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도 조금 느꼈지만, 요즘 내가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내가 열정을 쏟았던 것들-영화, 음악, 만화, 책, 드라마-과 멀어지면서, 나의 색깔이 점점, 다른 사람들과 같아져가는 것 같다. 예전에는 알라딘에 글을 남기는 것이 즐거웠지만, 요즘은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귀찮다. 잘된 '글'을 써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끄적끄적 낙서하는 것을 즐기던 나의 모습은, 나의 마지막 독특함이었는데.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야자를 하고, 11시 반에 기숙사에 가서 1시에 잠드는 생활. 반년동안의 반복적인 생활의 작은 틈들 속에, 하명란의 조각을 조금씩 조금씩 흘려놓고 왔다. 그리고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좀 더 보편적인 교우관계, 좀 더 보편적인 생각, 그리고 어깨를 짓누르는 권태.
두렵다.
인간 하명란은 사라지고, 그저 한국의 한 고등학생만이 남게 된다. 그만큼 비참하고 비극적인 일이 또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