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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1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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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수상작품은 명품임이 확실하다.
도입부분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아.. 감동으로 적응해버린 경우는
이 소설이 처음 아닌가..

아름다운 소설이다.
역시 장편의 맛 또한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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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채색화 기법
박완용 지음 / 재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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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교의 기능에 대해 소상하게 알고 싶었는데
덕분에 아교사용 전반에 걸친 지식을 얻었다.
그리고 전통화법이란 게
오로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되었다.
저자 자신의 작업과정 소개를 넘어
why까지 대답하고 있다.
과문한 탓에 저자의 작품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나
민화 입문 이후 지금까지 궁금했던 것들이
많이 해소되었다.

그나저나 여기 소개된 <도구도>를 그리려다가
새삼 많은 것을 알게되어 또한 기뻤다.
역시 들이대야 얻는 것도 풍성해진다는 진리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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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쇳물 쓰지 마라
제페토 지음 / 수오서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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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시작에서 끝까지가 여기 들었다.
내가 읽은 시집 중 甲이다.
매번 눈물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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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책.



왕가의 일을 쓰기 위해 읽는 책들은 대개 발췌독이지만 집중도는 100에 가깝다.

이런 읽기를 읽기라고 하지 않는다면

나는 지금까지 10년 동안 읽지 않았다.

읽고 싶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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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에 읽으며 즐거웠으나

기억에 그 제목도 내용도 없었던 이어령씨 선집의 목차.

이 탁월한 선정으로 이후로 나는 언제나 이어령씨편이 되었었다.



이 전집은 1980년 초판으로 끝났다. 내게는 이만한 전집이 없는데...

단편소설을 읽어볼까 싶어서 옛 책장에서 집어든 지 일 년은 됐다. 미안.

이 중 1권. 어쩌다 하루에 딱 한 편만 읽고 쓰는 건 핸폰에다 쓴다. 

그래서 아주 축약본. 이러다 진짜 긴 글 못쓸 거다.


신호 / 가르신


절실한 빨강.


세묜과 바실리.

순진하고 소심한 세묜이  

불평불만자 바실리의

빗나간 저항의 끔찍한 결과를 막기 위해

다가오는 여객열차 앞에서 

자신의 피로 붉은 신호기를 만들어 흔든다.

정신은 아득해지는데 

더이상 서있을 힘도 없는데

열차는 마냥 닥쳐오고...

그때 쓰러지는 세묜을 부축하는 손은.


극성이 뛰어나다.

담긴 인정이 감동적이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가리


이 세상의 끝. 거기로 오는 사람들의 풍경.


도무지 희망은 보이지 않는데

아홉번째 고독의 물결이

자크 레니에에게로 다가왔다.


그의 속에는 그 무엇인가 포기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희망이라는 모든 낚싯밥을 끊임없이 무는 것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삶의 심연 속에  숨어 있다가 황혼의 시간에조차도 문득 찾아와서 모든 것에 빛을 던져줄 수 있는 행복의 가능성을 그는 남몰래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일종의 손댈 길 없는 바보스러움이 그의 내부에 잠겨 있었다. 어떤 패배도 어떤 쓰디쓴 맛도 결코 말살시키지 못한 순진성이 -1-61p.


실패한 혁명가, 이미 세상의 끝에 가있는 47세의 남자에게서 다시 일어나지만  녹록할 리가...

맞서지 못했으나 아니나 달라, 물결은 저항하기 어려웠으나 물결이란 왔다가 가는 것이다. 희망이 기대했지만 그 물결은 되돌아간다.


난바다 위에 하늘과 맞서듯 떠있는 구노아석섬 몇 개.

그 섬을 거쳐가는 수천 마리의 새들이  왜 하필 여기 3km남짓 되는 이 해변 모래밭에 와서 죽는지 사람들은 알듯도 모를듯도 하다.


'공간'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이십대엔 분위기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골리/코


8등관 코발레프소령, 5등관 코발레프의 코, 이발사 이반 야코블레비치.


1836년, 관료들의 압박으로 러시아를 떠나서 발표.

가차없을 만하다.


희화화를 통한 조롱과 풍자.

황당무계한 사건을 보고하며

작가 스스로 미친듯이 언빌리버블을 외치며

사람의 코가 떨어졌다 다시 붙은  이상한 일에 연루된 사람들 모두를 가차없는 시선으로 조롱한다.

하여 사건의 추이가 아닌 인물의 성격과 행동에 대한 작가의 묘사가 작의인 본격문체소설이라고 봐야.

물론 이 말은 내가 지어낸것ㅋ.


이미 이런 유형의 풍자는 도저한 흐름이므로

이 작가가 그 선구였다는 것 정도를 알겠다.

C.디킨스의 묘사도 장난아니게 밉살스럽고 유머러스했던 기억이 난다.

얼마전에 읽은 몽테스팡수난기는  도를 넘었다 싶었을 정도였고.

논어 속의 공자는 절대 대놓고 말하지 않는데

초지일관하는 그의 원칙에 기대어 보면

이게 또 은근한 맛이 있어서

곰삭은 듯 아주 오래간다는 거.

결국 선택의 문제인 거다.


