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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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김어준을 사진(화면)으로 볼 때마다-실제로 본 적은 없다- 지상렬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애가 무척 강한 지상렬!(지상렬은 개그맨이지만, 원래 성격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처럼 보인다.) 약 한 달전쯤의 이 책을 사서 며칠동안 정독했다. 대체로 심각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읽다가, 맨 끝에는 결국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이상하게 생각되던 책의 표지 디자인이 다시 한 번 보게 됐다. 분명 이런 책표지 디자인은 저자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봤다. 흠, 조금 더 잘생긴, 자기애가 강한 지상렬로 수정해야겠다.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상담글을 묶어서 낸, '건투를 빈다'를 재미있게 읽었었다. 연재할 때부터 신문에서 챙겨 읽었는 주요 기사였으니, 책이 나오고 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권 선물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남자 한동안 한겨레 지면(紙面)에선 뜸하더니, '내가 만난 여자' (제목이 정확하지 않다.)라는 글을 띄엄띄엄 연재하길래 또 반가웠다. 황수정, 신정아 등 우리 사회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은 여자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다.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를 지난 7월부터 꾸준히 들었다. 특히 여름 밤에 걷기 운동을 할 때 지루해서 그 전까지는 MP3로 음악을 들었는데, 나꼼수를 알게 되면서부터 평균 2번씩 반복해서 들었다. 어떤 날은 내가 운동하면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나꼼수를 듣는가 싶다가도 또 어떤 날은 나꼼수를 듣는 재미를 위해 운동하러 나서는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한참 후,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라는 책이 나왔다. '나꼼수'에서 다 했던 이야기라는 평이 들려 살까 말까 망설이기 했지만, 그래도 듣는 것과 읽는 것은 또 다른 것이겠지 싶어서-사실 인터뷰 녹취록이니 글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하다- 사서 읽었다. 예상대로 나꼼수에서 말했던 내용이 많아서, 그 특유의 말투가 생각나서 혼자서 킬킬거린다. '명랑시민 정치교본'이라는 부제가 딱 맞는 말이다. 그래도 내용도 하나도 놓칠 수 없는 법! 나는 정독(精讀)했다. 그리고 그 결과 희미하나마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랬다. (아마 4월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후배 선생님과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년 대선은 어떻게 될까요?" 나한테 이렇게 묻길래, "지금 이대로라면 박근혜가 될 가능성이 90%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럼 야권에서는 누가 나올까요?" "지금으로서는 손학규가 유력하겠지만, 그가 나오면 대선에서는 정동영 정도의 표를 얻는데 그치지 않을까? 만약 손학규가 민주당으로 나오면 진보진영에서는 후보 단일화의 압력은 더 적어질테니 완주는 할 것 같은데" "문재인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도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 좋은 사람인 것 같은데... 자신이 권력의 최정점에 서야겠다는 강한 욕망(의지)를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잖아? 게다가 아직은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로 내 놓은 게 없으니까... 정말로 정치를 시작하려는지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는 걸" 뭐 대충 이런 뻔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말하는 나도 기운이 쑥 빠지곤 했다.

 

   그런데 이 책 이후로 조금씩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워낙 역동적인 우리나라의 정치 환경이 최근엔 확 달라지기도 했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예언이 아주 빠른 시간에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결과로 확인하면서, 이 책을 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던-하지만, 이 불의한 시대를 살아야하는 평범한 사람들 각자는 대체 어떻게 해야할 바를 잘 모르던- 뭔가 큰 욕구들이 이들의 '쫄지 마, 씨바'라는 외침에 따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5월 6일부터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우리 정치의 현실과 전망에 대해 묻고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 이에 대답한 녹취록을 글로 옮긴 것이다. 김어준은 이 책에서 자신만의 철학으로 좌우파의 구분부터 시작해서 '가카'의 주요 재테크 꼼수를 폭로하기도 하고, 진보 진영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인물 비평, 보수주의의 본질과 박근혜에 대한 인물 비평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야기 전개 과정의 필요성 때문에 곳곳에 말한 그의 '예측'이 어느새 현실이 되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문재인의 부상'과 '안철수의 등장'(이건 안철수가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안철수가 정치판에 등장하면 기존 정치권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지지가 있을 것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 한나라당의 '홍준표 대표 체제'와 '나꼼수의 대박'이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이렇게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었을까?

