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트 마지막 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34
에드먼드 클레리휴 벤틀리 지음, 손정원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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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단편 추리소설을 들라면 최초의 근대적 추리소설인 포우의 <모르그가의 살인>이나, 홈즈가 등장하는 첫 단편인 <보헤미아의 스캔들>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장편 중에서 역사적 의미가 가장 무거운 것은?
최초의 장편추리소설인 콜린스의 <월장석>?
불멸의 명탐정 홈즈의 데뷔무대인 <주홍색 연구>?
정통 본격미스터리의 완성자 반다인의 처녀작 <벤슨 살인사건>?
여제 크리스티의 처녀작이자 포와로의 첫등장인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하드보일드의 시작인 해미트의 <말타의 매>?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퀸의 <와이의 비극>?

물론 위에 언급한 작품들도 추리소설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나는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장편추리소설로 벤트리의 <트렌트 최후의 사건>을 들고 싶다.

흔히 빅포(반다인, 크리스티, 퀸, 딕슨카)의 주요활동시기인 1930년을 정점으로 한 20여년간을 추리소설의 황금시대 혹은 제2황금기라 칭하는데, 이 황금시대의 시발이 바로 1914년에 벤트리가 발표한 <트렌트 최후의 사건>이다. 물론 이 작품 이전에 장편 추리소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홈즈 시대 단편 추리소설들의 단점들을 극복하고 장편추리소설만의 특징과 매력을 정립했으며 또한 이 작품이 뛰어난 장편추리소설들이 연달아 발표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트렌트 최후의 사건>을 제2황금기의 시발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이 가지는 또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장편추리소설 극초반기의 작품이면서 그때 까지의 추리소설들이 가지는 단순 추리퀴즈 같은 모습과 정형성을 상당부분 타파한 선구적 작품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은 작품 전체가 홈즈식 초인적 탐정에 대한 하나의 장나기 섞인 조롱이자 거대한 풍자라 할 수 있다. '모든 증거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초인적인 추리력을 자랑하는 주인공 탐정의 추리는 항상 진실이다.' 작가 밴트리는 이 불문율에 가까운 명제에 의문을 던진다. 고전 추리소설에 대한 이러한 문제제기는 버클리 콕스의 주특기이기도 하고, 니콜라스 블레이크 같은 신본격파 작가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출간연도를 고려하면 <트렌트 최후의 사건>의 경우가 가장 큰 도전이자 도약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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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코담배케이스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9
존 딕슨 카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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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심리의 맹점을 찌르는 교묘한 트릭을 구사한 역작이다. 암시받기 쉬운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여 타인의 기억력을 의도적으로 조작함으로써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등의 수법은, 160년 추리소설 역사 속에서 여러차례 찾아볼수 있는데, 가장 성공적인 예는 바로 이 작품이지 싶다. 버금가는 작품을 들라면 크리스티의 <백주의 악마> 정도일까.

이러한 '심리트릭'의 특징은 의외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애초에 용의선상에서 제외된 사람이 범인으로 밝혀지는 구성을 가짐으로써)인데, 이 장점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트릭만 간파한다면 초반에 범인을 쉽게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독자가 작품초반에 결말을 예상할 수 있다해서 반드시 걸작이 아니라고야 할 수 없지만, 그 과정이 너무도 용이하다면 독자는 소설 속 탐정과 경찰의 어리석음에 분통을 터뜨릴 것이다. 따라서 심리트릭 성공의 최대관건은 '작가가 진상을 얼마나 잘 감추느냐?(혹은 독자를 얼마나 잘 속이느냐?)'에 있다고 할 것이다. 아울러 추리소설 일반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귀납적 혹은 연역적 추리로도 진상을 밝혀낼 여지가 충분한가?'의 문제도 중요하다. 심리트릭을 간파하는 것만으로는 알리바이를 부술수 있을 뿐이지, 결코 범죄를 증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요컨데, 분명한 단서를 제시하면서도 독자가 그것을 무심코 지나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심리트릭의 최대난점이다.

심리트릭을 효과적으로 구사하면서, 작가특유의 마력적인 필력과 명쾌한 추론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세개의 관>과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작가의 최상작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두 작품을 굳이 비교를 하자면 보수적 성향이 강한 나로선 심정적으로 <세개의 관>쪽에 좀더 끌리나, 냉정하게 판단하면 <황제의 코담배케이스>가 미세하게나마 앞서지 않을까?

'이 작품을 읽음으로써 다른 추리소설들이 우습게 느껴질 위험이 있다'라는 단점아닌 단점을 제외하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은 최고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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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시간의 딸 동서 미스터리 북스 48
조세핀 테이 지음, 문용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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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입원한 경감이 침대위에서 악명높은 영국왕 리처드 3세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추적한다는 스토리라인을 가지는 이 작품은 역사 미스터리의 모범으로 삼을만하다고 생각된다.

