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1 - 아나톨리아 횡단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저는 2001년부터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의 지은이처럼 오로지 걷기만 하는 도보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2001년에는 부산에서 해남의 땅끝마을까지, 2002년에는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2003년에는 제주도 해안도로 일주, 2005년에는 목포에서 태안까지 다녔지요. 걸어서 여행한 거리를 정확하게 재보지는 않았지만, 어림잡아 1,500km는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 때마다 여행일기를 꼬박꼬박 쓰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메일로 보내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이 나서 컴퓨터를 뒤적여 보니, 다 있을 줄 알았던 2005년 여행기는 아예 남아 있지도 않고, 2003년 일기도 한 편 밖에 안 남아 있습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알라딘에 다 옮겨 두는 건데, 어디 가서 잃어버린 내 글을 찾을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여기 부끄럽지만 제가 걸어 다니면서 썼던 여행기를 맛보기로 옮깁니다. 혹, 이 글을 읽고 도보 여행에 약간의 흥미가 생기는 분께 이 책을 권합니다. 혹시 제 글을 읽고 오히려 흥미가 떨어진 분들도 이 책은 제 글보다 100배나 생각이 깊고 잘 쓴 글이기에 읽어 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사실, 저도 알라딘 대표님의 마이리스트 보고 고른 책이거든요. 좋았어요.) 

   이 책은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따라 걸은 한 남자의 여행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4년 동안 이어진 이 여행을 세 권의 책으로 정리했고, 그 중 제 1권은 아나톨리아 횡단을 하면서 겪은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는 것이 곧 떠나는 것이라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하시는 분이나, "걷는다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지는 일이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꿈꾸는 일이기도 하다" 라는 말이 읽으시는 분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켜 도보 여행은 어떨까?하고 한 번쯤 떠올리는 분들이 읽으시면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2001년 8월 6일 : 부산에서 해남까지 남도횡단 5일째


  오늘은 평소대로 일어나 바로 문산가는 버스를 탔습니다.[이 때는 문산까지 걷고 숙소를 구하기 위해 진주까지 버스를 타고 나가서 진주에서 잤거든요. 그래서 아침에 다시 문산으로 되돌아가는 버스를 탄 것이지요.] 문산 터미널 근처의 슈퍼에서 빵과 우유를 하나씩 사 먹고, 진주 시내를 향하여 걸었습니다. 문산읍에서 진주로 넘어오는 국도는 위험해도 무척 예쁜 길이었습니다. 시내 변두리에는 금방 도착했으나 중심지까지 가는 길도 무척 멀어서 둘이서 많이 지쳤습니다. 은행에 앉아서 한 번 쉬고는 계속 걸었구요. 가다가 사람들이 많이 쳐다보기에 아예 깃발을 마련하자고 의기투합해서 진짜로 현수막 공장에 들어가서 "부산에서 해남까지" 플랜카드를 만들어 달라고도 했답니다. 아쉽게도 그 집은 실제로 제작은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발로 끝났지만… 진주 남강을 끼고 돌아서 망경동으로 빠져 나와 경전선(慶全線)을 나란히 하며 하동 방면으로 걸었습니다. 중간에 식당에 들러서 점심을 먹었는데, 한 사람당 500원씩 깎아 주셨습니다.

  12시 반부터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저는 계속 잤습니다. (동행자는 뭘 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림도 그리고, 책도 보고, 엽서도 쓰고 하는 것 같았는데….) 3시쯤에 일어나 다시 강행군을 했습니다. 3시 좀 넘어서 걷자마자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리며, 비가 엄청나게 올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겨서 마음 졸아서 계속 걸었습니다.

  근데 아무리아무리 걸어도 마을이 안 나오는 겁니다. 한 3시간을 걸어도 마을다운 마을이 안 나오고, 찻길은 넓어져서 차들은 쌩쌩 달리는데, 마을이 있어도 구멍가게 하나 없는 마을도 많더라구요. 3시간을 넘게 걸어서 도착한 마을이 완사(浣紗). 그곳에서 자고 가기로 마음먹고, 보건소, 복지회관, 초등학교…. 부탁할 만한 곳을 다 돌아다녀도 허탕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더 가기로 마음을 먹고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근데 마을을 둘러보니 좀 이상하더군요. 여느 시골 마을과는 다르게 건물들이 모두 양옥집이고, 지어진 시기도 비슷하게 보이고, 문패도 모두 똑같습니다. 그래서 식당에 들어가서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이 마을이 진양호가 만들어지면서 생긴 수몰주민들의 집단 이주지역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을 듣고는 이 마을은 "꿈꾸는 마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저녁도 공짜로 먹었습니다. 아주머니께서 그냥 주시더군요. 우리는 작은 돈이라도 드리려고 했는데, 막무가내로 받지 않으셔서 그냥 주소만 적어왔습니다. 부산가면 엽서 한 장 써야지요.

  아,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렀다가 뜻하지 않게 그 동네 아이들의 환영을 무지 받았습니다. 어찌나 OOO샘을 좋아하던지요. 덕분에 OOO샘의 발차기 시범, 마술쇼, 달리기 등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 먹고, 교회 담을 타고 널린 포도를 따먹으며 걸었습니다. 한 '1시간 정도 가겠지'하며 나섰는데, 실제로 한 시간쯤 지나니까 마음이 좀 급해집디다. 날은 완전히 어둡고, 잠자리는 아직 마련하지 못했고. 겨우, 사천시 곤양면이라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파출소부터 들어가서 단도직입적으로 "하룻밤 재워 주세요."라는 말씀드리니 돌아오는 건 어이없어 하는 웃음. 숙박은 곤란하다는 말에 난감해하는 우리들에게 가장 가까운 숙소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하시자, 냉큼 나와서 차를 얻어 타고 가까운 읍으로 나왔습니다. (여기는 아마도 곤양읍쯤) 별루인 여관이었지만 차들이 많아서 비싸지 않을까 순간, 졸았는데, 아주머니가 25000원 부르시기에 20000원에 하자고 말씀드리니 선선히 승낙하시네요. (에이, 15000원이라고 하는 건데...^*.*^)

  씻고, 빨래하고, 뭘 할까 하다가 3일 전부터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동네 한 바퀴 둘러보자고 나왔다가 피시방으로 들어왔습니다. 한 30분 정도 되었는데, 전 글을 다 썼으니 먼저 가서 자야지요.


  내일은 일단 하동까지 갈 예정입니다. 하동까지는 한 30킬로미터 정도거든요. 부지런히 걸으면 도착하겠죠. 그리고 여기 '도솔사'가 근처에 있어서 잠깐 들를 겁니다. 아침에 잠깐. 다음날은 벌교까지 가구요. 다음날은 보성으로 갈 생각입니다.


