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얼간이 - 인도판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 마드하반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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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재능을 좇아가면 성공이 따라온다>

 

   방금 세 얼간이라는 발리우드 영화를 봤다. 작년에 이 영화 보고 좋았다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꽤 있었으나, 정작 나는 영화에 그다지 취미가 없는지라 건성으로 '기회가 되면 봐야지'하는 생각만 했었다. 그러다가 책읽기가 가끔씩 지겨워지는 요즘, 저녁에 컴퓨터로 내려 받아서 볼 만한 영화가 없나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또 누가 '세 얼간이'를 말했다.


   '강추'를 받고도 당장 영화를 보지 못했던 이유는 개인적으로 며칠 동안 이런저런 일이 있기도 했었지만, 인도 영화에 대한 나의 선입견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내 또래의 사람들은 많이 알고 있을 텐데 1990년대 중반이었나 우리나라 극장에 거의 처음으로 인도영화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 제목은 '춤추는 무뚜'. 줄거리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상영시간 내내 끊임없이 (인도스러운(?)) 흥겨운 춤과 노래, 과장된 대사와 몸짓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이 영화가 재미있다는 사람도 많았으나, 나로서는 낯설다는 느낌 이외에는 헛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내용 전개 때문에 실망만 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 인도 영화라고 하면 이 '춤추는 무뚜' 이미지가 떠올라 인도 영화는 뭔가 줄거리는 엉성하고, 내용 전개가 과장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그래도 아무튼 ‘강추’하는 사람 덕분에 세 얼간이를 보았다.


   우려와는 달리 세 얼간이는 무척 재미있었다. 물론, 세 얼간이에도 인도 영화 특유의 흥겨운 춤과 노래가 이어지고 이야기는 과장된 전개가 계속되니, 이에 따라 낭만적인 해피엔딩의 결론도 당연한 듯 했지만, 영화 '세 얼간이'의 주요 배경이 되는 인도 대학(의 현실은 우리나라의 문제와 비슷한 점도 참 많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공대(ICE)의 학장에게 대학을 '공장'처럼 운영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주인공 '란차다스(이하 란초)'의 항의는 마치 우리나라의 (대학) 교육의 현실을 두고도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아서 아무 생각 없이 흥겨운 장면에 몰입하다가도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는, 나에게는 소위 말하는 개념 찬-게다가 재밌기까지 한- 영화가 되었다.


   영화는 대학 시절 늘 어울려 다녔으나, 졸업 후에 어디론가 사라져서 지금껏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란초'라는 친구가 만나러 가면서 그를 회상하는 줄거리이다. 란초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는 연락을 받은 '파르한'과 '라주'는 '란초'가 있는 곳을 찾아간다. 이후 이들은 란초와 함께 보낸 대학 시절을 하나하나 떠올리게 된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란초와 파르한, 라주는 한 방을 쓰게 되면서 금세 친해진다. 이들이 세 얼간이들이다.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인도의 명문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들은 대학의 불합리한 기존 체제에 순응하는데 별다른 이의가 없지만, 오로지 공부하는 것이 좋아서 대학에 들어온 '란초'는 이 불합리한 체제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다. 또한 지적 성취를 위해 공부를 하는 태도와 사회적 성공보다는 자기 재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란초'의 생각은,  '란초'와 어울리는 두 친구에게 조금씩 영향을 준다. 결국 아버지의 반대로 사진작가의 꿈을 접었던 파르한은 '란초'의 도움으로 사진작가가 되고, 가난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라주'는 '란초'의 영향과 도움으로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게 되고, 또 정직하고 당당한 태도로 면접시험을 보고 나서 원하는 회사에 취업을 했다.


   이들은 여러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란초가 있는 곳을 찾아갔는데, 란초는 어느 시골에서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대학 시절의 란초를 떠올린 이들은 재능을 좇아 큰 성공을 거둘 것 같았던 란초가 초라한 시골의 초등학교의 교사로 살아가는 것이 의아했지만, 사실 란초는 본명이 푼스크 왕두라는 이름의 유명한 공학자- 특허가 400개나 되고, 일본 정부가 그의 실력을 두려워하는-라는 사실이 이내 밝혀진다. 결국 란초는 대학 시절의 자기 말대로 자기의 재능을 좇아 살았고, 사회적인 성공이 그를 따라온 것이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것인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은 우리나라 청춘들의 고민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일치한다면야 더 없이 행복하겠지만, 그런 복 받은 사람은 그리 흔치는 않을 것 같고, 그렇다면 대부분의 청춘은 자신의 꿈과 성공 사이에서 갈등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청춘에 이런 고민이야 당연한 일이 아닐까도 싶고! 그런데 사실, 꿈과 성공을 두고 갈등하는 정도라면 적어도 그리 불행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최소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는 경우니까. 그런 고민과 불안과 방황의 시간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게 해 주니까. 그게 청춘 시절의 과업이기도 하니까. 그런 통과의례를 거쳐야 더 성장하는 것이니까.


   진짜 안타깝고 불행한 경우는 아예 하고 싶은 일이 없거나,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도통 모르는 때이다. 내가 만나는 학생들이 아직 고등학생-대학생이라고 크게 달라져 있을 것 같지는 않다-이라 더 그런 것이겠지만, 많은 학생들이 내 꿈은 무엇이다, 라고 말하거나, 나는 무엇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는 대부분이 평범한 인간인지라 꼭 어떤 부분에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또 모두가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나는 건 아닌 듯하다. 그냥 다 고만고만하지 않나?) 나의 꿈이냐 사회적 성공이냐를 선택하고 싶어도 우선 내 꿈이 무엇인지를 자신도 모르는 상황이니 이보다 답답한 노릇이 어디 있을까? 그러면 우리는 정작 자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미친 듯이 공부에만 매달려 있을까? 왜 학교에서는 오직 공부만, 성적만을 강조할까?


   학생들도 이미 성적이 잘 나오면 대학도 학과도 골라서 갈 수 있다는 교사들과 부모들과 사회의 감언이설(감언이설)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 지 오래다. 그러니까 이제는 모두 무엇을 잘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냥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 뒤를, 옆을, 보려는 순간 경쟁에서 탈락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한번 경쟁에서 탈락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든다.


   내가 볼 때는 언제부턴가 이런 불안감과 두려움의 유령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서서히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이젠 공포가 내면화되어 있다. 이런 불안감과 두려움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따라서 이런 불안감과 두려움의 근거는 무엇인지, 그 근원은 무엇인지, 무엇보다도, 그 불안함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찾아보려는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 기능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러니 공포에 감염된 우리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무작정 남들이 달리는 만큼 달려야만 마음이라도 편해지는 것이다. 


   그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는? 영화 세 얼간이에서 가장 주체적인 삶을 살고 주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란초는 친구들에게 두려운 상황에 맞딱뜨리면 "알 이즈 웰"을 외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마음은 원래 겁이 많은 존재이기 때문에, (마음을) 속일 필요가 있다고 한다. ‘알 이즈 웰’이라고 외치는 게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문제를 해결해 나갈 용기를 주기 때문이란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 미리 겁먹지 말고,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하면 가볍게 마음을 속이고 외쳐> ‘알 이즈 웰’이라고 말이다.


   세상이 영화처럼 쉽게 풀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래도 두려움이나 불안함도 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한 번쯤은 그 마음을 속여 볼 필요도 있겠다. 이 영화를 본, 모든 청춘들에게 ‘알 이즈 웰’을 외쳐볼 것을 권한다. 혹시, 불안한 우리 마음이 속을 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 때 우리는 현실에 맞서는 용기를 얻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청춘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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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2012-01-18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보고 난 담에 한동안 '알 이즈 웰'을 혼자 열심히 외곤 했었어요^^; 특히 안 좋은 일이 생길때마다 말예요~ 이 영화는 자신의 재능을 좇아가면 성공이 따라온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슬픈현실은 그런 재능이 모두에게 있는 건 아니라는 것!ㅠㅠ그리고 이 글에도 쓰여있듯이,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어떤 일이 하고싶은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구요. 란초와 같은 사람은 사실 드문데..^^ 저는 란초와 같은 사람이 되려고 해요..(진지!!)ㅋㅋㅋ

글 쓸 의욕을 잃으셨다더니 좋은 리뷰 완성하셨네요..축하축하^^ 추천 꾸욱 누르고 갑니다.ㅋㅋ

느티나무 2012-01-18 21:30   좋아요 0 | URL
맞아요. 학교에 있어보면 꿈이냐 성공이냐를 두고 고민하는 친구도 적죠. 꿈이 없는, 꿈이 뭔지 모르는 친구들이 훨씬 많더라구요. "알 이즈 웰"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해결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도 있겠지요. 명심했다가 다음에 꼭 써먹을 수 있기를...ㅋ

2012-01-18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8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01-18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님, 영화 리뷰가 참 좋습니다.
놓친 영화인데 찾아서 보고 싶네요.
'알 이즈 웰'은 무슨 뜻인가요?

