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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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미국은 그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질주하고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그간 역사의 패권을 차지하고 있는 유럽의 위세가 미국에게 넘어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거의 모든 국부(國富)를 전비에 쏟아야 했던 유럽과는 달리 미국의 경제는 날개달린 쿠페 처럼 폭주했다. 자동차의 시대였고, 증권거래소가 넘쳐 났으며, 재즈 열풍이 불었다. 한편으로 1920년부터 시행된 금주법으로 탈법, 암거래와 갱단이 넘쳐났다. 휘황찬란하고 화려했던 상류층, 그리고 고달프고 질곡된 빈민층의 삶이 공존하는 시대. 그때가 그랬다.

이 시기에《위대한 개츠비》는 태어났다. 피츠제럴드가 이 작품을 발표한 때가 1925년이었으니 꼭 중간 무렵이다. 작가의 눈은 예리했다. 그의 필체는 당대와 시대적 모순을 가감없이 들춰내 버렸다.

어쩌면 데이지는 우리가 쫓는 꿈인지 모른다. 전쟁이 한창이던 무렵 그녀는 열여덟 꽃다운 청춘이었다. 그녀에게 반한 제이 개츠비는 그녀를 갖기 위해 자신의 질풍노도와도 같은 서막을 시작한다. 인연은 잠시 엇박자를 맞아 데이지는 톰 뷰캐넌을 만난다. 자신과 교류할 수 있는 동급을 만났으니, 유례가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당당한 결혼식을 올린다. 뷰캐넌은 자동차 네 대에 백 여 명을 이끌고 와서 호텔 한 층 전체를 빌리고, 결혼 전날 데이지에게 삼십오만 달러짜리 진주 목걸이를 선물한다. 하지만 톰에게 그녀는 단지 갖고 싶은 하나의 꽃이었을 뿐이다. 신혼여행에서 갓 돌아온 톰은 호텔 객실담당 메이드와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한다. 게다가 머틀(윌슨 부인)과의 불륜은 모두의 파국을 초래하게 될 지경이었으니…

이야기는 닉 캐러웨이라는 ‘나’가 이끌어간다. ‘나’는 데이지와 개츠비를 잇는 매개이기도 하고, 데이지와 개츠비의 실체를 독자에게 여과없이 들려주는 제삼자가 되기도 한다.

처음에 ‘나’는 데이지 부부가 프랑스에서 일 년을 보낸 이유에 대해 딱히 알 길이 없었다. 그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으레 부자들이 그러하듯 그들도 폴로를 좇아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중반께 이르러 데이지 부부가 프랑스로 떠난 이유는 톰의 불륜 때문이었다. 소설은 현재와 과거가 절묘하게 교차하며 전개된다. 현재 시점은 주로 ‘나’에 의해, 그리고 과거 시점은 개츠비의 회고에 의해 주도된다. 내가 보기에 이런 구도는 피츠제럴드가 자신이 진정으로 말하고 싶어 했던 것이 무엇인지 잘 드러내주기 때문이리라.

개츠비는 데이지를 너무나 오랫동안 꿈꾸고 숨막힐 정도로 이를 악물로 기다려왔다. 하지만 주인공 닉에게는 그것이 지나치게 생생한 환상으로 보였다. 데이지의 실체를 알기에 과연 그녀가 개츠비의 광신적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일까 하고.

데이지가 운전하던 노란색 쿠페가 톰의 불륜 상대 윌슨 부인을 치인다. 이 때 데이지 옆에 타고 있던 개츠비는 자신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노라고 거짓 증언이라도 해서 데이지를 보호하려 한다. 그러나 운명은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결국 휘황찬란하고 눈부신 파티는 거대하고 부조리한 몰락으로 끝을 맺었다. 개츠비의 꿈은 거의 실현된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이룬 부(富)와 가까이하게 된 연인 데이지와의 조우를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결국 그 꿈은 어둠 아래 굽이치는 도시 너머 한 켠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우리의 현실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을 수 있다.