  오늘 길가에 가장 흔하게 널린 게 잡초였습니다. ‘잡초는 왜 이름이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하느님이 보시기에도 길가에 숱하게 널려 우리에게 이름을 얻지 못한 잡초와 우리가 흔히 알고 있고 예뻐하는 꽃들이 차이가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하느님께서는 온전한 한 생명으로서 잡초와 꽃에게 제 몫의 삶을 주셨겠지요? 잡초의 생명도 예쁜 꽃의 삶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 아시고 계신 생각을 저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의 삶도(특히, 우리학교 학생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잡초처럼 쓸모 없을 지라도 다 그 나름대로 소중한 가치가 있고, 충분히 제 몫을 해나가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누구나 자기 몫의 삶이 있는 것이고, 자기 몫은 다른 사람과는 경중(輕重)을 가리는 게 아니라 자기 몫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아이들에게 일깨워주는 것과 스스로가 자기 몫의 삶의 살도록 충분히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랑 그렇게 많이 싸웠던(?) OO이가 새벽에 술 먹다가 문자로 "샘,뭐 하는데요?"라고 묻고, 제가 "걸어서 여행 다니는데, 힘들어 죽겠다"고 하자, "샘, 화이팅"이라는 메세지를 보내오는 걸 보면서 나름대로는 힘들었던 지난 시간이 그래도 의미 없이 흘러가 버린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술 마시다가도 누군가가 생각나서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면 적어도 사람에 대해서 실망한 사람은 아니니 크게 나쁜 사람으로 크지는 않겠지요. 제 자랑이 과했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걷고 힘내서 가겠습니다. 이번 여행은 제가 얼마나 열심히 가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될 것 같습니다. 저만 힘들어하고 OOO샘은 무척 잘 걸어가네요. 저는 아무데서나 퍼질러 자고, 일어나지도 않고, 게으름도 많이 부리고….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까 계속 꾀만 부리려고 하네요. 내일부터는 아프더라도 좀 열심히 가 보렵니다.

그럼 늦은 밤! 편안히 주무십시오.


경남 사천시 곤양에서. 느티나무 드립니다.



2002년 8월 11일 :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길 위에서 보내는 편지9


 잡초의 힘


  안동시내 한 복판의 여관에서 잠이 깨자 창밖부터 봅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은-아니, 아직은- 비가 오지 않습니다. 서둘러서 짐을 꾸려 아직 잠이 덜 깬 안동 시내를 걸어 나옵니다. 여전히 아침은 빵과 우유입니다.

  오늘 걷기로 한 길은 안동에서 북쪽으로 난 35번 국도를 따라 도산서원까지입니다. 오늘은 아마도 거대한 안동호가 우리와 함께 걸을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안동호는 흙탕물을 뒤집어 쓴 채로 숨을 고르고 있겠지요. 징그러울 수도 있고, 안쓰러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 게걸스러움에 돌을 던질까요? 그 넉넉함에 푸근히 잠길까요?

안동 시내를 벗어나 서원으로 가는 길 입구는 참 예쁘게 나 있습니다. 안동 북쪽은 전형적인 시골길입니다. 예쁜 길 주변으로는 엄청난 비에도 꿋꿋하게 자라고 있는 벼와 포도, 호박, 고추, 수박들이 보입니다. 다들 이제는 비가 그만 와도 괜찮다는 표정들입니다.

  단조롭고, 긴장감이 별로 들지 않는 길을 걸으니 무엇이든 자세하게 보려는 버릇이 생기는 가 봅니다. 주의할 게 적은 길에서는 마음도 풀어져서 한눈도 팔게 되고, 콧노래도 부르고, 도로 주변을 왔다 갔다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문득 오늘은 아스팔트 가장자리에 시선이 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점점 눈은 아스팔트 주변으로 고정되고, 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이야~! 정말 대단하다!  그곳에는 잡초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습니다. 조금의 틈도 용납하지 않는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와서 말입니다. 땅을 숨 막히게 덮고 있는 아스팔트 위로 올라와서는 참았던 숨을 내쉬듯 싱싱하게 잡초들이 자랍니다.

  아스팔트를 뚫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잡초뿐인가 봅니다.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온 다른 것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아스팔트를 뚫은 잡초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요? 정말 그 힘이 대단함과 신기함을 넘어 두려운 생각까지도 들게 합니다. 사실, 잡초는 제가 보는 풍경의 대부분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보는 식물의 대부분이 이름을 얻지 못한 잡초들입니다. 우리는 포도, 사과, 고추, 호박, 수박을 보고는 감탄하지만, 흔하디흔한 잡초에게 눈길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잡초를 보며 '우리 모두'의 삶이 저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냥 이름을 얻지 못한 채 열심히 제 몫을 하며 사는 것! 누군가가 알아주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자존감으로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서는 것! 잘난 사람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세상의 허한 구석을 채워야 할 운명 같은 것!(도무지 잡초를 빼고 생각하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제가 좀 억지를 많이 부리나요? 히!)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 중간 중간에 일하시는 분들께 이것저것 여쭙습니다. 일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한 마음도 들지만 이 분들의 말씀마다 수줍은 듯이 ‘했니껴’로 끝나는 이 지역 말투가 너무도 순박하고, 정겹게 느껴집니다. 그 말씀을 듣고 있으며 가야할 길을 잊은 것처럼 마냥 퍼질러 앉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늘 점심은 아주 특별합니다. 옛날에 살던 마을이 안동호가 만들어지면서 수몰되어 집단으로 이사 온 마을에 들릅니다. 우연히 들른 식당이  나그네식당 이랍니다. 이 식당에 들고 보니 하나하나가 다 신기합니다. 허름한 간판하며, 가격표하며, 해 주시는 음식하며…. 이렇게도 장사를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지역에서는 메밀묵을 '메물묵'이라고 하신 답니다. 그리고 노란색 조가 많이 섞인 밥을 내 주시면서 묵밥을 만들어 주십니다. 덤으로 할머니의 구수한 말씀이 곁들여져 아주 오래 기억에 남을 점심을 먹습니다.

  도산서원은 그냥 지나칩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요. 한참을 더 북쪽으로 가니 토계면에 숙소를 정하기로 하고, 면사무소에 들러 쉬면서 잠 잘 곳을 여쭈니 이 마을엔 없다고 합니다. 좀 전에 일하시는 아주머니께 여쭈었을 땐 분명히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말입니다. 다시 안동까지 돌아가서 자야할 것 같아서 난감합니다. 그래서 서둘러서 마을로 내려가다 보니, 바로 앞에 숙소가 보입니다. 황당해서 헛웃음만 나옵니다.

  바로 숙소에서 짐을 풀고, 다시 길을 걷습니다. 왜냐면 내일 걸어야 할 거리가 만만찮은 까닭에 오늘 조금이라도 더 걸어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6km를 더 걸어서 갔다가 옵니다.

  이곳은 떠나와서 처음으로 pc방이 없는 조용한 시골 마을입니다. 오는 길 내내 그 흔한 '여관' 하나 없는 그런 곳입니다. (요즘 국도를 가시다가 큰집을 짓고 있으면 십중팔구는 '러브호텔'이더군요.)

  저번 편지에 안동의 힘! 말씀을 드렸지요? 안동의 힘은 곳곳에 자리 잡은 고택이나 문화재가 아니라 아직은 저질 소비문화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선 논과 밭에서-아직은 러브호텔로 변하지 않은 논과 밭에서, 그리고 그 밭에서 정직하게 땀 흘리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인가 봅니다.

  바로 그것이 잡초의 힘이겠지요. 안동의 힘이기도 하구요.


  밤하늘에 별이 총총한 그 날이 왔으면 참 좋겠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늘 함께 해 주시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2002년 8월 11일 경북 안동시 토계면에서 느티나무 올림.



2003년 8월 14일 : 제주도 해안도로 일주


  어제 밤에는 무척 운 좋게, 깔끔하고 편한 숙소를 구했습니다. 어줍지 않은 글이나마 써 놓고 숙소를 잡았으니 무척 여유도 있었습니다. 느긋하게 내일 일정을 정하고 일출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잠도 일찍 잤습니다. 

  이른 새벽 저도 모르게 잠을 깨고 창밖을 내다보니 날이 잔뜩 흐립니다. 이것으로 성산봉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어제 잡은 일정은 어그러진 셈입니다. 그래서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들었답니다. 한참 후에 깨어보니 어느덧 아침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아침에 잠을 깨는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늦어지는 걸 보니 이젠 몸이 제법 피곤한 가 봅니다.