느티나무 2012-01-19 00:39   좋아요 0 | URL
주인공의 친구가 무슨 주문처럼 외우는 대사인데, All is well 입니다. 다른 친구가 "올 이즈 웰?" 하니까, 주인공이 아니라고, 꼭, "알 이즈 웰" 이라고 해야 한다네요.ㅋ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한 번쯤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유쾌 상쾌 통쾌한데다가 자녀 교육에 대한 철학(?)에 관한 영화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고맙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회 기획, 엮음 / 교육공동체벗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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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먼 길을 가는첫걸음.

 

   이 리뷰는 약간 길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잘 쓴다고 누가 칭찬해 주는 글도 아닌데 싶어 아무렇게나 쓰고 말지 싶다가도, 이런 글쓰기를 내 생각의 조각들을 이어붙이고 쟁여두는 기회로 삼으려는 욕심에 이왕 쓰는 글, 좀 다듬어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읽은 책도 좋다. 교사인 내 가슴을 한동안 먹먹하게 만든 책, 교육공동체 벗에서 나온 <교육 불가능의 시대>라는 책이다.


1. 외면해 온 교육에 관한 책

 

   때때로 부침이 있긴 했지만, 나름 틈나는 대로 지난 20년 동안 책읽기를 완전히 끊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뭐 취미 삼아, 놀기 삼아 해 온 책읽기라 처음부터 발전이라는 개념이  있을 리 없다. 별로 분야를 한정하지도 않았고, 책 읽는 수준도 대체로 교양 입문서 수준에서만 수년 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그래도 별로 아쉬움이 없으니 천상, 영혼이 게으른 탓이다.) 다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내 책읽기의 큰 졸가리는 시, 소설 같은 문학책, 사회과학 입문서나 인문학 교양서, 그리고 교육에 관한 책으로 묶어 볼 수는 있겠다. 내 직업(고등학교 국어교사)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학책을 읽을 때면 갈래 자체에 재미가 있을 뿐더러 무엇보다 마음의 힘을 덜 들이고 읽을 수 있어 한결 편하다. 인문 사회과학 도서는 말 그대로 취미로 읽는 것이라 쉽게 읽히면 좋고, 어려우면 밀쳐두고 다른 책으로 건너뛰고, 이도저도 아니면 안 읽어도 그만일 때가 많으니 문학책보다도 더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교육학 책을 고르고, 또 읽을 때는 마음이 좀 다르다. 이런 종류의 책들이 주로 비판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부정적 교육 현실에 내 책임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학교 현장에서 몸으로 때우는 나 같은 사람이 볼 때 저자들의 현실 인식이 정확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는 이건 아닌데,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좀 있었다. 아마도 교육에 관한 책을 읽는 내 태도는, 책의 내용을 ‘나와 관련된 문제’로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읽는 동안 긴장감도 높아지고, 마음이 답답하기도 하고, 머릿속으로는 계속 저자의 허점만 찾으려고 든다. 그러니 책을 읽어도 마음이 불편한 거야 당연하다. 그래도, 초임 교사 시절에는 이런 교육학 관련 책을 부러 찾아 읽기도 했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서부터 교육학 관련 책은 더 이상 찾아 읽지는 않게 되었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왜 그럴까, 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해 본 적도 없는데, 글을 쓰면서 찬찬히 생각을 해 보니, 한마디로 교육학 책은, 재미가 없다,로 답할 수 있겠다.


   내가 생각할 때 교육학 책이 재미가 없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대체로 저자가 누구냐에 따라 나누어 말할 수 있다. 먼저, 저자가 교육 현장에 있는 경우에는 다음의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자신의 교육활동을 실천한 사례를 소개하는 경우이거나, 둘째, 자신이 본 학교(교육) 현실의 어느 한 면만을 부각시켜 비판적으로 서술하는 경우이다. 첫 번째 내용의 책은 나 같은 게으른 사람에겐 몹시 부담스럽다. 선생님의 넘치는 열정이야 훌륭하지만, 이미 제 분수를 잘 알게 된 뱁새가 황새를 따라갈 수는 없는 일이다. 두 번째 내용의 책을 읽을 땐 마음이 몹시 답답하다. 어느 곳이나 그렇듯이 학교도 부정적인 면이 많이 있긴 하지만, 결국 그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이 학교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니 나는 눈으로는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는 적당한 핑계거리와 반론 찾기에 더 주력한다.


   반대로 저자가 (중등) 교육 현장에 있지 않은 경우는 문제점의 진단이나 대안 제시 등에서 아무래도 현장 감각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항상 그들의 주장은 옳지만-그건 나도 안다-, 그 쪽으로 가기 위한 실천의 내용은 빈약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나마나한 소리, 너무나 이상적인 결론, 누구도 이르는 길을 모르는 ‘신세계’를 읽고 나면, 오히려 읽기 전보다 더 마음이 힘들다. 물론 현장 밖의 관찰자는 교육 현장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도 있으면서도 현장 전체의 상황을 점검하면서 문제를 파악해 갈 수도 있는 입체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장점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읽은 교육 관련 책들은 대체로 그런 장점보다는 앞서 지적한 단점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쩌면 내가 억세게 운이 나빴거나, 책을 고르는 안목이 아직도 형편없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나는 시나브로 조금씩 교육에 관한 책에서 멀어져갔다.


2. 그런데, 교육 불가능의 시대는 왜?


   거의 1년쯤 전이었나 싶은데, 오늘의 교육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교육공동체 운동의 출발을 알리는(함께 하자는) 메일이 나에게도 왔었다. 아이들에게 온전히 전해지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내 열정과 수년 째 학교 현장에서 무기력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던 내가, 제 무능력은 보지 못하고, 한동안 참여할까를 두고 제법 고민을 했었더랬다. 무엇보다도 이름을 올린 선생님들의 면면을 보고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계속 살면 나는 행복할까? 아, 명단에 올라온 저런 선생님들과 함께 배우고 공부할 수 있다면, 나도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교사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거기에서도 교육 운동의 취지를 알리는 이계삼 선생님의 글을 얼핏 보았던 것 같다.


   며칠을 고민 끝에 결국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내가 답장을 보내지 않아야 할 이유를 만들자면 셀 수 없이 많겠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결국은 이대로 현실에 안주하고 싶다’로 귀결될 수 있겠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그래서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나’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지금의 이 안온한 일상이 깨어지는 것도 불안했다. 다시 불편한 마음으로, 새로 시작하는 교사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내 마음 한편으로는 강렬한 유혹이 되어 나를 기웃거리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강력한 장벽이 되어 나를 되돌아서게 하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다시 한 번 운이 나쁜 결정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동안 잊고 살았다. 그러다 알라딘에서 ‘교육 불가능 시대의 교육’이라는 제목의 책을 보게 됐다. 책 한 권 읽는 것쯤으로 안온한 일상이 흔들릴 여지가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주저 없이 책을 사서 읽었다. 첫 번째 글부터 읽는다. 제목이 ‘오늘날 학교 현장의 ‘교육 불가능에 대한 사유’다. 이계삼 선생님의 글이다. 이 선생님의 책은 작년에도 읽어 본 적이 있다. 녹색평론사에서 나왔던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으로 교사로 살아간다면, 좀 불행하게 사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작년에 주변 선생님들 중에 이계삼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분이 계셔서 이런 얘기를 했더니, 이계삼 선생님도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좋아한다고 하셨단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에서 세 분의 글을 특히, 집중해서 읽었다. 이계삼(오늘날 학교 현장의 ‘교육 불가능에 대한 사유), 이미연(아이들은 실패할 권리가 있다), 안준철(이계삼 선생님께) 선생님의 글이다. 세 편의 글을 읽는 동안 가르친다는 것의 본질적 의미를 회의하는 선생님의 글에 내 가슴을 먹먹해지거나, 그래도 순정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거나나, 무려 30년 동안 아이들과 사랑에 빠져 있는 노(老?) 선생님의 편지글에 따뜻함을 느끼면서, 앞으로 나도 어떤 교육 철학을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아마도 교육 불가능성을 말씀하시는 한 선생님과 교육 희망론을 실천하는 다른 두 선생님의 생각, 그 어디쯤에서 여전히 서성대고 있을 것이겠지.