 

‘나’는 서른을 맞은 즈음 읊조린다. 불길하고 위협적인 또 다른 십년이 기다리는 여정…. 미국은 광기어린 20년대를 보내다가 대공황 이후 전혀 성질이 다른 극심한 불황의 30년대를 맞이했다. 이것이 인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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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리자 - 중국판 목민심서
유기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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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저자 유기(劉基)는 주원장을 도와 명나라 건국에 대공을 세운 일등 공신이었다. 그는 주원장이 원을 멸하고 명을 건국한 다음, 후계를 위해 공신들을 대대적으로 제거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살아남았다. 가령 공신에 봉해진 37명 가운데 주원장이 죽기 전에 작위가 박탈되거나 주륙을 당한 사람이 무려 31명에 달했다.

일찍이 주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천하를 위해 4명의 선생에게 굴복한다."

유기와 송렴, 장일, 섭심을 지칭한 말이다. 주원장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서민에서 출발해 불혹에 이르러 새 왕조를 세웠지만 학식이 부족했다. 이에 유기는 원 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진사)까지 지냈다. 나이도 주원장보다 18세나 많았고 문신이면서도 종군한 경력[文武兼全]도 있었다.

이렇듯 유기는 재주가 뛰어나 장량과 제갈량에 버금갈 정도로 유명했다. 당시 원나라는 혹심한 민족차별 정책을 실시하고 있었다 전한다. 최상위에 몽골인, 그 다음에 색목인(色目人), 그 밑에 한인(漢人), 마지막으로 최하층에 남인(南人)이 있었다. 유기는 바로 남인 출신이었다. 이런 사람이 과거를 통해 벼슬길에 나선다? 세상의 제일가는 출중한 재기가 없었다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품이 강직하고 악을 싫어하며 직언을 서슴치 않았던 탓에 정적도 많았다. 결국 그는 강경발언으로 파직당해 낙향하게 되는데, 이 때 부터 반원(反元) 감정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무렵 유기는 쓰라린 심정을 달래면서《욱리자(郁離子)》를 썼다고 전한다. 일찍이 공자가 자신의 뜻을 세상에 펼칠 길이 없게 되자 고향에 돌아와 춘추 등 집필에 전념했듯이 유기도 그런 심정으로 작업했으리라.

이러니 당연히 그는 욱리자를 통해 세상의 온갖 비리와 부조리를 고발하고, 그가 펼치고자 했던 세상의 치세 원리를 가득 담아 놓았다. 옮긴이 신동준 선생은 이 책에 대해 "원명 교체기의 난세를 살아간 유기의 역사관 및 사상 등이 그대로 녹아 있다"(49쪽)고 평한다.

하지만 형식은《장자》처럼 우언(寓言)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혹자는 장자를 이솝우화에, 욱리자는 라퐁텐우화에 비유하기도 한다.


한편 어떤 이는《욱리자(郁離子)》의 책명을 당시 유기가 그러했듯이 답답한 심사에서 속세를 떠난 사람을 뜻하는 '울리자(鬱離子)'로 보기도 한다. 옮긴이 신동준 선생도 "대다수 우화가 백성의 고통이나 현실의 폐해를 폭로하거나 유기 자신의 정치적 심의를 표현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울리자'로 표기하는 게 타당하다."(44쪽)고 설명한다.

하지만 명 후대의 대다수 사람들은 '욱리자'로 표현해 놓았다. 이 때 '욱리'는 향내가 진동하는 성세(盛世)의 뜻이 된다. 아마도 이는 후대 사람들이 유기를 재평가하면서 거의 제갈량에 버금가는 신격화 수준에 이른 대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속절없는 개인의 심사를 밝힌 '울리자'보다는 밝은 문명이 널리 퍼진다는 '욱리자'가 훨씬 적합했을 것이다. 왕조 이름도 '명(明)'이지 않은가.

이 책을 펴낸 곳(인간사랑)에서는 타이틀로 '중국판 목민심서'와 '난세를 극복하는 지혜와 리더십에 관한 지침서'라는 부제를 달아 놓았는데 매우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신동준 선생은 장장 38쪽에 걸쳐 머리글 형식으로〈유기와 『욱리자』〉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는 유기의 성장배경과 주원장과의 만남 그리고 이후의 행보와 후대 사람들의 유기 신격화 작업 등에 대해 언급한다. 특히 주원장이 새 왕조를 건국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상세히 서술하고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근데 문득 드는 의문 하나! 왜 주원장에게는 유방과 항우의 쟁패를 다룬《초한지》같은 이야깃거리가 없을까? 내 생각에는 주원장이 평소 감정 기복과 의심이 많아 가까운 문무 공신들을 거의 모조리 제거하는 바람에 이 작업을 주도할 세력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칫 이야기에 담았다가 또 무슨 트집(?)을 잡혀 목숨이 위태로울소냐 말이다. 물론 한고조도 토사구팽을 단행했으나, 거병 때부터 행동을 같이 한 여러 동지들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었다. 사실 유기 역시 주원장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설도 있다. 오호 통재라!