  여전히 빵과 우유로 늦은 아침을 먹습니다. 가방을 챙겨들고 느릿느릿 성산봉 아랫동네를 돌아 성산항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햇살이 따갑습니다. 오늘도 날이 푹푹 찌려나 봅니다. 성상항에서 우도로 가는 배를 타고 우도를 둘러보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우로로 들어가는 배에서 보니 일출봉의 모습이 마치 코뿔소가 바닷물을 마시려고 고개를 숙인 모습입니다. 먼저 소머리 오름에 올라서 제주도의 모습을 보니, 어느새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데, 한라산이 수많은 오름들을 품에서 벌려놓은 듯한 모습이 장관입니다. 소머리 오름에서 바라본 바다는 막힘이 없어 보는 이의 눈맛이 시원합니다. 오름의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사람들은 사진은 찍습니다.

  이후에 그 옛날 고래가 살았다는 동안경굴을 지나 고운 산호모래로 유명한 서빈백사를 둘러봤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우도의 모습은 때가 덜 묻은 순박한 마을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마 제주도가 원래 모습이 이랬지 싶은 생각이 들어, 뱃길로 15분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한 세월의 시간 차이를 느꼈습니다.

  성산읍으로 나오는 배에서는 그냥 드러누워 또 일정을 잡습니다. 배는 야속하게도 금방 닿고 저는 점심을 먹고 움직이려고 어슬렁거렸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이리저리 머뭇거리다가 번잡한 거리를 빠져나오고 말았습니다.

  다시 해는 구름 속에서 나왔고, 곧 이어 땀이 쏟아집니다. 그나마 오른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다 바람 덕에 쓰러지지 않고 계속 걸을 수 있는가 봅니다. 한참을 걷다보니 조개잡이 체험장에 들렀는데, 저는 물집 잡힌 발이 걱정이 되어 사람들이 조개 잡는 모습만 구경하다 빠져나왔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동작이 굼뜨는 것 같아 걱정이 슬그머니 들어 이제부터는 발걸음을 좀 빨리 놀립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빵빵! 하는 차 소리. 누가 길을 물어보나 싶어 의아해하고 있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선생님”하고 부릅니다. OOO선생님께서 여행하시다가 알아보시고 내리셨더라구요. 일행들 때문에 시원한 물 한 잔 얻어 마시고 금방 헤어졌지만, 이런 곳에서도 반가운 사람을 만난 기쁨으로 또 얼마 동안은 힘내서 갈 수 있을 듯 합니다.

  점심을 제대로 먹기 위해 찾으려니 또 제법 큰 마을이 안 나타나네요. 오후 4시쯤에야 겨우 구좌읍내에 닿았습니다. 일단 점심을 먹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학교가 개학을 했는지 하얀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로 좁은 읍내가 무척 활기찹니다. 학생들이 예뻐서 몇 마디 말도 붙여 보았는데, 답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경쾌한지…….

  점심을 먹고 내일 돌아갈 비행기표를 끊었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은 아무리 걸어도 더 큰 마을을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숙소를 구하려고 했답니다. 발에 물집이 더 심해지고 발목이 시큰거려서요. 하루만 푹 쉬면 좋겠는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 그럴 수도 없고 걸음은 더 걷기 힘들고…… 그러나 지금 숙소를 잡으면 방값이 조금 비싸거든요. 얼마 전에 만난 제주도의 OOO선생님의 추천대로 근처에 있는 ‘다랑쉬오름’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가방은 마을 끝 빵집에 맡겨두고 가볍게 몸만 움직이기로 했지요.

  저 멀리 비자림(榧子林)들 돌아서 다랑쉬오름에 오르려고 하는데 구름이 잔뜩 끼었던 날이 더욱 흐려져서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변했습니다. 다랑쉬오름의 입구를 못 찾아서 여러 번 헤매고 있었으나, 사람이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어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앞은 점점 더 안 보이고……. 겨우 찾은 입구는 철망으로 막혀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 되지만 철망의 개구멍을 찾아서 그냥 오르기로 하고 가파른 길을 꾸역꾸역 올라갔습니다. 암팡진 막사발을 엎어 놓은 듯 한 다랑쉬오름의 오르막길을 오르며 얼마나 쉬었는지 모릅니다.

 다랑쉬오름은 이번 제주도 도보여행 중에 가장 인상적인 곳이었습니다. 다랑쉬오름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의 가장 극적인 한 순간이 아닐까요? 특히, 제주 사람이라면 그 슬픔을 말로 풀지 못했을 뿐이었구요. 가슴에 켜켜이 쌓여있는 한의 상징일테지요. 궂은 날씨에 저 혼자여서 더욱 마음이 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좀 으스스했어요. 저는 사람들에게 다랑쉬오름에 올라야, 제주도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관광지만 따라다녀서는 제주도의 한 쪽만 보게 되는 것이지요.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곳을 떠나도 쉽게 잊히지 않을 풍경을 담았습니다. 이제는 이곳을 떠나려고 합니다. 도착해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 말씀드리지 않아도 늘 고마워하고 있는 거, 아시겠지요?


홀로 잠드는 제주도의 푸른 밤, 느티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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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3-04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걷는 거 참 좋아하는 편인데... 요즘은 영 게을러지네요. 느티나무님도 복이 덕에 좀 쉬시다 보면 배가 나오지 않을까요? ㅎㅎㅎ

드팀전 2007-03-04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서울 시내는 무척 많이 걸어다녔지만..^^ 아들 크면 한번 해볼까요.같이가요.^^

느티나무 2007-03-06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예전엔 진짜 빼빼했는데, 결혼하면 살 찐다는 말이 맞나 봅니다. 이젠 제 몸 가누기도 쉽지 않네요. 그래도 도보여행을 꿈꾸는 건... 왜 그럴까요?
드팀전님, 아드님 크면 같이 해 봅시다, 정말이요^^

느티나무 2007-03-06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나 저러나 책의 평가가 좀 박한 느낌이다. 4 1/2는 없을까? ㅋ
 
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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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 길을 돌아와서 다행이다.

 

   지금 나는 ‘서경식’이라는 사람이 쓴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두 번 읽고 책상에 앉았다. 책 표지의「쑤띤」이 처연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 한동안 쉬이 잊혀지지 않을 표정이다. 이틀 동안에 이 책을 한 번 읽고 나서 집의 책꽂이에 서경식의 다른 책은 없는지 찾게 된 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여러 가지 상황이 피상적으로나마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형들의 이야기도 그랬고, 벨라스케스의 그림 이야기도 읽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더욱 그림을 앞에 둔 글쓴이의 마음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요컨대, 글쓴이가 말하려는 내용이 분명하게 다가왔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 집의 책꽂이에서 찾은 책은 ‘청춘의 사신’과 '소년의 눈물’이다. 나는 글쓴이가 20세기 미술가들의 작품을 좇아간 ‘청춘의 사신’을 먼저 읽었고, 모국어로 말하고 쓰지 못하는 글쓴이의 안타까움이 인상적이었던 ‘소년의 눈물’을 그 뒤에 보았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러니까 나는 나온 순서로 따지면 제일 먼저였던 이 책을 맨 끝에 읽게 된 것이다. 다시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리니 ‘창비교양문고’ 시리즈로 나왔던 이 책을 언젠가 한 번 손에 집었다 놓았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떠오른 순간 이 책을 읽은 게 너무 늦은 것인은 아닌가 싶었다. 이 책을 보기도 전에 나는 이미 유럽여행도 다녀왔고(흔히 유럽여행 가기 전에 미술책 한 두권 쯤은 읽는 거 같던데), 그가 자주 중얼거리던 대로 앞으로 당분간은 이 책 속의 그림을 보러갈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최근에야 이 책을 읽은 나는 오히려 늦게 읽어서 더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하다.

