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드의 손톱 동서 미스터리 북스 72
얼 스탠리 가드너 지음, 박순녀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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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미스터리의 일인자 가드너의 처녀작인 <비로도의 손톱>은 사흘반이라는 집필기간을 의식하지 않아도 날림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고, 주인공의 직업만 다를 뿐 해미트와 챈들러의 아류라는 평가에서 벗어날 아무 특징이 없다. 작가의 두번째 작품인 <토라진 아가씨>와 어찌 이리 딴판인지 신기할 정도다.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 많아서 속단하긴 어렵지만, 동서 목록 중에서 거의 최악에 속하지 않나 싶다.

마지막 반전은 트랜트 최후의 사건같은 작품을 의식해 억지로 끼워넣은 느낌이다. 트릭이나 추론에서도 우수한 점을 찾을 수 없다. 총이 두번 발사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장면은 정말 맥빠진다. 어떻게 경찰이 살인흉기인 권총에서 총알이 발사된 횟수를 소홀히 할 수 있단 말인가...

홈즈나 포와로, 퀸, 번스 등 거물급 탐정의 첫등장과는 달리 메이슨의 개성에 대한 묘사가 적다는 것도 불만이다. 비서 델라와 사립탐정 폴과의 관계형성과정에 대한 언급도 없다. 한마디로 팬서비스가 엉망이다. 아마도 가드너는 메이슨을 1회용 캐릭터로 생각한 것 같다.

<토라진 아가씨>에 비해 한참 뒤지고, <의안살인사건>, <행운의 다리 미녀>와 비교해도 두어수 아래라 느껴진다. 예전에 이것이 정녕 가드너의 작품이란 말인가라는 한탄을 절로 나오게 했던 <잊혀진 살인>보다 조금 나은 정도이다. 가드너의 거침없는 문장과 메이슨의 데뷔라는 것 말고는 다른 의미가 없어 보인다.

가드너의 다른 작품들이나 헨리 세실의 <법정밖 재판>같은 법정물 특유의 묘미를 기대하지 마시라! 이 작품에는 법정장면이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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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6
S.S. 반 다인 지음, 안동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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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인은 트릭이 대수롭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서 나는 그다지 찬성하지 않는다. 카나리아의 경우는 확실히 칭찬할 수 없는 트릭이기는 하지만, 그 외 그린을 비롯한 벤슨이나 가든 딱정벌레 등 대부분의 주요작품에서 사용된 트릭들이 우수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크리스티나 딕슨카 퀸과 비교하면 트릭의 신선함과 충격성의 측면에서 약간의 손색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대신 추론의 섬세함과 논리적 완결성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작가가 반다인이다.

그러나 그린 만큼은 트릭면에서도 크리스티나 딕슨카 퀸의 어느 유명작품에 뒤지지 않는다. 이 작품에 사용된 트릭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유명한 트릭은 작중에 언급되어 있듯이 반다인의 창작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뛰어난 트릭이 평가절하될 이유는 없다. 추리소설에서 트릭의 고갈은 필연적이기에 모든 작품에 완전히 다른 트릭을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걸작중에도 남의 트릭을 차용한 경우는 적지 않다. 도일의 <얼룩끈>의 경우 천년도 넘은 중국의 어느 태수이야기에서 트릭을 빌렸고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도 르블랑의 선례가 있었다. 세이어즈의 <나인테일러스>와 크리스티의 모 단편에 사용된 트릭에도 유사한 일면이 있다.

충격적 트릭으로 유명한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의 트릭도 그 모델이 되는 예를 체스터튼ꋯ브래머ꋯ퀸 등 여러 작가의 작품에서 숫하게 찾을 수 있다. 요는 트릭을 그대로 베끼지 않고 응용하고 변형하여 작품의 다른 요소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데에 있다. 이 작품의 트릭은 한스 그로스의 예심편람에 등장하는 트릭에 약간의 변형을 가하고 그것을 폭설이라는 기상적 배경과 멋지게 조화시킨 기존트릭 응용의 모범적 예라 하겠다.

