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님 안녕하십니까? 어느덧 5월 중순입니다. 지난 4월에 편지로 인사를 드리고 꼬박 한 달이 지났습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 반 학생들과 저는 지난 한 달을 무척 바쁘게 보냈습니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서 수능이 170여일 남았습니다.

 

   우선 지난 4월 30일부터 5월 3일까지 3학년 들어와서 첫 시험인 중간고사가 있었습니다. 개별 학생들마다 노력한 정도에 따라 결과도 다 다르겠지만, 담임으로서는 눈앞의 성적과 함께 이런 시험을 통해 노력과 성과가 비례한다는 믿음을 확실하게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최근에 중간고사 성적표를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부모님께 꼭 보여드리도록 했습니다. 자기가 만든 결과에 숨지 말고 책임을 져야한다는 당부와 함께 말이지요.

 

   중간고사 이후에는 체육대회가 있었습니다. 여느 학교처럼 거창한 행사는 아니더라도 대회가 열린 하루만은 우리 반 학생들 모두가 무척 즐겁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 반은 운동도 무척 잘 해서 거의 모든 종목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그래서 1,2,3학년 전체 31학급에서 종합 2등을 차지했습니다. 대회도 대회지만 경기에 참가하는 자세도 바르고, 뒷정리도 깔끔하게 하고, 열심히 응원하는 모습도 좋고, 서로를 다독여가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다시 한 번 부모님들께서 이 녀석들을 참 잘 가르치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제는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학창시절의 마지막 소풍이라 졸업사진에 필요한 단체 사진 촬영을 하고 반별로 흩어져서 간단한 놀이를 하고 일찍 마쳤습니다. 학생들은 일찍 마치고 저희들끼리 몰려다는 것을 좋아하지요. 그게 좀 씁쓸하기도 하고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친구들 여럿이서 학교 밖을 활보할 수 있는 날이 이런 날 밖에 없으니 말이지요. 아무튼 지난 소풍을 끝으로 학교 행사는 대부분 끝났고, 이제는 다시 공부에 집중해야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이번 수요일인 5월 23일은 사설모의고사를 칩니다.(원래 교육청 주관으로 모의고사가 일 년에 여섯 번 있습니다. 거기에다 학교시험이 있으니 거의 매달 시험을 치는데, 5월에만 다른 시험이 없어서 거의 대부분의 학교들(3학년)이 사설모의고사를 봅니다.) 이 시험은 입시학원에서 주관하는 시험이라 응시비용이 만원입니다. 수익자부담 활동으로 개별학생들에게 응시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합니다. 앞으로 이런 사설 모의고사는 수능 직전인 10월 말에 한 번 더 칠 계획입니다. 아울러 6월 7일에는 평가원에서 주관하는 모의수능이 치러집니다. 이 시험은 수능 출제기관에서 주관하며 실제 수능과 비슷한 난이도와 내용으로 실시합니다. 내신 성적과는 상관없지만, 이 시험의 결과는 무척 중요합니다. 이 시험을 통해 자신의 실제 수능의 결과를 예상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5월 24일은 학부모 공개수업의 날입니다. 그날 3교시부터 6교시 중에 학교에 오셔서 해당 과목 선생님들께서 수업을 하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학부모 수업 참관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저에게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근 두 달 사이에 저희 반에 아픈 학생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운동하다가 다치기도 하고,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에 감기나 두통, 복통이 생기기도 하고, 심지어 이런저런 이유로 피로를 호소하는 녀석들도 꽤 많았습니다. 그런 학생들은 대부분 보충수업 전에 조퇴를 허락했습니다. 대신, 교실에 남아서 묵묵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담임이 해 줄 수 있는 ‘보상’을 생각하다가, 한 달 동안 자율학습을 ‘개근’하면 다음 달 토요일 중 하루를 쉴 수 있도록 했습니다. 토요일 네다섯 번 중에서 하루를 쉬고 와서 평소에 더 열심히 공부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학생이 부모님께, 이번 주 토요일은 쉰다, 고 말씀드리면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서 공부했구나, 생각하시고 수고했다고 격려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지난 달에 저희 반에서 학급일기를 쓰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었지요? 우리 아들이 일기장엔 어떤 글을 쓸까 궁금하시지요? 그 일기장 살짝 들여다보시겠습니까? 제가 부모님들께만 살짝 보여드리겠습니다. 때로는 철없이 행동하고 가족들에게는 무뚝뚝한 아들이지만 그래도 속은 어느새 시근이 멀쩡한 어른입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하는 얘기들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2012년 5월 8일, 화요일

