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야자주의자의 전향

 

 

   선생님, 주말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여느 날처럼 토요일에 자습 감독하러 나왔다가 이런저런 생각 끝에 선생님께 드릴 글을 씁니다. 갑자기 이런 글이 불쑥 전해져서 조금은 의아하실 듯한데, 지난 금요일 7교시 교과별 모임에서 같은 교과의 선생님들께 혁신학교 추진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드렸을 때, 제가 참 제대로 설명을 못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짧은 글로 제 생각을 정리해서 말씀드리는 게 어떨까 싶어서 이렇게 여러 선생님들께 글을 드립니다. 말도 못하는데, 글은 제대로 나올까 싶어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고심 끝에 혁신학교추진단에 발을 담근 사람으로서 책임감 있게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게 선생님께서 올바른 판단을 하시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요새 모 오디션 프로그램의 지원자가 불러서 화제가 된 노래 중에,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곡이 있습니다. 제가 예전부터 좋아하던 노래였는데, 새로 편곡된 노래를 들으니 무척 좋았습니다. 원래는 들국화의 리더인 전인권이라는 가수가 만들어서 부른 노래인데, 제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노래의 가사 때문입니다. 그 노래 가사의 맨 마지막 구절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가사에 뭔가 깊은 뜻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아직도 저는 이 정도 수준에 혹하는 사람이라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이 노래의 가사를 빌어 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지나간 것의 ‘의미’와 ‘후회 없는 꿈’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저에게도 OO고에서의 지나간 것이 ‘그런 의미’를 남겼지만, 이제는 ‘그런 의미’를 넘어서서 후회 하지 않을, 앞으로 남은 우리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노래해야 할 때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해 3월에 OOO로 왔고, 그해 2학년 문과 남자 반을 맡았습니다.

   올해도 담임 배정에서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작년에 맡았던 학생들을 데리고 3학년 담임을 하고 있습니다. 담임으로서 학생들에게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공부’와 ‘규칙’입니다. 저는 아마 학생들에게 무척 깐깐하고 엄격한 담임교사로 평가를 받고 있는 듯한데, 그것은 학생들의 ‘공부’와 ‘규칙’에 대해서만큼은 제가 조금도 너그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자랑은 아니지만, 2년 동안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퍼부은 덕분인지, 그래도 지금은 조금이나마 ‘공부’와 ‘규칙’의 의미에 대해서 겨우 생각해 보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어려운 가정 형편의 아이들이 많은 우리 학교의 아이들이 대학 진학에 따른 학력의 차이가 분명한 현실에서 학교에서 하는 ‘공부’만이 이 희망 없는 세상에 대해 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발버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사로서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했습니다. 공부를 잘 하려면 생활지도가 먼저 되어야 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활지도도 나름대로 엄격하게 했습니다. 매를 들지는 않았지만, 차갑고 무서운 말로 아이들을 다그치기도 했습니다. 제가 진학 지도를 열심히 하면 적어도 제 성적에 맞는 학교를 찾아갈 수 있겠다 싶어서 저의 짧은 경력 기간에 익힌 노하우를 성의껏 많이 나누었습니다.

 

