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O반의 미진, 태인, 태원, 현석, 경석, 도훈, 민성, 민현, 범석, 병규, 성환, 용준, 재성, 종민, 창범, 광규, 시윤, 민기, 우근, 찬, 한성, 호영, 호진, 교훈, 승호, 영창, 재민, 형민, 영준, 준호, 성석, 지훈, 민기, 현우, 창의, 성영, 광진, 희찬, 규화, 희성, 종경에게

 

   담임이 다정다감하고, 살갑고,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너희들을 더 깊이 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 나는 그런 재능이 부족한 사람인 줄 잘 알고 있기에, 너희들의 이 힘든 고등학교 시절을 다만, 함께 견디는 것으로 내 마음을 표현하리라고 다짐했었다. 그게 앞으로 모진 세상 풍파를 겪을 너희들에게 선생인, 내가 해 줘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결심대로 지난 2년 동안을 너희들과 함께 버텨왔다. 그 때문에 힘든 사람도 많았겠지만,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시간 속에서 조금씩 성장했으리라고 믿는다. 아니, 그건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객관적인‘사실’이다. 너희들은 훌쩍 자랐다. 몸도, 마음도, 생각도, 판단도, 생활도, 의지도, 꿈도, 모두 예전보다는 많이 성장했다.

 

   다만 아직도 만족을 모르는 내 눈높이가 문제다. 그렇지만, 원래 사람은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는 더 엄격해야 하는 법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다고 해도 '아버지'는 아들의 장래를 걱정해서 길에서 오줌 누는 아들을 혼냈다는 이야기를 소개한 강희맹의 ‘아버지의 훈계’라는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글을 읽을 때마다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죽은 그 아버지도 아들 옆에서 오래도록 아들의 삶을 지켜주고 싶었을 것이다. 어설픈 변명일지 모르나, 너희들을 보는 나 또한 그렇다. 결국 너희들은 내 인생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 의미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의 눈높이는 내려갈 줄 모르는 것이리라. 그 때문에 지금은 좀 고생하지만, 훗날 이 시간이 의미 있었다고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제 곧, 네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느냐를 평가받는 순간이 온다. 모두에게 행운을 빈다.

 

2014년 학생의 날을 축하하며 3-O반 담임 OOO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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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학년 학생들에게

 

  OO중으로 이어지는 학교 밖 산책로 안쪽에 누가 뿌려 놓았는지 예쁜 꽃이 가득합니다. 그 꽃을 볼 때마다 저는 어느 봄 그 화단에 꽃씨를 뿌린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가 어느 봄날 꽃씨를 뿌렸기에 이 가을, 우리 학교 화단이 환합니다. 그 꽃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밝습니다.

 

   그 때마다 제 자신을 들여다봅니다. 제가 지금 아이들의 마음에 꽃씨를 심고 있는지 묻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어느 한순간 제가 심은 씨앗 하나가 싹을 틔울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제 정성을 다해, 제 진심을 다해, 여러분들의 마음에 환한 꽃으로 필 씨앗 하나를 심고 가꾸었는지, 어느 봄 화단에 씨를 뿌려 환한 가을을 만든 분이 저에게 묻습니다.

 

   저는 화단에 핀 구절초가 참 예쁘다고 느낍니다. 화려해서 사람들의 눈길을 단박에 끌지는 않지만, 꽃에 눈높이를 맞추고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면 볼수록 수수하고 은은한 매력이 있는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다시 제 자신을 들여다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얼마나 눈높이를 낮추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들을 얼마나 더 자세히 보려했는지 떠올려 봅니다. 여러분의 수수한 매력을 알아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화단에 핀 구절초가 말없이 저에게 묻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절초를 볼 때마다 부끄럽기만 합니다. 화단에 씨를 뿌린 사람을 생각하기 전에, 구절초의 아름다움에 취하기 전에, 먼저 제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한 까닭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은 ‘학생의 날’입니다. 학생의 날을 맞아 생각해 볼 때 학생 신분은 굴레이기도 하고 축복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굴레라고 느끼는 학생은 현재의 상황에서 조금 더 즐거운 일을 찾아보도록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축복이라고 느끼는 학생은 이 축복의 시간을 아껴 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교실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학생의 날,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여러분들과 국어 공부를 하는 느티나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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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운영계획서 설명회

    

 

2014.10.13 / 느티나무

 

 

0. 머리말

   선생님, 반갑습니다. 오늘은 우리 학교 혁신학교 추진단에서 마련한 운영계획서 내용을 선생님들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미리 배부해 드린 계획서를 바탕으로 제가 설명을 드리고, 나중에 궁금한 점을 물어봐 주시면 추진단 선생님들과 의논해서 답을 해 드리겠습니다.