본론은 총 181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래 유기와 당대의 인물이었던 서일기의 초판본 서문에 의하면 욱리자는 총 18편, 195개 조로 되어 있다(옮긴이는 이를 부록에 실어 놓았다. 594쪽)고 했으나, 옮긴이는 최근 중국에서 나온, 181장으로 된 판본을 따랐다 한다.

책에 화자로 등장하는 욱리자는 물론 가상의 인물이다. 아울러 181가지 이야기(우화)들은 "진실과 거짓, 탐욕과 파멸, 허세와 기만, 교만과 비굴, 근면과 나태, 현실과 이상, 강자와 약자, 착취와 도탄, 선행과 악행, 술수와 의리, 순리와 억지 등 우리가 일상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문제를 다루고 있다."(53쪽)

요즘 장기 불황과 정쟁에 지친 우리에게 난세(?)를 헤쳐 나갈 치국평천하의 큰 지혜가 절실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런 명불허전(名不虛傳)을 새롭게 해석하고, 읽고 또 읽어야 할 것이다. 신동준 선생의 작품들을 읽노라면 그 꼼꼼하고 박식한 작업 수완에 매번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이 책 역시 원문, 번역과 해설 등 세 박자를 골고루 갖추고 있어 어디를 펼쳐 읽어도 그 향내의 참맛을 음미하는데 부족함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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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밍고의 미소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2
스티븐 J. 굴드 지음, 김명주 옮김 / 현암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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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굴드는 다윈 이후 가장 저명한 진화생물학자라고 일컬어진다. 그는 1941년 뉴욕에서 태어나 2002년 62세로 타계했다. 그는 일찍이 나일스 엘드리지와 함께 "단속평형설"(斷續平衡說, punctuated equilibrium theory)를 발표(1972)하여 독창적인 진화론을 세웠다.

이 이론은 전통적인 점진 진화설을 입증해 줄 생물의 중간 종이 발견되지 않는 데 대한 보완책으로, 생물이 상당 기간 안정적으로 종을 유지하다 특정한 시기에 종 분화가 집중되어 갑자기 완벽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굴드는 자신의 이론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출애굽기'의 예를 든다. 가령 몇 달이면 충분히 애굽(이집트)에서 가나안(이스라엘)로 갈 수 있는 데, 40년이 걸렸다. 왜 그랬을까? 천천히 갔기 때문일까? 굴드는 어느 방향으로 향하다가 일정기간 머무르다 방향을 바꾸어 움직였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것이 바로 '단속평형설'의 내용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1941~2002)


굴드는 《내츄럴 히스토리》에 300여 편의 칼럼을 기고하였으며 대부분의 글들이 책으로 묶여 출판되었다. 그는 특히 생전 〈자연학 에세이 시리즈〉 10권을 펴낸 바 있다. 그는 진화론, 생명의 기원 그리고 인간복제 등 어려운 주제를 대중이 알기 쉽게 풀어내는 탁월한 재능을 가졌기에 당대에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진 전문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처럼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고, 진보주의적 입장을 견지했다고 알려져 있다.

현암사는 굴드의 에세이 시리즈 중 주요 작품을 선정해 출간하고 있는데 최근 《플라밍고의 미소》를 선보였다. 이는 《여덟 마리 새끼 돼지》(Eight little piggies)에 이어 두 번째 권. 《플라밍고의 미소》는 네 번 째(1985) 에세이집이다. 《여덟 마리 새끼 돼지》 역시 시리즈 중 여섯 번째(1993) 것으로 굴드의 사후 10주기를 맞은 2012년도에 나와 그 깊은 뜻을 더했다.

굴드의 필력이 지닌 강점은 진화론의 특수성에서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일반성을 이끌어내는 점이다. 이번《플라밍고의 미소》도 그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준다. 책은 총 8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역전과 경계를 다루고, 마지막 8부는 멸종과 연속성이다. 내가 보기에 굴드는 에세이집을 엮을 때 치밀한 구성을 위해 안배를 하지 않나 싶다. 아마도 굴드는 ‘역전’과 ‘경계’의 영역은 진화의 ‘연속성’상의 한 단계일 수 있다는 것을 독자들이 알아채기를 염원했는지 모른다.

