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밍고의 미소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2
스티븐 J. 굴드 지음, 김명주 옮김 / 현암사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굴드는 다윈 이후 가장 저명한 진화생물학자라고 일컬어진다. 그는 1941년 뉴욕에서 태어나 2002년 62세로 타계했다. 그는 일찍이 나일스 엘드리지와 함께 "단속평형설"(斷續平衡說, punctuated equilibrium theory)를 발표(1972)하여 독창적인 진화론을 세웠다.

이 이론은 전통적인 점진 진화설을 입증해 줄 생물의 중간 종이 발견되지 않는 데 대한 보완책으로, 생물이 상당 기간 안정적으로 종을 유지하다 특정한 시기에 종 분화가 집중되어 갑자기 완벽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굴드는 자신의 이론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출애굽기'의 예를 든다. 가령 몇 달이면 충분히 애굽(이집트)에서 가나안(이스라엘)로 갈 수 있는 데, 40년이 걸렸다. 왜 그랬을까? 천천히 갔기 때문일까? 굴드는 어느 방향으로 향하다가 일정기간 머무르다 방향을 바꾸어 움직였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것이 바로 '단속평형설'의 내용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1941~2002)


굴드는 《내츄럴 히스토리》에 300여 편의 칼럼을 기고하였으며 대부분의 글들이 책으로 묶여 출판되었다. 그는 특히 생전 〈자연학 에세이 시리즈〉 10권을 펴낸 바 있다. 그는 진화론, 생명의 기원 그리고 인간복제 등 어려운 주제를 대중이 알기 쉽게 풀어내는 탁월한 재능을 가졌기에 당대에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진 전문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처럼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고, 진보주의적 입장을 견지했다고 알려져 있다.

현암사는 굴드의 에세이 시리즈 중 주요 작품을 선정해 출간하고 있는데 최근 《플라밍고의 미소》를 선보였다. 이는 《여덟 마리 새끼 돼지》(Eight little piggies)에 이어 두 번째 권. 《플라밍고의 미소》는 네 번 째(1985) 에세이집이다. 《여덟 마리 새끼 돼지》 역시 시리즈 중 여섯 번째(1993) 것으로 굴드의 사후 10주기를 맞은 2012년도에 나와 그 깊은 뜻을 더했다.

굴드의 필력이 지닌 강점은 진화론의 특수성에서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일반성을 이끌어내는 점이다. 이번《플라밍고의 미소》도 그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준다. 책은 총 8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역전과 경계를 다루고, 마지막 8부는 멸종과 연속성이다. 내가 보기에 굴드는 에세이집을 엮을 때 치밀한 구성을 위해 안배를 하지 않나 싶다. 아마도 굴드는 ‘역전’과 ‘경계’의 영역은 진화의 ‘연속성’상의 한 단계일 수 있다는 것을 독자들이 알아채기를 염원했는지 모른다.

또한 이 책에는 생명사의 우연성과 불확실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멸종에 관한 에세이들이 여러 편 수록되어 있으며, 특히 저자가 역사과학의 ‘여왕’으로 추대한 분류학을 찬미하는 에세이들과 역사과학의 방법을 다루는 에세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킨제이가 과거에 혹벌분류학자였다는 사실과 그의 성 연구가 긴밀한 학문적 관련을 맺고 있다고 밝히며, 다윈 이전의 오래된 분류학이 채용했던 수비학 등 학계 연구 성과에 대한 해석, 새로운 발견 혹은 이례적인 사례 연구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런 식의 접근은 현암사에서 작년에 펴낸《여덟 마리 새끼 돼지》도 마찬가지다.

굴드는 《내추럴 히스토리》에 자연학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절대로 깨지 않는 규칙이 두 가지 있다고 밝힌다. 첫째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둘째는 독자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는 첫째 규칙을 지키기 위해 철두철미 수많은 원전을 바탕으로 1차 자료만 인용한다. 누군가의 해석이나 편집을 거친 2차 자료를 활용할 경우에는 뜻하지 않은 오류가 생성되고 확대 재생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규칙에 대해서는 굴드의 에세이를 읽는 사람들의 몫이겠지만, 내 경우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책에서 굴드가 〈작품번호 100〉으로 명명한 에세이를 보자. 이것은 100번째 쓰는 연재물이란 뜻으로 붙인 것이다. 100번째 에세이를 맞는 기념으로 자신이 푹 빠져 있고 개인적 열정을 불태우는 사랑의 대상, 바하마 제도의 육상 달팽이 케리온(Cerion)속에 대한 것이다. 그는 스스로 두 번째 규칙을 깨뜨리는 것, 즉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대상인 케리온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독자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솔직히 이 부분을 읽기에는 조금 지루하지만, 발견의 순수한 기쁨 앞에서 환호를 내질렀을 저자의 학문적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 덕분에 발전하고 진화하는 것이리라.

재미를 위한 읽을거리도 수두루 널려 있다. 특히 내게는 책 제목이기도 한 〈플라밍고의 미소〉와 〈오직 날개만 남았다〉가 그러했다.