3. 오늘날 학교 현장의 ‘교육 불가능에 대한 사유,를 읽고


   글은 잘 읽히는데 책갈피를 넘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읽은 곳을 곱씹어 다시 읽기 때문이다. 쉽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가 없는 글이다. 오늘날 학교 교육의 불가능성을 이렇게 전면적으로 단언하는 주장을 내가 읽은 적이 있었나 싶다. 아마 내 기억에는 처음인 것 같다. 물론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모임이나 강연에서 귀동냥으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교사들의 습관 같은 상투적인 푸념 같은 것이기도 했고, 속내를 터놓은 친구끼리 술김에 할 수 있는 말이지-그래 놓고는 또  내일 수업해야 한다면서 일찍 들어가려고 한다-, 이렇게 단도직입으로 정색하며 교육의 절망감에 대해, 또 교육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글을 읽으며 마음이 답답하지 않을 독자는 별로 없을 것 같다.


   이제 그저 껍데기뿐인 학교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국가는 학교에 교육비를 내려 보낼 것이고, 교사들은 월급을 받아야 하고, 부모는 아이들 맡겨야 하며, 아이들은 그래도 졸업장은 받아 두어야 하니깐. (27쪽)


   이 부분은 날마다 자신이 체험하고 있는 학교의 모습을 정리하면서, 학교가 왜 이렇게 살풍경한 모습으로 바뀌었는지를 짚어본 후에 저자가 오늘날 학교의 미래에 대해 내린 결론이다. 저자가 보기에 이런 현실을 두고도 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어설픈 희망가는 오히려 이런 절망적 현실이 유지되는데 도움만 줄 뿐이다.


   적당히 썩은 상태면 그 제도는 적당히 썩은 상태로 완전히 썩기 전까지 유지된다. 썩은 상태를 개선하려는 대부분의 시도는 썩은 상황을 지연시킬 수는 있으나 상황을 개선하기에는 난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이런 시도 때문에 썩은 상태는 썩은 채로 더 오래 계속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기에 현실을 외면하는 희망가의 당위론은 썩은 구조의 유지에 봉사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오히려 우리는 절망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더디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의 ‘학교’라는 존재가 만들어질 수 있다. 저자가 만들고 싶은 새로운 학교는 인문학과 농업이 중심이 되는 곳이다. 저자는 이런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학교로 홍성의 풀무학교나 덴마크의 ‘국민고등학교’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덴마크의 사회 경제적 구조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국민고등학교의 모델을 우리나라의 현실에 적용할 수 있도록 공부해 나가고 싶다고 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말처럼, 교육의 불가능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교육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날, 우울한 상태로 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 들어갔더니 학생들이 모두 엎드린 채로 나를 맞이한다.(?) 하긴 이번만 특별히 그런 것이 아니다. 해가 갈수록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잠든 아이들을 깨우는 것이 수업의 첫 번째 일이다. 이 책에서 말했던, 오늘날 고등학교는 ‘여관’이라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한다. 기말시험이 끝났기 때문일까,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생각해 보니 시험을 치기 전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이랬다. 단지,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왔을 것이라는 짐작만 바뀌었을 뿐! 책을 읽고 나니 앞으로 더욱 더 내가 교실에서 슬퍼할 일이 많아질 것 같다는 우울한 생각이 든다.


4. 벌써 10년도 훨씬 더 지난 옛날이야기


   이미연 선생님의 글을 읽고,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 났다. 내 첫사랑들! 야생의 본능적인 에너지로 자신을 순치시키려던 세상에 맞서 싸운 친구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요컨대, 이건 내 첫사랑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99년의 3월, 나는 어느 공업계 고교로 발령이 났다. 과별 정원을 채우기 위해 1월말까지 입학생을 추가로 모집했던-한 반에 복학생이 무려 12명이나 되었던- 그 반이 나의 첫 ‘우리 반’이었다.(기존에 그 학교에 있던 교사들은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었고, 신규 교사 중에 군필한 남자교사가 온다는 정보를 듣고 학교는 덜컥 나에게 담임을 맡겼다.) 나는 새내기교사였다. 의욕은 넘쳤으나 멈출 줄을 몰랐고, 사랑도 넘쳤으나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결국 나는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교사였던 셈이다. (지금도 별로 나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아직 교사가 아니었던 교사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나는 그 녀석들을 따라 2학년, 3학년 담임을 맡았다.(학교에서는 내가 예상 외로 2학년, 3학년 담임을 연거푸 신청하자 웬 횡재냐! 싶었을 것 같다.) 내가 녀석들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는 그 3년 동안 치열하게 싸웠다(고 믿는다). 나는 아이들을 길들이려고 했고, 아이들을 내가 만든 울타리 안에 가두려고 했다. 그게 그 때 당시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녀석들은 한 번도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野性)’ 그대로였다. 그것으로 세상과 맞서 온전히 자신을 지켜온 녀석들이라 순치시키려는 나에게 저항했고, 갇힌 울타리를 뛰어넘으려고 했다. 나는 그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나는 더 철저한 교사가 되어갔고, 그들은 나를 애증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을 어정쩡한 학생이 되어갔다.[글이 좀 이상한가?]


   내가 그들을 달리 보게 된 것 그들이 3학년이 되어서였다. 해마다 학기 초가 되면 여느 때처럼 반복되는 운동장 아침 전체 조례를 하다말고 나는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조례 준비를 위해 어정쩡하게 기다리는 아이들을 줄 세우기 위해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오는 그 소리는 ‘교사’의 말이 아니었다. 마치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듣는 짐승을 다루는 듯 한 말투와 습관적으로 내뱉는 ‘이 XX', '저 XX', 'XX' 등이 아이들을 향해 던지는 말이 아니라, 그들을 가르치는 나에게 던지는 말 같았다. 나는 그 길로 교무실로 올라와 버렸다.(이 때부터 전체 조례에는 잘 안 나간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니,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와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게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다른 것에도 할 말이 많지만, 일단 전체 조례에 대해서만 해도 그랬다. 정기적으로 전체 조례가 있는 것에도 문제의식이 없었다. 부임 첫해에는 질서의식이라곤 없고, 단체행동에 대한 개념도 없는 우리 반 애들이 정말 답답하고 한심해 보였다. 부임 둘째 해에는 대충 줄만 잘 서고, 죽은 듯이 입만 다물고 있으면 15분이면 끝날 전체 조례를 45분으로 만드는 녀석들도 한심하지만 학교도 저런 애들 데리고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싶어서 의아하고 이상했다.


   그런데 그 어느 조례 시간에 나는 깨달아 버렸다. 수 십 년이 지나도 학교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이 말은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 학교는 안 변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학교가 자기 학교의 학생들을 먼저 사람으로, 인격체로 대접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이미 본능적으로 그것을 간파하고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 다 아는 사실을 교사들은 저들의 행동을 직접 보고서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무튼 우리가 같이 3학년이 되자 서로의 관계는 조금 더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우여곡절이야 많았지만, 결국 함께 보낸 3년의 시간이 쌓인 덕에 서로를 조금은 더 알게 됐고, 그래서 나는 그들의 언어에서 악의(惡意)를 지울 줄도 알았고, 그들은 나의 말에서 진심을 엿보기도 했다(고 나는 믿는다.).


   3학년 1학기가 끝났다. 드디어 녀석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현장실습 기간이었다. 이때부터는 취직하면 학교는 졸업식 때까지 안 나와도 된다. 녀석들은 지긋지긋하던 학교에서 해방될 수 있고, 저희들은 꽤 크게 느낄 법한 돈도 벌수 있는 지라 실습을 많이 기다린다. 처음엔 별 마음이 없더라도 교실에 하나둘 자리가 비기 시작하면 덩달아 들뜨기 시작해서 대부분 현장실습(취업)을 나가버린다.


   3학년 2학기는 취업을 나가지 않는 소수의 학생만 데리고 수업을 하고, 실습 나간 학생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격려와 부탁, 그리고 허위 취업이 아닌지 감시(?))를 알아보기 위해 현장방문만 1-2번만 하면 된다. 우리 반은 상대적으로 실습생이 적어서 다닐 곳이 많지는 않았기에 아이들에게 2-3번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대체로 실습생을 받아주는 기업은 영세 중소기업이 많았다. 주로 대도시 공단지역에서 밀려나 임대료가 더 싼 반촌반도 지역의 중소 공단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주소를 보고 찾아가면, 녀석들이 이런 곳에서 일을 하는구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 시골 논밭 주변의 덩그런 공장에서 청춘들이 땀 흘리기엔 동네가 너무 심심하고 따분하게 느껴진다. 나도 이런 분위기가 무척 낯선데, 녀석들이야 오죽할까 싶었다.


