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도 조금 느꼈지만, 요즘 내가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내가 열정을 쏟았던 것들-영화, 음악, 만화, 책, 드라마-과 멀어지면서, 나의 색깔이 점점, 다른 사람들과 같아져가는 것 같다. 예전에는 알라딘에 글을 남기는 것이 즐거웠지만, 요즘은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귀찮다. 잘된 '글'을 써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끄적끄적 낙서하는 것을 즐기던 나의 모습은, 나의 마지막 독특함이었는데.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야자를 하고, 11시 반에 기숙사에 가서 1시에 잠드는 생활. 반년동안의 반복적인 생활의 작은 틈들 속에, 하명란의 조각을 조금씩 조금씩 흘려놓고 왔다. 그리고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좀 더 보편적인 교우관계, 좀 더 보편적인 생각, 그리고 어깨를 짓누르는 권태.

  두렵다.

  인간 하명란은 사라지고, 그저 한국의 한 고등학생만이 남게 된다. 그만큼 비참하고 비극적인 일이 또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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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5-08-05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하명란이었군요. 전 명이 성인 줄...

부리 2005-08-05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운 내세요! 일시적인 슬럼프란 누구나 있어요.

가을산 2005-08-05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사라져간다'는 경각심만 갖는다면 인간 하명란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겁니다.
권태롭고 반복되는 것 같은 생활이어도, 내게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시간일테니까요.
그리고... 좁은 재량 안에서도 하명란은 무척 독특한 색깔의 고등학생입니다.
흐흐.... 알라딘의 보물인데요... ^^

Laika 2005-08-05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저희가 보아온 명란님은 그렇게 쉽게 빛깔을 잃어가진 않으실것 같아요... ^^

어룸 2005-08-05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하명란님은 알라딘에 하나뿐인 밝은보석알이십니다!! ^^
 

  그때의 난 얘깃거리를 찾기 위해 매일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썰렁'해지는 게 무서워서, 보트에 새어들어 오는 차가운 침묵의 물을, 별볼일 없는 일상의 보고(報告)로 막아내는 데 필사적이었다. 손가락의 어디를 다쳤다, 어제 본 텔레비전이 재미있었다, 아침에 금붕어가 죽었다……. 하루에 있었던 일을 전부 이야기해도 모자라서 침묵의 물은 다시 졸졸졸 스며들어 온다. (86쪽)

  때때로, 나도 하츠처럼 '참으면서' 시간을 보낼 때가 있다. 초조해 하면서, 집단 속에 도태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지금 당장 뭔가를 말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헛소리를 지껄여댈 때가 있다. 나라는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서, 내가 이렇게 너희들 속에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면서, 안쓰럽기도 한, 그럴 때면. 그럴 때면, 왜 내가 이렇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우리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만 하고, 나는 그것을 즐기는 편이지만, 때때로, 관계라는 것 자체가 귀찮고 의미없는 것으로 보일 때가 생겨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맺어야하는 관계란 반드시 이런 무의미한 시간들의 집합이어야만 하는 걸까? 매순간을 의미있는 관계들로 채우며 살 수는 없을까?
  ...그래,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여기서 말하는 '살 수는 없다'는 것은, 그런 삶은 있을 수 없다는 의미와 함께, 그런 삶을 살았다간 정말 숨이 막혀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 거다, 뭐.

  존재를 지우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존재가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것을 확인하는 건 두렵다. (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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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권을 12월에 한국어판이 나올 때까지 붙들고 끙끙거렸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쯤에야 다 읽겠지 했는데, 6권은 생각보다 금방 읽었다. 그런데 전혀 기쁘지 않다.

  거짓말. 거짓말이지.

  마지막 챕터는 너무 안타까워서, 읽고 싶지도 않았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은 해리, 열여섯살의 해리는 왜 이 모든 것을 안아야만 하는 걸까. 이야기일 뿐이지만, 이 아이가 안쓰럽다. 너무 안쓰럽다.

  처음부터 조앤 롤링은 7권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했으니, 이제 마지막 한 권이 남은 셈이다. 나는 해리가 어떻게 한 해를 더 살아나갈지,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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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둥개 2005-08-01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예요. 저도 넘 슬퍼서 거의 우울 모드였답니다. 그런데 그게 다 짜고 친 거라는 설이 있어요. 그러니 담 권을 기다려 보세요. ^^

비연 2005-08-01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직 읽지 않았는데. 5권도 읽지 않았는데..흠...궁금 또 궁금.

가을산 2005-08-0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스포일러가 끼일 뻔 했네요.... 가 아니라,
엄청 궁금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明卵 2005-08-01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정개님, 으흑흑...ㅠㅠ... 싫어요, 싫단 말이어요..

비연님, 빨리 읽어 보시어요^^

가을산님, 스포일하지 않기 위해 조심에서 썼어요^^ 충격적인 내용은 기사화 되기도 했기 때문에... 이 정도는 괜찮겠죠? 너무너무 슬픈 일이 있다고 말하는 정도는..ㅠㅠ..

어룸 2005-08-05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스포일러 발설하고 싶어서 근질근질~^^

明卵 2005-08-06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투풀님 땟찌!!
 

  프린세스 츄츄, 아, 이 얼마나 안타까운 제목인가. 볼 마음이 생기려다가도 제목의 압박에 주저앉는 이들이 많다는 친구의 설명은 진정 사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일 뻔 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친구의 지속적인 추천에 호기심이 생겼고, 다운을 받았으며, 결국 주말을 츄츄에게 바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아, 츄츄... 너무 재밌게 잘 봤다. 훌륭한 구성, 아름다운 음악과 발레의 조화, '고품격 어쩌구' 하는 식의 선전은 츄츄에게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름인 것이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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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5-07-25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귀여운 그림이네요...
명란님 오랜만이어요... 명란님 학교는 방학을 어떻게 보내는지요...??
 

  서점을 서성이다가 눈에 확 띄는 표지 덕분에 손에 들게 되었는데, 꽤 두꺼운데도 금방 다 읽어버렸다. 평소에 궁금하던 것, 평소엔 별로 안 궁금했지만 질문을 읽어보니 궁금하게 된 것, 이 두가지로 가득 찬 책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아주 속 시원한 책이었단 말이다. 게다가 이 사람, 글이 너무 웃겨서 자습실에서 읽다가 킥킥하고 새어나오는 웃음을 막느라 진땀을 뺐다. 이런 책에서 속 시원하게 해주고, 게다가 웃겨주기까지 한다는데 뭘 더 바랄 게 있으랴. 훌륭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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