   모든 책이 다 그렇겠지만, 그 책과 관련된 배경지식을 알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진다. 그럼 이 책을 이해하는 데는 어떤 배경지식이 도움이 될까? 제목이 서양미술 순례니 미술에 대한 지식과 호기심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서경식’이라는 사람의 삶, 특히나 ‘운명이 지워놓은 부당한 무게’라고 할 수 있는 그의 가족들의 삶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 책을 더 깊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둘째형이었던 서승이 지은 ‘옥중 19년’과 셋째 형이었던 서준식이 쓴 편지글 ‘서준식의 옥중서한’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서경식이 그림을 마주대하고 눌러 쓴 한 문장 한 문장이 깊은 성찰에서 나온 소리로, 호사가의 허투른 말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온전한 자신의 노력이었겠지만, 글쓴이가 영혼에서 진실한 표헌을 길어올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은 어쩌면 부당한 운명의 무게를 묵묵히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가족사도 한몫을 했던 게 아닐까 싶다. 밝음이 어둠을 만들어냈듯, 어둠과 상처가 밝음과 진실을 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책은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무서운 정념’을 가진 한 인간이었던 그가 그림을 통해 자기 삶의 상처와 가족이 겪고 있는 아픔, 더 나아가 피지배자의 후예로서 지난날의 식민지 지배국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한 인간의 영혼의 상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역설적이게도, 이 책을 만나기 위해 너무 오랫동안 멀리 돌아왔으나, 늦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늦었기 때문에 이 책에서 내가 받은 감동이 더욱 컸다고 믿는다.


2. 그림을 보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나다.


   서양미술 순례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이 책은 물론 서양미술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만, 그 글자보다 앞에 ‘나’라는 글자가 붙어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마디로 이 책은 미술에 대한 객관적 설명이 아니라, 그림이나 조각을 보면서 들었던 글쓴이(나)의 느낌이나 감정, 생각을 훨씬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조금 더 바꾸어 말한다면,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글쓴이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그의 생각을 더듬어간다는 것은 내 생각을 만난다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짜 맞추기’식이라는 혐의를 각오하고서라도, 그림 앞에선 글쓴이의 마음의 움직임을 몇 갈래의 가닥으로 나누어 본다면, 피지배자의 후예로서 과거의 식민지 지배국에서 소수로 살아가는 자신과 가족의 삶에 대한 정체성, 조국의 감옥 안에 있는 형들을 둔 아우로서 감당해야할 운명의 무게에 대한 성찰, 우리 민족의 감당해야 했던 고단한 삶의 흔적과 세계사에 대한 일반적 통찰, 등을 들 수 있겠다.


가. 자신과 가족의 삶에 대한 정체성

 ․ 나는 다만 운명이 누이의 어깨 위에 지워놓은 부당한 무게를 묵묵히 생각할 뿐이었다.

  (수태고지, 37쪽)

 ․ 허위에 병든 ‘미의식’이 식민지인인 나의 동포들에게 무엇을 의미했던가를 잊었을 리도 없다.(데셔앙스, 45쪽)

 ․ 유람하러 다니는 외국여행에서 당하는 얼마간의 고생 따위는 어머니가 겪은 회한과 슬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데셔앙스, 51쪽)

 ․ 만인이 다 아는 명화라 할망정 필요 여하에 따라서는 단속이나 말썽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암우한 감성이 그것에서는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니! 그 말은 곧 이 그림에 그려진 살육과 저항 모두가 그곳, 다시 말해서 나의 조국에 현실적으로 생생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위대한 예술은 동시에 위대한 선전물이다. 거의 2세기 전에 그려진 한 장의 그림이 그 작가하고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극동의 한 나라의 관헌들로 하여금 자국에서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는 부당하고도 잔혹한 일들을 연상케 하고, 그래서 불안한 기분을 일으키게 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그림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모래에 묻히는 개, 98쪽)

 ․ 피지배자의 후예가 절대적 소수자로서 지난날의 지배자들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 ‘생활’의 밑바닥이 불안을 품기에 충분하다. 하물며 고국은 두 쪽으로 찢어져 있는 채요, 형들 중의 두 사람은 이미 10년 이상 그 고국의 감옥에 있다. 양친은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화가 누이의 초상, 118쪽)

 ․ ……버둥거리면 버둥거릴수록 속수무책의 불행을 엮어내고 마는, 그러한 삶이 있는 법이다. (화가 누이의 초상, 126쪽)

 ․ 윤곽이 뚜렷한 얼굴은 위엄이 있었으나 몸차림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고, 피로로 충혈된 눈이 나날의 고뇌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그대로, 일찍이 살길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와 밑바닥 노동에 시달렸던 나의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모습이다.(젊은 부르델의 자화상, 152쪽)


  이처럼 여러 그림 앞에서 글쓴이는 자신과 가족의 처지를 떠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림 앞에서 만난 자신과 가족의 처지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이 책의 곳곳에 나온 대로 말한다면, 속수무책의 불행에 엮인 삶이고, 마치 운명이 짐 지운 부당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사는 삶인 것이다. 이들의 불행한 삶의 근원은, 살길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왔다가 눌러앉게 되어 절대적 소수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피지배자의 후예로서의 삶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소년의 눈물’이라는 책으로 묶어낸 자신의 글이 일본의 ‘에세이스트클럽상’을 받고 나서 ‘일제가 조선을 식민 지배한 결과 나는 일본 땅에서 태어났고, 그들의 민족 차별 정책 때문에 충분한 ’우리말‘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내 민족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일본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 같은 역사가 나의 ’빼어난 일본어 표현‘을 가능케 해주었고 끝내 이런 상까지 안겨준 것이라 할진대, 진심으로 기뻐하며 그 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라고 자조하고 있었다. 이를 볼 때, 그는 외부적 조건과는 상관없이 뼛속까지 자신이 재일(在日)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차별을 감수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어 했던 그의 조국은 두 형을 감옥에 가두고 고문을 자행하고 있으며, 늘상 살육과 저항이 빈번해서, 만인이 다 아는 명화를 보고도 자국의 상황으로 오해해서 불안을 느끼는 그런 곳이다. 그런 곳을 그는 ‘조국’이라고 부른다.


나. <테오>와 <서경식>의 경우

  ․  노예는 나의 형인 것이다.(거친 하늘과 밭, 60쪽)

  테오의 죽음은 나를 한층 더 애절하게 만든다.(거친 하늘과 밭, 68쪽)

  ․  (창조자,구도자,혁명가인) 그들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자에 대해서도 창조자,구도자,혁명가이기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창조자,구도자,혁명가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해자들이 그 채찍의 아픔을 참고 견뎌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짐짝인 것이다. 그러므로 ‘슬픔과 고독’은 고흐에게뿐 아니라 테오에게도 있었다. 그것을 처절한 색채감각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형의 역할이었고, 그것을 말없이 감수하는 일이 아우의 몫이었다. 테오는 진실로 그러한 방식으로 형 고흐가 행한 창조의 고투(苦鬪)에 당사자로서 참가했던 것다. (거친 하늘과 밭, 69-70쪽)


   만약 나 자신이 ‘고흐’가 그린 그림 앞에 섰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니, 이미 그런 적도 있었으니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떠올려 봐야 할 텐데 도무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아마도 고흐의 그림을 실제로 보고 있다는 것에 마냥 들떠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고흐라는 이름이 주는 중압감에 압도당해 무엇이 그리 좋은지도 모르고 그냥 경탄하고 있었거나!