   다른 반은 모르겠고, 내가 맡은 반이라도 한번 해 보자, 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2년을 버텼습니다. 그런데, 수능이 한 달 남은 요즘 자꾸 제가 해 온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를 자문하게 됩니다. 담임이 무서워서 수업이든, 보충이든, 야자든 꼬박꼬박 자리에 앉아는 있는데, 이게 정말 방향이 맞는 것인지 의심스럽고, 아침부터 오후까지 그냥 잠만 자고 축 늘어져 있는 학생들을 깨워 수업은 하지만, 사실은 제가 이 녀석들과 함께 할 무엇이 없기 때문에 수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때로는 학교가 참 무기력하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무엇인가, 학교는 아이들의 성장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나, 하는 넋두리를 자꾸 해 봅니다. 지금껏 저는 담임으로서 우리 반 아이들의 ‘학업’과 ‘생활(인성)’과 ‘진로’에 대해서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를 물었을 때 어떤 답을 듣게 될 것인지 두려움이 밀려듭니다. 저는 하느라고 했는데, 손 안에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어떤 선생님께서는 수업이 재미 없고, 아이들의 생활이 엉망이 된 일이 최근 2-3년 사이에 심해졌다고 하시고, 학생들과 수업하기가 점점 더 힘들다고 말씀도 하셨습니다. 대놓고 말씀은 안 하시지만, 학습 분위기가 덜 잡힌 것은 생활지도가 부재하기 때문이고, 생활지도의 부재를 학생부의 역할 부재에서 찾으시기도 하셨지요. 글쎄요, 그런가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학생부가 있던 작년에 본 모습은 이미 학교의 상황이 교사들이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가 한두 명이 덤벼들어서는 해결할 수 없는 통제 불능의 상황에 놓여 있다는 느낌이었지요. 학생부가 엄연히 존재했던 상황 속에서도 제가 이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저는 그 선생님의 진단에 전부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만, 제 판단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지요. 선생님의 그런 판단도 존중합니다. 일정 부분 학생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학생부가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전담해서 확 휘어잡아주면 학교가 잘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 판단은 조금 유보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듯이 생활지도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출발한다면 선생님께서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넘으시겠습니까? 혁신학교가 아니라면, 혁신 학교의 방향이 틀렸다면, 함께 OO고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았으면 합니다. 저는 혁신학교가 어떤 정해진 목표나 방향이 있는 게 아니라, 학교 구성원인 우리 모두가 ‘내 학교’라는 마음으로 함께 고민하면서 현재의 문제를 풀어가는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혁신학교로 가는 과정에는 모든 선생님의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저는 학교 안팎의 변화가 늘 두렵습니다. 익숙한 것은 편하고, 편한 것에 저는 잘 적응하니까요. 누구나 그렇듯 저는 안온(安穩)한 학교가 좋습니다. 이런 기질 탓에 어쩌다 학교의 새로운 일을 맡으면, 저는 그 일은 잘 될거야, 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잘 안 되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함이 더 컸고, 일이 잘 못 돼서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으로 늘 안절부절못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새로운 일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새로운 일이 지금보다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로 생각해 왔습니다. 어쨌든 지금 이대로가 살만 했으니까요. 그래서 한 걸음 뒤에서 팔짱을 끼고 그 상황을 지켜 볼 때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또, 새로운 일에 용감하게 뛰어드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일 너머에 있는 자신의 개인적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다고 내심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수구적’인 태도의 전형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접니다.

 