또한 이 책에는 생명사의 우연성과 불확실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멸종에 관한 에세이들이 여러 편 수록되어 있으며, 특히 저자가 역사과학의 ‘여왕’으로 추대한 분류학을 찬미하는 에세이들과 역사과학의 방법을 다루는 에세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킨제이가 과거에 혹벌분류학자였다는 사실과 그의 성 연구가 긴밀한 학문적 관련을 맺고 있다고 밝히며, 다윈 이전의 오래된 분류학이 채용했던 수비학 등 학계 연구 성과에 대한 해석, 새로운 발견 혹은 이례적인 사례 연구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런 식의 접근은 현암사에서 작년에 펴낸《여덟 마리 새끼 돼지》도 마찬가지다.

굴드는 《내추럴 히스토리》에 자연학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절대로 깨지 않는 규칙이 두 가지 있다고 밝힌다. 첫째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둘째는 독자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는 첫째 규칙을 지키기 위해 철두철미 수많은 원전을 바탕으로 1차 자료만 인용한다. 누군가의 해석이나 편집을 거친 2차 자료를 활용할 경우에는 뜻하지 않은 오류가 생성되고 확대 재생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규칙에 대해서는 굴드의 에세이를 읽는 사람들의 몫이겠지만, 내 경우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책에서 굴드가 〈작품번호 100〉으로 명명한 에세이를 보자. 이것은 100번째 쓰는 연재물이란 뜻으로 붙인 것이다. 100번째 에세이를 맞는 기념으로 자신이 푹 빠져 있고 개인적 열정을 불태우는 사랑의 대상, 바하마 제도의 육상 달팽이 케리온(Cerion)속에 대한 것이다. 그는 스스로 두 번째 규칙을 깨뜨리는 것, 즉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대상인 케리온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독자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솔직히 이 부분을 읽기에는 조금 지루하지만, 발견의 순수한 기쁨 앞에서 환호를 내질렀을 저자의 학문적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 덕분에 발전하고 진화하는 것이리라.

재미를 위한 읽을거리도 수두루 널려 있다. 특히 내게는 책 제목이기도 한 〈플라밍고의 미소〉와 〈오직 날개만 남았다〉가 그러했다.

먼저 〈플라밍고의 미소〉를 보자. 굴드는 유명한 존 오듀본의《미국의 새》에 실린 플라밍고의 그림을 보여준다. 여담이지만 오듀본은 새 그림에 미쳐서 미국에 사는 거의 모든 새를 그리겠다고 산과 들로 뛰어다닌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그린 실물크기 핸드페인팅 세밀화 한 세트(435장)는 경매에서 무려 천만 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플라밍고의 미소〉는 플라밍고의 독특한 부리에 관한 것인데, 이것을 180도 뒤집어 보면 마치 백조가 미소 짓는 것처럼 보인다고 붙여진 것이다. 플라밍고는 독특한 부리 때문에 먹이를 먹을 때 부리를 거꾸로 뒤집는 특징적인 섭식 자세를 취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굴드가 ‘플라밍고의 부리’를 보면서 다윈과 라마르크의 진화에 관한 논쟁을 무덤에서 불러낸다는 것이다.

동물들의 몸과 각 부분의 행태가 습성이나 생활양식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습성이나 생활양식 그리고 환경의 다른 모든 영향이 시간의 경과 속에서 동물의 몸과 각 부분의 형태를 구축한다.(42쪽)

이는 라마르크의 말이다. 라마르크는 생물들이 환경의 필요성에 창조적으로 대응하며, 그 결과로 일어난 변화들을 자손에게 직접 전달한다고 주장했다. 일명 ‘획득형질의 유전’. 물론 다윈은 이에 반대하면서, 진화는 지역 환경에 더 적합한 방향으로 변이하는 행운을 타고난 개체들이 자연선택 과정에서 더 많은 생존 자손을 남긴다고 주장했다. 과연 굴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는 즐거움과 수고를 아끼지 않을 독자들을 위해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오직 날개만 남았다〉는 수컷을 잡아먹는 항라사마귀, 검은과부거미와 사막전갈의 암컷에 관한 이야기다. 관찰자적 입장의 묘사는 다른 독자들도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굴드의 입장은 참으로 심오해서 여러 번 읽어야 겨우 알아차릴 정도다.