   서경식은 고흐 형제의 무덤을 둘러볼 때도, 고흐가 그린 그림 앞에서도 ‘정념’에 가득 찬 형을 둔 그 아우, 테오의 삶과 마음을 더듬고 있다. 그 동생, 테오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을테니까 말이다. 그에게도 신념을 목숨보다 중요하기 여겼던 집념의 두 형들이 있었으니까. 그 동생 테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 당연했다. 마찬가지로 ‘서경식’이 ‘테오’의 죽음에 더 애절함을 느꼈던 것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아마도 서경식과 그의 가족들은 감옥에 가 있는 형제를 어떤 의미에서는 ‘창조자, 구도자, 혁명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들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이해자가 되어 운명이 휘두르는 채찍의 아픔을 견디지 않았을까?’라고 말하는 것은 테오의 삶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이었던 것이다. 글쓴이는 말없이 아픔을 감수하는 것이 두 형을 감옥에 보낸 동생의 몫이라고 은근히 말하고 있는 듯하다. 테오가 말없이 감수하는 것으로 고흐의 창조에 동참하는 것처럼 그 자신도 바로 노예처럼 감옥에 묶여있지만 불굴의 의지로 창조가가 되려는, 구도자가 되려는, 아니, 혁명가가 되려는 형들의 삶에 그 자신도 묵묵히 동참했던 것이다.


다. 역사를 꿰뚫는 예리한 눈을 가진 사람

 ․ 프라 안젤리꼬가 그린 화려하고 청순한 종교화의 그늘에도, 처참하기 그지없는 정치와 인간의 드라마가 감춰져 있음에 틀림없으리라고는 확신을 갖게 된다.(수태고지,35쪽)

 ․ 이 저열하고 야비한 정신이야말로 아득히 먼 5백년의 전통이 길러낸 군국 스페인의 정화(精華)인 것이다.

 ․ 군국주의 스페인 5백년의 전통, 그 중후하면서도 저열하기 이를 데 없는 정신에 대하여 한 사람의 그림장이의 거대한 불기의 정신이 대항하고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마침내 승리하는 모습이다. (게르니까, 88쪽)

 ․ 굴욕을 당하고, 수탈을 당하고, 살육을 당해온 우리 민족은 과연 우리들 자신의 「게르니까」를 산출해냈는가. 군국 스페인 5백년의 공포와 중압이 삐까쏘를 낳았다고 할 때, 우리 민족에게 가해지고 있는 고통은 아직 가볍단 말인가.(게르니까, 89쪽)

 ․ 민중의 희생과 저항은 ‘외압’에 대한 승리를 가져왔으나 그것은 반동을 동반하고 온 것이었다. (모래에 묻히는 개, 104쪽)

 ․ 진보는 반동을 부른다. 아니 진보와 반동은 손을 잡고 온다. 역사의 흐름은 때로 분류가 되지만 대개는 맥빠지게 완만하다. 그리하여 갔다가 되돌아섰다가 하는 그 과정의 하나하나의 장면에서 희생을 차곡차곡 쌓이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 희생이 가져다주는 열매는 흔히 낯두꺼운 구세력에게 뺏겨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헛수고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런 희생 없이는 애당초 어떠한 열매도 맺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단순하지도 직선적이지도 않다. (모래에 묻히는 개, 108쪽)

 ․ 평가나 명성이 정해진 것만을 감지덕지 고마워하며 만족해하는, 뒤집어놓은 공식주의 냄새를 맡는다. 그것은 결국 싸움의 승패가 판가름 난 뒤에야 승자 편에 가 붙는 꼴이 아니고 뭔가.(중략) 그것은 변화나 진보를 긍정하는 정신하고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 변화나 진보를 긍정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서 변혁하고 극복해야 될 대상으로서의 전통이나 보수를 시대적 조건의 문맥 속에서 허심탄회하게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 (화가 누이의 초상, 122-123쪽)


   이 책의 곳곳에 언급되어 있는 그의 역사에 대한 통찰력은 예리하다 못해 섬뜩하다. 청순함 뒤에 감추어진 처참함을 꿰뚫는 그의 인식으로, 다른 나라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스페인의 경우처럼 5백년의 고통으로 만들어진 진주 같은 ‘게르니까’를 아직 만들지 못한 우리 민족의 ‘비극성’에 대한 한탄은 마음을 울린다. 정말 우리가 얼마나 더 많은 눈물을 보태야 '게르니까' 같은 전쟁과 반동을 거부하는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싶다.

  ‘진보와 반동은 손잡고’ 온다는, 그래서 역사는 단순하지도 직선적이지도 않다는 그의 인식은, 빠르게 보수화 되어가는 최근의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진보의 시기를 거치고 나면 오히려 진보가 시작되던 그 지점보다 더욱 후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불안이 엄습하는 요즘의 우리 모습이다.

  하지만, 진보가 비록 반동이 함께 올지라도, 그런 희생 없이는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점에서 당위로서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시 진보에 대한 희망의 햇살이 비치는 것 같아 마음을 다잡게 된다.


3. 나는 이 책에서 무엇을 읽은 것일까?

 

   미술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내가 읽은 내용을 끼적거리는 이 글의 어느 부분도 온전히 미술과 관련된 내용은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글쓴이가 그림을 앞에 두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퍼 올렸다면, 나는 그의 책을 읽고 내 마음대로 그의 마음을 읽어간 것이라고 되먹지 않은 추측을 해 본다. 만만치 않았던 역사적 무게를 감당해야 했던 한 재일 조선인이 서양미술이라는 도구를 훌륭하게 써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잘 다듬어낸 이 책이 내 마음을 울렸다.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책과 인물, 사건들이 너무 많아서 여러 번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던 기억이 새롭다. 더구나 내가 읽었던, 서경식 씨의 앞에 두 책(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유려한 문체도 조금은 맛본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그의 다음 미술 순례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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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 설렘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
파멜라 심스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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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교직 생활 8년차. 나는 지극히 평범한 교사라고 스스로를 생각한다. 남다른 인연으로 내가 만난 몇 아이들에겐 괜찮은 선생으로 그려지기도 했겠지만, 내가 담임을 맡았던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학교를 떠난 지금에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그저 그렇고 그런 여러 선생중의 한 명일 것이다. 지겹고 지루하기는 하지만, 학생들이 마냥 무시하고 안 들을 수는 없는 그런 ‘문학 수업’을 하는 국어 선생이 지금의 내 자신의 모습이다.

그래도 가끔씩은 학교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판단할 때도 있는지라 학생들과는 큰 마찰 없이 지내고 있는 점이 내 교직 생활의 작은 위안거리라면 위안거리인 셈이였는데, 며칠 전에는 수업이 끝나고 잔뜩 화를 내서 내 작은 위안거리마저 근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지난 몇 주 동안(사실은 지금껏 계속이었을텐데, 내 눈에 띄인 것이 최근 몇 주 정도) 계속해서 수업 시간에 무기력하게 엎드려 있는 녀석이 있었다. 수업 시간마다 내가 가서 깨우고, 잠시 후면 녀석은 다시 엎드리기를 반복했다.(내가 몇 번 지적한 후 다른 선생님들께도 여쭤보니 대부분의 수업시간에 그렇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안 되겠다 싶어서 교실 뒤로 나가 서 있게 했다. 수업 시간에 녀석과 얘기를 하면 길어질 것 같아서  수업이 끝난 뒤로 미룬 셈인데, 그 날 녀석과 나의 대화는 이랬다. 

“니는 나한테 잘못한 거 없나?”

“……”

“니는 수업시간에 그래, 엎드려 있는 거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나?”

“잘 모르겠는데요.”

“니가 한 일인데 니가 모르면 누가 아노?”

“……”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봐라, 니 내한테 잘못한 거 없나?”

“……”

어느새 내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나 보다.