 

   오늘은 어버이 날이다. 그래서 아침에 등교하기 전에 부모님 머리맡에 카네이션을 두고 왔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다. 평소에 효도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런지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평소에는 잘 해주지 않다가 이럴 때만 챙기니 나 자신이 가식적인 사람으로 느껴진다. 요즘 따라 일어나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고 있다. 나는 부모님께 너무나도 부족한 아들인 거 같다. 평소에 그렇다고 크게 느끼지도 못하니 더 미안해진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남는 것은 후회뿐인 거 같다. 좀 더 열심히 살았더라면 지금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직은 내가 열심히 산 적이 없어서 모른다.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보다 더 열심히 살아봐야겠다.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 가지지 않고 살 수 있도록, 그리고 가능하다면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2012년 5월 10일, 목요일

 

   저번 일기를 쓴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벌써 내 차례가 왔다.

 

   시간이 정말 빠르구나 싶다. 3학년이 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아니, 고등학교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무려 2년이나 지났다. 그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정말 많은 일들이 2년 동안 일어났다. 그 때가 그립기도 하고 왜 그랬을까 하고 후회가 될 때도 있다. 만약 내가 그 때 안 그랬다면 하고 생각한다. 그 때 그걸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러고 있지 않겠지, 라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든다. 그 만큼 그 때 내가 잘못했던 것이 많았다는 뜻이 아닐까?

 

   우리들은 늘 매순간 순간마다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지금 일어나는 일은 과거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이고 다가올 미래는 현재의 우리의 선택에 의해 나타나는 결과이다. 모든 사람들이 늘 좋은 선택만을 할 수는 없다. 누구는 바르지 못한 선택을 하고 후회한다. 후회하지 않는 선택은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 다 그만큼의 기회비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조금이라도 더 우리에게 이롭고 기회비용이 적은 선택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덜 후회하니까……

 

   나도 이 점을 조금 더 명심해야겠다.

 

   제가 이런 속이 꽉 찬 녀석들을 데리고 학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든든합니다. 이런 글을 써 놓고도 가끔 엉뚱한 짓을 해서 제 속을 긁는 녀석들도 있지만, 그런 것도 다 생활의 일부라고 믿으며 지금은 자기 공부에 좀 더 집중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통신문을 쓰는 사이에 날짜가 며칠 지났습니다. 그래서 원래 드리려던 날짜보다 며칠 늦어졌습니다. 우리 반 학부모님 모두 평안하시고, 날마다 좋은 날 보내시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2012년 5월 17∼21일

 

OO고등학교 3학년 O반 담임 OOO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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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5-21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3학년 담임... 고생이 많으시우. ^^
요즘 내 옆자리에 순영 샘이 앉아있다는... 샘 알던데... ㅎㅎ
난 담임없으니깐, 음... 표정관리가 어려운데... ㅎㅎㅎ

암튼, 건강 조심해서 진복이랑 놀기도 많이 하시고... 잘 사시길...

느티나무 2012-05-22 00:43   좋아요 0 | URL
아, 순영샘 옆자리시군요... 제가 학교에서 만난 분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이십니다. 근데 이런 글을 자주 써 줄 만큼 올해 담임을 맡은 녀석들이 좋네요.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빕니다. 늘 고맙습니다. (순영샘께는 작년에 활동한 동아리 자료집 한 권 드렸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