 

1. 혁신 학교의 공모신청 절차 안내

 

   혁신학교 추진단 구성(10명) → 혁신학교 운영계획서 작성(추진단) → 혁신학교 운영계획서 보고(교직원 연수시간 중) → 질의 응답 및 토의 → 무기명 비밀투표 → 학교운영위원회 보고 → 학교운영위원회 의결(찬성 시) → 교육청 공모 신청 접수 → 교육청 학교 방문 실사 → 혁신학교 지정(공모 결과 발표) → 혁신학교 운영(2015년 3월)

    

 

2. 혁신학교의 정의

- 혁신학교는 가) 학교구성원들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나) 학교의 본질적 기능을 회복하여, 다) 학교구성원들이 모두 만족하는 학교라고 정의할 수 있음.

 

   

3. 혁신학교 운영계획서의 안내

 

가. 학교 구성원들의 자발성을 이끌어 낸다는 측면에서

 

1)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방향으로 기존의 학교 문화를 혁신할 필요가 있음

가) 학교장의 수평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나) 교사회의 학사 운영 결정권과 책무성을 강화하고,

다) 학생회의 자치 활동 및 자율 활동의 토대를 마련하며,

라) 학부모의 학사 운영 참여를 보장하고 독려해야 한다고 생각함.

 

* 교사회의 학사 운영 결정권과 책무성을 강화하려면,

-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지는 회의 시간이 확보되어야 함

- 교사회의 논의 결과를 학사 운영에 적극 반영하여 교사들의 책무성을 강화해야 함

 

* 학생회의 자치 및 자율 활동의 토대를 마련하려면,

- 교권과 학생 인권이 조화로운 생활 협약안을 마련해야 함

 - 교칙의 제,개정에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해서 교칙의 실효성을 강화해야 함

- 학생 자치 활동, 동아리활동, 창체 활동 시간을 확보하고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해야 함

 

나. 학교의 본질적 기능을 회복한다는 측면에서

 

1) 수업에서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학습공동체를 지향해야 함

가) 학교장이 교실 수업 개선에 필요한 구성원들의 노력을 지원하고,

나) 교사는 교실에서 실제로 배움이 일어나도록 학습자를 이끄는 노력이 필요하고,

다) 학생은 수업을 통해 배움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며,

라) 학부모는 학교의 수업 혁신을 위한 노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함.

 

* 학생의 배움과 성장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교사의 노력이 필요한데,

- 전문적이고 집단적인 교사들의 학습 공동체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함

- 교과별, 혹은 학년별 교사 연구 동아리 활동을 지원함

- 교과, 교수학습 방법, 교육심리 분야의 교사 연수가 필요함

    

2) 다양한 교육과정과 맞춤형 진로지도, 의미 있는 창체 활동을 준비해야 함

가) 다양한(자연계/인문계/예체능계/직업계열) 교육과정의 도입을 검토하고,

나) 학년별 특색활동 도입(독서/진로/학습심화동아리 운영)하고,

다) 학생 주도의, 지속가능한, 소규모, 학생 창체(자율) 활동 적극 지원하고,

라) 선택형 보충수업과 자율학습 등으로 학습자의 진로를 고려하고,

마) 필요한 경우 외부기관과 연계하여 진로지도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음.

 

* 의미 있는 창체 활동과 관련해서는,

- 학생 주도형 동아리 부서(창체)를 더 많이 만들고 적극적으로 활동을 지원해야 함

- 기존의 금요일 7,8교시 학생 자율 활동을 더욱 활성화해야 함

 

다. 구성원들이 만족하는 학교라는 측면에서

 

1) 기존 학교 운영의 틀을 혁신하는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 가야 함.

가) 학교장은 학교 구성원들과 협력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통한 학교의 변화로,

나) 교사는 ‘행정 업무’ 대신, ‘수업’과 ‘생활지도’ 영역의 전문성 신장으로,

다) 학생은 배움이 일어나는 수업과 학생에게 맞는 다양한 교육 활동으로,

라) 학부모는 학교 정보 공개, 다양한 학부모 연수 및 학사 운영 참여 확대로,

마) 학교구성원들이 학교에서 만족을 느끼는 방안을 모색해야 함.