“대답을 좀 해봐라, 이 총각아! 답답하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으로 묻는데이, 니 진짜로 잘못했다는 생각 안 드나?”

“수업 시간에 자는 거는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순간, 속에서 무엇인가가 울컥 하고 올라와서 내 목소리는 좀 더 커졌다.

“니 뭐라캤노? 학생의 선택? 니가 착각하나 본데, 수업시간에 공부하는 건 학생의 선택 아니거든. 그거 학생의 의무다. 내 말이 맞는지 니 말이 맞는지 교육부에 한 번 물어봐라.”

“저, 급식 당번이라 배식하러 가야 하는데요”

“니는 지금 내 말을 듣고 있나? 왜 딴 이야기고? 그리고, 내랑 이야기도 덜 끝났는데 어딜 간단 말이고?”

“애들이 나 때문에 밥 못 먹고 기다리고 있는데요.”

“니만 당번하는 거 아니잖아. 오늘은 딴 사람이 좀 보내고 우리 이야기 마무리 하자.”

“……”

“니는 나한테 잘못한 거 없나?”

“……”

“안 되겠다. 그라믄 점심 묵고 내한테 좀 찾아온다. 다시 얘기하자.”

“저도 바쁜데요. 화장실도 가야하고…… 쉬는 시간은 학생이 자유롭게 지낼 권리가 있잖아요.”

“아니, 이 총각아! 내가 니를 아무 이유 없이 부르나? 분명히 해야 할 말이 있고, 아직 지금 이 이야기가 덜 끝나서 부르는데, 니는 니 권리만 얘기하노? 나도 학생을 지도할 권리와 책임도 있거든. 지금 분명히 이야기하는데, 점심시간 지나고 다음 쉬는 시간에라도 꼭 찾아 온나! 알겠제?”


이후 그 녀석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내가 교실로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알량한 자존심 탓인지 올라가기 싫었다. 그러는 내내 내 기분은 엉망이었다. '학생의 권리'란 말에 속에서 불길이 확 솟았던 거 같다. 이런데 써 먹으라고 학생의 권리라는 게 있는지 답답했다. 내 스스로는 학생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도 제법 했던지라 더 화가 났었다. 마음은 점점 무겁고, 침울했다. 다른 반에 수업을 들어가는 것도 평소처럼 즐겁지가 않았다.


그 다음날, 나는 선생님들과의 공부 모임에서 이 사례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알렸더니 자연스럽게 선생님들의 여러 가지 충고와 조언들이 해 주셨다.

- 수업시간에 공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검토해 볼 가치가 있지 않은가?

-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라고 다그치는 교사의 태도에 학생이 반감을 가진 것은 아닌가?

- 그럼 선생님(나는)은 그 학생이 반듯한 자세로 공부하는 척 앉아 있기를 바라는가?

- 그 학생이 수업시간에 계속 엎드려 있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 학생이 잘못을 인정한다고 해서 현재의 문제 상황이 달라지리라고 기대하는가?

- 학생의 현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에서 교육은 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자신이 정한 기준을 벗어난 학생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아닌가?

- 학생이 말한 내용보다 태도 때문에 이런 충돌이 생기고 갈등 상황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


그 날 나는 당연히 내가 옳고, 몰지각한 학생의 태도에 대해 분개해 주리라고 기대했던 내 생각이 여러 곳에서 허점을 드러내어 약간 당혹스러웠다. 이렇게 나와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교사들도 많구나! 싶었다. 그것도 바로 내 주변에……. 그러면서 나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늦은 밤에 집에 돌아와서 다시 문제의 그 장면을 떠올려보았다.

우선 어쩌면 그 녀석을 따끔하게 혼내는 게 내가 덜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벌과 잔소리는 2분이면 충분할 수도 있지만, 그 녀석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차분하게 이유를 묻고,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제로 그 녀석의 학습태도가 나아지는지 지켜보고…… 이런 과정은 분명히 따끔하게 혼내는 것보다는 훨씬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만나면서 나름대로 조심하느라고 하는데도, 내 생각과 행동이 가끔 이렇다. 한동안 그냥 좀 ‘이렇게 하면 되었다’ 싶다가도 어김없이 한 번씩 이런 일이 생겨서 내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게 하고, 기운이 쭉 빠져 있던 시기인 이틀 동안에 파멜라 심스의 ‘처음 그 설렘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를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교사 생활을 하면서 늘 책상 위에 두고, 아껴서 읽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학교 생활하다가 언제라도 이번처럼 기운이 빠지는 일이 있을 때면 아무 부분이라도 펼쳐두고 읽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이 말하는 ‘진정한 교육’이란 교사와 학생 사이에 강한 인간적 유대 관계를 쌓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단순히 교과목의 내용만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교사(good teacher) 보다는, 학생을 온전히 한 인격체로 대하며 가르치는 교사(great teacher)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격체로 대한다는 것의 구체적 의미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대접받고 싶은 만큼, 교사가 먼저 학생들을 대하라.’것이다. 이러면 규칙이 사라져서 질서가 없어질 것이라고 불안해 하지만, 스스로 참여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은 일방적인 지시와 통제, 교사의 위협으로 생긴 아이들의 마음 속 불안이다.

교사들이 학생 시절에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선생님들은 어떤 태도와 성향을 지녔는지를 떠올려보는 게 필요하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듯이, 예전의 그 학생들(지금의 교사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 것처럼 지금의 학생들도 교사의 감시와 위협, 지시와 통제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따뜻하고 다정한 관심과 배려, 긍정적인 자기암시와 적극적인 격려를 통해 학생들의 영혼을 성장시킬 수 있고, 이것이 모든 교육의 출발점이 된다고 말한다.

학생들의 영혼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일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직업을 위임받은 우리 교사들의 몫이다. 교사들이 학생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사고와 생각을 보여 준다면,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 그 녀석이 속한 반의 수업이 든 날이었다. 그 반의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고 혹시 녀석이 그렇게 행동할만한 이유를 아시는지 여쭤보았다. 뾰족한 답은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내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 위안을 삼고 싶었다.

약간 긴장하고 수업에 들어갔다. 녀석을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왜 오지 않았는지 물었다. 역시나 같은 대답! 그러나 내 마음은 저번처럼 심하게 흔들리지는 않은 것 같다. 약간 웃으면서 이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지내가면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 언제든지 시간이 나면 꼭 찾아와서 이야기를 하자고 일렀다. 그랬더니 녀석이 다음 시간은 안 된다고 했다. 나는 다음 시간이 아니라도 괜찮다고, 다음 ‘문학 수업’이 든 시간 전까지 아무 때나 찾아오라고 말하고 자리에 앉게 했다.

 

여러 번 배우고, 다른 사람의 책을 읽어도 내 몸에 익숙해지기는 어렵고, 스스로 다짐하고, 굳은 결심을 해도 다시 흐트러지고 쉬워서 며칠 전과 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그 전날에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했더라면 좀 더 현명하게 행동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대로 된 ‘교사’가 되려면 두고두고 읽고 마음에 새겨야 할 보석 같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우문(愚問) 하나!

교사는 왜 학생들을 사랑하고, 관심을 보여 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가? 현답(賢答)은 우리의 미래가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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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6-2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샘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매일 저지르는 일이죠. 아이들을 이해하지는 못하면서 교사 자신의 입장은 같은 교사들끼리 늘 위로받고 싶어하거든요. 에구.. 그렇다고 녀석들을 늘 엎드려있게, 늘 지각하게, 늘 도망가게 둘 수도 없고... 어쩌나...

