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베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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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세키의 미학론 내지는 예술관을 엿볼 수 있었다. 소설의 모티브는 “화구 상자와 접이식 삼각의자를 메고 봄의 산길을 어슬렁어슬렁 걷는”, “비인정(非人情, 의리나 인정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일)의 천지를 소요”하면서 작가 내면에 이는 상념을 따라 간 것. 소설 보다는 호흡이 긴 에세이 형식으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

쪽수는 185쪽으로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읽어내기에는 제법 벅찼다. 당시 유행했던 서양과 일본의 문학과 미술에 대한 인용이 많아 일천한 내 지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소설을 일백 여 년 전에 앞서 썼다니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만큼 소세키의 사고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그는《풀베개》를 1906년 9월 문예잡지《신쇼세쓰(新小說)》에 발표했다. 이 때 그의 나이 불혹 마흔이었다. 책 말미에 덧붙여진 황호덕 성균관대 교수의 해설에 의하면, 《풀베개》는 “평생 소세키가 문제로 삼았던 동서 비교문명론 및 근대적 삶과 예술의 문제에 대한 사고가 집약된 일종의 예술가 소설”이다.

소설 이름이 ‘풀베개’이다. 왜 풀베개일까? 소설에서 그 힌트를 찾아 보자면, 풀을 베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유유자적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소세키가 꿈꾸는 비인정의 본류(本流)가 아닐까.

“나는 풀을 요 삼아 태평한 엉덩이를 살짝 내려놓았다. 이런 곳이라면 대엿새 움직이지 않고 이대로 있어도 아무도 불평할 것 같지 않다. 자연의 고마움은 여기에 있다. 정작 때가 오면 사정도 미련도 두지 않지만, 그 대신 사람에 따라 달리 취급하는 경박한 태도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134쪽)

그렇다면 소세키가 바라는 '비인정'의 세계는 어떤 것일까? 소설 속 화자가 간카이지 스님과 나누는 대화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저 소나무 그림자를 보시오.”
“아름답네요.”
“그냥 아름다운 거요?”
“예.”
“아름다운 데다 바람이 불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오.”(156~157쪽)

소세키에게 있어 ‘비인정’은 자연미와 초연함이 공존하는 세상이이다.
그는《도련님》에서 “세상은 온통 사기꾼들뿐”이라고 일갈하고 있는데,《풀베개》에서도 마찬가지다. “집요하고 독살스럽고 좀스럽고 게다가 뻔뻔하고 지겨운 놈들로 가득 차 있”(147쪽)는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소세키는 “이름 모를 산골마을로 찾아와 저물어가는 봄 경치 속에 야윈 몸을 묻고서야 비로소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태도를 내 몸에 지”(159쪽)니고 싶어 했다.

사실 이는 어떻게 보면 평생 신경쇠약과 이로 인한 위궤양으로 고생한 그가 안식을 얻을 수 있었던 유일한 즐거움이 문학과 그림에 대한 매진이 아닐까. 그의 유별난(?) 자존심이 이런 작품을 탄생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에는 인간 세상과 예술에 대한 소세키 식의 깐깐하고 섬세한 묘사가 주류를 이룬다. 옮긴이 송태욱 선생도 언급했듯이 욕탕에 나체로 들어오는 나미에 대한 묘사는 마치 붓으로 그린 듯 생생한 한 폭의 미인도를 앞둔 듯하다.

이 작품을 쓸 당시 일본은 러일 전쟁에서 막 승리를 거둔 시점이었다. 당시 서양 문물에 압도되었던 일본-소세키도 영국 유학을 통해서 그 실상을 잘 알고 있었다-은, 러시아를 격파함으로써 서양에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소세키 역시 이런 일본의 거국적 자신감에 대해 은연 중 과시한다.

가령 다이테쓰 스님 방에 깔린 중국제 융단을 보면서 “중국의 기구는 다 어설프다. 아무래도 바보 같고 굼뜬 인종이 발명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109쪽)고 서술하고 있는 대목을 보면, 당시 일본은 이미 동양의 제일인자로 자부해서 동양 제국-중국 조차-은 그 상대가 아니라는 자만심이 드러난다.
오늘날 소세키가 무덤에서 일어나 G2로 부상한 중국을 보게 된다면 무어라고 할지 자못 궁금하다. ^^


▲현재 구마모토 자택에 걸려 있는 나쓰메 소세키 사진


▲구마모토에 있는 소세키가 살던 집. 구마모토에서의 생활은 《풀베개》를 낳았다.


▲《풀베개》에 등장하는 산마루에 있는 찻집


▲현재 구마모토에 있는 《풀베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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