 

* 교사가 ‘수업’ 및 ‘생활지도’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교무업무의 개선이 필요한데,

- 기존의 교무업무전담팀을 운영하면서 미흡한 점을 개선할 필요성이 있음.

- 결재권 이양, 관행적이고 전시성인 업무 폐지, 전달 위주의 회의를 지양해야 함.

 

이상으로 운영계획서 안내를 마치고,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4. 질의 응답 

Q1. 운영계획서를 보면 학생 활동만 많이 나열되어 있고, 학생 생활 지도에 대한 내용이 부족합니다. 학생 지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알려주십시오.

 

Q2. 교사에게 수업 이외의 연수 및 교육활동 협의 시간 등이 계속 이어지는데 너무 과중한 업무가 되지 않을지 걱정스럽습니다.

 

Q3. 혁신학교를 하면 학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시는 분이 많은데, 학력을 신장시킬 방안은 있는 것인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Q4. 우리 학교가 성적이 낮고, 진학을 희망하지 않는 학교라는 배경 설명이 있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없이 혁신학교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진단에 맞지 않은 처방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Q5. 혁신학교로 지정되면 인사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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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14-10-30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2014.10.29) 교육청 실사단이 현장 방문을 왔었다. 어쩌다 보니 혁신학교 운영계획서에 관한 브리핑을 하게 돼서 서둘러 정리한 자료... 기억해 두려고 옮겨 놓는다.
 

 

어느 야자주의자의 전향

 

 

   선생님, 주말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여느 날처럼 토요일에 자습 감독하러 나왔다가 이런저런 생각 끝에 선생님께 드릴 글을 씁니다. 갑자기 이런 글이 불쑥 전해져서 조금은 의아하실 듯한데, 지난 금요일 7교시 교과별 모임에서 같은 교과의 선생님들께 혁신학교 추진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드렸을 때, 제가 참 제대로 설명을 못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짧은 글로 제 생각을 정리해서 말씀드리는 게 어떨까 싶어서 이렇게 여러 선생님들께 글을 드립니다. 말도 못하는데, 글은 제대로 나올까 싶어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고심 끝에 혁신학교추진단에 발을 담근 사람으로서 책임감 있게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게 선생님께서 올바른 판단을 하시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요새 모 오디션 프로그램의 지원자가 불러서 화제가 된 노래 중에,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곡이 있습니다. 제가 예전부터 좋아하던 노래였는데, 새로 편곡된 노래를 들으니 무척 좋았습니다. 원래는 들국화의 리더인 전인권이라는 가수가 만들어서 부른 노래인데, 제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노래의 가사 때문입니다. 그 노래 가사의 맨 마지막 구절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가사에 뭔가 깊은 뜻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아직도 저는 이 정도 수준에 혹하는 사람이라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이 노래의 가사를 빌어 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지나간 것의 ‘의미’와 ‘후회 없는 꿈’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저에게도 OO고에서의 지나간 것이 ‘그런 의미’를 남겼지만, 이제는 ‘그런 의미’를 넘어서서 후회 하지 않을, 앞으로 남은 우리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노래해야 할 때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해 3월에 OOO로 왔고, 그해 2학년 문과 남자 반을 맡았습니다.

   올해도 담임 배정에서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작년에 맡았던 학생들을 데리고 3학년 담임을 하고 있습니다. 담임으로서 학생들에게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공부’와 ‘규칙’입니다. 저는 아마 학생들에게 무척 깐깐하고 엄격한 담임교사로 평가를 받고 있는 듯한데, 그것은 학생들의 ‘공부’와 ‘규칙’에 대해서만큼은 제가 조금도 너그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자랑은 아니지만, 2년 동안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퍼부은 덕분인지, 그래도 지금은 조금이나마 ‘공부’와 ‘규칙’의 의미에 대해서 겨우 생각해 보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어려운 가정 형편의 아이들이 많은 우리 학교의 아이들이 대학 진학에 따른 학력의 차이가 분명한 현실에서 학교에서 하는 ‘공부’만이 이 희망 없는 세상에 대해 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발버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사로서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했습니다. 공부를 잘 하려면 생활지도가 먼저 되어야 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활지도도 나름대로 엄격하게 했습니다. 매를 들지는 않았지만, 차갑고 무서운 말로 아이들을 다그치기도 했습니다. 제가 진학 지도를 열심히 하면 적어도 제 성적에 맞는 학교를 찾아갈 수 있겠다 싶어서 저의 짧은 경력 기간에 익힌 노하우를 성의껏 많이 나누었습니다.

