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시간의 딸 동서 미스터리 북스 48
조세핀 테이 지음, 문용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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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입원한 경감이 침대위에서 악명높은 영국왕 리처드 3세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추적한다는 스토리라인을 가지는 이 작품은 역사 미스터리의 모범으로 삼을만하다고 생각된다.

이 작품에서 밝혀지는 역사적 진실은 비록 작가가 창조해낸 새로운 학설인 것은 아니라지만, 그것은 작품의 완성도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역사 미스터리는 학술 논문이 아니며 독자가 기대하는 것도 소설로서의 재미이지 학문적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 미스터리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과 소재로 사용하는 추리소설로서 역사적 미스터리를 학자가 아닌 범죄를 수사하는 탐정의 입장에서 파헤치는 장르인 것이다. 이 작품은 역사가의 학구적 사고방식을 조롱하며 철저하게 노련한 경찰의 눈으로 추적해가는 모습을 잘 묘사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수백년 전의 역사적 사실에 애써 현재의 범죄를 결부시키지 않는 것은 무리없고 자연스러운 진행이지만, 한편으로는 추리소설 특유의 서스펜스가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작가의 재기 넘치는 필력 탓에 지루하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지만, 좀더 긴장감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가 추가되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리처드왕이라는 이름에서 로빈 훗과 아이반호에 등장하는 사자왕 정도 밖에 연상할 수 없는 영국 역사에 무지한 나로서는, 여러명의 리처드와 헨리들을 구별하는 것 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가와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영국인이라면 당연히 느꼈을 작품의 진수를 많이 놓친 것 같아 아쉽다. 하드보일드를 풍속 소설이라고 할 때 역사 미스터리는 시간의 제약에서는 자유로운 좀더 넓은 의미의 풍속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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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4-07-15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을 읽으면서...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역사소설같다는 기분으로 읽었더랬죠. 그래도 짜임새있는 구성이 괜챦은 소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ryder 2004-07-23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명의 리처드와 헨리를 구분하는, 이 표현에서 껄껄 웃었습니다^^ 마지막 줄, 좋네요.
 
시행착오 동서 미스터리 북스 102
앤소니 버클리 콕스 지음, 황종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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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우-도일-반다인, 퀸으로 이어지는 정통계보의 본격추리소설은 모든 미스터리 형태의 원형이 되었고, 지금도 매니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초기 정통추리소설은 그것의 태생적 본질적 특질상 몇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묘사의 부실함, 리얼리티의 결여, 작위적인 설정, 인물의 정형성 등등...

이러한 한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본격미스터리의 황금시대인 1920년대부터 몇몇 선견지명을 지닌 작가들에 의해 지적되고 그 극복을 위한 시도가 이루어졌는데, 그들 중 가장 중요하고 뛰어난 작가로 나는 버클리 콕스를 꼽고 싶다. 버클리 콕스의 주요작품들은 모두 당대의 정형에서 벗어나 있다. <살의>의 과도한 심리묘사, <독초콜릿 사건>의 주인공 탐정의 실패 혹은 주인공 탐정이 누구인지 불분명한 점, 그리고 <시행착오>는 기본패턴을 뒤엎고 탐정이 범죄를 해결하는 과정이 아닌 범인이 자신의 범죄를 증명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 등은 모두 반다인이 주장했던 법칙들을 위반한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버클리 콕스가 절대 본격물이 아닌 다른 장르의 작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살의>를 제외한 두작품도 본격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해미트가 체제 밖의 개혁자라면, 버클리 콕스는 체제내의 개혁자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작품은 대개의 추리소설이 가지는 살인-체포-증명의 패턴 속 주체가 탐정이 아니라 범인이다. 패트 매거의 <탐정을 찾아라>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구성이지만, 비록 범죄자의 심리와 동기의 묘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어도, 자신의 범죄를 증명해가는 과정의 논리적 완성도가 아주 치밀하기에 범죄소설이나 스릴러라기보다는 본격물로 분류함이 옳을 듯하다. 특히 후반부의 법정 장면 묘사는 가드너의 작품을 연상케할 정도로 뛰어나면서 <살의>와는 달리 과도한 심리묘사는 피하는 본격물의 특징을 따르고 있다.

작품을 읽으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추리소설을 제법 읽어 많이 약아진 나의 머리는, 더 이상 이 작품이 사용한 것 같은 서술 트릭에 속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은 피터 러브시의 <가짜 경감 듀>를 읽을 적에도 느낀 것이지만, 추리 매니아로서 많은 추리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나 클리세나 어떤 패턴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좀 서글픈 일인 것도 같다. <미궁과 사건부>를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을 부러워한다고 말한 엘러리 퀸의 심정을 알 것도 같다.