   내가 공장 마당 한 쪽에 차를 대고 허름한 사무실을 찾아가면 대체로 낯선 사람들을 몹시 경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학교에서 왔다고, 실습생들 현장 점검 나왔다고 하면 그제야 얼굴이 조금 풀리면서 보통은 일하러 나온 학생들을 칭찬한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녀석(들)이 나온다. 내 눈에는 녀석이 입고 있는 작업복이 영 낯설었다. 녀석이 수줍게, 그러나,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이후 잠깐 우리끼리만 있을 수 있는 시간공이 허락된다. 녀석은 학교에서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더 어른스러워야 하는데, 담임에게 시시콜콜 일러바치는 고자질쟁이가 돼 버렸다. 한편으로는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반신반의하면서 녀석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녀석들은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는지가 가장 궁금한 모양이다. 안부를 묻는 친구들의 소식은 전해줬다. 한참 이야기를 나눈 끝에 녀석들이 차를 타러 나오는 나를 배웅한다. 나는 그들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인 것만 같아서 좀 죄스럽다.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분노’에 치를 떨었다. 아이들의 입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를 듣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첫 번째 단어는 “착취”였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진 못했지만, 머릿속은 ‘착취’라는 단어만 둥둥 떠다녔다. 다시 한 번, 녀석들의 때에 절은 헐렁한 작업복과 낡은 작업화와 땀투성이 얼굴이 떠올라서 먹먹했다. 실습생이라고 부르고, ‘현대판 노예’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알고 보니 ‘신참’이라는 이유로 온갖 허드렛일은 다 시키면서도, 실습생이니까, 어리니까, 일을 잘 못하니까, 몇 달 안 있을 거니까, 최저임금도 지급하지 않는 기업이 태반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면 다른 학교의 실습생을 받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음 해 실습생을 받아서 메꾸면 된다는 생각했을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최저임금을 안 주고도 잡역부를 합법적으로 쓸 수 있는 좋은 제도가 바로 ‘현장실습’ 제도였다.


   그 때 나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처음으로 내 아이들과 온전히 한 편이 되었다고 믿었는데, 학교로 돌아와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똑같은 일상을 살아갔다. 물론 내가 일했던 학교는 더욱 더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실습생을 요청하는 회사의 팩스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학생들이 일하러 나간 현장에서 학교로 돌아올 경우 학교는 이유를 불문하고 ‘징계’를 했다. 이런 경우를 처벌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무단이탈 사례가 속출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다음해 그 기업으로 후배들이 일하러 가기 힘들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였다. 그러나, 학생들이 못 버티고 뛰쳐나올 공장이라면 사실 관계를 먼저 파악해 보고, 다음 해에는 안 보내는 것이 더 옳은 것이 아닐까? 한 번쯤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할 문제였는데, 학교란 존재는 도대체 머리가 없는 괴물인지 지난해에 썼던 공문을 꺼내 와서 날짜만 바꾸고 다음 해에도 바보 같은 짓을 그대로 하고 있다. 작년에도 그랬으니까 올해도……이럴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법보다 무서운 게 관례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시간은 또 어김없이 흘렀고, 아이들은 졸업을 했다. 눈물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으나 녀석들이 졸업하는 날, 난 의외로 담담했다. 준비했던 영상편지를 보여주기 위해 텔레비전을 켰을 땐, 살짝 부끄럽기도 했다. 아이들이 떠난 오후, 교실에 앉아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는 사랑했던 것일까? 아니, 나는 녀석들을 사랑했던 것일까? 그 때는 희미하게나마 그렇다, 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렇게 조금씩 내 사랑에 대한 생각도 잊었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책상에 앉아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


   방학입니다.

   날도 무척 찌는데, 오늘은 학교에 일찍 출근했습니다. 8시 30분쯤에 학교에 와서 컴퓨터를 켜고, 교무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창문을 열었습니다. 오늘은 에어컨 없이 하루를 지내 볼 생각입니다.

 

   좀 지나니까 아이들이 까불락거리며 올라왔습니다. 모두 다 까맣게 탄 얼굴인 거 있죠! 저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고 서로 생글거리면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물어봤습니다. 역시 저나 아이들 모두 학교-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를 벗어나고 보니 한결 여유도 있고, 얼굴에 생기가 도는 것 같습니다. 학교가 저나 우리 아이들에게 꿈을 주고 있는지 정말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모처럼 만난 얼굴들과 반가운 인사를 하고, 청소를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공간만 나눠서 청소를 하는데, 여학생이 한 명이라 여직원화장실 청소가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조금 툴툴거리더니만 곧잘 하고 내려갑니다.

 

   아이들이 청소할 때 저도 자동판매기를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기 중에는 매일 운영을 해야 하니까 그냥 재료를 넣고, 물을 받아서 채우고, 겉이나 컵이 나오는 입구를 중점적으로 청소하는데, 방학이기 때문에 전원을 끄고 자판기 속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자판기엔 커피와 프림, 그리고 설탕이 각각의 통에서 한 곳으로 모이는 깔때기 같은 곳이 있고, 거기에서 섞여 다시 물과 만나게 되는 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열기와 불순물을 빨아들이는 흡입관도 있더군요.

 

   각각을 떼어 내어 교무실 세면대에 담가서 엉겨 붙어서 굳어있는 커피 가루를 씻어냈습니다. 그러나 워낙 딱딱하게 굳어져 있던 것이라 잘 풀리지 않더군요. 처음에는 딱딱한 물건의 모서리에 탁탁 쳐서 그 충격으로 딱지들이 떨어지도록 했습니다. 어떤 것은 쉽게 떨어지지만 그래도 효과는 적었습니다. 그래서 건조기에 굴러다니는 젓가락을 이용해서 커피가루가 굳어진 딱지를 떼기도 했는데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냥 물에 담가두었다가 나중에 보면 자연스럽게 녹겠구나’는 생각이 든 건 한참 후였습니다. 그 물이 따뜻하면 더 잘 딱지를 떼 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딱지가 떼 지는 게 아니라 어쩌면 흔적도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버릴 수 있겠죠. 정수기의 물을 받아 세면대에 부속품을 놓고 돌아서는 순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상처도 따뜻한 물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구나! 하는 평범한 사실을 말입니다. 제가, 오랜 세월동안 상처받은 우리 아이들의 상처 딱지를 강제로 떼어 깨끗하게 만들려고 모서리를 치고 젓가락을 휘둘렀던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판기 부품들이 충분히 담길 수 있는 물처럼 저나 어른들이 자연스럽게 아이들 주변의 삶과 생활에 관심을 가진다면, 충분히 그 아이들이 바람직하게 행동할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아이들의 상처도 스스로 녹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물에 자연스럽게 풀려버리는 커피가루처럼, 넉넉하고 지속적인 그런 관심과 애정이 아이들의 응어리진 상처들을 흔적을 남기지 않고 고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물이 차갑지 않고 따뜻하면 더욱 좋은 것처럼, 우리가 쏟는 관심이나 애정이 따뜻하면서도 아이들에게 적당한 눈높이라면 더욱 좋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평범하지만-누구나 다 머릿속으로 알고 있지만- 결코 쉽지 않은-실천하기 정말 어려운- 사실을 오늘 또 한 번 깨우친 날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깨우치고 마음을 다잡아 가면 언젠가는 나아지겠지요.

 

   정도가 없는 여행길에 오른 느낌입니다. 날마다 깨우치는 보람으로 아이들과 함께 이 길을 가고 싶습니다.                             

 

2002년 8월 첫날에 / 느티나무가

 

   생뚱맞은 말이겠지만, 나와 아주 질기고도 찐한 ‘사랑’을 나누었던 그 녀석들이 졸업하고 나서야 문득 저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 글을 썼던 2002년 8월은 녀석들이 졸업하고 6개월이 지났을 때다. 글을 쓸 당시에는 아직 한참 어려서 잘 몰랐지만, 가끔 읽게 되는 지금은 자꾸 그 때 아이들이 생각나서 미안해진다. 그 때 젊은 선생이었던 나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가? 이건 분명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 지금의 내가 다시 그 아이들을 만난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이것도 정직하게 말한다면, 아닐 수도 있다, 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아직 갈 길이 먼데, 항상 일상에만 안주하려는, 게으름뱅이다.


5. 길은 두 선생님의 사이에 존재한다.


   어떤 존재를 30년 동안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도 어쩌다 가끔 보는 존재들이 아니라 하루에 잠든 시간을 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을 늘 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한 만큼 오롯이 그 사랑을 나에게 되돌려 주는 존재들도 아니고 자꾸 내 품을 벗어나 딴 곳으로 한눈을 파고드는 사람을 그렇게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을까?