<외투>를 읽어보는 게 좋을듯. 읽었어도 격이 안난다 ㅉ



친구 / 고리키


- 농부 예피무쉬카, 부랑자 비차 투치코프 그리고 산 속 숲


- 신분증명서가 없는 50대 부랑자를 경찰서로 이송하는  임무를 맡은 착한 농부. 가는 길 중간에 산이 있고 부랑자는 산길을 가는 거냐며 기뻐한다. 호인 농부 예핌은 어린 시절 이 숲에서 놀았던 기억을, 같이했던 투치코프가의 막내도련님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하고  부랑자는 그윽하게 글 바라보며 웃고. 산을 지나간다는 말에 흥미를 보이는 부랑자, 드디어 산에 들어서자 예핌에게 절로 밀려드는 어린시절의 추억과 그리운 친구 비차. 


- 혹시 이 사람이 비차? 그 기대감이 읽기를 독려하고 독자의 바라던 바는 결국 이루어져 읽은 보람이 된다. 귀족과 농부의 훈훈한 우정 만큼이나 읽고난 후가 따뜻하다. 


- 문제는 어쨌거나 귀족이 우위인 세계관. 아무래도 지금이라면 악평의 근거가 될 것이다.


유심히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라면 비차가 그저 귀족나부랑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 아니, 생각해봐야지. 삶이 나를 꺾은 것인지 내가 삶을 꺾은 것인지. - 유복한 집을 떠나 귀족으로서가 아니라 생활인으로, 배우이자 극단주로, 진 빚을 갚을 길 없는 채무자로, 그리고 남 봄에 앞날이 캄캄한 부랑자로  살아온 비차는.


그런 그가 옛친구를 만나 그렇게 정답고 온화하게 자기 삶을 반추하고 있다면. 비차가 꺾인 것인지 꺾은 것인지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왼손잡이들 / 귄터 그라스


나치 친위대원이었다는.

그 얘길 아주 나중에야 밝힌.

1999년 노벨상도 받고.

파이프에 집착하는 헤비스모커.


1983년도인가, 늦은 가을이던가, 한겨울이던가..

빈 노천극장에 둘이 앉아..

그때 영준이형이 이 작가를 이야기해주었다.

양철북의 재미가 그의 구수한 입담과 함께

입김처럼 무럭무럭 ㅋㅋ 

페이스북에 들어가면 가끔 근황이 떠주시는

영준이형.. 하이~ ^^

사실 밀려들어오는 것들이 있어서

그런 것들을 새삼 감당하기 싫어서

얼굴책을 멀리하고 있다. 하여간.


왼손잡이들 역시 세상의 편견에 대항해야 하는

일종의 소수자집단인데, 그들이 모여 결사 혹은 협회를 결성하고 함께 세상을 남들처럼 살아가려고 노력하는데..  거기도 역시 바깥세상과 전혀 다르지 않은 갈등과 혼돈과 편견이 드글대는 것이라.

나와 절친 에리히는 조용히, 단둘이서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자리변경을 하기로 하고

네차례의 연습을 거쳐 신중하게

서로를 향해 권총을 겨눈다.


좌익과 우익에 관한 정치적 편벽이 없는

타고난 그것으로만 이야기하는

의외로 유머가 넘치는 소설.

그들의 구호들 하나하나가 나름 시사하는 바가 있어서 변경될 때마다 웃었다.


역시 쓰는 사람이 얼마나 조근조근 쉼없이 속살거려야 하는지를 여지없이 느끼고 말았다.ㅋ

당연 읽는 사람도 마찬가지!


근데 말이다. 에리히는 서툰 오른손으로 힘겹긴 해도 얼마든지 먹고살 수 있겠더라만.. 기술직인 너는 왼손 없이라면 아주 힘들어지는 거 아닌가? 왼손잡이라서 받는 고통에 비하면 백배는 더 극심할텐데.  그래서 드는 생각은... 작가들이란  아무래도 생각만 앞선 종자들이다..했다는 ㅋ




순진한 소년 / 그레엄 그린


나와 로라의 시골여행.


현재의 나는 다른 여자여도 되는 여자와 자기가 태어난 고향마을을  찾아간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옛기억의 습격에 봉착한다. 어린 시절의 순진했던, 소년이었을 때의 기억을 따라 그때의 댄스교실을 찾는 지금의 그저 나는 추잡한 남자어른이 되어 있다. 그때의 소년은 순진했음을, 지금 원나잇스탠드로 살아가는 아주 세속적이고 타락한 인간이 된 나로서는 기가 막힐 정도로 순수한 영혼이었음을 떠올린다. 


나는 어쩌다 로라같은 여자와 여기올 생각을 한 것인가 후회도 하고. 그때 나는 소년의 순진함으로 좋아했던 여자애가 있었고 그애에게 보내는 편지를 넣은 공간이 있었다. 아직도 그대로인 그 주먹 하나 들어갈 만한 조그만 구멍을 찾은 나는 두근거리며 손을 집어넣고 아직까지 전해지지 않은 소년의 편지를 꺼낸다. 지금은 잃어버린 순진한 소년의 순진한 사랑이 들어있을  자신의 편지를. 그리고 진심 나는 너무 놀란다. 아아~~ 이 그림 음란하다! orz


아아~~  순진이란! ㅋㅋ 

내가 추잡해져서 그렇게 보이는 거라니!