가끔은 책장에 독을 발라 살해하는 수법이나 비밀통로, 쌍둥이의 대역 같은 구닥다리 트릭에도 전율을 느꼈던 초심자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도일이나 반다인을 아직 한권도 읽지 않은 사람들과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결말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 너무도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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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마 클럽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정창 옮김 / 시공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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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요란한 명성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이 책은 추리소설로도 함량미달이고, 뒤마의 향수를 자극하는 힘도 대단치는 않다. 혹시라도 이 작품의 반전이라든지 논리적 구성에 감탄한 사람이 있다면 제대로 된 고전 추리소설을 읽어보라고 말하고싶다. 다만 장미의 이름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질만하기도 하겠으나 권할만한 책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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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보수 동서 미스터리 북스 61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광섭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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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에 구리모토 카오루의 SF수호지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크토르(이책에서는 '크투르프'라고 표기되어 있다) 신화를 처음으로 만들어낸 사람이 러브크래프트라는 사실을 알고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보았다. 그러나 읽고난 후의 소감은 다소 실망스러운 편이다. 크토르 신화를 창조함으로써 러브크래프트라는 작가가 현대공포소설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겠으나, 그의 문재는 그의 뛰어난 상상력만큼은 못되는 듯하다.

이작품은 공포를 느끼게 하는 대상을 자세히 묘사하기보다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형태의 서술을 주로 사용하며 괴기현상에 대한 해답제시를 거의 해주지 않는다. 다소 모호한 구성으로 공포의 여운을 좀더 오래 지속되도록하려는 의도이겠으나, 작가의 필력부족으로 전체적으로 감질나고 답답하다는 느낌이다. 크토르 신화의 기괴한 매력은 무시못할 바이지만 선듯 권하기는 어려운 책이다. 노파심에서 한마디하자면 이작품은 추리소설이 아니다. 추리적인 요소가 조금 포함되어있다고 하기도 어렵다. 아마도 DMB중에서 유일하게 추리소설이 아닌 작품이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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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속 여행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1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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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문학의 인물중 가장 많이 영화화된 케릭터가 도일의 홈즈라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2등은? 놀랍게도 문학의 인물중 두번째로 영화화가 많이 이루어진 케릭터는 얼 데어 비거즈의 찰리 챈이라고 한다. 이 놀라운 기록만큼이나 충격적인 사실은 책의 해설에도 나와있듯이 지난 1세기 동안 가장 많이 번역된 작가가 쥘 베른이라는 사실이다. 역자의 통계는 번역된 책의 종수만을 고려하여 실제적 부수와는 많은 차이가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안드는 것은 아니지만, 쥘 베른이 이토록 오랜세월동안 널리 읽히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세월의 무게와 문화의 차이를 아우르는 뛰어난 고전작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명한다.

<지구 속 여행>은 여러면에서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와 비교가 되는 작품이다. <잃어버린 세계>가 태고의 신비로운 생태를 남미의 오지에서 발견하는 스토리라면, <지구 속 여행>은 그것을 땅속 깊숙한 곳에서 찾는다. 그리고 단순한 모험의 서술에 그치지 않고 태고의 생태나 지구의 지질학적 역사에 대한 나름대로의 과학적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도 유사하다. 탐험의 주체가 되는 인물들의 설정도 전체적으로 비슷하다. 주인공격인 <잃어버린 세계>의 챌린저교수와 <지구 속 여행>의 리덴브로크 교수의 괴팍하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이미지가 그렇고, 두 작품 모두 발랄하고 위트있는 젊은 관찰자의 시선을 사용했다는 점이 역시 그렇다. 그리고 충직한 솜털오리 사냥꾼 한스는 <잃어버린 세계>의 믿음직한 탐험전문가 록스턴과 비교될만한 케릭터이다.

<지구 속 여행>은 140년가량 전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는 프로토 에스에프 또는 경이소설의 고전명작이다. 그러나 여러면에서 <잃어버린 세계>보다는 조금 못미치지싶다. 진행의 박진감이 부족하여 읽는 재미면에서 <잃어버린 세계>보다 못하고, 묘사의 현실감이라든가 유머와 재치면에서도 약간 뒤진다고 생각된다. 묘사의 현실감이라는 측면에서 도일이 워낙 정평이 난 작가이고 <지구 속 여행>도 그다지 현실감이 부족한 편은 아니며 유머라는 요소도 내가 프랑스보다는 영국작가의 작품에 익숙한 탓일수 있겠으나, 진행의 밋밋함은 확실한 약점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100년도 넘은 고전 모험소설에 현대소설과 같은 요란한 활극을 기대할 수야 없지만 <지구 속 여행>은 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정적이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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