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제벨의 죽음 동서 미스터리 북스 81
크리스티나 브랜드 지음, 신상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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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연극 공연 도중 성서에 등장하는 악녀 제제벨을 연상시키는 이세벨이라는 여자가 높은 탑위에서 바닥으로 떨어진다... 사인은 뜻밖에도 추락사가 아닌 교살... 무대의 앞쪽은 수백 관중이 지켜보고 있었고 유일한 출구인 뒤쪽의 대기실은 안으로 잠겨있다... 용의자는 공연중이던 온몸을 가리는 기사복장을 한 세 명의 배우...

다분히 딕슨카풍의 괴기와 불가능의 냄새를 풍기는 설정이다. 해설자는 크리스티나 브랜드와 니콜라스 블레이크를 신본격파로 구분하면서, 그중에서도 브랜드가 황금시대의 작풍에 가깝다고 하였는데, 타당한 평가인 듯하다. 같은 신본격파라지만 개혁성향의 블레이크와 복고적인 브랜드의 작풍은 분명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이 작품은 퍼즐러의 극한이라고 칭해지지만, 반다인이나 퀸의 그것과는 다르다. 포우와 도일의 정통을 계승한 반다인과 퀸이 논리의 완결성에 초점을 맞추는 정통파라면, 체스터튼과 오르치 남작부인의 영향이 강한 크리스티와 딕슨카는 반전과 트릭의 의외성에 무게를 두는 직관파라 할 수 있는데, 브랜드는 다분히 후자 쪽이다.

<제제벨의 죽음>의 최대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결말부에 있다. 작품의 종장에서 탐정은 자신의 추리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며 이러저러해서 아무개가 범인이라는 추론이 거의 완성되는가 싶더니 갑자기 템포가 빨라지면서 이제까지의 논리를 뒤집는 전혀 새로운 결론을 제시한다. ‘최후의 반전’이랄까... 방심하고 있는 독자에게 날리는 ‘파이널 카운터펀치’라 할 만한 이 수법은 벤트리의 <트랜트 최후의 사건>이 그 효시라 생각되며, 딕슨카의 <세 개의 관>이 가장 성공적인 예이지 싶다.

<제제벨의 죽음>의 결말은 <세 개의 관> 못지않게 강력하다. 그리고 트릭은 정말 섬뜩하고 충격적이다.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을 읽고 이런 유의 트릭에 다시는 당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완전히 당했다.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수차례 속아 넘어갔던 트릭의 간단한 변형이라, 간파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브랜드의 미스디렉션 수법은 딕슨카와 비교해도 좋을 정도로 특출한 데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은 <세 개의 관> 정도의 작품은 못되는 듯하다. 작가의 문장이 원래 그런 것인지 번역의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미스터리한 초반 설정과 강력한 결말부를 이어주는 중반진행이 밋밋하고 좀 지루한 편이며 인물표현에 있어서는 생동감과 독창성이 아쉽다. 그리고 본래 크리스티-딕슨카 스타일이 논리적 완결성은 좀 부족한 편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 역시 그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전지전능한 콕트릴 경감은 멋진 수단으로 범행수법을 설명하고 범인의 자백도 받아내지만, 아무래도 어떻게 해서 그러한 결론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여 결론의 논리적 필연성이 약해 보인다. 공정한 대결을 기대했던 독자로선 불평이 나올 만도 하다. <세 개의 관> 역시 화려한 기교에 복잡한 구성 그리고 ‘작가 자신이 아니면 누가 풀 수 있단 말인가!’라는 푸념이 절로 나오는 수수께끼의 고난이도로 페어플레이에 충실한 작품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추론의 개연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이 작품보다 확실히 나아 보인다. 한가지 더 지적하자면 반전이 거듭되는 결말부. 이 부분이 이 작품의 최대 매력이기도 하지만, 급박하게 뒤바뀌는 그 상황들은 개연성이 부족하여 단순히 극적 효과만을 노린 작위적 장치라는 느낌이 너무 강하게 느껴진다.

약간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제제벨의 죽음>은 딕슨카적인 기괴한 설정과 크리스티풍의 극적 반전이 어우러진 신본격물의 수작으로 본격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에게 권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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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wk0911 2004-08-16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자신도 이 작품을 무심코 구입했다가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체적으로 트릭면에서는 카의 작품과 비슷한 점도 보이나 카의 작품과 같은 긴박한 작품 구성이 떨어져 몰입도는 낮은 것이 흠이지만 최근에 새로 나온 본격 추리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나은 작품으로 꼽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