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코담배케이스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9
존 딕슨 카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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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간심리의 맹점을 찌르는 교묘한 트릭을 구사한 역작이다. 암시받기 쉬운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여 타인의 기억력을 의도적으로 조작함으로써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등의 수법은, 160년 추리소설 역사 속에서 여러차례 찾아볼수 있는데, 가장 성공적인 예는 바로 이 작품이지 싶다. 버금가는 작품을 들라면 크리스티의 <백주의 악마> 정도일까.

이러한 '심리트릭'의 특징은 의외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애초에 용의선상에서 제외된 사람이 범인으로 밝혀지는 구성을 가짐으로써)인데, 이 장점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트릭만 간파한다면 초반에 범인을 쉽게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독자가 작품초반에 결말을 예상할 수 있다해서 반드시 걸작이 아니라고야 할 수 없지만, 그 과정이 너무도 용이하다면 독자는 소설 속 탐정과 경찰의 어리석음에 분통을 터뜨릴 것이다. 따라서 심리트릭 성공의 최대관건은 '작가가 진상을 얼마나 잘 감추느냐?(혹은 독자를 얼마나 잘 속이느냐?)'에 있다고 할 것이다. 아울러 추리소설 일반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귀납적 혹은 연역적 추리로도 진상을 밝혀낼 여지가 충분한가?'의 문제도 중요하다. 심리트릭을 간파하는 것만으로는 알리바이를 부술수 있을 뿐이지, 결코 범죄를 증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요컨데, 분명한 단서를 제시하면서도 독자가 그것을 무심코 지나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심리트릭의 최대난점이다.

심리트릭을 효과적으로 구사하면서, 작가특유의 마력적인 필력과 명쾌한 추론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세개의 관>과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작가의 최상작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두 작품을 굳이 비교를 하자면 보수적 성향이 강한 나로선 심정적으로 <세개의 관>쪽에 좀더 끌리나, 냉정하게 판단하면 <황제의 코담배케이스>가 미세하게나마 앞서지 않을까?

'이 작품을 읽음으로써 다른 추리소설들이 우습게 느껴질 위험이 있다'라는 단점아닌 단점을 제외하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은 최고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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