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Q84 1 - 4月-6月 ㅣ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우선 명기해 놓아야 할 것은, Book2를 아직 읽지 못했으므로 이 소설에 대한 가치판단은 그걸 읽은 뒤로 유보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꽤나 긴 장편소설이다. 그만큼 길고 조밀했던 <해변의 카프카> 이후 <어둠의 저편>이 장편소설임에도 조금 소품스러웠지 싶다. 최근 근 반 년에 걸쳐 장편소설만 골라 읽고 있는 중이라서 과연 장편이어야 할 소설인가를 어느 정도 파악해낼 수 있는 안목은 생기지 않았나 하는데, 그 안목으로 읽은 이 소설의 중반부까지는 글쎄, 였다. 덴고와 아오마메의 시점으로 교차 반복되는 스토리는 인물별로 따로 묶어 논스톱으로 읽고 싶은 충동마저 느꼈다. 스토리 진행을 쉽게 순차적이고도 시점의 교란 없이 일사천리로 보여주는 게 아닌, 이런 퍼즐 같은 구성법을 택하는 작가의 대부분은 자기 스토리에, 자기 재능에 의심이 생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즉 일부러 난해하게 만들어서 허점을 감추려는 의지가 엿보인다는 뜻. 연극에서 그렇듯이 곧장 사태로 뛰어들어가서 모든 등장인물들이 한꺼번에 달리는 걸 독자가 함께하는 구성법 아니 스토리텔링이야말로 진정한 소설이라는 생각도 아울러 하고 있었다. 자기 스토리를 장악한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소설쓰기가 아닌가. 가장 파워풀한 것이 오른손 스트레이트이듯 에돌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생각은 물론 덴고와 아모마메의 접점이 드러나기 전까지였다.
아오마메에게서 스밀라의 디테일을 느끼고, 덴고에게서 소설가 하루키의 전문성을 눈치채는 것 또한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장편 하루키에게서 느끼는 그 미묘한 카피의 냄새가 다시 나를 실망시키는 중이었다. 결국 이번에도 비유에 만족해야 하는가 했는데, 이게 번역자의 특징인지 이 소설의 원문장이 그러한지 알 수 없지만, 문장 밖에, 그것도 뒤에 이어 나오는 비유가 거듭에 거듭을 더해서 문장조차 읽는 맛을 반감시키고 말았다. 소설 속 덴고라면 확 들어내버렸을 부연문장이나 중복단락이 아주 많았다. 게다가 왜, 이거 하루키에게 못된 버릇이 생긴 거 아닌가 하는 삘이 왔는지...
뿐이랴, 여전히 기담이었다. 하루키에게 기담 전문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준 나로서는 리틀피플이라든가 공기번데기, 두 개의 달이 떠있는 하늘이란 그저 내 판단을 공고히 하는 소재들이었고 그 흥미본위를 보는 순간 힘이 빠졌다. 물론 점점 낯선 세계는 기담에서 현실로 옮아온다. 기담의 낯선 세계를 1Q84로 정의 하고 현실로 돌아와 기담을 현실의 비유로 개체화시켰달까? 이걸 건드려도 되나 싶은 종교와 그 집단까지를 그렇게 쟁점의 중심부에 올려놓는다. 덕분에 읽는 데 가속이 붙는다. 결국 하루키는 언제나 잘, 빨리 읽히는 소설을 쓰고야 만다.
고 끄덕거리고 있었는데... 아오마메의 후반 챕터에서 뭔가 불길한 조짐이 있었다. 잠자는 소녀의 입에서 나온 리틀피플과 공기번데기... 나는 지금 Book2를 마저 읽는 걸 주저하고 있다. 결국 기담일까봐 말이다. 결말이 허한 소설은 장편일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