   예전에-벌써 7,8년 전이로구나- 안준철 선생님을 직접 뵙기 전에는 선생님의 책을 읽을 때 ‘아무리 교사는 이렇게 생각해도 그 반 아이들의 생각은 좀 다를 거야’ 라는 생각을 했었다. 외람되지만 아이들에게 잔잔히 스며들어 있는 선생님의 일상을 보면서 좀 ‘가식적’인 거 아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선생님이 책으로 펼쳐 놓으신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모든 교사들이 꿈꾸는 유토피아 같았으니까. 너무나 이상적이었기에 척박한 우리 교육의 현실에서는 결코 생겨날 수 없는 세계 말이다.


   그 때 우리 동네 전교조지회에서 강연을 부탁드렸더니 순천에서 달려 오셨더랬다. 늦은 시간 뒤풀이 자리까지 여전하시던 소박한 웃음, 따뜻하게 건네는 이야기…… 겸손하게, 어떤 질문에도 조곤조곤히 말씀하시던 모습을 보면서, 아마 학교의 아이들에게도 이 모습 그대로 대하시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비로소 혼자 했던 오해(?)가 풀렸다. 만나는 아이들을 제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나게 하는 미다스의 손을 가진 선생님이 진정으로 부러웠다. 지금 교육 불가능을 말하는 학교 교육에서 선생님은 소중한 ‘희망의 증거’라고 말하고 싶다.


   정년이 5년 밖에 안 남은 늙은(?) 남교사가 여전히 열일곱 여덟, 여학생들과 연애(?)을 한다. 그것도 그냥 해 보는 장난 같은 게 아니라, 자기의 전 생애를 건, 순정을 다 바치는 연애다. 연애를 할 때 사람이 변한다. 부족한 자기 자신을 조금이라고 더 나은 사람으로 바꾸어보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둘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물리적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에너지이다. 어쩌면, 교사도 학생도 그럴지 모른다. 학교가, 교사가, 공부가, 취업이, 세상이…… 어떠니 저떠니 떠들어도 제 갈 길을 묵묵히 가는 선생과 먹머루빛 눈망울의 아이들이 교실에서 만나고 있는 한 쉽게 절망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희망을 말할 수도 없다.


   한 교사는 교육 불가능성을 말하고, 다른 교사는 교실 희망론을 몸으로 ‘증거’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고 아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은, 두 사람이 가리키는 방향이 같기 때문이다. 다만, 같은 방향에 대해 말하는 방식만 다를 뿐이다. 그러니, 그것이 절망이라고 말하든 희망이라고 말하든, 나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지금과는 다른 학교를 상상해야 하고, 그런 학교를 현실에서 짓기 위해 모색하고 실천하고 연대하는 노력도 필요할 뿐 아니라, 오늘 내가 만나는 아이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교사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이게 내가 걸어가고 싶은 길이다. 길은 여기 있다. 게으름을 떨치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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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아이들 2011-12-26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안준철입니다.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선생님의 글을 누군가 교육공동체 벗 카페에 옮겨놓아 덕분에 반가운 선생님 글 접하게 됬네요. 고맙습니다. 늘 따듯한 눈길로 바라봐주셔서요. 선생님 계신곳이 어디신지요? 이번에 낸 신간 <넌 아름다워, 누구 뭐라말하든>을 샘께 보내드리고 싶네요. 제 연락처 알려드릴게요. 010-4641-8772 좋은 글 감사했습니다. 언제 한 번 만나게요.

2011-12-26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8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11-12-31 17:09   좋아요 0 | URL
네 최은정 기자님, 부끄럽지만, 어줍잖은 글 쓰시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추가적인 내용은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고맙습니다.

2011-12-31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31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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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김어준을 사진(화면)으로 볼 때마다-실제로 본 적은 없다- 지상렬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애가 무척 강한 지상렬!(지상렬은 개그맨이지만, 원래 성격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처럼 보인다.) 약 한 달전쯤의 이 책을 사서 며칠동안 정독했다. 대체로 심각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읽다가, 맨 끝에는 결국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이상하게 생각되던 책의 표지 디자인이 다시 한 번 보게 됐다. 분명 이런 책표지 디자인은 저자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봤다. 흠, 조금 더 잘생긴, 자기애가 강한 지상렬로 수정해야겠다.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상담글을 묶어서 낸, '건투를 빈다'를 재미있게 읽었었다. 연재할 때부터 신문에서 챙겨 읽었는 주요 기사였으니, 책이 나오고 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권 선물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남자 한동안 한겨레 지면(紙面)에선 뜸하더니, '내가 만난 여자' (제목이 정확하지 않다.)라는 글을 띄엄띄엄 연재하길래 또 반가웠다. 황수정, 신정아 등 우리 사회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은 여자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다.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를 지난 7월부터 꾸준히 들었다. 특히 여름 밤에 걷기 운동을 할 때 지루해서 그 전까지는 MP3로 음악을 들었는데, 나꼼수를 알게 되면서부터 평균 2번씩 반복해서 들었다. 어떤 날은 내가 운동하면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나꼼수를 듣는가 싶다가도 또 어떤 날은 나꼼수를 듣는 재미를 위해 운동하러 나서는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한참 후,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라는 책이 나왔다. '나꼼수'에서 다 했던 이야기라는 평이 들려 살까 말까 망설이기 했지만, 그래도 듣는 것과 읽는 것은 또 다른 것이겠지 싶어서-사실 인터뷰 녹취록이니 글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하다- 사서 읽었다. 예상대로 나꼼수에서 말했던 내용이 많아서, 그 특유의 말투가 생각나서 혼자서 킬킬거린다. '명랑시민 정치교본'이라는 부제가 딱 맞는 말이다. 그래도 내용도 하나도 놓칠 수 없는 법! 나는 정독(精讀)했다. 그리고 그 결과 희미하나마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랬다. (아마 4월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후배 선생님과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년 대선은 어떻게 될까요?" 나한테 이렇게 묻길래, "지금 이대로라면 박근혜가 될 가능성이 90%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럼 야권에서는 누가 나올까요?" "지금으로서는 손학규가 유력하겠지만, 그가 나오면 대선에서는 정동영 정도의 표를 얻는데 그치지 않을까? 만약 손학규가 민주당으로 나오면 진보진영에서는 후보 단일화의 압력은 더 적어질테니 완주는 할 것 같은데" "문재인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도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 좋은 사람인 것 같은데... 자신이 권력의 최정점에 서야겠다는 강한 욕망(의지)를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잖아? 게다가 아직은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로 내 놓은 게 없으니까... 정말로 정치를 시작하려는지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는 걸" 뭐 대충 이런 뻔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말하는 나도 기운이 쑥 빠지곤 했다.

 

   그런데 이 책 이후로 조금씩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워낙 역동적인 우리나라의 정치 환경이 최근엔 확 달라지기도 했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예언이 아주 빠른 시간에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결과로 확인하면서, 이 책을 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던-하지만, 이 불의한 시대를 살아야하는 평범한 사람들 각자는 대체 어떻게 해야할 바를 잘 모르던- 뭔가 큰 욕구들이 이들의 '쫄지 마, 씨바'라는 외침에 따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5월 6일부터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우리 정치의 현실과 전망에 대해 묻고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 이에 대답한 녹취록을 글로 옮긴 것이다. 김어준은 이 책에서 자신만의 철학으로 좌우파의 구분부터 시작해서 '가카'의 주요 재테크 꼼수를 폭로하기도 하고, 진보 진영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인물 비평, 보수주의의 본질과 박근혜에 대한 인물 비평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야기 전개 과정의 필요성 때문에 곳곳에 말한 그의 '예측'이 어느새 현실이 되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문재인의 부상'과 '안철수의 등장'(이건 안철수가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안철수가 정치판에 등장하면 기존 정치권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지지가 있을 것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 한나라당의 '홍준표 대표 체제'와 '나꼼수의 대박'이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이렇게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었을까?

 

   책을 뒤적이다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김어준의 말을 찾아보았다. 먼저, 진보 보수를 나누고 세계를 이해하는 스탠스를 찾는 걸 설명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아가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부대끼면서 순간순간 경험으로 터득한 건데, 그러니까 근본은 없어. 어쨌든 그런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나름대로 내재적 속성을 직관과 통찰로 발견한 거라고 난 주장하는 거지, 일방적으로"(33쪽)

 

   "정치를 이해하려면 결국 인간을 이해해야 하고 인간을 이해하려면 단일 학문으로는 안 된다. 인간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팩트와 가치와 논리와 감성과 무의식과 맥락과 그가 속한 상황과 그 상황을 지배하는 프레임과 그로 인한 이해득실에 따른 공포와 욕망, 그 모두를 동시에 같은 크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섭해야 한다. 나는 통섭한다."(292쪽)

 

   그가 표현한 대로 말하면, '좀 재수없긴'하지만, 일단 예측의 결과는 그의 말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겠다.(아무튼 '잘난' 사람이라니까!) 그런데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면 다시는 그 사람 책은 안 볼 것 같은데, 김어준이니까 이런 게 좀 밉지가 않다고 해야 하나.(본인은 싫을라나? -귀엽다.) 아무튼 잘난 사람이 나 잘났어, 라고 하는데, 뭐 어때? 쿨하게 넘어가야지.

