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얼간이 - 인도판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 마드하반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네 재능을 좇아가면 성공이 따라온다>

 

   방금 세 얼간이라는 발리우드 영화를 봤다. 작년에 이 영화 보고 좋았다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꽤 있었으나, 정작 나는 영화에 그다지 취미가 없는지라 건성으로 '기회가 되면 봐야지'하는 생각만 했었다. 그러다가 책읽기가 가끔씩 지겨워지는 요즘, 저녁에 컴퓨터로 내려 받아서 볼 만한 영화가 없나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또 누가 '세 얼간이'를 말했다.


   '강추'를 받고도 당장 영화를 보지 못했던 이유는 개인적으로 며칠 동안 이런저런 일이 있기도 했었지만, 인도 영화에 대한 나의 선입견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내 또래의 사람들은 많이 알고 있을 텐데 1990년대 중반이었나 우리나라 극장에 거의 처음으로 인도영화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 제목은 '춤추는 무뚜'. 줄거리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상영시간 내내 끊임없이 (인도스러운(?)) 흥겨운 춤과 노래, 과장된 대사와 몸짓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이 영화가 재미있다는 사람도 많았으나, 나로서는 낯설다는 느낌 이외에는 헛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내용 전개 때문에 실망만 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 인도 영화라고 하면 이 '춤추는 무뚜' 이미지가 떠올라 인도 영화는 뭔가 줄거리는 엉성하고, 내용 전개가 과장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그래도 아무튼 ‘강추’하는 사람 덕분에 세 얼간이를 보았다.


   우려와는 달리 세 얼간이는 무척 재미있었다. 물론, 세 얼간이에도 인도 영화 특유의 흥겨운 춤과 노래가 이어지고 이야기는 과장된 전개가 계속되니, 이에 따라 낭만적인 해피엔딩의 결론도 당연한 듯 했지만, 영화 '세 얼간이'의 주요 배경이 되는 인도 대학(의 현실은 우리나라의 문제와 비슷한 점도 참 많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공대(ICE)의 학장에게 대학을 '공장'처럼 운영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주인공 '란차다스(이하 란초)'의 항의는 마치 우리나라의 (대학) 교육의 현실을 두고도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아서 아무 생각 없이 흥겨운 장면에 몰입하다가도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는, 나에게는 소위 말하는 개념 찬-게다가 재밌기까지 한- 영화가 되었다.


   영화는 대학 시절 늘 어울려 다녔으나, 졸업 후에 어디론가 사라져서 지금껏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란초'라는 친구가 만나러 가면서 그를 회상하는 줄거리이다. 란초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는 연락을 받은 '파르한'과 '라주'는 '란초'가 있는 곳을 찾아간다. 이후 이들은 란초와 함께 보낸 대학 시절을 하나하나 떠올리게 된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란초와 파르한, 라주는 한 방을 쓰게 되면서 금세 친해진다. 이들이 세 얼간이들이다.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인도의 명문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들은 대학의 불합리한 기존 체제에 순응하는데 별다른 이의가 없지만, 오로지 공부하는 것이 좋아서 대학에 들어온 '란초'는 이 불합리한 체제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다. 또한 지적 성취를 위해 공부를 하는 태도와 사회적 성공보다는 자기 재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란초'의 생각은,  '란초'와 어울리는 두 친구에게 조금씩 영향을 준다. 결국 아버지의 반대로 사진작가의 꿈을 접었던 파르한은 '란초'의 도움으로 사진작가가 되고, 가난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라주'는 '란초'의 영향과 도움으로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게 되고, 또 정직하고 당당한 태도로 면접시험을 보고 나서 원하는 회사에 취업을 했다.


   이들은 여러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란초가 있는 곳을 찾아갔는데, 란초는 어느 시골에서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대학 시절의 란초를 떠올린 이들은 재능을 좇아 큰 성공을 거둘 것 같았던 란초가 초라한 시골의 초등학교의 교사로 살아가는 것이 의아했지만, 사실 란초는 본명이 푼스크 왕두라는 이름의 유명한 공학자- 특허가 400개나 되고, 일본 정부가 그의 실력을 두려워하는-라는 사실이 이내 밝혀진다. 결국 란초는 대학 시절의 자기 말대로 자기의 재능을 좇아 살았고, 사회적인 성공이 그를 따라온 것이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것인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은 우리나라 청춘들의 고민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일치한다면야 더 없이 행복하겠지만, 그런 복 받은 사람은 그리 흔치는 않을 것 같고, 그렇다면 대부분의 청춘은 자신의 꿈과 성공 사이에서 갈등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청춘에 이런 고민이야 당연한 일이 아닐까도 싶고! 그런데 사실, 꿈과 성공을 두고 갈등하는 정도라면 적어도 그리 불행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최소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는 경우니까. 그런 고민과 불안과 방황의 시간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게 해 주니까. 그게 청춘 시절의 과업이기도 하니까. 그런 통과의례를 거쳐야 더 성장하는 것이니까.