고사성어를 공부하잖아요? 아이들에게 '후생가외'라는 성어를 이야기할 때는 정말 약간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요. 우리-어른, 교사-들이 거의 잊고 사는 後生可畏... 아이들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할 것 같아요. 아직 우리는 교단에서 완전히 내려온 게 아니라 한쪽발은 살짝 걸쳐놓고 있는 게 아닌지...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권위'는 제외하고.

그런데 긍정적인 의미에서 교사의 권위란 뭘까요? 무조건 내 기준이 옳다고 거기에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죠? 흠...

글샘샘께서 쓰신 리뷰읽고 '스승의 날' 선물로 저 스스로에게 선물했던 이 책!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사실 너무 빠른 효과와 긍정적인 면만 보고 있는 듯 해서 약간의 반감이 남아있거든요.

느티나무 2006-06-22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셨네요. ^^ 늘 안다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서 문제가 생기는 거 같아요. 사실은 끊임없이 반복하지 않으면 모르고 있는데요...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거, 실수의 지름길인거 같습니다. 저는 제목처럼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요~!
 
글쓰기의 즐거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끔, 그것도 지나가는 말투로 글을 써보라고 한다. 선생의 말에 혹해서 처음엔 의욕에 가득 찬 녀석들의 눈망울이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힘이 없다. 글쓰기가 쉽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어쩌다 아이들이 써 온 글을 볼 때, 선생으로서 아쉬움이 많이 든다. 아이들이 쓴 글을 읽으면 고치고 싶은 부분이 금방 눈에 띄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빨간 펜을 집어들고 싶어진다. 역시 내가 쓰는 것보다 남의 글을 읽고 고치는 게 훨씬 쉽다.

나도 가끔씩 쓰는 리뷰를 비롯한 작은 모임의 주제발표문, 편지글을 비롯한 자잘한 일상사를 기록하게 되면서 알았다. 글쓰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내가 좋아서 쓰는 이 짧은 글쓰기만 해도 어쩔 땐 텅 비어버린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자책해 보지만, 그래봐야 내 머리만 아플 뿐, 소용없는 일이다. 그 이후로 한동안 아이들에게 글을 써보라고 쉽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내가 쓰는 척이라도 해 보니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렇게 앉아서 지난 주말에 읽었던 '글쓰기의 즐거움'-교수 강준만의 표현대로 말하면 ‘글쓰기로 세상보기’의 즐거움-이라는 글쓰기 방법에 대해 소개한 책을 덮고, 스스로는 이렇게 글쓰기의 괴로움을 절감하며 ‘글쓰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읽은 내 느낌을 말하려고 하니 모순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의문이 떠올랐다. 나는 ‘왜 괴로운데도 글을 쓰려고 애쓸까?’하는 생각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의 서문에서 어렴풋하게나마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글쓰기는 단순히 생각이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글쓰기는 생각을 만들어내고, 지식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중략) 글은 엉켜진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해 주는 신비한 마력이 있다. 또 이 생각을 저 생각으로 옮기는 능청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면서 새로운 생각을 만든다. 글쓰기가 논리적 사고, 창조적 사고를 키운다는 말은 그래서 가능하다.”

내가 쓰는 다른 모든 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알라딘에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한 답을 이 구절을 바탕으로 정리해 본다면, '책을 읽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처음에는 책을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내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씩 글을 쓰다 보니, 책을 읽을 때 들었던 생각과 감정보다 조금 더 정리된 사고와 느낌을 표현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책을 읽을 때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도 글을 쓰다보면 그냥 툭 튀어나오는 경우도 많다. 나는 어느새 책을 읽어서 얻는 지식과는 따로, 글을 씀으로써 내가 가지고 있던-그러나 생각의 표면으로 떠올리지 못했던- 조금 더 깊은 생각을 조직했을 때의 기쁨을 맛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알라딘에서의 글쓰기는 괴로운 일이지만,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예전에도 글쓰기 방법을 다룬 책을 한 두 권 정도는 읽어 보았는데, 그것과 대비해 보면 이 책의 전개 방식이 독특하다. 대체로 글쓰기 방법을 다룬 다른 책들은 교과서적인 글쓰기의 틀을 가지고 독자가 얼마나 이해하기 쉽게, 혹은 독자에게 세련되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방향인 것에 비해, 이 책은 마치 실전을 코앞에 둔 이종격투기 선수의 연습처럼, 실제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영역을 전략적 사고, 심리적 유혹, 감정의 통제, 수사학과 국어학, 시사 논쟁의 이해라는 장으로 나누고, 학생들의 글로 예시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다.

제 1장, 전략적 사고에서는 다른 사람의 이해를 돕기 위한 글쓰기의 다양한 방법을 전략적 사고라고 알려주고, 글쓰기에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로는 글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쌍방향적인 의사소통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몇 가지 방법으로 잘된 인용과 정확한 통계를 인용한 글쓰기, 인상적인 도입부 작성하기, 브레인스토밍과 배경지식 넓히기, 전체의 흐름이 논리적으로 잘 연관된 글쓰기 등을 예시 글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제 2장, 심리적 유혹에서는 글쓰기에서 자신의 익숙한 심리상태를 의심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타성이나 관성에 젖은 생각을 관리하는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한 몇 가지 방법으로 ‘흑백논리’, ‘거대담론’, ‘도식주의’에 빠지는 것과 지나친 구어 중심의 글쓰기를 경계해야 하며 충분히 이해해야 쉬운 글을 쓸 수 있음을 예를 들어 잘 보여준다.

제 3장, 감정의 통제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엄격히 통제한 글이라야 좋은 글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논쟁에 지나치게 몰입하거나 비분강개, 감정의 과잉, 극단적인 어휘선택과 같은 감정에 빠지는 경우는 자제하고, 때로는 ‘억지 주장’도 참으면서 끝까지 듣거나, 대상과의 고통스러운 ‘거리두기’를 통해야 좋은 글이 나올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제 4장, 수사학과 국어학에서는 글쓰기에서 피해갈 수 없는 수사학 기법과 국어학적 측면을 다루면서, 말하려고 하는 ‘무엇’도 중요하지만 ‘어떻게’도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은 글쓰기에서 형식과 수사학이 중요한 시대이며 ‘완곡 어법’과 ‘다문화주의 언어 사용법’의 의미와 효과, 모순어법과 사자성어의 묘미에 대한 예가 아주 풍부하다. 문장의 주어와 술어의 호응 같은 문법 사항은 기본중의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제5장, 시사 논쟁의 이해에서는 배경지식을 갖춘 글쓰기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평소 시사 주제를 대해 많이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이를 위해 시사 논쟁에 대한 학생들의 글을 평가한 예시를 들고, 뒤에 주제별 토론 의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강준만 교수의 여러 책처럼 전체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었고, 여느 글쓰기 방법을 다룬 책보다 내용이 어렵지 않고, 구체적이어서 나같은 초보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아 좋았다. 나에게는 이 책을 통해 글쓰기의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 점도 큰 소득이다. 이 책을 읽었다고 내 글쓰기의 두려움과 고통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글쓰기에 대해 나에게 손바닥만큼의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언제나 글을 쓸 때 잊지 말아야 할 몇 가지 주의 사항들이 알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알라딘에서 열심히 ‘리뷰’를 쓰시는 분-특히, 논쟁적인 글을 좋아하시는 분-도 한 번쯤 읽어보셔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글쓰기의 진정한 즐거움을 깨달아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 뱀발

‘강준만’ 이라는 이름의 아이콘은 분명한 당파성을 상징하고 있는데도, 이 책의 서문에서는 학생들의 글쓰기를 지도할 때는 ‘중립’을 지켰다고 하고, 이 책은 좌우와 여야를 초월해 논리전개의 방식만을 평가대상으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다.