   마지막으로 이 주제에 대해서 하나만 더 기억해야 할 단어는, 바로 '사람'이다. 김어준이 책의 다른 부분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자신의 직관과 통찰력은 타고난 균형감각 덕분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가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순간순간 경험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제 내가 본 희망의 한 대목에 대해서 말해 보려고 한다.

 

   구조와 프레임을 통찰하지 못하고 구체적 삶과 인간이 없는 균형 감각이란 그렇게 허망한 거야. 이건 그나마 숫자로 제시하니까 그의 균형이란 게 얼마난 웃긴 줄 아는 거야. 숫자로 표시되지 않는, 구체적 삶을 충분히 겪지 않아 생기는 한계는 자명해. 그래서 구체적 삶이란 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어떤 구체적 삶을 살아왔는가가 결국 그의 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고. 박근혜는 그런 과정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269쪽)

 

   여기서 한창 유행하던 우스갯소리가 떠오른다. "북한은 못 하는 게 없고, '가카'는 안 해 본 게 없고, 박근혜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여기서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것이 어떤 큰 정치적 결정이나 판단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구체적 삶을 겪지 않았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은 한계가 자명하다면? 일말의 희망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진보진영이 늘 지적해 왔던 '이미지만 있'다, '수첩 공주'다, '3분 이상 발언하지 못한'다, '컨텐츠가 없'다,는 지적의 변종일까? 

 

 

   결국 이번 대선과 관련해 보수 진영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인물은 박근혜밖에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우리의 이명박이 있다. 정확하게는 퇴임 이후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이명박의 생존 본능이. 이 두 가지의 큰 힘이 앞으로 1년 반 동안 한나라당을 매우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빠뜨릴 것이다. 특히 이명박의 생존 본능은 정상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한나라당에게조차 해가 되는, 희한한 복마전을 펼쳐낼 것이다. 두고 봐라.(291-292쪽)

 

   그러나, 박근혜의 한계-이 책에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분명 박근혜는 아직도 가장 유력한 차기대통령이 아닌가-만으로는 진보 진영이 다시 집권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김어준은 X 맨이 한 명 더 있다고 말한다. 바로 '가카'다. 아마 박근혜의 한나라당은 우리 '가카'의 생존 본능 때문에 더 망가질 가능성이 있다고 강력하게 예언한다. 지금(2011.12.15.) 그의 예언이 현실이 되어 가는 것일까, '가카'의 친인척들로, '선관위에 대한 디도스 공격 문제'와 '한나라당 쇄신책'을 둘러싸고 몹시 시끄러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박근혜가 드디어 전면에 나선다.

 

   지금까지 대체로 적중했던 그의 예언이 이 마지막 예언에서 다시 한 번 적중할 것인가?

   나에게 이런 기대감이 생긴 것만으로도 이 책에 들인 값이 아깝지 않다. 아니 너무 싸다.

 

 

사족

 

"소설을 쓰고 있네", "여기까지는 팩트고 지금부터는 소설입니다." 흔히 듣는 말이다. 앞에 말은 대체로 비하의 의미가, 뒤에 말은 자기 말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이란 무엇인가? 바로 그럴 듯한, 현실에서 있음직한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또, 소설의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사건과 사건의 인과성이다. 그러니 대체로 좋은 소설은 현실의 '데자뷰'일 수 있다. '나꼼수'의 더 멋진 소설 쓰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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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음악 순례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창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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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만치 않았던 역사적 무게를 감당해야 했던 한 재일 조선인이 서양미술이라는 도구를 훌륭하게 써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잘 다듬어낸 이 책이 내 마음을 울렸다.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책과 인물, 사건들이 너무 많아서 여러 번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던 기억이 새롭다. 더구나 내가 읽었던, 서경식 씨의 앞에 두 책(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유려한 문체도 조금은 맛본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그의 다음 미술 순례가 기다려진다.

 

   위 글은 2006년 여름에 서경식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읽고 내가 쓴 감상문의 끝부분이다. 이후에도 꽤 여러 권 그의 미술 순례기를 읽었다. 그런데, '서양미술 순례' 만큼의 감동이 없었던 탓인지, 글쓰기에 대한 내 게으름이 더욱 깊어진 탓인지 그의 순례기를 읽고도 흔적 한 번 남기지 않았다. 그러다 이제 갓 나온, 미술이 아닌, 음악 순례기를 읽고 다시 내 마음이 흔들거렸다.

 

   처음 책이 나왔다는 광고를 봤을 때는 음악 순례라고 해서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다가, 책을 사고 나서는 반신반의하다가, 책을 읽으면서는 사람은 참 변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책을 덮고는 꼭 리뷰를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 리뷰를 쓰기 전에 물론, 내가 서양미술 순례를 읽고 쓴 리뷰를 읽어 봤는데, 내가 썼던 글에서 미술을 음악으로, 고흐를 말러나 윤이상으로 바꾸면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대신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서 미리 밝혀두지만, 이 책이 '서양미술 순례'에서 살짝 사고의 도구만 바꾼 그런 태작(怠作)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은 그의 생각은 지난 30년의 시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양미술을 찾아 방황 같은 순례를 혼자서 다녔던 30대 때나 아내와 여름이면 잘츠부르크음악제를 다니며 서양음악에 듣는 예순을 앞둔 그는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30대의 그와 지금의 그가 같은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것은 그의 평생을 붙잡아 둔 '재일조선인'이라는 정체성 문제가 여전히 그에겐 현실적이고 의미 있는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그는 어쩌면 변할 수가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음악, 그 음악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작곡가, 연주가, 청중 등), 문화, 사회, 정치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에서 꽤 길게 소개하고 있는 윤이상의 경우나, 특히 유대인인 작곡가 말러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내게는 삼중의 의미에서 고향이 없다. 오스트리아인 사이에서는 보헤미아인이어서, 독일인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인어서, 지상의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대인이어서.

 

   잘 알려져 있는 말러의 말이다. 와인의 취기가 약간 오른 나는 이 말을 F에게 해주면서 "그런 그가 분열된 존재인 건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고 덧붙였다. "당신과 같군요....." F가 바로 말을 받았다. 그녀도 약간 취한 걸까. (257-258쪽)

 

   이미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읽은 사람은 알 것이다. 저 구절이 저자 자신이 평생 동안 짊어지고 걸어왔던 분열된 자기 존재에 대한 고백이라는 것을. 게다가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내려놓을 수 없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라는 사실을. 길게는 태어나서부터 시작된 것이고, 짧게는 자아의식이 생기면서부터 스스로에게 던진,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지금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그 질문을 안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는 운명적으로 변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일본에서도 이름난 에세이스트답게 늘 그의 문장은 정확하면서도 단정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글을 읽는 동안 제법 힘든 시간을 보낸다. 이 책뿐만 아니라 그의 책은 늘 그랬다. 책을 덮고 나면 글쓴이의 깊은 고뇌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그의 고뇌는 좋은 문장에서 나온 예민한 감성에서 나온 것이라 더욱 더 날카롭게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다. 아릿한 아픔 같은 통증을 남긴다. 통증으로 내 마음이 출렁거린다. 이 출렁거림이 평온해지려면 적어도 며칠은 걸린다. 그러다가 통증은 가라앉고 평온해진다. 파문은 사라졌지만, 기억은 영원하다. 언젠가는 다시 그의 책을 다시 펼치는 날, 그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는 날이면 어김없이 평온한 마음이 다시 출렁거리는 날이 올 것이다. 더 자주, 더 많이 그런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 사족 같은 나의 클래식음악 이야기

 

   이 책에 나온 저자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상반된 감정을 나도 똑같이 느낀 적이 있다. 또 클래식이라는 음악을 처음 만나게 되는 계기나 환경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몇 가지 적어 두고 싶다. 서경식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일반적 편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기에, 그리고 스스로 그 음악 속으로 걸어 들어갔기에 그 음악을 이해하고 자기 인생의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나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일반적 편견에 머물렀기에, 그래서 그 음악에 다가갈 생각이 없었기에 지금은 이 음악에 무지하고 인생의 좋은 벗을 사귀지 못한 느낌이다.  