그리고 이작품은 반다인 특유의 심리학적 탐정법이 잘 구사된 작품이다. ‘심리학적’또는 '심리적'이라고 다소 애매하게 뭉뚱그려서 이야기되지만 작가마다 그 의미는 다르다. 크리스티 작품의 심리학적 요소라면 여러 등장인물 각각에 개성을 부여하여 그 심리상태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의미하고, 아이리시의 심리묘사는 독자가 위기상황에 처한 작중인물에 감정이입하여 심리적 긴장감을 느끼는 것이며, 딕슨카의 경우는 공포 따위의 감성을 자극하는 분위기 묘사이고, 필포츠의 그것은 탐정과 범인의 보이지 않는 심리적 대결구도이다. 반다인의 경우는 심리학적 탐정법 말 그대로 실제 추리과정에 심리학을 적용하여 범인의 심리적 특성을 추론하는 것이다. 심리학적 추론을 주장하는 탐정은 많지만 실제로 추리과정에 중요한 요소로 활용하는 경우는 번스가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번스는 범죄의 특징적 요소를 분석하여 밝혀낸 범인의 심리적 특성을 용의자에 대입하여 진범을 추정하고 이후 물적 증거를 활용하여 추론을 보완하고 증명하는 방식의 탐정법을 사용하는데, 심리학적 추론과 물리적 증거의 조화가 전작인 <카나리아 살인사건>에서는 불균형한 모습을 보여 추론의 설득력이 다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 작품에서는 처녀작인 <벤슨 살인사건>에서 보여주었던 균형감각을 회복하여 양자의 멋진 조화를 이루어냈다. <그린 살인사건>은 <벤슨 살인사건>에 비해서도 심리학의 비중이 약간 감소한 모습을 보이는데 아무래도 <카나리아 살인사건>의 심리학 일변도 추리법의 문제점을 크게 의식한 듯하다. <그린 살인사건>에서 사용된 심리학과 물적 증거의 비율은 이후 작품에도 그대로 유지된다.

반다인의 제3작 <그린 살인사건>은 반다인 특유의 페어플레이 정신과 심리학적 탐정기법이 돋보이며 지적 게임이라는 추리소설의 의미에 충실한 본격 미스터리 걸작으로, 퀸의 <와이의 비극>ꋯ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ꋯ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 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추리역작들과 당당히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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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4-08-03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 다인 작품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죠..^^
 
한푼도 용서없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86
제프리 아처 지음, 문영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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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수학교수, 영국인 의사, 프랑스인 화랑주인, 영국인 귀족...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던 네 사람이 어느 미국의 악질 사업가에게 사기를 당해 파산위기에 처한다. 네 사람의 피해액 합계는 백만 달러. 사기당한 것을 깨닫고 전전긍긍하던 그들은 수학교수의 제안으로 자신들이 부당하게 빼앗긴 돈을 '한푼도 더도말고 덜도말고('한푼도 용서없다'보다는 이게 더나아 보인다. 원제에도 충실하고)' 완전하게 되찾기로 계획을 세우는데...

제프리 아처의 <한푼도 용서없다>는 소재가 기발하고 구성이 훌륭한 유쾌한 복수담이다. 제프리 아처는 현재 가장 잘팔리는 작가인 만큼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은 대단하다. 예상치 못한 결말부의 반전도 훌륭하며 각자의 특기와 개성이 잘 표현된 네사람에 대한 인물묘사도 매우 흥미로웠다. 간결한 대화중심의 문체는 읽기에도 편하다. 그러나 세부적인 묘사나 대사를 만들어내는 재치는 프래드릭 브라운이나 포사이스 정도는 못되는 듯하다. 처녀작이라 작가의 필력이 온전하게 발휘되지 못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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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가슴으로 해야 한다
강형기 지음 / 비봉출판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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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정치학자 A. de Tocquevill은 미국시찰을 다녀와서 미국의 Town Meeting에 대해 민주주의 학교라 칭하면서 높이 평가하였다. 지방자치란 일정한 지역의 주민이 그 지역내 사무를 자기책임하에 자주재원을 바탕으로 스스로 또는 대표자를 통하여 처리하는 과정으로 정의되는데, 이 행위의 자기책임성과 행위의 자기결정성이라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두개의 기본원리를 내포하는 지방자치의 개념은 50년대에 유럽에서 George L Langrod와 Keith Penter Brick의 유명한 논쟁이 있는 등 오랫동안 그 효용과 폐해 장점과 단점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념적∙ 행정적 측면 뿐 아니라 국경의 의미가 점차 희미해지는 국제화라는 세계적 추세에 부합하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정당성과 이로움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방자치 가슴으로 해야 한다>의 저자이신 강형기 선생님은 내가 현재 수강중인 지방자치론 과목의 담당교수이다.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답게 카리스마와 자신감이 넘치는 분이다. '내가 지방에 있는 것은 내가 지방자치학자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학자가 지방에 있지 않으면 어디있겠는가!'라고 웅변하는 그분의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을 나는 좋아한다. 책은 일본의 여러가지 사례를 열거하면서 지방자치 성공의 조건으로 제도적 완비, 유능한 지도자, 성숙한 시민의식과 시민의 참여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의 여러 성공한 지방지도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는 무사시노시의 쓰치야 시장이다. 초선신임시장으로서 공무원노조라는 거대집단과 당당히 싸우는 용기, 자신의 초라한 아파트에 대해 '샐러리맨이 살 수 있는 집은 이정도이다'라고 말하는 청렴함, 시민의견을 최대한 시정에 반영하면서도 님비나 핌피는 단호히 배격하는 균형감각, 인구15만에 불과한 무사시노에 이상할 정도로 거대하게 건립된 시민 체육관에 대해 시민의 건강이 향상되면 병원이나 보건소에 쓰일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다면서 '비용을 소극적이 아닌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라고 말하는 그의 적극적이고 발전적인 복지관... 쓰치야야말로 현대 지방자치의 이상적인 지도로서 하나의 모범으로 삼을만하지 싶다.