 

   다른 반은 모르겠고, 내가 맡은 반이라도 한번 해 보자, 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2년을 버텼습니다. 그런데, 수능이 한 달 남은 요즘 자꾸 제가 해 온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를 자문하게 됩니다. 담임이 무서워서 수업이든, 보충이든, 야자든 꼬박꼬박 자리에 앉아는 있는데, 이게 정말 방향이 맞는 것인지 의심스럽고, 아침부터 오후까지 그냥 잠만 자고 축 늘어져 있는 학생들을 깨워 수업은 하지만, 사실은 제가 이 녀석들과 함께 할 무엇이 없기 때문에 수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때로는 학교가 참 무기력하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무엇인가, 학교는 아이들의 성장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나, 하는 넋두리를 자꾸 해 봅니다. 지금껏 저는 담임으로서 우리 반 아이들의 ‘학업’과 ‘생활(인성)’과 ‘진로’에 대해서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를 물었을 때 어떤 답을 듣게 될 것인지 두려움이 밀려듭니다. 저는 하느라고 했는데, 손 안에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어떤 선생님께서는 수업이 재미 없고, 아이들의 생활이 엉망이 된 일이 최근 2-3년 사이에 심해졌다고 하시고, 학생들과 수업하기가 점점 더 힘들다고 말씀도 하셨습니다. 대놓고 말씀은 안 하시지만, 학습 분위기가 덜 잡힌 것은 생활지도가 부재하기 때문이고, 생활지도의 부재를 학생부의 역할 부재에서 찾으시기도 하셨지요. 글쎄요, 그런가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학생부가 있던 작년에 본 모습은 이미 학교의 상황이 교사들이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가 한두 명이 덤벼들어서는 해결할 수 없는 통제 불능의 상황에 놓여 있다는 느낌이었지요. 학생부가 엄연히 존재했던 상황 속에서도 제가 이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저는 그 선생님의 진단에 전부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만, 제 판단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지요. 선생님의 그런 판단도 존중합니다. 일정 부분 학생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학생부가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전담해서 확 휘어잡아주면 학교가 잘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 판단은 조금 유보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듯이 생활지도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출발한다면 선생님께서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넘으시겠습니까? 혁신학교가 아니라면, 혁신 학교의 방향이 틀렸다면, 함께 OO고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았으면 합니다. 저는 혁신학교가 어떤 정해진 목표나 방향이 있는 게 아니라, 학교 구성원인 우리 모두가 ‘내 학교’라는 마음으로 함께 고민하면서 현재의 문제를 풀어가는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혁신학교로 가는 과정에는 모든 선생님의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저는 학교 안팎의 변화가 늘 두렵습니다. 익숙한 것은 편하고, 편한 것에 저는 잘 적응하니까요. 누구나 그렇듯 저는 안온(安穩)한 학교가 좋습니다. 이런 기질 탓에 어쩌다 학교의 새로운 일을 맡으면, 저는 그 일은 잘 될거야, 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잘 안 되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함이 더 컸고, 일이 잘 못 돼서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으로 늘 안절부절못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새로운 일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새로운 일이 지금보다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로 생각해 왔습니다. 어쨌든 지금 이대로가 살만 했으니까요. 그래서 한 걸음 뒤에서 팔짱을 끼고 그 상황을 지켜 볼 때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또, 새로운 일에 용감하게 뛰어드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일 너머에 있는 자신의 개인적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다고 내심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수구적’인 태도의 전형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접니다.

 