 

1. 어느 날 갑자기 꽤 큰 전축이 거실에 들어앉았다. 아마 1층 슬라브 집에다가 2층을 올려서 우리가 살면서 부모님이 사 놓으신 듯하다. 당연히 부모님은 클래식은 고사하고 그 때만 해도 겨우 텔레비전 가요 프로그램에 나오는 트로트만 흥얼거리셨는데, 거금 200만원-지금 생각해도 거금인데, 그 때가 80년대 말이었으니-을 들여서 양쪽 스피커가 내 허리까지 오는 전축을 장만하신 거였다.

   시커먼 전축에서 세상의 모든 노래가 들을 것 같은 기세등등한 날도 잠시였고, 곧 버튼식 유리문 틈으로 먼지만 켜켜이 쌓여 있는 듯 없는 듯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내가 제일 많이 전축문을 많이 여닫은 사람이었다. 대중가요 LP를 사기도 했지만, 국악 LP(황병기의 '미궁'을 샀었다), 클래식LP(그래봐야 피아노 소품집이나 베토벤 소나타곡)도 사서 들었다. 물론 동생들은 아직 어렸고 그런 LP를 듣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2. 고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음악 시험으로 클래식 음악을 듣고 그 음악의 제목을 쓰는 게 있었는데, 그 시험 때문에 골랐다가 하이든의 현악 4중주에 빠져서 카세트 테이프를 닳도록 들었다. 물론, 비발디의 '사계'도 열심히 들었다. 물론, 그 때도 우리 집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 사람은커녕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작은 관심도 보인 사람은 없었다. 물론 우리 집 거실에 전축은 있다는 사실도 잊혀진지 오래였다.

   그 때 우리나라에서 제법 유명해진 '리차드 클레이더만'이라는 피아노 연주가가 있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그 사람의 피아노 연주곡도 듣게 되고, 문화적 기반이라고는 전무한 대도시 변두리 학교 환경에 한 반에 한두 명이 될까 말까하는 연주곡을 듣는 그런 특이한 취향의 친구들에게 피아노 연주곡에 대해 귀동냥을 하기도 했다. 그 때는(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해서, 잘 아는 것처럼 술술 얘기하는 친구들이 부럽다기보다는, 놀라웠다. (아쉽게도 고등학교 때 기타 말고 다른 악기를 다루는 친구를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3. 대학의 1학년 2학기 예술 분야의 교양수업으로 고른 과목이 서양 음악의 이해, 였다. 다른 친구들은 우리 과 교수님들이 가르치시는 영화나 연극에 대한 이해 같은 수업을 골랐는데, 나 혼자서만 그 수업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수업에 대한 기억은 없고, 기말고사로 지금까지 들었던 음악을 들려주고 음악의 제목을 써내는 시험만 기억이 난다.(그 때 답을 제대로 써내지 못해서 장학금-그 때 당시엔 사범대생들은 재학생의 70% 정도가 장학금을 받았다-을 받는 게 위태로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수업은 제대로 안 들었으면서 시험 문제만 탓했던 못난 기억과 함께 1학년 2학기 교양수업이 끝났다. 

 

4. 그 이후로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접해 본 적이 없다. 음악이 나를 찾아온 적도, 내가 그 음악의 매력에 끌려서 다가간 적도 없다. 그러니 나는 서양음악에 대해선 백지다. 어떤 대상에 대해 무지는 상태는 대체로 그 대상에 대한 편견을 낳는다. 내가 서양음악에 대해 가진 편견과 똑같은 생각을 이 책은 이렇게 정리해 놓았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중산층 이상이 아니면 클래식음악을 즐길 수 없고, 악기를 구입하거나 어릴 적부터 전문가에게 배우고 음악학교에 진학해서 해외유학을 가기도 하는, 음악가가 되기 이한 문화적 투자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중산층의 세계와 클래식음악의 세계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죽이 잘 맞는다. 중산층의 계급성을 부정하는 건 클래식음악에 대한 동경도 부정하는 셈이 된다. 나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62쪽)

 

  나는 사회과학적 지식이나 사회적 인식이 지극히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었지만, 클래식에 대한 내 감정은 막연히 저 정도였다. 난 지금도 여전히 저 정도의 인식 수준에 머물고 말았는데, 서경식 씨는 이미 오래 전에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 무렵 나는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중산계급의 세계와 클래식음악의 세계는 죽이 잘 맞는다. 하지만 양자를 등식으로 묶을 순 없다. 예컨대 모짜르트는 궁정과 귀족의 비호를 받았기에 수많은 명작을 작곡할 수 있었지만 그 곡들은 귀족사회의 가치관을 훨씬 뛰어넘는 세계를 창조하지 않았는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음악은 어쩐지 불가사의하지 않은가.(69쪽)

 

   결정적으로 그는 음악의 힘을 꿰뚫어 보았으며 음악을 믿었다. 그렇기에 그는 음악과 평생의 좋은 친구가 된 것이다. 그가 진심으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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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11-12-12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음악과 좋은 친구인데요.ㅎㅎㅎ...계급성의 문제와 예술의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 됩니다.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측에서는 더욱더 말입니다. 문제는 그런 중산층의 계급성 조차 인식하지 못하면서, 베토벤이니 바흐니..하는 것의 고결함만을 이야기하며 자신과 그 고결함을 동치시키는 그들의 천박함에 있습니다. 모두는 아니겠으나...클래식 청자들 보다 클래식 창자들 중에 헛구역질 나오게 만드는 이들 엄청 많습니다.3분만 이야기해도 그 사회의식의 협착함과 그 현실감 없는 고결함과 그리고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입신의 비루함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아이들에게 tv에만 나오는 대중문화 말고도 다른 문화의 다양함과 풍성함이 있다는 걸 전달하고 싶습니다. 나중에 말이죠.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이 일종의 수혜자근성이 아닌가 성찰하게 됩니다.(실제로 대부분 교육운동이나 하방운동하는 사람들이 갖는 고민입니다.)즉 더 나은 지식이나 문화를 더 낮은 곳으로 전파하겠다는 식의 허튼 생각말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 생각을 넘은 지는 좀 오래되었지만, 늘 붙들고 있어야할 문제입니다...^^ 진복이는 건강합니까? 저희 집 아이들은 무럭 무럭 잘 크고 있습니다. 아빠가 몇 주 째 감기등으로 골골거리고 있는데...운동부족에 의한 면역력 약화가 주원인인듯 하빈다.

느티나무 2011-12-12 19:02   좋아요 0 | URL
진복이는 잘 크다가도 가끔 아프고 그렇습니다. 어제도 장염 증세가 있어서 고생했습니다. 저도 콧물이 줄줄 흘러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저는 과도한 운동에 의한 면역 기능의 약화가 주원인인듯 한데요 ^^::
시혜의식에 대한 고민은 지난 10년 동안 공부방 교사로 활동하면서 늘 갈등했던 주제였지요. 그래도 항상 제가 내린 결론은 다른 결론이 날 때까지는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였습니다.
제가 워낙 클래식 음악과 먼 사람이라 그런 일을 하는 친구는 잘 없었지만, 예전에 제법 친했던 친구 중에 오르간연주가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자기 삶에 워낙 치열한 인간이었던지라, 전 클래식 음악하는 사람을 존경했는데요.
생각해 보니 학교 다닐 때 음대 옆을 지날 때면 늘 늦게까지 남아서 연습하는 학생들이 있는지 노랫소리나 연주소리가 들려오곤 했는데, 그게 허수룩하게 대학생활 하던 저를 참 부끄럽게 하더라구요.
제 수준이 딱 요정돕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예술과 계급성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고 그걸 넘어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저에겐 새로운 친구가 필요합니다.
늘 평안하시길 빕니다. 몸도 마음도요.
 
정본 백석 시집
백석 지음, 고형진 엮음 / 문학동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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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어느 분의 페이퍼에서 "너에게 수영을 권한다"라는 제목을 보고 따라 들어갔었다. 그 때 한창 수영(水泳)을 배우려던 때라 눈에 번쩍 띄였다. 그런데, 수영이 시인 김수영일 줄이야! 어쨌든 그 페이퍼 때문에 김수영 시집까지 새로 사게 되었다.(예전에 샀던 정지용시전집, 김수영시전집(민음사)는 이미 다른 사람의 손으로 흘러 들어간 지가 10년이 넘었다.) 

   다시 펼쳐든 김수영의 시집. 그러나, 숱한 시인들의 격한 찬사와 칭송을 받고 있는 김수영의 시집은 내가 읽기엔 아직 문턱이 높았다. 흔히 모더니즘 경향이라고 불리는 초기 시들은 더 읽기가 힘들었다. 몇 차례 건너 뛰며 읽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러니 더욱 시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어느새 불탔던 독파의 욕구는 금방 식어버렸고, 날마다 조금씩 책을 펼치는 시간이 줄어들다가, 다음에는 책을 펼치는 날이 적어지다가, 어느 날은,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 며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고는 서가 한 귀퉁이에 '멋있게' 꽂았다. 꽂혀 있다, 지금도! 

