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난 얘깃거리를 찾기 위해 매일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썰렁'해지는 게 무서워서, 보트에 새어들어 오는 차가운 침묵의 물을, 별볼일 없는 일상의 보고(報告)로 막아내는 데 필사적이었다. 손가락의 어디를 다쳤다, 어제 본 텔레비전이 재미있었다, 아침에 금붕어가 죽었다……. 하루에 있었던 일을 전부 이야기해도 모자라서 침묵의 물은 다시 졸졸졸 스며들어 온다. (86쪽)
때때로, 나도 하츠처럼 '참으면서' 시간을 보낼 때가 있다. 초조해 하면서, 집단 속에 도태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지금 당장 뭔가를 말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헛소리를 지껄여댈 때가 있다. 나라는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서, 내가 이렇게 너희들 속에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면서, 안쓰럽기도 한, 그럴 때면. 그럴 때면, 왜 내가 이렇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우리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만 하고, 나는 그것을 즐기는 편이지만, 때때로, 관계라는 것 자체가 귀찮고 의미없는 것으로 보일 때가 생겨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맺어야하는 관계란 반드시 이런 무의미한 시간들의 집합이어야만 하는 걸까? 매순간을 의미있는 관계들로 채우며 살 수는 없을까?
...그래,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여기서 말하는 '살 수는 없다'는 것은, 그런 삶은 있을 수 없다는 의미와 함께, 그런 삶을 살았다간 정말 숨이 막혀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 거다, 뭐.
존재를 지우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존재가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것을 확인하는 건 두렵다. (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