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안에 다녀왔다. 출발 전에 선생님들께서는 농촌에 봉사하러 가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하셨지만, 농촌은 지나가면서 흘끗 보기만 했을 뿐, 4일간 발도 안 내려봤다. 하긴, 농촌 봉사 활동이라면 왜 중국에 가겠는가? 우리 농촌에 일손이 얼마나 부족한데.
선생님들은 강조에 강조를 거듭하셨다. (아마, 농촌에 가는 거라고 한 것보다 한 10배는 강조했지 싶다.) 남녀 숙소를 아예 다른 층에 잡았기 때문에 복도에서 마주치는 것조차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한 반이 모여서 모임을 가지는 경우 선생님과 함께 해야 하고, 소수의 인원이라면 로비에서 가볍게 담소를 나누는 정도만 봐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 그러면 밤에는 남자애들 별로 못 만나겠네, 하고 어린 생각을 했었다. 하하, 전혀 아니었다. 대체 다른 층에 잡은 이유가 뭔지 궁금할 정도로, 우리는 11시만 넘으면 같이 있었다. (그 전에는 샤워하고 정리하는 시간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 하면, 단연 셋째날 마신 '술'이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깝도다, 나의 두번째 해외여행이 술의 기억에 묻혀버리다니! 그러나, 그만큼 술의 기억은 강력했다. 나는 언제나 술을 마셔보고 싶어했다. 오죽하면 둘째날 남자애들이 술 마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명란이 줘야 되는데"라는 말이 나왔을까. (기숙사에서 술 얘기가 나왔을 때 내가 '정말 마셔보고 싶다'고 강조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그러니까, 우리는 셋째날 밤 술을 마셨다.
그날 나는 심하게 피곤한 상태였다. 첫째날도 둘째날도 친구들과 수다로 밤을 물들이고, 셋째날 낮에는 버스에서 게임하고 노느라 잠도 자지 못했다. 그러나... 역시 인간 하명란은 그 정도에 무너지지 않았다. 호텔에 들어와 침대에서 몇번 뒹굴거린 다음 샤워를 하자, 마치 밤의 정기를 받은 듯 내 눈에 생기가 돌아오는 것이었다. 맑아진 정신으로 정선이와 치파오를 입어보고, 로비에 구경갔다가, 돈 갚으러 다녀오니 창희가 술을 사러 나가려는 중이었다. 오오, 술!! 술이란 말이지! 그 순간부터 기대에 부풀어서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짜식들, 어제는 우리 빼놓고 마시더니만. 우리 방에 아이들-지언, 창희, 준석, 현석, 희권, 예진, 해민, 정선, 민지, 은정, 지은, 소연, 다희, 나-이 모여들었고, 술을 사오는 건지 빚어오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올쯤 되자 창희가 술 다섯병과 함께 돌아왔다. 드디어 내가 소원성취하는 날이 다가온 것인가!! 기분이 좋아져서 컵을 꺼내 반을 따랐다. 일단 초콜렛을 하나 먹은 다음, 가슴 두근거리며 술컵('술잔'이 아니었다.)에 입을 갖다댔다. 그리고 한 모금, 두 모금... 아아, 술은... 쓴 것이었다. 톡 쏘는 것같은 느낌이 탄산음료같기도 했지만 끝맛이 영 구질구질한 게, 전혀 맛있지 않았다. 헹. 내가 술을 마셔보고 싶었던 이유는 취하면 어떤 기분일지가 궁금해서였는데, 취한 것 같은 느낌도 안 들었다. 이렇게 슬플수가. 그 슬픔을 달래고자 술병을 조금씩 더 기울였지만 취하지 않자 더 짜증났다. 난 취해보고 싶은 거란 말이다! 술을 사온 장본인에게 한 십 몇도 정도 되는 술이었냐고 물어봤을 때 그것보단 좀 더 세다고 했으니까 이십도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난 그게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취해지지 않았다. 취하고 싶건만, 취해지지 않았다. 오...
그냥 이렇게 마시기만 했다면 술이 그렇게 강력한 기억으로 다가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저 처음 마셔본 술로서의 의미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술이 세병 정도 남았을 때, 우리는 게임을 시작했다. 업그레이드 369! 물론 틀린 사람이 컵에 담긴만큼의 술을 마셔야 하고, 안전을 위해 흑기사 제도도 도입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벤트,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이 부분이 제일 놀라웠다. 선생님은 들어오시더니 안주도 좀 먹어가면서 적당히 마시고 자라는 말을 남기시곤 사라지셨다가, 곧 손에 캔맥주를 들고 돌아오셨다.
...........잠온다;
앞부분에 첫째, 둘째날 이야기랑.. 술마신이야기도 한참남았는데... 아아, 너무 잠와서 그냥 자야곘다. 언제 또 쓸 수 있을지,원... 수행평가가 많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