그는 소수의 사례(가령 관찰에 의하면 사막전갈의 암컷은 스무 번이 넘는 사례 중 두 건에서만 수컷을 먹었다)를 보고 “전능한 선택의 힘에 의해 미세하게 조정된 최적”으로 봐선 안된다고 하면서, “우리 세계는 과거 역사에 의해 다른 맥락에서 만들어진 신기한 부분들을 가지고 임시변통으로 마련한 적응들의 집합”이라고 본다. 이는 수컷을 잡아먹는 암컷들의 행동이 흥미롭긴 하지만, 특정 의도에 의해 선택적으로 진화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는 어쩌면 자연의 이탈(?)일 수도 있겠는데, 이런 관점은 〈양극단의 소멸〉에서도 이어진다.

〈양극단의 소멸〉편은 ‘4할 타자의 절멸’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굴드가 ‘절멸’이라고 표현한 것에 주목하자. 그는 마치 지구 역사에서 지각이나 기후 변화로 인한 수많은 종들의 ‘절멸’에 비유하여 4할 타자가 현재 멸종되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좀더 자세히 들어가 보자.

1901~1930년대 리그 수위 타자의 타율이 4할을 넘는 일은 흔한 것이었다. 하지만 1941년 테드 월리엄스가 기록한 4할 6리 이후로 4할대 타자는 사라졌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야구기록 연구가 라이츨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4할 타자가 다시 나오기 어려운 것은 구원투수와 수비에서 이루어진 비약적인 기술 향상 때문이다. 거기다 오늘날 선수들은 가장 강한 선수들조차 지치게 만드는 더 길어진 일정을 소화해야 하고, 공이 잘 보이지 않는 야간 경기도 더 많이 치러야 한다.(276쪽)

하지만 굴드는 이의 설명은 불충분하고 관점도 부적절하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굴드의 견해는 어떠할까? 그는 야구가 등장한 이래 선수들이 서서히 수비, 투구, 타격에서 최적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변이는 필연적으로 줄어들었다고 해석한다. 느긋했던 시대에 나왔던 극단적인 성적은 이제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극단’에 주목하자. 굴드가 야구 이야기를 통해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는 우리가 극단에 매혹되어 이에 집중하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가령 예로 포유류의 가장 큰 뇌 크기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꾸준히 증가해 온 사례를 든다. 이것만 보면 포유류는 마치 가차 없이 뇌를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것으로 오해되기 쉽다. 하지만 ‘표준’적인 뇌 크기는 분류군이 생긴 이래로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통계학에서 말하는 ‘평균값으로의 회귀’를 떠올려 보면 굴드의 지론을 더 빠르게 이해할 수도 있겠다.

이렇듯 굴드의 에세이는 진화론과 과학사에 대한 정치하면서 참신한 맛을 안겨 주기도 하고, 인간사에 성찰하고 사색할 수 있는 화두를 던져 주기도 한다. 그의 글은 힘이 있고 살아 꿈틀거린다. 그의 몸은 비록 세상을 떠났으나 아직도 그의 정령은 진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말미를 보자 흥미롭게도 공룡의 멸종에 대해 다룬다. 공룡이 멸종한 이유에 대해서는 3가지 가설이 있다. 익히 아는 하나는 소행성과의 충돌설이다. 그런데 다른 두 가지 가설이 의외로 재밌다. 이에 대한 것도 역시 품을 팔기 원하는 독자를 위해 여지를 남겨 두고 싶다. ^^

아무쪼록 현암사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면, 기왕 내친 김에 굴드 자연학 에세이 시리즈 10권을 모두 내주십사하는 것이다. 간헐적으로 국내에 소개되었지만 일관해서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던 탓이다. 혹여 누가 알겠는가? 제2의 장대익 교수같은 이가 또 나올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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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CEO - 도시인에게 과수원을 팔다 CEO 농부 시리즈
조향란 지음 / 지식공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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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은 삼통(三通)이다!


유통을 하려면 세 가지와 통해야 한다는 뜻. 먼저 생산자와 통해야 하고 다음 소비자와 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진심과 통해야 한다. 저자가 과일 유통업을 개척하면서 지닌 영업 철학이다. 이 책은 저자가 익힌 영업 철학과 원칙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 조향란은 썸머힐상사 대표로 있다. 그녀는 농협과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과일 시장에서 틈새 시장을 파고들었다.

