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호 2003-11-21
까소봉님의 지적에 대한 변명... <<아래 까소봉님의 글에 대한 답글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물론 논리, 트릭, 의외성은 모든 추리소설의 공통적 요소이지만, 상대적으로 구성의 경중을 가려볼 수는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구분은 각 작가의 대체적인 경향이 그렇다는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말씀하신대로 <백주의 악마>의 경우는 저역시 크리스티의 다른 작품과는 달리 반다인-퀸 스타일의 정통 퍼즐러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통파’니 ‘직관파’니 하는 용어는, 위와 같은 차이를 인정한다면, 아무래도 추리소설의 시작이 포우였으니 그 계통을 정통이라 칭한 것이고, 직관파는... 이미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와 베일리의 포튠 박사가 홈즈스타일과 구분되어 일반적으로 ‘직관파탐정’이라 불리우고 있으며 이들의 작풍이 오르치 남작부인과 유사하고 또 크리스티, 딕슨카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되기에 그것을 차용한 것입니다.
2. <황제의 코담배케이스>와 <백주의 악마>의 비교는 (스포일러의 위험을 감수하고 말씀드립니다 ㅡ 혹시라도 이글을 읽는 한가한 분이 있다면, 그리고 두 작품을 아직 안읽으셨다면 다음은 보지마시라!!!)
황제...에서 범인이 이미 살인을 행한후에 살인장소의 건너편 A의 집을 찾아가 A의 집에서 창문으로 마치 지금 살인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했다는 듯이 호들갑을 떨며 “너도 보았지?”라며 A에게 범행이 일어난 순간 범인과 A는 한 장소에 있었다는 암시를 강하게 검으로써 (본문에도 A는 암시에 걸리기 쉬운 사람이고 그 때문에 위기에 빠졌다는 식의 표현이 있습니다) 알리바이를 만드는 수법과...
백주...에서 범인이 미리 공범에게 어느 장소에서 엎드려 쓰러져있게 한 후 그것을 B와 같이 발견하고 자신만 다가가서 아무개가 죽었다고 말하여 B로 하여금 자신은 범인과 같이 시체를 발견했다고 믿게 함으로써 실제 범행이 일어난 때인 B가 경찰을 부르러 간 사이의 시간에 대해 범인의 알리바이를 만드는 수법이 유사하다고 생각되어서입니다.
황제...에서 A는 실제로 본것이 건너편 방의 시체와 방을 황급히 나가는 누군가의 뒷모습뿐이었는데, 범인의 암시에 걸려 자신이 범행직후를 목격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백주...에서 B는 실제로 본것이 불특정한 누군가가 쓰러져있는 뒷모습뿐인데도 범인의 트릭에 빠져 자신이 특정인의 시체를 보았다고 착각합니다.
황제...나 백주...나 타인의 기억을 의도적으로 조작함으로써 특정한 시간대의 알리바이를 만드는 수법을 사용했으니 두 작품의 트릭은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3. 추리소설의 황금시대를 제1기와 제2기로 구분할 때 흔히 사용되는 분기점이 1차대전이 발발한 1914년입니다. 전쟁은 유럽인들의 소일거리를 제한함으로써 편안하고 재미있는 읽을거리인 추리소설에 대한 인기와 관심이 더욱 증가하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추리소설의 장편화, 리얼리티와 문학성의 강화 요구, 스파이물의 대두를 불러왔습니다. 이시기에 밴트리, 필포츠, 메이슨, 녹스, 밀른 등의 장편추리작가들이 빅쓰리(크리스티, 반다인, 퀸)가 주도하게되는 20년대 후반까지 추리소설계를 이끌었고 이들은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대개 추리소설이 아닌 타문필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전문 글쟁이들이었고 추리분야의 작품은 (비단 밴트리뿐 아니라 대부분이)과작이었죠. 밴트리의 <트렌트 최후의 사건>은 이 제2황금기 극초반기의 작품들 중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고 또 그 시기의 수많은 명작들 중에서도 충분히 상위권에 들 수 있는 작품이기에 이 작품을 제2황금기의 시발이자 추리소설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으로 보는 것에 별 무리는 없어보입니다. (리플라이로 이어 씁니다... 어줍잖은 글이 쓸대없이 길어지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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