 

   책을 뒤적이다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김어준의 말을 찾아보았다. 먼저, 진보 보수를 나누고 세계를 이해하는 스탠스를 찾는 걸 설명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아가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부대끼면서 순간순간 경험으로 터득한 건데, 그러니까 근본은 없어. 어쨌든 그런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나름대로 내재적 속성을 직관과 통찰로 발견한 거라고 난 주장하는 거지, 일방적으로"(33쪽)

 

   "정치를 이해하려면 결국 인간을 이해해야 하고 인간을 이해하려면 단일 학문으로는 안 된다. 인간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팩트와 가치와 논리와 감성과 무의식과 맥락과 그가 속한 상황과 그 상황을 지배하는 프레임과 그로 인한 이해득실에 따른 공포와 욕망, 그 모두를 동시에 같은 크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섭해야 한다. 나는 통섭한다."(292쪽)

 

   그가 표현한 대로 말하면, '좀 재수없긴'하지만, 일단 예측의 결과는 그의 말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겠다.(아무튼 '잘난' 사람이라니까!) 그런데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면 다시는 그 사람 책은 안 볼 것 같은데, 김어준이니까 이런 게 좀 밉지가 않다고 해야 하나.(본인은 싫을라나? -귀엽다.) 아무튼 잘난 사람이 나 잘났어, 라고 하는데, 뭐 어때? 쿨하게 넘어가야지.

   마지막으로 이 주제에 대해서 하나만 더 기억해야 할 단어는, 바로 '사람'이다. 김어준이 책의 다른 부분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자신의 직관과 통찰력은 타고난 균형감각 덕분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가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순간순간 경험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제 내가 본 희망의 한 대목에 대해서 말해 보려고 한다.

 

   구조와 프레임을 통찰하지 못하고 구체적 삶과 인간이 없는 균형 감각이란 그렇게 허망한 거야. 이건 그나마 숫자로 제시하니까 그의 균형이란 게 얼마난 웃긴 줄 아는 거야. 숫자로 표시되지 않는, 구체적 삶을 충분히 겪지 않아 생기는 한계는 자명해. 그래서 구체적 삶이란 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어떤 구체적 삶을 살아왔는가가 결국 그의 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고. 박근혜는 그런 과정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269쪽)

 

   여기서 한창 유행하던 우스갯소리가 떠오른다. "북한은 못 하는 게 없고, '가카'는 안 해 본 게 없고, 박근혜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여기서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것이 어떤 큰 정치적 결정이나 판단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구체적 삶을 겪지 않았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은 한계가 자명하다면? 일말의 희망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진보진영이 늘 지적해 왔던 '이미지만 있'다, '수첩 공주'다, '3분 이상 발언하지 못한'다, '컨텐츠가 없'다,는 지적의 변종일까? 

 

 

   결국 이번 대선과 관련해 보수 진영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인물은 박근혜밖에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우리의 이명박이 있다. 정확하게는 퇴임 이후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이명박의 생존 본능이. 이 두 가지의 큰 힘이 앞으로 1년 반 동안 한나라당을 매우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빠뜨릴 것이다. 특히 이명박의 생존 본능은 정상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한나라당에게조차 해가 되는, 희한한 복마전을 펼쳐낼 것이다. 두고 봐라.(291-292쪽)

 

   그러나, 박근혜의 한계-이 책에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분명 박근혜는 아직도 가장 유력한 차기대통령이 아닌가-만으로는 진보 진영이 다시 집권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김어준은 X 맨이 한 명 더 있다고 말한다. 바로 '가카'다. 아마 박근혜의 한나라당은 우리 '가카'의 생존 본능 때문에 더 망가질 가능성이 있다고 강력하게 예언한다. 지금(2011.12.15.) 그의 예언이 현실이 되어 가는 것일까, '가카'의 친인척들로, '선관위에 대한 디도스 공격 문제'와 '한나라당 쇄신책'을 둘러싸고 몹시 시끄러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박근혜가 드디어 전면에 나선다.

 

   지금까지 대체로 적중했던 그의 예언이 이 마지막 예언에서 다시 한 번 적중할 것인가?

   나에게 이런 기대감이 생긴 것만으로도 이 책에 들인 값이 아깝지 않다. 아니 너무 싸다.

 

 

사족

 

"소설을 쓰고 있네", "여기까지는 팩트고 지금부터는 소설입니다." 흔히 듣는 말이다. 앞에 말은 대체로 비하의 의미가, 뒤에 말은 자기 말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이란 무엇인가? 바로 그럴 듯한, 현실에서 있음직한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또, 소설의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사건과 사건의 인과성이다. 그러니 대체로 좋은 소설은 현실의 '데자뷰'일 수 있다. '나꼼수'의 더 멋진 소설 쓰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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