   이런 회의론자(懷疑論者)가 혁신학교 준비에 발을 담궜습니다. 다른 분께는 어떤지 몰라도 저에게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왜냐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은 변화냐 안주냐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학교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그야말로 벼랑 끝에 서 있다고 봅니다. 모두가 두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더 이상 물러설 것도 없기에 여기서 한 걸음을 더 내디뎌도 잃을 것이 없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한 걸음 밖이 낭떠러지라고 움츠리고 있으면 절대로 이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벼랑 끝에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우리의 용기가 한 순간에 이 모든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선생님의 용기 있는 한 걸음이 학교를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었던 낭떠러지가 평지일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정말 나락의 끝인지는 실제로 디뎌봐야 알 수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지혜를 모아 함께 천 길 낭떠러지의 앞길을 잘 살펴 나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혁신학교에 준비한다니까 우리 애들 공부는 어떻게 할거냐, 고 많이들 물으십니다. 제가 책임감 있게 ‘이렇게 됩니다’라고 말씀드리기 곤란한 부분입니다. 그렇지만,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제 꿈은 이렇습니다. 지금 우리 학교의 모든 선생님께서 수업 준비도 열심히 하시고, 정말 아이들의 공부에 애를 많이 쓰시는데 왜 우리 학생들의 성적은 변화가 없을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선생님께서 가르치시는 걸 학생들이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제부터는 아이들이 왜 못 받아들이는가,를 생각하면서,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지를 점검해 가면서 가르쳐 보자는 것입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혹은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방법으로,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학생들이 받아들이는 상황을 고려하면서 수업을 하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도 내년부터 당장 하기는 어려우니까 우리부터 좀 잘 가르치는 방법을 좀 배워보자, 는 것입니다. 사실,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니까 못 했던 것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앞서 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했나, 이런 것도 좀 배우고, 옆자리 앉으신 선생님과 머리도 맞대어 같이 나누고 배우자는 것이 혁신학교 수업의 핵심이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선생님께서 학교 수업에서 보람도 좀 느끼시고, 자긍심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혁신학교에서 생활지도는 어떻게 할 거냐고도 물으십니다. 지금처럼 흡연 문제나 복장, 생활지도 문제를 이대로 ‘방치’할 것이냐고 힐난도 하십니다. 이것도 제가 답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 학교의 생활지도의 문제가 울타리가 너무 ‘넓은 것’이라기보다는 울타리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울타리가 없으니 학생들이 어디까지가 허용된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은가 봅니다. 내년부터는 우리 선생님들과 학생, 학부모님의 의견까지 반영해서 ‘울타리’를 치는 작업을 같이 하고 싶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에 울타리를 세우고 학생들이 생활하게 할 것인지를 함께 정하고, 울타리를 넘어가는 학생들이 없도록 튼튼한 울타리를 짓는 겁니다. 울타리를 넘어서는 학생들에게는 따끔한 지적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디까지 울타리를 세울까, 하는 논의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가 세운 울타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훨씬 중요하다고 봅니다. 결국 그 울타리가 튼튼히 유지하고 관리하려면 우리 모두의 관심과 정성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선생님들께서 마음으로부터 그런 관심과 정성을 쏟으시려면 첫 출발부터 함께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울타리를 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함께 지혜를 모으기도 할 테고, 때로는 치열한 논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모든 진통의 과정도 다 환영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우리가 함께 세우고 관리하는 울타리는 함부로 흔들리지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튼튼한 울타리를 함께 만드는 일에 선생님의 지혜가 꼭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들의 많은 염려와 걱정에도 제가, 고등학생에겐 진학을 위한 학교 공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제가, 혁신학교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말씀드리고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저는 학생들이 복도에 자기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것을 몹시 싫어해서 저에게 걸리면 크게 혼납니다. 잘 아시다시피 진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남이야 어떻든 온전히 제 발만 괜찮으면 상관없다는 못된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선생님께서도 복도를 자세히 보셔서 아시겠지만, 우리 학교 복도가 정말 신발 벗고 양말로만 다니기에 더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매일 청소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학생들의 청소시간도 있고, 그런데도 복도와 계단의 청소 상태는 더 이상 나아지지 않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조금씩 더러워진 복도 때문에 더 많은 아이들이 선생님들 몰래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겠지요? 이제는 학교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복도를 학생들이 양말만 신고도 걸을 수 있는 곳으로 정비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생님들과 함께 복도를 반들반들 닦아 놓고, 신발 신고 다니는 녀석들을 따끔하게 혼내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사실, 지금 이렇게, 약간은 진지하고 무겁게, 아주 큰일이 일어날 것처럼 말씀드렸어도, 정작 내년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아직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 정해진 게 없는 길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뭐 어떻습니까? 선생님께서 다 함께 가시자고 하는 길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가을, 늘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2014년 10월, 느티나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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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4-10-13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이들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 사회를 살 만하다고 여겼으면 좋겠고, 이 사회 어딘가에 내 몫의 행복이 있다고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목표는 없어도 되는데, 꿈도 희망도 없는 건 정말 슬프더라구요.

느티나무 2014-10-13 18:03   좋아요 0 | URL
네, 명심해서 우리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애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조선인 2014-10-14 09:01   좋아요 0 | URL
아이고, 느티나무님, 너무 크게 받아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딸이 중학생이 되다 보니, 이제는 키우는 게 아니라 같이 커야 되는 게 고단하여 넋두리한 거에요. ^^

느티나무 2014-10-14 10:36   좋아요 0 | URL
아, 마로가 벌써 중학생이로군요.(역시 남의 집 애는 무럭무럭 잘도 크는군요.) 정말 시간이 빠릅니다. 저도 아이가 크는 걸 보는 건 큰 기쁨인데, 상대적으로 내가 늙어가니까 그건 슬프네요. 조선인님은 여전하셔서 가끔 들어오는 알라딘이 고향 같아요. 고맙습니다.
 