사회 비평의 한 획을 그은 것으로 알려진 강준만 교수의 놀랍고도 눈부신 업적은 여전히 존경의 대상이지만, 이제는 정서적으로 너무 멀어져버린 저자의 ‘중립’적인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그렇지만 나도 ‘중립’적으로, 이 책에 기꺼이 나의 별 다섯 개를 달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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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12-04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교수가 중립을 이야기한 것은, 우리 사회가 너무너무 완전 오른쪽으로 치우쳐있어서, 중립이라도... 하고 이야기한 거 아닐까요?

느티나무 2006-12-04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문제는 정작 중립을 지켜야 할 인간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 있지요. 그들이야 부끄러움이 없으니, 그럴수도 없겠지만. 강교수님의 고민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왠지 늘 손해본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니 사족처럼 달았구요. 아무튼 관심, 고맙습니다.
 
거미 창비시선 219
박성우 지음 / 창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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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소박하게 말하면 남들보다 더 울 일이 많은 삶이거나, 한숨이 더 길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에둘러서 말하면 가난하게 사는 삶이 약간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가난은 ‘약한 사람일수록 철저하게 짓밟으려는 야비한 인간’처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그 극한으로 몰아가면서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가난하다는 것은 우리가 이론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권리를 실제적으로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뜻하고, 그 빼앗긴 권리 때문에 그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래 전에 사 둔 박성우 시인의 ‘거미’를 최근에 읽었다. 알라딘의 독자서평이 좋아서 샀는데 내키지 않아 책장에 그냥 올려두었다가 함께 샀던 책들을 대충 다 읽은 터라 거의 마지막으로 이 시집을 손에 들게 되었다. 책의 안쪽 날개에는 섬세하고 여리지만 단정한 차림의 한 청년이 사색에 잠긴 표정을 짓느라 약간 어색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상투적이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책날개에 적힌 시인의 약력을 훑어보니 또 걱정부터 앞섰다. 71년생. 젊다. 젊은 시인들의 시는 더 어렵다.

아마도 꽤 여러 종류의 시집을 펼칠 때마다 그랬듯이 이 시집도 시대와 독자를 앞질러간 다른 시인들 때문에, 평범한 독자에 불과한 나 같은 사람의 지적(知的) 능력을 의심하게 되거나, 좌절감만 맛보게 되는 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시는 무엇보다도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서 작은 울림이라도 만들 수 있는 게 좋다는 소박한 생각을 가진 나 같은 사람에게는 요즘 시집은 대체로 어렵게 느껴져서 읽는 게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다.(전적으로 독자인 나의 무지와 무능을 탓할 뿐, 다른 뜻은 없으니 오해마시라.) 그래도 시집 읽기를 그만두는 것이 책임을 방기하는 것은 느낌이 들어서 가끔씩이라도 읽는다.

나는 이 시집을 읽고 나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이 시집에서 반복해서 다루고 있는 중심 내용은 시인 자신이 체험한 것으로 보이는 ‘가난했던 또는 가난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시인-정확하게 말하면 시작 화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에게 가난은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운 수렁 같아서 시인 자신의 어린 시절의 가난한 삶이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시에 나타난 가난한 삶은 경험이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이 시에서 말하는 가난이란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고달픈 삶, 나의 노동(?), 그 밖에 눈물과 실직 등이다. 

이 시에서 아버지의 부재는 분명히 가난 때문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지만, 아버지의 부재가 가난 때문임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버지는 빚 때문에/그해 겨울도 돌아오지 못했다/ [‘생솔’ 부분]에서나,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인공호흡기를 뽑는 일에 동의했어요/[‘친전-아버지께’] 등에서 볼 수 있다. ‘아버지의 손은 두꺼비 손’처럼 우둘투둘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고, ‘누에고치에게 안방을 내주고’ 가족들은 헛간을 개조한 방에서 여덟 식구가 살아도, 가난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두 번째 가난의 징표로 나타나는 것은 ‘(늙으신) 어머니의 고달픈 삶’이다.

성냥개비가 되어가는 줄 모르는 어머니는/베틀에 앉아 삼베 품을 팔고 늦은 밤에 돌아오셨다[‘생솔’ 부분]에서 화자가 어린 시절일 때 본 어머니의 모습에서부터 내가 조교로 있는 대학의 청소부인 어머니는/청소를 하시다가 사고로/오른발 아킬레스건이 끊어지셨다/(중략) 막둥아, 맥주 한 잔 헐텨?/다음주꺼정 핵교 청소일 못 나가먼 모가지라는디[‘찜통’] 오줌을 끓여서 다친 발을 치료하기 위해 화자에게 맥주를 권하는 늙으신 어머니의 모습에서도 가난은 여전한 모습이다.

이런 상황은 ‘막둥이인 내가 다니는 대학의/청소부인 어머니는 일요일이었던 그날/미륵산에 놀러 가신다며 도시락을 싸셨는데/웬일인지 인문대 앞 덩굴장미 화단에 접혀 있었어요/가시에 찔린 애벌레처럼 꿈틀꿈틀/엉덩이 들썩이며 잡풀을 잡고 있었어요/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어머니,/지탱시키려는 듯/호미는 중심을 분주히 옮기고 있었어요/날카로운 호밋날이/코옥콕 내 정수리를 파먹었어요// 어머니, 미륵산에서 하루죙일 뭐허고 놀았습디요/뭐허고 놀긴 이놈아,수박이랑 깨먹고 오지게 놀았지//’[‘어머니’부분]과 ‘빨강글씨라도 좀 쉬지 그려요/아직꺼정은 날품 팔만 헝게 쓰잘데없는 소리 허덜 말아라/ 칠순 바라보는 어머니 집에 가면/반나절과 한나절의 일당보다도 더 무기력한 내가 벽에 걸릴 때가 있지/’[반나잘 혹은 한나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가난한 현실은 화자 자신도 노동을 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 노동의 성격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격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가난 때문에-학교를 다닐 때라도- 일을 해야 하는 건 분명한 상황인 것 같다.(학비를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든, 생계를 위해 노동자가 되었든 말이다.)

딱, 5분만 자면 피로가 풀릴 것 같아/나는 화장실에 가는 척/김반장의 시선 피해/미싱 창고로 발을 옮긴다/[‘미싱 창고’부분]에서나 세 시간 동안 꺼져 있었다 나는 자명종 시계보다 10분 늦게 일어났다 현기증이 결근을 유혹했지만 허겁지겁 봉제공장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미싱들이 여성용 내의를 쉴새없이 만들어냈다 나는 포장대 위로 올라온 내의를 여덟 시간 동안 기계처럼 상자에 집어넣은 후 그 것들을 창고로 운반했다 트럭이 오면 제품을 실어보냈다 일과는 늘 그렇게 끝났다[귀퉁이 부분]에서 보는 것과 같다.

나는 이렇게 정직한 시들이 좋다. 시인 자신의 가난 체험을 표현한 것이야 특별히 새로울 게 없는 소재지만, 여전히 가난함이나 약하고 여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들이 좋고, 거기에서 느꼈던 감정의 섬세한 결을 드러내어 읽는 이들의 마음을 조용하게 흔드는 시가 좋다. 이 시집의 대부분의 시들이 가난의 구체적인 징표들인 노동, 눈물, 실직, 죽음의 상황을 당위의 목소리를 높여 외치지 않고, 담담하게 말함으로써 읽는 이들에게 더욱 아릿한 느낌을 준다.

시집을 읽다가 팽겨 쳐 둔 경험이 있는 독자나,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워서 시집을 읽다가 무안해진 독자가 있다면, 앞으로는 시집을 사지 않기로 마음먹은 독자가 있다면, 한 번 더 속는 셈치고 이 시집까지는 읽기를 권한다.

시인의 다음 시집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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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2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