   김수영을 펼쳤던 비슷한 시기, 그 때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백석시집도 읽으려고 정본 백석시집을 사서 학교에 들고 다녔다.(읽는 책은 늘 들고 다니며 학생들에게 자랑 겸 소개한다.) 사실, 백석 시집이야 집에도 두어 권 꽂혀 있지만, '정본'이라는 말에 끌려서 다시 서점에서 샀다. 제법 익숙한 시집을 야금야금 읽어가면서 평소처럼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소개도 하고 그랬었는데, 어느 날인가 책이 없어졌다. 분명 수업시간에 들고 갔다가 교탁에 둔 것 같은데,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몰라서 애가 탔다. 며칠이 지나도 책이 돌아오지 않자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교내 메신저를 이용해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으나 결국 소식이 없었다.  

   그리고는 한 동안 백석 시집을 잊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잃어버린 시집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 수업을 했는데, 잊을만하면 꼭 한 편씩 백석의 시가 소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여우난 골족'이니 '여승'이니 '고향'이니 하는 시는 차치하고서도 적어도 대여섯 편은 넘을 것 같다. 그러니 잃어버린 시집이 머리에서 잘 지워지지가 않았다.(잡았다가 놓친 물고기가 가장 크다고 하지 않던가?) 결국 할 수 없이 다시 '정본 백석시집'을 샀고, 며칠 동안 자기 전에 시를 읽었다. 시집을 읽는 밤이 모처럼 행복했다. 그리다가, 맨 마지막 구절에서 울컥!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올해 1년 동안 문제풀이용 지문으로 나온 백석의 시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시렸다가 뜨뜻해지곤 했다. 그래서 유독 백석의 시를 읽을 때면 내 목청이 커지곤 했다. 가르치는 내가 아무리 핏대를 세웠어도 녀석들은 시인이 말하는 가난함이, 외로움이, 또, 쓸쓸함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를 것이다. 왜, 내가 백석의 시를 읽을 때 더 큰 목소리를 냈는지도 모를 것이다. 아니, 내가 그랬다는 사실도, 심지어 저희들이 백석의 시를 읽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를 것이다. 그래도 먼 훗날 어느 한 때,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어느 날, 우연히 어쩌면 운명처럼 이 시와 조우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면, 그 날이 오면, 그 녀석도 오늘의 나처럼 백석의 시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옛날에 멀뚱하던 내가 오늘 이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올해 읽은 시 몇 편을 백석시집에서 골라 기록해 둔다.

   이미 익숙한 구절인데... 처음 백석의 시집을 읽었을 때도 여기서 울컥, 했는데. 그 때가 이미 10년 전인데... 나는 여전히 이 대목에서 울컥했다. 짧은 시 구절에서 만금(萬金)에 값하는 위로를 받는다. 나 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대목에 잠시 기대서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다시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기만 한 이 삶을 견뎌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비록 굳센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땅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휴식은 주어져야 공평한 일이라고 믿는다.

 

   선우사(膳友辭)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

   착하디착해서 세괃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나도 좋을 것 같다


   반찬 친구(에 대한) 이야기,라는 제목의 시. 화자는 마음 맞는 친구, 나와 닮은 친구만 같이 있으면 세상 밖으로 나가 살아도, 아니면 세상의 눈 밖에나더라도 나더라도 좋다고 한다. 이런 친구와 함께 있으면 '가난해도 서럽지 않'고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고 한다. 매일 먹는 밥이나 반찬 같이 늘 내 같이 있으면서 나를 닮은 친구,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나는 그런 친구가 있나? ...... 화자가 부럽다. 비록 반찬 친구일지라도!  

 


   북신

   -서행시초 2


   거리에는 모밀내가 났다

   부처를 위한다는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 같은 모밀내가 났다


   어쩐지 향산(香山) 부처님이 가까웁다는 거린데

   국수집에는 농짝 같은 도야지를 잡어 걸고 국수를 치는 도야지 고기는 돗바늘 같은 털이 드믄드믄 백였다

   나는 이 털도 안 뽑은 도야지 고기를 물구러미 바라보며

   또 털도 안 뽑은 고기를 시꺼먼 맨모밀국수에 얹어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가슴에 뜨끈한 것을 느끼며

   소수림왕(小獸林王)을 생각한다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을 생각한다

   나라는 망했지만, 그 나라의 백성들은 여전히 오늘도 그 땅에서 살아간다. 이는 일제에 강제병합된 '조선'이라는 나라뿐만 아니라, 오랜 옛날에 망한 나라 고구려의 유민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비록 또 다시(?) 나라 잃은 백성이 되었지만, 그 옛날 만주 벌판을 내달리며 씩씩한 기상을 뿜던 조상들의 후손이 여전히 이 땅에 살고 있음을 이 시는 보여준다. 이들은 털도 안 뽑은 고기를 한 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니 화자는 이 백성들을 보며 '가슴에 뜨끈한 것을 느끼'는 것이다. 나라의 이름과 상관 없이 우리 민족-조상-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며 사는 사람들에게서 큰 감동을 받았으리라. 그러면서 그 지역(북신)에 있었던 고구려의 전성기 시절의 왕들을 생각한다. 

 

   적막강산 


   오이밭에 벌배채 통이 지는 때는

   산에 오면 산 소리

   벌로 오면 벌 소리 

   산에 오면

   큰솔밭에 뻐꾸기 소리

   잔솔밭에 덜거기 소리

   벌로 오면

   논두렁에 물닭의 소리

   갈밭에 갈새 소리

   산으로 오면 산이 들썩 산 소리 속에 나 홀로

   벌로 오면 벌이 들썩 벌 소리 속에 나 홀로

   정주 동림 구십여 리 긴긴 하룻길에

   산에 오면 산 소리 벌에 오면 벌 소리

   적막강산에 나는 있노라

   화자는 산길을 혼자 걷고 있다. 오늘은 정주 동림으로 가고 있다. 이 길은 오가는 사람이 없는 산길이다. 그러니 '적막강산'이라고 했다. 화자가 이런 적막한 산길을 걷고 있는데 그런데 의외로 산 속에서 온갖 새소리들이 들려온다. 산길을 조금 벗어나 들판으로 나와도 다시 새소리가 들려온다. 적막하(다고 생각했)던 산속길이 이런 새소리 때문에 들썩거린다. 그러나 화자 자신은 주변의 이런 들썩거림 때문에 오히려 '나 홀로' 있음을 더욱 강하게 인식하게 된다. 주변 상황과 반대로 화자의 외로움이 심화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시는 '적막강산에 나는 있노라'라는 말로 끝을 맺는데, 나는 저 구절이 어쩐지 '내 마음이 무척 적막하노라'로 읽힌다.

  

  멧새소리


   처마 끝에 명태(明太)를 말린다

   명태(明太)는 꽁꽁 얼었다.

   명태(明太)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明太)다

   문(門)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가 저물고 날은 차가운 겨울 저녁에 어느 집 처마 끝에 매달아 둔 명태가 꽁꽁 얼었다. 이 명태를 본 화자는 이 명태가 자신과 무척 닮았음을 느낀다. '길다랗고 파리한' 모습과 '길다란 고드름'이 달린 처지가 같기 때문이다. 아마도 화자 자신도 추운 겨울 같은 세상을 고드름을 잔뜩 매달고 꽁꽁 언 채로 살아가고-아니면 명태처럼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명태를 보면서 더욱 '서러운'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제목은 멧새 소리일까?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내 책상의 유리판 밑에 고이 모셔져 있는 이 시. 언젠가 알라딘의 페이퍼에도 옮겨 놓은 시다. 살다가 기운이 없을 때면 늘 펼치게 되는 시가 또 바로 이 시다. '굳고 정한 갈매나무'로 살고 싶다는 다짐을, 그렇기에 바위 옆에 외로이 눈을 맞고 서 있을 수 있겠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도록 해 준다. 다른 길은 없다. 굳고 정하게 살려는 모든 것은 외로이 눈을 맞으며 서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나는 다시 이 어설픈 리뷰를 쓰게 된 계기가 된 그 구절로 돌아가 곱씹어 본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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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1-12-04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꽂이 한켠에 꽂혀있을 백석전집을 다시금 펼쳐보고 싶어지네요.

느티나무 2011-12-05 11:14   좋아요 0 | URL
마음이 쿵 내려앉는 날에 읽기 좋은 시집이에요, 제 경우엔요. 하긴 어느 시집이나 다 마찬가지겠지만서도... 아무튼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