이어서 책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국가가 지방보다 훨씬 우월하고 우선한다고 믿는 오랜 권위주의, 또 권위주의 흐름 속에서 중앙의 지시 감독에 길들여져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상실한 지방정부, 심한 인구유동과 참여에의 경험부족으로 그다지 높지않은 향토애와 시민의식, 중앙정당의 지방간섭 등 우리는 많은 불리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느정도 자연 해결되는 부분도 있겠으나 급변하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우리의 지방과 도시에게는 자연적 향상을 기대할 여유가 없다. 국가는 지방에 정당한 권한을 이양하고 부당한 부담은 회수해야 하며 정당은 지방자치에서 손을 빼야 한다. 그리고 지방은 스스로 경쟁력을 높일 방안을 강구해야 하고 주민은 권리와 책임이 조화를 이루는 성숙한 시민의 자세를 가지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 자신이 저자의 강의를 현재 수강중이라 수업과 연계한 생각하는 독서가 가능하였다. 그리고 사례 중심의 내용이라 다소 딱딱한 느낌의 교과서와는 달리 상당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고 이해도 용이했다. <지방자치 가슴으로 해야 한다>의 주제는 한 마디로 ‘지방자치의 성공은 이론만이 아닌 열린 사고와 사람 사이의 진정한 신뢰와 교류로 이룩된다.’인 것 같다.

강형기 선생님의 말씀처럼 공무원은 특히 지방공무원은 종이와 연필로 일해서는 안 된다. 주민과 같이 호흡하며 가슴으로 일해야 한다. 나도 졸업 후 공무원을 희망하지만 이미 공무원이거나 미래의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은 모두 이 주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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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1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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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가 등장한다는 것이 께름직하기는 하지만, 제법 재미있는 책이다. 시적이고 장식적 문체는 순수문학을 지향했다는 르블랑의 만만치 않은 문재를 증명해주고, 다양한 구성과 소재는 감탄할 정도이다. 뤼팽이란 캐릭터 역시 처음부터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추리소설적으로 낙제 수준이다. 이 작품에 수록된 단편들도 여느 추리소설처럼 수수께끼를 제시하고 해결하고 추론과정을 설명해주는 형식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탐정이 아닌 범인을 주인공으로 하였기에 일반적인 과정인 발단→전개→해결의 순서적 고정성에서 탈피하여 그 순서를 자유로이 바꿀 수 있는 장점이 잘 활용하여 다양한 플롯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해결의 단서를 독자에게 제시하는 데에 너무 인색하고, 트릭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며, 추론과정에도 날카로운 맛이 없다. 불가능한 일도 뤼팽이니까 가능하다는 식의 설정도 너무 많다.

구성과 문체가 훌륭하고 뤼팽이라는 매력적 캐릭터가 있고...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을거 같은데 가운데가 텅 비었다. 이렇게 된것은 아마도 지나치게 홈즈를 의식한 탓이 아닐까? 홈즈가 이성으로 나간다면 이쪽은 감성으로 승부한다는 컨셉에 너무 얽매이는 듯하다. 영국의 홈즈에 대항할 만한 우리의 영웅이 있어야 한다는 다소 치기섞인 발상에서 탄생한 뤼팽의 태생적 한계일까? 영국대 프랑스, 명탐정대 괴도, 이성대 감성, 추리대 활극... 이런 구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면 훨씬더 멋진 작품이 되었을 것인데, 르블랑은 도일을 너무 의식하여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설정한 꼴이다.

하지만 아무리 홈즈를 끌어와 뤼팽에게 패하는 모습을 연출해도(이 작품에서 홈즈가 심한 꼴을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암성에서 홈즈는 아주 엉망이 된다. 능력 뿐 아니라 인간성까지)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도일을 읽은 사람은 도일의 홈즈와 뤼팽의 홈즈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안다. 르블랑의 작가적 양식만 훼손될 뿐이다. 홈즈와 뤼팽을 추리소설의 양대산맥이라 하는 사람도 있으나, 공허한 말이다. (추리소설에 무지한 사람이거나 르블랑의 팬이 아니라면 누가 그런 소리를 할 것인가!) 홈즈라는 튼튼한 산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도 굳건히 설 수 있으나 거기에 기대고 있던 뤼팽이라는 기형산은 홈즈가 떠나가면 힘없이 무너진다.

첫작품을 낼 때까지 도일에 대해 들어 보지도 못했다는 작자나 셜록 홈즈를 헐록 쇼메즈로 바꾼 것에 대해 프랑스적 기지 운운하는 역자나...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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