이 작품에서 밝혀지는 역사적 진실은 비록 작가가 창조해낸 새로운 학설인 것은 아니라지만, 그것은 작품의 완성도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역사 미스터리는 학술 논문이 아니며 독자가 기대하는 것도 소설로서의 재미이지 학문적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 미스터리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과 소재로 사용하는 추리소설로서 역사적 미스터리를 학자가 아닌 범죄를 수사하는 탐정의 입장에서 파헤치는 장르인 것이다. 이 작품은 역사가의 학구적 사고방식을 조롱하며 철저하게 노련한 경찰의 눈으로 추적해가는 모습을 잘 묘사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수백년 전의 역사적 사실에 애써 현재의 범죄를 결부시키지 않는 것은 무리없고 자연스러운 진행이지만, 한편으로는 추리소설 특유의 서스펜스가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작가의 재기 넘치는 필력 탓에 지루하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지만, 좀더 긴장감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가 추가되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리처드왕이라는 이름에서 로빈 훗과 아이반호에 등장하는 사자왕 정도 밖에 연상할 수 없는 영국 역사에 무지한 나로서는, 여러명의 리처드와 헨리들을 구별하는 것 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가와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영국인이라면 당연히 느꼈을 작품의 진수를 많이 놓친 것 같아 아쉽다. 하드보일드를 풍속 소설이라고 할 때 역사 미스터리는 시간의 제약에서는 자유로운 좀더 넓은 의미의 풍속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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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4-07-15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을 읽으면서...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역사소설같다는 기분으로 읽었더랬죠. 그래도 짜임새있는 구성이 괜챦은 소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ryder 2004-07-23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명의 리처드와 헨리를 구분하는, 이 표현에서 껄껄 웃었습니다^^ 마지막 줄, 좋네요.
 
시행착오 동서 미스터리 북스 102
앤소니 버클리 콕스 지음, 황종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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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우-도일-반다인, 퀸으로 이어지는 정통계보의 본격추리소설은 모든 미스터리 형태의 원형이 되었고, 지금도 매니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초기 정통추리소설은 그것의 태생적 본질적 특질상 몇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묘사의 부실함, 리얼리티의 결여, 작위적인 설정, 인물의 정형성 등등...

이러한 한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본격미스터리의 황금시대인 1920년대부터 몇몇 선견지명을 지닌 작가들에 의해 지적되고 그 극복을 위한 시도가 이루어졌는데, 그들 중 가장 중요하고 뛰어난 작가로 나는 버클리 콕스를 꼽고 싶다. 버클리 콕스의 주요작품들은 모두 당대의 정형에서 벗어나 있다. <살의>의 과도한 심리묘사, <독초콜릿 사건>의 주인공 탐정의 실패 혹은 주인공 탐정이 누구인지 불분명한 점, 그리고 <시행착오>는 기본패턴을 뒤엎고 탐정이 범죄를 해결하는 과정이 아닌 범인이 자신의 범죄를 증명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 등은 모두 반다인이 주장했던 법칙들을 위반한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버클리 콕스가 절대 본격물이 아닌 다른 장르의 작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살의>를 제외한 두작품도 본격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해미트가 체제 밖의 개혁자라면, 버클리 콕스는 체제내의 개혁자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작품은 대개의 추리소설이 가지는 살인-체포-증명의 패턴 속 주체가 탐정이 아니라 범인이다. 패트 매거의 <탐정을 찾아라>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구성이지만, 비록 범죄자의 심리와 동기의 묘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어도, 자신의 범죄를 증명해가는 과정의 논리적 완성도가 아주 치밀하기에 범죄소설이나 스릴러라기보다는 본격물로 분류함이 옳을 듯하다. 특히 후반부의 법정 장면 묘사는 가드너의 작품을 연상케할 정도로 뛰어나면서 <살의>와는 달리 과도한 심리묘사는 피하는 본격물의 특징을 따르고 있다.

작품을 읽으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추리소설을 제법 읽어 많이 약아진 나의 머리는, 더 이상 이 작품이 사용한 것 같은 서술 트릭에 속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은 피터 러브시의 <가짜 경감 듀>를 읽을 적에도 느낀 것이지만, 추리 매니아로서 많은 추리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나 클리세나 어떤 패턴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좀 서글픈 일인 것도 같다. <미궁과 사건부>를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을 부러워한다고 말한 엘러리 퀸의 심정을 알 것도 같다.

가끔은 책장에 독을 발라 살해하는 수법이나 비밀통로, 쌍둥이의 대역 같은 구닥다리 트릭에도 전율을 느꼈던 초심자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도일이나 반다인을 아직 한권도 읽지 않은 사람들과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결말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 너무도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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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마 클럽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정창 옮김 / 시공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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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요란한 명성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이 책은 추리소설로도 함량미달이고, 뒤마의 향수를 자극하는 힘도 대단치는 않다. 혹시라도 이 작품의 반전이라든지 논리적 구성에 감탄한 사람이 있다면 제대로 된 고전 추리소설을 읽어보라고 말하고싶다. 다만 장미의 이름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질만하기도 하겠으나 권할만한 책은 아니다.

2분중 0분께서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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