아니.아니다. 무엇을 추잡이라고 하는지 이제 아는 것일 뿐이다. 하핫.


당연히 반전이 있고 당연히 예측한 그것이었다면

아마도 세계걸작선에 들지 못했을 것이다.

단편의 본분이 바로 이것.

'순진'에 대한 성찰이 섬광같다.

그린의 장편을 내가 읽었는지 모르겠다.

스릴러의 대가라는 명성이 있다는데

그저 영화로만 접했을 수도.




몽당난장이 / 나보코프


롤리타보다도 인상적이었던 소설이었다.

삼십여년 동안  난장이 프레디를 잊지 못했었다.

나보코프는 진정한 얘기꾼이다.

황석영에게서 느꼈던  이야기꾼의 재기를

나보코프에게서  다시 느꼈다.


서커스단 이미지를 애잔에서 잔인으로 바꾼.

그래서 독자의 객관성을 유지시킨

냉정한 작가의 정신이 새롭기도 하고.


인상적인 것이라면

마술사 쇼크의 음독 마술.

부정한 아내를 징벌한 그것이

너무나 독하고 인간적이다.

그래.. 인생이란 이쪽에서 진심을 다하는 수 밖에는 없다. 저쪽이 이쪽의 반영이니까.

그야말로 기대없이.




아를르의 여인 / 도데


짧디 짧은.

그만큼 굵고 짧은 사랑과 집착.

치명적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사랑의 감정이 길어야 3개월이라는 게

밝혀진지  얼마 안됐으니.


구조도 서술기법도 고풍스럽다.

단연 압권은 길이다.

마치 시처럼 단 하나의 정서를 위해

그 명확성을 위해

들어있는 모든 요소들이 성의를 다한다.

불필요한 것은 화자일 정도로.


우량품 / 골즈워디 
 
참 안외워지는 이름이다.. 
 
나, 구두장이 게슬러형제, 젊은 구두장이 
 
1인칭소설. 실제 자기 경험담 느낌. 1인칭서술의 효과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예술에 이른 장인의 굶어죽은 삶 앞에서 
그걸 몰라본 수치감을 느끼는 나는
대다수의 우리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
읽으면서 드라마 쓰겠다고 버티고 버티다 죽은 그 작가지망생이 떠올랐으나...
게슬러형제는 이미 장인이었으니까 
경우가  다르다.
여하간 퀄리티가 원제인데.
좀 숙고해야할 것 같다.
지금은 질을 따지는 쪽도 세상의 반은 된다.
게슬러형제가 지금 자기 점방을 열었다면
최고가를 받으며 아주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세상이 시간을 타고 여기 골즈워디와 같은 의식을 통해 변했다.



이상한 사람의 꿈 / 도스토옙스키 
 
만년에 쓴 이 작품은 
내가 알았던 도끼옹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이들어가며 새롭게 느끼는 게, 
거짓말인 '소설'이라는 게 허접해지는 것이라. 
하고자 하는 말이 있다면 단도직입으로, 
돌아가지 말고 하는 것이 
하기도 좋고 듣기도 편해지는 것이라. 
그만큼 장식도, 은유도, 상징도 
다 불필요해지는 것이라. 
그 반증으로 이 단편이 딱이라고나 할까. 
그만큼이나 개성없고 의미없고 
가치없는 작품으로 읽혔다.  
 
만년에 글쓰는 일이란 아주 어려운 것인가 보다. 
'늙음'은 너무 좁고 너무 굳고 너무 질기지만
힘겹게 돌이키지 않아도 되는 
너무도 편안한 맞춤인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나를 그에 맞추는 게 오히려 덜 끔찍해서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왜 이 작품을 도끼옹의 명작으로 선택했는지 모르겠다. 
워낙 얘기를 길게하는 작가라
명작이라 꼽을 만한 '단편'을 못찾은 것일까? ㅋ


::::::

뒤라스의 기다림과 만남은 정말... 새 번역이 아니면 읽을 수 없을 정도..

뒤라스가 그렇게 쓰는 사람이아닐텐데.. 내가 뒤라스를 안읽어본 것도 아니고..

저 삼십년 전에는 어찌 읽었는지 원...

뒤라스 때문에 이 기획이 어긋나고..

그래도 디넨센은 읽고 아직 안 쓴 거다ㅋ 다시 읽어야할 듯.

디넨센의 글은 좀 동화틱해서리 ㄲㄲ


어쨌거나 여기가 본격 북리뷰 공간이니까 해서 옮겨두고 채울 요량.

쓰는 이유는 지금의 나처럼 언제나 내가 진짜 읽었는지도 기억이 안날 게 뻔해서.

요즘 단편소설 아니 저걸 읽었던 스무살 적에도 그랬지만 

대체 뭔 소리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는 요즘 단편에 질려서 이 옛날 걸 택한 거다.

올만에 세로글이 운치도 있고 노안에도 좋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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