한 사사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파리스가 헬레나에게 반하게 된 것도 결국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의 유치한 미모 경쟁 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들은 자신이 총애하거나 자신의 피가 섞인 인간들이 있으면 사사건건 개입합니다. 이는 제우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신 외에 다른 신들이 전쟁에 개입할까 봐 올륌포스 산 위에서 꼼짝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기도 합니다.
   언제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습니다. 이 전쟁에서도 여자의 표정은 아무도 살피지 않습니다. 여자는 감정이 있는 인격체가 아니라 그저 양이나 황금처럼 셀 수 있는 물질처럼 취급됩니다. 그나마 헥토르의 아내인 안드로마케와 최고 미인으로 손꼽히는 헬레네 정도만 감정이 있는 존재로 다뤄질 뿐입니다.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이토록 방대한 서사시를 흥미롭게 써낸 호메로스와, 이렇게 오롯이 옮겨 써 준 번역가 천병희 선생의 힘을 느낍니다. 비록 인간은 필멸하지만, 인간들의 노래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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