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새해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지난 한 달 동안은 모처럼 얻은 휴가 덕분에 집에서 푹 쉬었다.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새봄을 위해 겨울 잠을 자는 곰처럼 집에서 책만 읽으려고 애썼는데, 정작 1월말에 결산을 해보니 어쩐지 빈약한 느낌이 든다. 작년에는 1월에 훨씬 더 많은 책을 읽었던 거 같은데...(그래놓고 뒷심이 달려서 연말까지 몇 권 읽지도 못 했는데, 올해는 어떨까?)
그래도 1월엔 괜찮은 DVD를 네 편이나 봤고, 다 읽은 건 아니지만 이것저것 기웃거린 책들도 좀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했다는 느낌은 덜하다. 또 지금 읽고 있는 책도 연작이라 다 읽은 다음에 목록에 올려야겠다. 1월에 읽은 책을 보니 소설 책이 세 권, 만화가 한 권이다. 그리고 논술특강 준비로 읽었던 원자력 관련 서적이 두 권(12월에 읽은 책을 포함해서 원자력 관련 서적은 세 권이다.), 그리고 얼떨결에 사게 된 달려라, 정봉주까지! 합쳐서 모두 일곱 권을 읽었다. (지금 보니 리뷰를 썼던 건 달랑 소설만 두 권!)
두근두근 내인생은 나에게 문체의 재미를 알게 해 준 소설이다. 워낙 문체에 둔한 사람인지라 처음 읽을 땐 잘 몰랐다가 리뷰 정리를 위해 슬금슬금 책을 뒤적거리다가 다시 읽으면서 보니까, 의외로 글이 좋았다. 젊은 작가의 인생에 대한 상상력도 재기발랄한 문체와 함께 빛났다. 무엇보다 재미있게 잘 읽힌다.
도가니는 소설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한 소설이다. 소설이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가, 소설에 작가의 신념(?)은 어떻게 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던져 주었다.(물론 내가 소설을 쓴다는 건 아니고, 그냥 독자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공지영 작가가 조금 더 유연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도 느낀 아쉬움을 도가니에서 비슷하게 느꼈다.(자세한 건 리뷰에 써 두었다.)
지금은 없는 이야기는 최규석이 만화로 쓴 우화이다. 최규석은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는 젊은 만화가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 책은 짧은 이야기 속에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는데, 주로 우리나라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빗대서 풍자하고 있는 내용이다. 쉬운 내용은 아니지만, 읽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고, 분량도 짧아서 1-2시간이면 충분히 다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금방 잊히는 그런 내용은 또 아니다. 두고두고 음미하거나 생각날 때마다 펼쳐 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은 여전히 어려운 소설이었다. 읽는 내내 떠오르는 한 인물은 박정희였다. 그런데 조원장처럼 박정희도 진정성이 있었던 것일까? 이 대목에서 완전히 수긍하기는 어려웠다. 문둥이들의 성격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문둥이=민중, 처럼 읽혔다. 이청준의 본심은 이랬던 것일까? 아무튼 '당신'이 만들고자 하는 천국은 '나'에게는 '지옥'일 수 있다는 말, 명심해야 한다. 어쩌면 내가 맡은 반 아이들에게 천국을 강요할 수도 있으니까... 그게 진심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만약 2011년의 올해의 인물을 꼽는다면 정봉주,여야 하지 않을까? (오세훈이나 박원순이나 나경원과 경합해야 하려나?) 사실, 달려라 정봉주는 살 생각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사게 되었다. 음, 읽은 느낌은 살 생각이 없었던 것에 비해서는 그나마 나았다. 흠, 다른 건 모르겠고, 그가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것, 그것으로 사람들을 각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 정치인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본인에겐 슬픈 일이겠지만!)
원자력, 대안은 없다는 책은 특강 준비만 없었다면 읽지 않았을 책이다. 내용의 방향이 문제가 아니라 내용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 특히나 한국어판 해설이나 감수를 하신 분들이 북한의 핵문제에 침묵하면서 핵발전소를 비판한다는 소리는 유치하고 황당하다. 그런 수준으로 비판론자들의 비웃음만 살 뿐이다. 책의 내용은 핵발전소 강국인 프랑스의 클로드 알레그르라는 지구화학자와 도미니크 드 몽발동이라는 기자와의 인터뷰 글이다. 핵심은 핵발전소는 현존하는 에너지 생산 수단 중에서 가장 효율적이며 위험성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대안이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서도 별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논의하고 있어서 의아스러웠다.
기후 변화의 유혹, 원자력도 특강 준비로 읽은 책이다. 우리나라의 젊은 학자들이 최근 부쩍 강조되고 있는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수단으로서의 원자력의 가능성을 비판적으로 진단하는 짧은 논문 형태의 글이다. 비판의 핵심은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가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원자력에 대한 논의만 풍성하지 실질적으로 원자력발전소를 새로 짓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작년에 우리나라는 세계적 흐름과는 무관하게 울진 삼척에 추가로 발전소를 짓겠다고 선언해서 큰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알면 알수록 더욱 답답해지는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