   진짜 안타깝고 불행한 경우는 아예 하고 싶은 일이 없거나,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도통 모르는 때이다. 내가 만나는 학생들이 아직 고등학생-대학생이라고 크게 달라져 있을 것 같지는 않다-이라 더 그런 것이겠지만, 많은 학생들이 내 꿈은 무엇이다, 라고 말하거나, 나는 무엇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는 대부분이 평범한 인간인지라 꼭 어떤 부분에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또 모두가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나는 건 아닌 듯하다. 그냥 다 고만고만하지 않나?) 나의 꿈이냐 사회적 성공이냐를 선택하고 싶어도 우선 내 꿈이 무엇인지를 자신도 모르는 상황이니 이보다 답답한 노릇이 어디 있을까? 그러면 우리는 정작 자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미친 듯이 공부에만 매달려 있을까? 왜 학교에서는 오직 공부만, 성적만을 강조할까?


   학생들도 이미 성적이 잘 나오면 대학도 학과도 골라서 갈 수 있다는 교사들과 부모들과 사회의 감언이설(감언이설)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 지 오래다. 그러니까 이제는 모두 무엇을 잘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냥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 뒤를, 옆을, 보려는 순간 경쟁에서 탈락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한번 경쟁에서 탈락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든다.


   내가 볼 때는 언제부턴가 이런 불안감과 두려움의 유령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서서히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이젠 공포가 내면화되어 있다. 이런 불안감과 두려움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따라서 이런 불안감과 두려움의 근거는 무엇인지, 그 근원은 무엇인지, 무엇보다도, 그 불안함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찾아보려는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 기능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러니 공포에 감염된 우리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무작정 남들이 달리는 만큼 달려야만 마음이라도 편해지는 것이다. 


   그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는? 영화 세 얼간이에서 가장 주체적인 삶을 살고 주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란초는 친구들에게 두려운 상황에 맞딱뜨리면 "알 이즈 웰"을 외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마음은 원래 겁이 많은 존재이기 때문에, (마음을) 속일 필요가 있다고 한다. ‘알 이즈 웰’이라고 외치는 게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문제를 해결해 나갈 용기를 주기 때문이란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 미리 겁먹지 말고,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하면 가볍게 마음을 속이고 외쳐> ‘알 이즈 웰’이라고 말이다.


   세상이 영화처럼 쉽게 풀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래도 두려움이나 불안함도 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한 번쯤은 그 마음을 속여 볼 필요도 있겠다. 이 영화를 본, 모든 청춘들에게 ‘알 이즈 웰’을 외쳐볼 것을 권한다. 혹시, 불안한 우리 마음이 속을 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 때 우리는 현실에 맞서는 용기를 얻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청춘들의 건투를 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매 2012-01-18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보고 난 담에 한동안 '알 이즈 웰'을 혼자 열심히 외곤 했었어요^^; 특히 안 좋은 일이 생길때마다 말예요~ 이 영화는 자신의 재능을 좇아가면 성공이 따라온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슬픈현실은 그런 재능이 모두에게 있는 건 아니라는 것!ㅠㅠ그리고 이 글에도 쓰여있듯이,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어떤 일이 하고싶은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구요. 란초와 같은 사람은 사실 드문데..^^ 저는 란초와 같은 사람이 되려고 해요..(진지!!)ㅋㅋㅋ

글 쓸 의욕을 잃으셨다더니 좋은 리뷰 완성하셨네요..축하축하^^ 추천 꾸욱 누르고 갑니다.ㅋㅋ

느티나무 2012-01-18 21:30   좋아요 0 | URL
맞아요. 학교에 있어보면 꿈이냐 성공이냐를 두고 고민하는 친구도 적죠. 꿈이 없는, 꿈이 뭔지 모르는 친구들이 훨씬 많더라구요. "알 이즈 웰"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해결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도 있겠지요. 명심했다가 다음에 꼭 써먹을 수 있기를...ㅋ

2012-01-18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8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01-18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님, 영화 리뷰가 참 좋습니다.
놓친 영화인데 찾아서 보고 싶네요.
'알 이즈 웰'은 무슨 뜻인가요?

느티나무 2012-01-19 00:39   좋아요 0 | URL
주인공의 친구가 무슨 주문처럼 외우는 대사인데, All is well 입니다. 다른 친구가 "올 이즈 웰?" 하니까, 주인공이 아니라고, 꼭, "알 이즈 웰" 이라고 해야 한다네요.ㅋ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한 번쯤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유쾌 상쾌 통쾌한데다가 자녀 교육에 대한 철학(?)에 관한 영화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