근데 조 대표는 어떻게 해서 과일 시장 유통업에 뛰어들었을까? 물론 부모의 가게를 물려받은 것은 아니었다. 1998년 IMF 시절, 그녀는 사업 실패로 새 일을 찾아야 했다. 결혼과 동시에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남편의 제안으로 식당을 개업했다. 하지만 시운이 따라주지 않아 식당은 망했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그녀는 원래 무역을 했으니 그 쪽으로 나가보자고 마음먹고 일본 보따리 장사를 시작했다. 일본으로 건너가는 배 안에서 만난 한 아줌마가 건네준, 일본에 과일을 수출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에 과일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업이 적성에 맞았던 조 대표는 이후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의 대표 유통매장 ‘이토 요카도(ITO YOKADO)’에 6년 동안 복숭아 거래 선을 터게 되었다. 이 때 그녀는 장사의 중요한 밑천, 즉 신용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한다. 이러한 소중한 경험은 국내 시장을 개척하면서 힘을 발휘한다.

그녀는 품질 좋은 제철 과일을 확보하기 위해 재배 농가를 발로 찾아다니고, 농사를 직접 경험하기 위해서 직접 현장에 뛰어들었다. 2006년 3년간 장호원에서 복숭아 농사를 배웠고, 그 후 논산으로 이사하여 1년 반 동안 딸기 재배를 배웠다고 한다.

조 대표의 진심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움직여 2012년 말 연매출 64억을 거두었고, 내년(2015)에는 100억 매출을 목표로 정했다.

봄과 가을 매우 토요일 오전 11시면 서울 파머스 마켓이 개장된다. 전국의 농가들이 재배한 친환경 농산물의 직거래 장터가 열리는 것이다. 조 대표는 도시 사람들에게 시골 장터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마켓을 열었다고 한다. 집과 직장, 버스와 지하철처럼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에게 잠깐이라도 바깥공기를 쐬며 과일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녀는 제철 과일을 통해 도심 속 과수원까지 경험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서 과일의 재배부터 수확, 유통 나아가 건강, 신선함, 선물, 친절과 같이 다양한 경험까지 고객에게 제공한다.

이 얼마나 멋진 마인드인가! 고객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과 소중한 가치-생존에 필요한 먹거리에서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가치-를 부여하는 전략, 백전백승의 전략이 아닐까?

또한 '올프레쉬'(All Fresh)를 론칭하여 온라인 과일 시장에도 적극 뛰어들었다. 조 대표는 올프레쉬에는〈세 가지 맛있는 약속〉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있다고 한다.

1. 제철에 나는 자연 그대로의 과일을 공급합니다.

2. 명품과일 산지와 100% 친환경 공정재배를 추구합니다.
3. 과일 재고가 없이 매일 산지에서 배송되어 년 365일 신선한 과일을 공급합니다.


그렇다면 조 대표는 어떻게 해서 과일 품질을 높이면서 충분한 물량을 생산할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의 이익보다 농가의 이익을 위해서 정성을 다했고, 소비자의 맛을 위해 발품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조 대표는 품질 좋은 과일 선물이 어떤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지 야쿠자 손님 사례를 들어 소개한다.

한번은 특별 관리하던 야쿠자 고객이 천이백만 원 짜리 멜론 세트를 구입해서 보스에게 상납했다. 돈으로 따지면 그 세계에서는 그리 대단한 선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효과는 최고였다. 야쿠자 보스가 멜론을 먹어보더니 기절초풍하게 맛있다며 엄청나게 감동한 것이다.(79쪽)

많은 고객들이 정성스럽게 선별하고 고급스럽게 포장된 '과일 선물'에서 감동을 경험한다. 과일의 새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여자 CEO 그리고 농사와 귀농에 관심 있는 독자를 위한 알짜배기 팁도 친절하게 빼놓지 않는다.