  “샘, 바람이 진짜 시원하네요.”

  “거봐라, 올라오니까 좋잖아?”

  “그래도 오는데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다 큰 녀석들이 엄살 부리기는……”

  “빨리 기념사진 찍어요. 높이 올라오니까 부산 시내가 다 보이긴 하네요.”

  “알았다, 다 같이 사진 한 번 찍자. 여기 이 사진에 나온 사람은 내가 아이스크림 쏜다.”

 

   백양산 불웅령에서 애들과 이런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내 눈은 연신 저쪽에 있는 안부를 향한다. 산자락 입구에서부터 뒤처져서 느릿느릿 걷던 대여섯이 아직도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아이스크림을 사 준다고 말한 것도 다분히 이 대여섯을 겨냥한 말이기도 했다. 사진을 찍고도 한참이나 정상에 선 감격을 나누었는데도 여전히 그 녀석들이 보이지 않는다. 다음 수업 시간에 맞춰가려면 이제는 슬슬 내려가야 할 때다. 괘씸한 마음을 감추고 올라온 녀석들과 함께 하산을 하려는데 저 멀리서 녀석들이 나타났다. 여섯 명! 느긋한 걸음으로 이쪽을 향해 걸어온다. 안 올라오리라고 지레 짐작했던 내 속이 뜨끔했다. -- 아, 이렇게 선입견을 가지고 애들을 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먼저 온 녀석들은 내려 보내고 뒤늦게 온 녀석들을 맞아서 또 사진을 찍고 경치를 보고 너스레도 떨었다. 다른 등산객은 물론 나에게도 살갑게 구는 녀석들이 오늘은 참 예뻐 보였다. 넉살 좋은 이 녀석들은 다른 등산객들에게 인사도 잘 하고 말을 건네는데도 스스럼이 없다. 교실에서 볼 때와는 참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공부시간에는 늘 기운 없이 축 쳐져 있었던 녀석들이 힘들게 올라온 이곳에서 생기가 넘쳤다. 나에게도 교실에서와 달리 무척 살갑게 군다. 녀석들이 보는 나도 교실에서와는 많이 다른 것일까? 언제부턴가 녀석들이 산에 가자고 자꾸 조르는데, 어쩌면 내 표정도 교실 안과는 무척 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인문계고등학교 3학년의 동아리활동 시간은 죽은 시간이다. 교육과정에 있으니까 동아리 편성은 해 두지만 암묵적으로 자습을 하는 게 관행이다. 고 3담임을 몇 번 맡았던 나도 지금껏 쭉 그래 왔다. 올해도 별다른 고민이 없었다. 원래 그런 거라고,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올해 동아리 반 이름을 정할 때 멈칫했다. 고심(?) 끝에 지은 이름이 등산반. 그리고 우리 반 애들을 모두 같은 동아리에 배정해 두었다.

   첫 번째 동아리 시간에 애들한테 슬쩍 물었다.

   “우린 등산반인데 산에 갈래?”

   합창으로 들려온 대답

   “아니오.”

   “알았다. 그럼 자습해라”

   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동아리 시간이 되었다.

   “동아리 시간인데, 오늘은 산책 갈까? 저번에 자습하니까 지겹지 않더나?”

   “…… 산책이요? 어디로요?”

   “저기 뒷산에나 잠시 갔다 오지 뭐”

   “샘, 등산가는 거 아니죠?”

   “아니라니까, 우린 그냥 산책로를 따라 산책 가는 거라니까”

   “진짜지요? 그럼 나가지요.”

 

   이렇게 처음 시작된 동아리 반 산책(?)이 벌써 대여섯 번. 이젠 수요일쯤부터 등산가는지 묻는 녀석들도 있고, 자연스럽게 등산복을 챙겨오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수업 들어오시는 선생님들께도 우리 반은 동아리 활동으로 등산가는 반, 이라고 자랑도 한다. 금요일 5교시 예비 종이 울리면 중앙현관 앞에 옹기종기 모이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 모든 풍경이 참 고맙다. 이젠 내가 앞장서지 않고 먼저 나선 애들 뒤를 따라 산에 오를 일만 남았다. 부디 우리 모두 오래도록 지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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