먼저 〈플라밍고의 미소〉를 보자. 굴드는 유명한 존 오듀본의《미국의 새》에 실린 플라밍고의 그림을 보여준다. 여담이지만 오듀본은 새 그림에 미쳐서 미국에 사는 거의 모든 새를 그리겠다고 산과 들로 뛰어다닌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그린 실물크기 핸드페인팅 세밀화 한 세트(435장)는 경매에서 무려 천만 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플라밍고의 미소〉는 플라밍고의 독특한 부리에 관한 것인데, 이것을 180도 뒤집어 보면 마치 백조가 미소 짓는 것처럼 보인다고 붙여진 것이다. 플라밍고는 독특한 부리 때문에 먹이를 먹을 때 부리를 거꾸로 뒤집는 특징적인 섭식 자세를 취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굴드가 ‘플라밍고의 부리’를 보면서 다윈과 라마르크의 진화에 관한 논쟁을 무덤에서 불러낸다는 것이다.

동물들의 몸과 각 부분의 행태가 습성이나 생활양식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습성이나 생활양식 그리고 환경의 다른 모든 영향이 시간의 경과 속에서 동물의 몸과 각 부분의 형태를 구축한다.(42쪽)

이는 라마르크의 말이다. 라마르크는 생물들이 환경의 필요성에 창조적으로 대응하며, 그 결과로 일어난 변화들을 자손에게 직접 전달한다고 주장했다. 일명 ‘획득형질의 유전’. 물론 다윈은 이에 반대하면서, 진화는 지역 환경에 더 적합한 방향으로 변이하는 행운을 타고난 개체들이 자연선택 과정에서 더 많은 생존 자손을 남긴다고 주장했다. 과연 굴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는 즐거움과 수고를 아끼지 않을 독자들을 위해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오직 날개만 남았다〉는 수컷을 잡아먹는 항라사마귀, 검은과부거미와 사막전갈의 암컷에 관한 이야기다. 관찰자적 입장의 묘사는 다른 독자들도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굴드의 입장은 참으로 심오해서 여러 번 읽어야 겨우 알아차릴 정도다.

그는 소수의 사례(가령 관찰에 의하면 사막전갈의 암컷은 스무 번이 넘는 사례 중 두 건에서만 수컷을 먹었다)를 보고 “전능한 선택의 힘에 의해 미세하게 조정된 최적”으로 봐선 안된다고 하면서, “우리 세계는 과거 역사에 의해 다른 맥락에서 만들어진 신기한 부분들을 가지고 임시변통으로 마련한 적응들의 집합”이라고 본다. 이는 수컷을 잡아먹는 암컷들의 행동이 흥미롭긴 하지만, 특정 의도에 의해 선택적으로 진화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는 어쩌면 자연의 이탈(?)일 수도 있겠는데, 이런 관점은 〈양극단의 소멸〉에서도 이어진다.

〈양극단의 소멸〉편은 ‘4할 타자의 절멸’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굴드가 ‘절멸’이라고 표현한 것에 주목하자. 그는 마치 지구 역사에서 지각이나 기후 변화로 인한 수많은 종들의 ‘절멸’에 비유하여 4할 타자가 현재 멸종되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좀더 자세히 들어가 보자.

1901~1930년대 리그 수위 타자의 타율이 4할을 넘는 일은 흔한 것이었다. 하지만 1941년 테드 월리엄스가 기록한 4할 6리 이후로 4할대 타자는 사라졌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야구기록 연구가 라이츨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4할 타자가 다시 나오기 어려운 것은 구원투수와 수비에서 이루어진 비약적인 기술 향상 때문이다. 거기다 오늘날 선수들은 가장 강한 선수들조차 지치게 만드는 더 길어진 일정을 소화해야 하고, 공이 잘 보이지 않는 야간 경기도 더 많이 치러야 한다.(276쪽)

하지만 굴드는 이의 설명은 불충분하고 관점도 부적절하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굴드의 견해는 어떠할까? 그는 야구가 등장한 이래 선수들이 서서히 수비, 투구, 타격에서 최적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변이는 필연적으로 줄어들었다고 해석한다. 느긋했던 시대에 나왔던 극단적인 성적은 이제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극단’에 주목하자. 굴드가 야구 이야기를 통해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는 우리가 극단에 매혹되어 이에 집중하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가령 예로 포유류의 가장 큰 뇌 크기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꾸준히 증가해 온 사례를 든다. 이것만 보면 포유류는 마치 가차 없이 뇌를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것으로 오해되기 쉽다. 하지만 ‘표준’적인 뇌 크기는 분류군이 생긴 이래로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통계학에서 말하는 ‘평균값으로의 회귀’를 떠올려 보면 굴드의 지론을 더 빠르게 이해할 수도 있겠다.

이렇듯 굴드의 에세이는 진화론과 과학사에 대한 정치하면서 참신한 맛을 안겨 주기도 하고, 인간사에 성찰하고 사색할 수 있는 화두를 던져 주기도 한다. 그의 글은 힘이 있고 살아 꿈틀거린다. 그의 몸은 비록 세상을 떠났으나 아직도 그의 정령은 진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말미를 보자 흥미롭게도 공룡의 멸종에 대해 다룬다. 공룡이 멸종한 이유에 대해서는 3가지 가설이 있다. 익히 아는 하나는 소행성과의 충돌설이다. 그런데 다른 두 가지 가설이 의외로 재밌다. 이에 대한 것도 역시 품을 팔기 원하는 독자를 위해 여지를 남겨 두고 싶다. ^^

아무쪼록 현암사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면, 기왕 내친 김에 굴드 자연학 에세이 시리즈 10권을 모두 내주십사하는 것이다. 간헐적으로 국내에 소개되었지만 일관해서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던 탓이다. 혹여 누가 알겠는가? 제2의 장대익 교수같은 이가 또 나올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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