"기회는 우연히 오는데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아,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얼른 제철 과일 한 바구니 넣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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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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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세키의 미학론 내지는 예술관을 엿볼 수 있었다. 소설의 모티브는 “화구 상자와 접이식 삼각의자를 메고 봄의 산길을 어슬렁어슬렁 걷는”, “비인정(非人情, 의리나 인정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일)의 천지를 소요”하면서 작가 내면에 이는 상념을 따라 간 것. 소설 보다는 호흡이 긴 에세이 형식으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

쪽수는 185쪽으로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읽어내기에는 제법 벅찼다. 당시 유행했던 서양과 일본의 문학과 미술에 대한 인용이 많아 일천한 내 지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소설을 일백 여 년 전에 앞서 썼다니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만큼 소세키의 사고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그는《풀베개》를 1906년 9월 문예잡지《신쇼세쓰(新小說)》에 발표했다. 이 때 그의 나이 불혹 마흔이었다. 책 말미에 덧붙여진 황호덕 성균관대 교수의 해설에 의하면, 《풀베개》는 “평생 소세키가 문제로 삼았던 동서 비교문명론 및 근대적 삶과 예술의 문제에 대한 사고가 집약된 일종의 예술가 소설”이다.

소설 이름이 ‘풀베개’이다. 왜 풀베개일까? 소설에서 그 힌트를 찾아 보자면, 풀을 베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유유자적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소세키가 꿈꾸는 비인정의 본류(本流)가 아닐까.

“나는 풀을 요 삼아 태평한 엉덩이를 살짝 내려놓았다. 이런 곳이라면 대엿새 움직이지 않고 이대로 있어도 아무도 불평할 것 같지 않다. 자연의 고마움은 여기에 있다. 정작 때가 오면 사정도 미련도 두지 않지만, 그 대신 사람에 따라 달리 취급하는 경박한 태도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134쪽)

그렇다면 소세키가 바라는 '비인정'의 세계는 어떤 것일까? 소설 속 화자가 간카이지 스님과 나누는 대화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저 소나무 그림자를 보시오.”
“아름답네요.”
“그냥 아름다운 거요?”
“예.”
“아름다운 데다 바람이 불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오.”(156~157쪽)

소세키에게 있어 ‘비인정’은 자연미와 초연함이 공존하는 세상이이다.
그는《도련님》에서 “세상은 온통 사기꾼들뿐”이라고 일갈하고 있는데,《풀베개》에서도 마찬가지다. “집요하고 독살스럽고 좀스럽고 게다가 뻔뻔하고 지겨운 놈들로 가득 차 있”(147쪽)는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소세키는 “이름 모를 산골마을로 찾아와 저물어가는 봄 경치 속에 야윈 몸을 묻고서야 비로소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태도를 내 몸에 지”(159쪽)니고 싶어 했다.

사실 이는 어떻게 보면 평생 신경쇠약과 이로 인한 위궤양으로 고생한 그가 안식을 얻을 수 있었던 유일한 즐거움이 문학과 그림에 대한 매진이 아닐까. 그의 유별난(?) 자존심이 이런 작품을 탄생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에는 인간 세상과 예술에 대한 소세키 식의 깐깐하고 섬세한 묘사가 주류를 이룬다. 옮긴이 송태욱 선생도 언급했듯이 욕탕에 나체로 들어오는 나미에 대한 묘사는 마치 붓으로 그린 듯 생생한 한 폭의 미인도를 앞둔 듯하다.

이 작품을 쓸 당시 일본은 러일 전쟁에서 막 승리를 거둔 시점이었다. 당시 서양 문물에 압도되었던 일본-소세키도 영국 유학을 통해서 그 실상을 잘 알고 있었다-은, 러시아를 격파함으로써 서양에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소세키 역시 이런 일본의 거국적 자신감에 대해 은연 중 과시한다.

가령 다이테쓰 스님 방에 깔린 중국제 융단을 보면서 “중국의 기구는 다 어설프다. 아무래도 바보 같고 굼뜬 인종이 발명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109쪽)고 서술하고 있는 대목을 보면, 당시 일본은 이미 동양의 제일인자로 자부해서 동양 제국-중국 조차-은 그 상대가 아니라는 자만심이 드러난다.
오늘날 소세키가 무덤에서 일어나 G2로 부상한 중국을 보게 된다면 무어라고 할지 자못 궁금하다. ^^


▲현재 구마모토 자택에 걸려 있는 나쓰메 소세키 사진


▲구마모토에 있는 소세키가 살던 집. 구마모토에서의 생활은 《풀베개》를 낳았다.


▲《풀베개》에 등장하는 산마루에 있는 찻집


▲현재 구마모토에 있는 《풀베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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