   이런 회의론자(懷疑論者)가 혁신학교 준비에 발을 담궜습니다. 다른 분께는 어떤지 몰라도 저에게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왜냐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은 변화냐 안주냐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학교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그야말로 벼랑 끝에 서 있다고 봅니다. 모두가 두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더 이상 물러설 것도 없기에 여기서 한 걸음을 더 내디뎌도 잃을 것이 없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한 걸음 밖이 낭떠러지라고 움츠리고 있으면 절대로 이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벼랑 끝에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우리의 용기가 한 순간에 이 모든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선생님의 용기 있는 한 걸음이 학교를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었던 낭떠러지가 평지일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정말 나락의 끝인지는 실제로 디뎌봐야 알 수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지혜를 모아 함께 천 길 낭떠러지의 앞길을 잘 살펴 나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혁신학교에 준비한다니까 우리 애들 공부는 어떻게 할거냐, 고 많이들 물으십니다. 제가 책임감 있게 ‘이렇게 됩니다’라고 말씀드리기 곤란한 부분입니다. 그렇지만,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제 꿈은 이렇습니다. 지금 우리 학교의 모든 선생님께서 수업 준비도 열심히 하시고, 정말 아이들의 공부에 애를 많이 쓰시는데 왜 우리 학생들의 성적은 변화가 없을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선생님께서 가르치시는 걸 학생들이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제부터는 아이들이 왜 못 받아들이는가,를 생각하면서,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지를 점검해 가면서 가르쳐 보자는 것입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혹은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방법으로,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학생들이 받아들이는 상황을 고려하면서 수업을 하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도 내년부터 당장 하기는 어려우니까 우리부터 좀 잘 가르치는 방법을 좀 배워보자, 는 것입니다. 사실,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니까 못 했던 것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앞서 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했나, 이런 것도 좀 배우고, 옆자리 앉으신 선생님과 머리도 맞대어 같이 나누고 배우자는 것이 혁신학교 수업의 핵심이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선생님께서 학교 수업에서 보람도 좀 느끼시고, 자긍심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혁신학교에서 생활지도는 어떻게 할 거냐고도 물으십니다. 지금처럼 흡연 문제나 복장, 생활지도 문제를 이대로 ‘방치’할 것이냐고 힐난도 하십니다. 이것도 제가 답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 학교의 생활지도의 문제가 울타리가 너무 ‘넓은 것’이라기보다는 울타리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울타리가 없으니 학생들이 어디까지가 허용된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은가 봅니다. 내년부터는 우리 선생님들과 학생, 학부모님의 의견까지 반영해서 ‘울타리’를 치는 작업을 같이 하고 싶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에 울타리를 세우고 학생들이 생활하게 할 것인지를 함께 정하고, 울타리를 넘어가는 학생들이 없도록 튼튼한 울타리를 짓는 겁니다. 울타리를 넘어서는 학생들에게는 따끔한 지적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디까지 울타리를 세울까, 하는 논의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가 세운 울타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훨씬 중요하다고 봅니다. 결국 그 울타리가 튼튼히 유지하고 관리하려면 우리 모두의 관심과 정성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선생님들께서 마음으로부터 그런 관심과 정성을 쏟으시려면 첫 출발부터 함께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울타리를 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함께 지혜를 모으기도 할 테고, 때로는 치열한 논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모든 진통의 과정도 다 환영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우리가 함께 세우고 관리하는 울타리는 함부로 흔들리지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튼튼한 울타리를 함께 만드는 일에 선생님의 지혜가 꼭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들의 많은 염려와 걱정에도 제가, 고등학생에겐 진학을 위한 학교 공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제가, 혁신학교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말씀드리고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저는 학생들이 복도에 자기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것을 몹시 싫어해서 저에게 걸리면 크게 혼납니다. 잘 아시다시피 진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남이야 어떻든 온전히 제 발만 괜찮으면 상관없다는 못된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선생님께서도 복도를 자세히 보셔서 아시겠지만, 우리 학교 복도가 정말 신발 벗고 양말로만 다니기에 더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매일 청소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학생들의 청소시간도 있고, 그런데도 복도와 계단의 청소 상태는 더 이상 나아지지 않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조금씩 더러워진 복도 때문에 더 많은 아이들이 선생님들 몰래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겠지요? 이제는 학교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복도를 학생들이 양말만 신고도 걸을 수 있는 곳으로 정비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생님들과 함께 복도를 반들반들 닦아 놓고, 신발 신고 다니는 녀석들을 따끔하게 혼내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사실, 지금 이렇게, 약간은 진지하고 무겁게, 아주 큰일이 일어날 것처럼 말씀드렸어도, 정작 내년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아직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 정해진 게 없는 길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뭐 어떻습니까? 선생님께서 다 함께 가시자고 하는 길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가을, 늘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2014년 10월, 느티나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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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4-10-13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이들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 사회를 살 만하다고 여겼으면 좋겠고, 이 사회 어딘가에 내 몫의 행복이 있다고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목표는 없어도 되는데, 꿈도 희망도 없는 건 정말 슬프더라구요.

느티나무 2014-10-13 18:03   좋아요 0 | URL
네, 명심해서 우리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애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조선인 2014-10-14 09:01   좋아요 0 | URL
아이고, 느티나무님, 너무 크게 받아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딸이 중학생이 되다 보니, 이제는 키우는 게 아니라 같이 커야 되는 게 고단하여 넋두리한 거에요. ^^

느티나무 2014-10-14 10:36   좋아요 0 | URL
아, 마로가 벌써 중학생이로군요.(역시 남의 집 애는 무럭무럭 잘도 크는군요.) 정말 시간이 빠릅니다. 저도 아이가 크는 걸 보는 건 큰 기쁨인데, 상대적으로 내가 늙어가니까 그건 슬프네요. 조선인님은 여전하셔서 가끔 들어오는 알라딘이 고향 같아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