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반 학부모님 안녕하십니까?

 

   언제 좀 날이 따뜻해지나 싶었던 게 며칠 전이었는데, 벌써 길바닥엔 떨어진 벚꽃 잎들이 떨어져 흐르는 시간을 짐작하게 합니다. 오늘이 4월 14일, 한창 봄입니다. 화창한 토요일 오후입니다. 녀석들, 토요일 아침에도 학교 나와서 공부하느라 표정이 굳었습니다. 오늘은 오전에 졸업앨범에 들어갈 사진이랑 수능원서에 넣을 사진을 찍는다고 약간 어수선했습니다. 그냥 사진이 아니라 수능, 졸업과 관련된 사진이라 찍으면서도 마음이 ‘어, 벌써?’ 이런 느낌이 들었을 듯합니다.

 

   지난 3월에 얼굴 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만 아직 못 만나 뵌 학부모님이 더 많으십니다. 전화로라도 인사를 나눈 분도 적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학부모님께 편지라도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학교 소식이나 학급에서 일어났던 자잘한 얘기들을 해 드리려고 합니다.

 

   3월에 친 모의고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학부모님께 문자로 연락은 드렸고 아마 녀석들이 부모님께 보여드렸겠지요? 3월의 성적은 학생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제부터 열심히 하자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격려를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 반은 별다른 일 없이 비교적 자습시간에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교실에 있어보니까 자습분위기도 괜찮고, 조용한 편입니다. (저도 특별한 날이 아니면 10시까지 교실에 앉아 있습니다.) 3월에는 아픈 학생들이 좀 많아서 자주 조퇴도 하고, 병원에 다녀온다면서 외출도 잦았습니다. 그 때마다 담임으로서 고민을 했습니다. ‘아프다는데 집에 가서 쉬라고 할까’, ‘많이 아파보이지도 않는데, 좀 참아보라고 할까’ 두 가지 중에서 어떤 결정이 녀석들에게 더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면서 상황에 따라 결정을 하곤 했는데, 녀석들은 가끔 서운하기도 했겠지요.

 

   개별학생 상담은 3월말에 끝났습니다. 한 명 한 명 얘기를 나누고 나니까 학생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물론 한두 번 얘기한다고 녀석들을 속속들이 알게 되는 건 아니지만, 교실에서 녀석들의 말과 행동을 바라볼 때 도움이 될 듯합니다. 1차 상담은 개별 환경 및 성격 파악에 중점을 둔 상담이었고, 여름방학 중에 2차 상담을 할 때는 수시진학을 위한 성적 및 진로 상담을 할 계획입니다.

 

   한 번의 개별상담으로는 부족해서 ‘학급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20명씩 묶어서 돌아가면서 한 권의 일기장에 그 날의 일기를 써서 저에게 내면 매일 저도 댓글을 달아주고 나서 다음 학생에게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처음엔 거부감도 있고, 글도 무척 짧더니 이제는 ‘학급일기’가 제법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녀석들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어서 저로서는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며칠 전 국회의원 선거일에는 학교 급식이 안 나와서(참고로, 공휴일에는 식당 아주머니들께서 근무를 안 하십니다.) 녀석들에게 비빔밥을 해 먹자고 미리 얘기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진짜로 할까,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습니다.-을 보이더니, 담임인 제가 준비를 하니 나중에는 싫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좀 밀어붙였습니다. 맘에 안 드는 이유를 설명해라, 일단 해 보고 그래도 싫으면 다시 하자고 할 때 하기 싫다고 해라, 이번은 처음이니 불만이 있어도 일단 해 보자, 뭐 이렇게 설득 반 협박 반으로 결국 점심을 먹었습니다. 한편 담임으로서는 이게 또 다 부모님들 부담인데, 괜한 일을 벌이나 싶었는데, 그런데 녀석들 점심을 먹는 표정은 이렇게 행복했습니다. 다음에도 한두 번은 더 이렇게 녀석들과 점심을 같이 먹는 ‘식구’가 될 기회를 마련하겠습니다.

 

   4월 10일에는 4월 학력평가가 있었고, 4월 30일부터 4일간 중간고사가 실시됩니다. 간혹, 부모님께서는 내신 성적(학교 시험)에 치중해야 하는 것인지, 수능시험 준비에 집중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하신 분들도 있을 듯합니다. 결론은 당연히 학교 시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신 성적은 수시 전형에 아주 중요한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학교 공부와 수능 공부가 결국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면 수능 시험 준비도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시험기간엔 시험 준비에 최선을 다하도록 격려를 많이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시험기간에는 12시 30분 정도에 마칩니다.)

 

   4월 25일(수) 19시부터 20시 30분까지 부산상공회의소 대강당에서 부산대학교 입시설명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관심 있는 학부모님께서 참석해 보시기 바랍니다.(우리 학교와는 무관하고 부산대학교 입학관리본부에서 마련한 행사입니다.)

 

   저희 반 급훈을 “손을 잡고 벽을 넘는 담쟁이처럼” 이라고 지었습니다. 녀석들은 이런 것에 아주 무신경하지만, 저는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절망 같은 벽에 붙어서 한 뼘씩이라도 쉼 없이 벽을 기어오르는 담쟁이처럼 학교생활을 해 보자는 뜻입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이 벽을 넘는 날이 오리라고 믿으면서 말이지요.

 

   앞으로 한 달을 또 열심히 녀석들과 부대끼면서 살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있는 게 별 도움은 못 되지만, 그래도 처음의 결심처럼 함께 버티려고 합니다. 학부모님의 가정도 늘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다음 달에 다시 편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래 사진은 비빔밥을 먹던 날의 교실 풍경입니다.]

 

* 사진은 초상권 관련으로 삭제했습니다.

 

00고등학교 3-4반 담임 000 드립니다.

담임 연락처 [010-0000-0000]입니다.

(문자 남겨 주시면 바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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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urboncoke 2012-04-17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이 아이들에게도 초상권이란게 있지않을까요?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의 성함과 연락처는 비공개로 하셨는데, 아이들에겐 같은 권리가 없는건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느티나무 2012-04-18 09:14   좋아요 0 | URL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자세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몰래 찍은 건 아니구요. 개인 블로그지만 학생들은 '게시' 여부는 모르니까 초상권 침해가 맞네요. 사진은 내리고 앞으로는 더욱 주의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bourboncoke 2012-04-18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제 넘은 참견을 드린것 같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시 와봤는데 어느덧 지우셨네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덧붙여, 제 학창 시절에도 이렇게 정겨운 편지를 건네주는 선생님이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란 생각도 잠시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

느티나무 2012-04-19 10:53   좋아요 0 | URL
아이고, 아닙니다. 부족하고 모자란 점 깨우쳐주셔서 제가 고마운 걸요. (그냥, 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네, 하고 지나칠 수도 있잖습니까? 근데 말씀해 주시니 저도 고칠 수 있고... 좋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